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케이카
라테라 에일 & 엘그비르 델론
눈 앞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갔다. 그것이 일개 조직원, 혹은 일반인이었다면 며칠도 채 되지 않아 이름조차 잊어버렸을 텐데. 그게 ‘라텔’이라서, 그 이름 하나를 수없이 되새기는 것은 내게 너무도 쉬운 일이 되어버려서, 그렇게 네가 아닌 너의 죽음의 수를 세어왔다. 237명의, 내가 모르는 너의 시체를 옮기고 237송이의 국화를 사 바쳤다. 이곳에는 마
Prologue. 차가 폭발했다. 이 한 문장으로는 도통 상황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액정에 금이 간 스마트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몹시 급했고, 워낙 두서가 없어서 엘은 결국 벌컥 짜증을 냈다. 그래서 뭐가 어쨌다고? [언더보스가 휘말리신 것 같습니다.] 순간 무슨 생각을 했더라. 그 폭발이 차가 아닌 제 머리에서 일어나기라도 한 듯
엘은 식은땀을 흘리며 침대에 앉아있었다. 한밤중이었다. 몹시 어두웠고. 몸부림치듯이 일어난 자세 그대로 꼼짝도 못 하고 제 다리에 휘감긴 이불을 응시할 뿐이었다. 그 모습은 영락없이 악몽에 시달린 사람이었다. 그렇게 대부분의 사람이 예상할 수 있듯이, 그래. 엘은 악몽을 꿨다. 엘은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에 머리를 맞았고, 그 자리에서 손쓸 틈도 없이 죽었
전혀 곱게 다루어 주지 않으리라는 주인의 의지 표명이 확실한 상처투성이의 스마트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방바닥 한가득 분해된 총기의 부품들이 널려있었고, 그 사이에서 답지 않게 느린 손길로 부품을 닦던 엘의 눈이 한순간 날카로워졌으나 곧 누그러졌다. 오랜만에 얻은 휴가니 건드리지 말라 통보한 상태에서 연락을 해오는 간 큰 녀석은 없었고, 정말 급했다면 전화
“이건 또 무슨 재앙이야.” “큽…!” 엘이 무심코 중얼거리자, 인이어에 연결된 팀원들이 황급히 소리를 끄는 차단음이 동시다발적으로 들려왔다. 그리고 두 사람을 제외한 모두가 타이밍이 늦어 터진 웃음을 미처 숨기지 못한 누군가의 명복을 빌었다. 한 사람은 누가 어떻게 되어도 별 신경을 쓰지 않는 엘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그 누군가를 작신 밟을 예정의
[내일 하늘이 두 쪽 날지도 몰라.] 스마트폰 스피커 너머로 깔깔대는 목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꽤 오래 알던, 나름 친구라 칭할 만한 인물이지만 저 경박한 웃음소리는 영 적응이 안 된다. 미간을 찌푸리며 폰을 잠시 멀리 떼었다가 다시 귀에 붙은 엘은 못마땅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그래서 받는다고 만다고?” [아, 어. 받아야지! 드디어 배은망
“고생하셨습니다.” 너덜거리는 몸을 이끌고 돌아온 파트너는 간신히 목소리를 끌어올렸다. 오늘 임무의 난이도는 평소보다 높았지만, 평소보다 쉬웠고,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들었다. 그 이유는 당연히 보스가 임시로 불러들인 그 유명한 ‘전 카포’ 탓이었다. “저, 엘그비르 씨.” “왜.” 엘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임무 내내 늙은이 어쩌고 죽어라 저
일개 건달부터 정부에서조차 함부로 손댈 수 없는 마피아까지 온갖 더러운 인간군상이 밀집된 지역이라지만 어차피 그들은 범죄자에 불과했기에 그들이 활동하는 장소의 대부분은 버려진 시가지 따위일 수밖에 없었다. 토박이 수준의 엘은 조금 과장 보태면 눈감고도 길을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였다. 왜 과장을 보태야만 하느냐. 그것은 매일 같이 벌어지는 크고 작
엘은 술을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니었다. 못 마신다는 건 아니고, 상황이 될 때나 마시지 굳이 혼자서 바에 찾아와 스트레이트로 마셔댈 만큼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소리였다. 그러니까 ‘굳이 혼자서 바에 찾아와 스트레이트로 마셔대는’ 엘의 행동은 이상한 것이었다. 같은 카포- 즉 라텔 밑에 속한 스나이퍼 팀의 A는 지금 저기 앉아있는 사람이 엘이 맞는지 잠시
“들어간다.” 감히 라텔의 사무실에 노크 한번 없이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얼마나, 라고 해봐야 고작 두셋? 그 안에 엘이 들어있는 것은 말하면 입 아픈 사실이었다. 들어간다는 예고야 뭐, 들어오라 말라 허락조차 받지 않는데 의미가 있을 리 없었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지만 이미 익숙해졌기에 안에서는 놀란 기색 하나 없다. 다만 오늘은
- 이름 : 엘그비르 델론 / Elgvir Delon - 키 : 175cm - 몸무게 : 62kg - 나이 : 32세 (+α) - 외관 : 대충 잘라 뻗친 어두운 적갈색 머리카락. 평소에는 무스 따위로 넘겼으나, 그것도 이제는 귀찮아진 듯 내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대체로 무덤덤한 표정으로, 약간 날카로운 눈매와 오른쪽 눈밑의 찢어진 흉터가 성격이 나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