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텔엘

내 인간관계는 파탄 난 지 오래인 것 같다

케이카OC by 케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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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하늘이 두 쪽 날지도 몰라.]

 

스마트폰 스피커 너머로 깔깔대는 목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꽤 오래 알던, 나름 친구라 칭할 만한 인물이지만 저 경박한 웃음소리는 영 적응이 안 된다. 미간을 찌푸리며 폰을 잠시 멀리 떼었다가 다시 귀에 붙은 엘은 못마땅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그래서 받는다고 만다고?”

[아, 어. 받아야지! 드디어 배은망덕한 엘그비르가 보은하겠다는데.]

“그런 거 아니라고.”

 

소파에 늘어져 있던 엘은 고개만 슬쩍 들고선 현관 쪽을 바라보았다. 누군가 들어오려는 기색은 없다. 개인 임무로 나간 라텔이 들어오기엔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통화 내용을 듣게 될 일은 없겠지만 제 발 저린 도둑마냥 연신 현관을 흘끔거렸다. 엘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눈 밑의 오래된 흉터를 버릇처럼 긁적였다.

 

“그냥… 실수였으니까.”

 

불과 하루도 채 지나지 않은 어젯밤의 일이었다. 굳이 길게 구구절절 이야기를 늘어놓을 필요도 없었다. 늘 그랬듯이 라텔이 놀리고, 엘이 화를 냈고, 시비를 걸고, 시비가 걸리고, 싸웠을 뿐이었다. 여기까지는 평소대로의 일이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뭐가 평소대로냐며 기함할 일이었지만 어쨌거나. 문제는 그러던 와중에 엘이 본의 아니게 물건 하나를 부숴버렸다는 것이었다. 완벽한 실수였다. 단지 라텔을 맞추려고 단검을 던졌을 뿐인데 그게 하필 텔레비전으로 날아갈 줄이야.

 

[본의였다면 나한테 전화도 안 했겠네?]

“당연한 거 아냐?”

[여전히 배은망덕하군.]

“시끄럽다고. 돈이나 받고 물건이나 보내줘. 늘 쓰던 계좌에 넣는다?”

 

엘이 짜증을 부리자 그의 웃음소리는 더욱 짙어졌다. 그저 텔레비전을 사는 것이라면 인터넷 쇼핑이나 하면 되었을 테지만, 그에게 맡기면 당장 오늘에라도 물건을 받을 수 있었기에 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냥 가만히 기다리다가는 모르는 새에 라텔이 제 돈으로 장만할 것이 뻔했으니. 딱히 라텔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지만 최소한의 양심이라고나 할까. 사실 집이 없다 뿐이지 돈이 없는 것도 아니라 자존심이 조금 상하기도 했다.

 

[그래. 아, 전화 끊고 돈 보내기 전에 내가 사이트 하나 보내줄 테니까 그것도 살 생각 있으면 말해.]

"음? 티비 말고는 관심 없는데. 그새 새 라이플이라도 나왔으면 모를까."

[끊는다.]

 

엘은 제대로 답도 않고 전화를 끊어버린 것에서 왠지 그가 도망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수상함에 텁텁한 입맛을 다시며 꺼진 화면을 가만히 쏘아보고 있자, 메시지 한 통이 도착하며 액정이 밝아졌다. 아까 말한 대로 어떤 사이트의 주소였다. 어차피 시답지 않은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아무 생각 없이 링크를 연 엘…의 표정은 얼마 가지 않아 무참하게 구겨졌다.

 

- 마음에 들어?

 

곧이어 눈치 없이 도착한 메시지에 엘은 이를 까득 깨물며 스마트폰을 벽에 집어 던지고야 말았다. 꽤 묵직한 파열음과 함께 벽에 부딪혔다가 바닥에 떨어진 스마트폰의 금이 간 액정 속에는 하얀 레이스가 고풍스럽기 짝이 없는 킹사이즈 침대의 사진이 비치고 있었다.

 

- 라텔 그 괴물 놈 체력을 생각하면 슬슬 망가질 때도 되지 않았나 싶어서.

- 기왕 쓰는 거 좋은 거 써야지. 네 허리를 생각해 줘.

- 크… 이런 친구가 또 어디 있냐?

- 읽고 있어?

- 엘그비르?

- 엘~~~?

 

웅웅 울려대는 진동 소리는 단 하나도 엘에게 닿지 못했다. 그전에, 그는 이미 자신의 방에 들어가 임무 나갈 때나 쓰는 권총을 집어 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관자놀이에 핏대를 세운 엘은 소음기까지 빠짐없이 챙기고 나서야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마침, 일을 끝내고 돌아온 라텔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참으로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

 

라텔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도, 아무리 봐도 머리 꼭대기까지 화가 나 있는 엘과 그의 손에 들린 권총을 눈에 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느리게 입을 연다.

 

“아직도 삐져있냐. 속 좁은 꼬맹이 같으니.”

“…지금은 니 차례 아니니까 좀 닥쳐봐.”

 

아니, 순서야 바뀌어도 상관없지 않을까. 어쨌거나 다 죽여버리면 될 것을. 엘은 이제부터 죽음으로써 절교하러 갈 변태 자식과 존재 자체만으로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키는 아저씨 중 누구를 먼저 저승으로 보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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