죽음을 헤아려 작별을 고하고
눈 앞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갔다. 그것이 일개 조직원, 혹은 일반인이었다면 며칠도 채 되지 않아 이름조차 잊어버렸을 텐데. 그게 ‘라텔’이라서, 그 이름 하나를 수없이 되새기는 것은 내게 너무도 쉬운 일이 되어버려서, 그렇게 네가 아닌 너의 죽음의 수를 세어왔다.
237명의, 내가 모르는 너의 시체를 옮기고 237송이의 국화를 사 바쳤다. 이곳에는 마땅히 묻을 곳도 없어서 하나 둘 가지런히 눕혀두다 어느 순간 그마저도 그만두었다. 아무렇지 않은 눈으로 보려고 노력했지만, 그 수많은 죽음 속에서도 오직 ‘라텔’의 죽음만은 익숙해지지가 않아서 이상하다 싶었다. 너희들은… 그들은 어리석게도 어떤 잔인한 신에게 놀아난 장난감일 뿐인데.
네가 아는 ‘엘’이 아닌 줄도 모르고 필사적으로 나를 찾아 온 ‘너’들이 더없이 멍청하고 가여워 하며, 나는 어느 순간 깨닫고야 말았다. 아. 그런 ‘너’라서. 이런 비극 속에서도 나는 너를 사랑할 수 있음을 후회하지 않겠구나- 하고. 내가 없었다면 너는, 이라는 가정조차 하지 않겠구나- 하고.
나는 더럽게도 이기적이다. 내 삶에 날벼락같이 끼어 든 너를 이런 상황에서조차 놓을 수 없다. 늘 나를 기억해주길 바랐고, 나만을 생각해주길 바랐으며, 그랬기에 이제 되돌아갈 수 없을지 모르는 나를 한낱 스쳐 간 인연으로써 모든 걸 잊어주길 바란다.
그래서 늘 그들에게 말했고, 네게 말한다.
“나는 네가 사랑하던 ‘엘’이 아니야. 그러니까 돌아가.”
이런 지옥속에서도 ‘나의 라텔’이 오지 않았음에 안도하지 않았다 말할 수 없으니. 너를 사랑했던, 네게 사랑받아왔던 ‘엘’이, 나는 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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