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총사] 티라미수
논cp / 2018.05.03 업로드
땀 흘린 뒤에 먹는 달콤한 디저트가 제일이라는 말을 한 사람이 누구였더라. 누가 한 말인지는 몰라도 이 말은 달타냥이 어렸을 때부터 달고 살던 말이었다.
- 아버지, 저 오늘 열심히 뛰어놀고 와서 힘들어요! 달콤한 게 먹고 싶어요!
이럴 때 아버지는 늘 웃으며 어디서 난지 모를 간식거리들을 하나씩 꺼내주시곤 했다. 달타냥은 눈을 접은 채로 그것을 받아 들어 한 시간 안에 모두 먹어치웠었고. 특히 그중에서도 달타냥은 달고 부드러운 것을 좋아했다. 깨물다가 입안이 다치는 날카로운 파편의 사탕보다야, 부드러워 사르르 넘어가는 케이크 같은 것 말이다. 또 거기서 굳이 뽑자면 티라미수. 아버지는 항상 단것을 먹으면 바로 이를 닦으라 하셨지만 그 티라미수의 맛을 오래오래 남기고 싶은 어린 달타냥은 물로 입을 헹구는 것도 슬펐다. 그때 아버지랑 있는 거 참 좋았는데.
- 야, 달타냥.
달타냥의 향수를 깬 건 같이 있던 포르토스였다.
- 아... 포르토스!
- 너 지금 온 거야? 안 들어오고 뭐 했어? 우리 지금 가려던 참이야. 아토스 저 친구, 영 제정신이 아니라서.
- 아, 그럼 먼저 가세요. 저는 잠깐 근처에.
- 또 혼자 뭐 하게, 촌뜨기. 저번처럼 결투 연습 이기겠다고 무리해서 밤샘 연습하다가 쓰러지려고.
- 그놈의 촌뜨기는 언제까지 촌뜨기일 예정이에요? 저도 이제 스물하나라구요.
- 애다, 애. 너 오늘도 지각이야. 지각비 알지? 월급 또 고대로 갖고 오지, 또.
고개를 저으며 빨리 오라 으름장을 놓고 사라지는 포르토스의 뒷모습에 대고 웃음을 흘린 달타냥은 걸음을 반대로 옮겼다. 저 멀리서 포르토스가 술 취한 아토스를 여기저기 때리며 들쳐업는 소리가 들려왔다.
- 아이, 아라미스. 이 친구 안 말리고 뭐 했어?
- 나는 바빴네. 자네가 챙기지 그랬나.
- 바쁘긴. 무용담 얘기하느라 바빴겠지. 그쪽으로 좀 기대게 해봐. 야! 아토스!
- 상태 보니까 일어날 것 같지도 않은데, 그냥 옮기지.
오늘 아토스가 웬일이람. 총사대에 들어온 지 1년이 됐지만 아토스가 주량을 넘길 정도로 술을 마시는 걸 본 적이 없다. 오늘은 기분이 무지 좋았거나 무지 우울했거나 둘 중 하나겠네.
달타냥은 그렇게 많이 걷지 않기로 했다. 포르토스도 빨리 오라고 했고ㅡ.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두리번거리던 달타냥은 마침 보인 근처 가게의 문을 어깨로 밀어 열었다. 주머니에 고이 넣은 손을 빼기 귀찮았던 탓이다. 딸랑. 시계탑 종소리보다 가볍고 맑은 소리가 울렸다. 잠시 후 가게의 밝은 조명을 역광 삼아 밖으로 나오는 그의 손에는 티라미수가 작은 박스로 하나 들려있었다. 치사하게 혼자 먹냐는 삼총사의 핀잔이 벌써부터 귀에 맴도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혼자 먹을 테다.
- 총사 추천서 써준 거 말고 해준 게 뭐가 있다고! 지각비로 몽땅 뺏기기 전에 다 써버려야지.
달타냥은 고개를 좌우로 훽훽 저으며 티라미수 박스를 안았다. 지각비라는 명목으로 ㅡ사실 원래 있는 건지도 의심스럽다ㅡ 월급을 포르토스에게 빼앗기면 그것은 고스란히 그들의 술값이 되었다. 물론 그 자리에 대부분 달타냥도 함께였지만, 세 명과 달타냥은 술을 마시는 양의 차이가 어마어마하니 사실상 본전은 못 뽑는 것이었다.
- 아버지, 아버지도 후배 총사들을 이렇게 갈구셨습니까.
처량한 모습으로 달콤한 디저트를 품에 안은 신입 총사는 천천히 친우들이 있을 곳으로 향했다. 오늘은 여유를 조금 가지고 싶었다. 파리에 와서 평생 함께할 친구들이 생긴 건 물론 좋았지만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한 법이니까. 빨리빨리!를 외치는 삼총사의 음성에서 이렇게 평온하게 벗어나 있을 기회는 흔치 않으니, 달타냥은 일부러 밤의 거리를 천천히 디뎠다. 톡, 토독. 박스를 두드리기 시작한 물방울들이 아예 달타냥의 머리카락을 사르르 적셔버리기 전까지는.
평소라면 바로 실내 어딘가로 달리거나 우산을 썼겠지만, 오늘의 달타냥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총사가 몸 관리도 제대로 안 하고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비를 맞냐는 누군가의 잔소리가 환청으로 들리든 말든, 바늘처럼 쏟아져 얼굴에 맺히는 물방울들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고스란히 받아내고만 있었다. 몇 초를 그러고 있었을까. 달타냥은 결국 눈에 빗물이 들어가고 나서야 앗 따거, 하며 퍼뜩 정신을 차리고 박스를 끌어안았다. 새끼 고양이를 보호하는 어미의 자세로. 아까운 티라미수. 젖으면 안 돼. 그제야 달타냥의 걸음이 바빠졌다. 생각해보니 친구들은 술집에 이미 없을 터였다. 아까 먼저 가라고 했었지.
- 아이씨, 비가 갑자기 굵어지네.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감탄사에 달타냥은 반사적으로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아토스가 옆에 없다는 걸 기억해내곤 한숨을 뱉었다. 아토스는 달타냥의 작은 것 하나까지 교정해주고 싶어 했다. 예를 들어 투덜거리는 버릇을 고치면 좋겠다든지, 일할 땐 조금 더 진지한 말투를 쓰면 좋을 것 같다든지, 방금처럼 욕설 비슷한 말을 하지 않으면 좋겠다든지.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는 폐하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이니 언제나 언행을 바르게 해야 한다나. 그런 사람이 초면에 정신 나간 촌뜨기? 허. 포르토스 말로는 자신이 추천서까지 써줄 만큼 훌륭한 후배이자 친구가 들어왔다는 것이 기뻐 힘이 들어간 것이라는데, 알 게 뭐야. 그래. 칼 쓰는 방법이라든지 총사의 자세 같은 건 백번 말해도 들어줄 수 있지. 그런데 말투? 말투 교정이라니? 우리 아빠도 나한테 그런 거 안 시켰는데! 달타냥은 속으로 억울함을 토하며, ㅡ이미 표정으로 다 드러났지만ㅡ 찰박찰박 물웅덩이를 밟으며 달렸다.
- 포르토스!
- 어, 드디어 왔... 뭐야. 거기서 여기까지 거리가 얼마나 된다고 이 비에 그렇게 흠뻑 젖어와?
아토스와 포르토스는 역시나 달타냥도 잘 아는 가게에 있었다. 영업시간이 끝나면 야근이 잦은 삼총사의 쉴 곳이 되어주는 곳. 밤을 새워야 할 때 한 명씩 돌아가면서 취침하기도 하고 가끔 농땡이를 피우기도 하는 곳이었다. 가게 주인과 친해져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열쇠를 받아낸 데에는 아라미스의 공이 매우 컸다고 했다. 여기 올 때마다 자신이 이 장소를 어떻게 얻어냈는지 설명하려는 아라미스를 막는 것도 달타냥은 슬슬 지쳤기에, 그 외의 것을 더 알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장소 자체는 달타냥의 마음에도 꼭 들었다. 나무 벽과 나무 바닥이 내는 좋은 향기는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들숨을 타고 온몸에 퍼졌고, 처음 들어섰을 때부터 무언가 자신의 고향인 가스코뉴를 떠올리게 했다.
아라미스는 자리에 없었다. 그렇게 달려왔음에도 숨 한 번 가빠 하지 않는 젊은 체력의 달타냥은 마치 강아지처럼 빗물을 몸에서 털어내고, 그냥 아무 곳에나 철퍽 앉았다. 어차피 바닥에 묻은 빗물은 나중에 다 마를 테니.
- 비가 갑자기 많이 오지 뭐예요. 누가 양동이로 물 쏟는 줄 알았어요.
- 그래?
달타냥의 천연덕스러운 해명에 포르토스는 별 물음 없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 주었다. 아토스가 지금 저 상태가 아니었다면 분명 이대로 안 끝났겠지.
- 근데 그건 뭐야?
- 아, 티... 제 거예요.
- 티제 거라고? 그게 누군데.
- ⋯제 거라구요. 탐내지 마요. 내 거.
달타냥은 눈을 가늘게 뜨며 이미 조금은 구겨진 박스를 제 뒤로 숨겼다. 그 모습에 포르토스가 허, 하며 헛웃음을 지었다.
- 인마, 내가 그런 거 좋아하는 거 봤어? 그런 건 아라미스나 먹지. 그 자식은 하여튼 음식 취향이 나랑 정반대야.
- 아, 그러고 보니 아라미스는 어디 갔어요?
- 몰라. 비 떨어지자마자 우리 캐롤라인 비 맞으면 안 된다고 홀딱 달려가던데. 에라이, 쓸모없는 자식. 달타냥, 너 아토스 좀 보고 있어라. 어차피 깨지도 않을 건데 그냥 보고만 있어. 나는... 나도 좀 어디 좀 가야 돼.
- 아, 제가 왜요ㅡ.
- 네 친구잖아.
- 뭐라구요?
포르토스는 달타냥의 어깨를 툭 치고 서둘러 나가버렸다. 분명 아무 일도 없는데 아토스 챙기기 귀찮아서 맡기고 가버린 거야. 달타냥은 아토스의 등짝을 때려 깨우고 싶은 충동을 몇 번이나 참아야 했다. 아니, '네 친구잖아.' 라니!
- 아토스가 왜 내 친구야? 아니, 물론 내 친구기도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자기 친구지! 세상에, 이게 친구면 그냥 혼자인 게 좋을 뻔했어.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던 달타냥은 자신 쪽으로 얼굴을 뉘고 널브러져 있는 아토스를 반 바퀴 훽 굴려 벽 쪽을 보게 눕혀버렸다. 그냥 집으로 갈 걸 그랬나. 달타냥은 왠지 오늘 아토스를 집으로 옮겨놓지 못하면 여기서 자야 할 것 같다는 불길한 생각에 제 눈 위에 손바닥을 덮었다.
그래도, 가스코뉴에서의 삶보다 파리에 와서 더 소중한 걸 많이 얻은 건 사실이니까. 달타냥은 애써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래, 예를 들어 이 티라미수. 가스코뉴와 파리는 다른 것들이 많았다. 하나부터 열이면 그중에 아홉이 달랐지. 하지만 티라미수의 맛만은 거기나 여기나 비슷했다. 물론 둘 중 굳이 하나를 꼽으라면 그 어린 시절 행복했던 맛을 고르겠지만, 그것에 추억 보정이 아예 들어가지 않았다 자신할 수 없으니 달타냥은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박스는 모서리가 구겨지고 얼룩덜룩 젖어있었지만 안에 든 내용물은 멀쩡했다. 집에서 옷 갈아입고 편히 먹으려고 했더니. 달타냥은 끊임없이 투덜대었다. 개중엔 일부러 소리를 내서 말한 문장들도 있었다. 들을 테면 들으라지. 하지만 푸우푸우 소리를 내며 자는 아토스를 보다가 눈앞의 뽀얀 티라미수를 보니 마음이 급작스레 안정되는 게 사실이라, 달타냥은 곧 아토스는 신경도 쓰지 않고 포크를 들 수 있었다.
케이크와 함께 마실 차는 없었지만 빗소리가 마치 찻잔에 차를 조로록 따르는 소리처럼 가게 안을 울려주었다. 달타냥은 원래 성격상 우아하게 디저트를 즐길 여유 따위는 없었다. 맛있는 게 있으면 당장에 먹어야지. 어떻게 이걸 교양을 지킨답시고 조금씩 떼어먹는단 말이야. 달타냥은 첫 포크질 한 번에 거의 전체의 1/3을 떴다.
- 어어.
떨어지겠다. 그 생각을 하자마자 반사적으로 손은 허공에 가만히 둔 채로 고개가 마중 나가 헙, 포크를 물었다. 이가 포크에 부딪혔지만 당장 볼 가득 느껴지는 부드러움과 달콤함에 비하면 신경 쓸 고통이 아니었다. 심지어 앞머리가 내려와 눈을 찌르고 가리는데도 걷을 손이 없었다. 오른손은 포크를 꼬옥 쥐고 있었고, 왼손은 심장께에 얹어두었으니. 그것은 달타냥의 습관이었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 심장에 가지런히 한 손을 올려두는 것. 자신도 모르는 새에 어렸을 때 생긴 버릇인 것 같았다.
두 번째 손짓. 아까 너무 많이 먹어버린 게 조금 아쉬웠던지 더 작은 조각이 혀 위에 올랐다. 달타냥은 이렇게 씹지 않아도 되는 음식이 정말 좋았다. 이가 안 좋거나 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살살 녹아 사라지는 식감 자체가 만족스러워서. 가스코뉴에서 살 적에 오래 씹어야 하는 음식들을 주로 먹었던 것도 아마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아버지가 총사셨지만, 솔직히 명예에 비해 돈을 많이 주는 직업은 아니었으니. 설마 그 위대해 보였던 아버지가 지각비나 술값으로 돈을 썼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말이다. 덕분에 음식을 잘 씹어 삼키는 바른 어린이로 자랐으니 좋은 건가 싶다가도.
세 번째. 달타냥은 아예 포크를 놓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그냥 바로 입을 대서 한입에 쏙 흡입해버릴까, 하는 충동. 역시 스트레스에는 달달한 폭식이 최고인지, 요새 몸이 쉬지 못했다고 식욕이 훅 늘었나 보다. 하지만 스물하나씩이나 되어서 음식을 입으로 주워 먹는 것은 아무리 보는 사람이 없다 해도 왠지 모르게 창피해지는 일이었으므로, 달타냥은 평범하게 남은 티라미수를 반으로 잘랐다. 그리고 멈칫하더니 한 조각을 또 반으로 잘랐다가, 결국 자른 두 조각을 겹쳐 같이 입에 넣었다. 빨리, 많이 먹고 싶은 욕구와 최대한 오래 먹고 싶은 욕구가 싸우고 있었다. ...아니, 가장 큰 욕구는 아토스가 깨기 전에 다 먹고 완벽하게 치워버려야 한다는 의무감이었다. 나중에 들키면 분명 삐칠 거야.
네 번째. 달타냥은 남은 것들을 가루까지 모두 입속으로 차곡차곡 집어넣었다. 집어넣기가 무섭게 녹아버리는 케이크 때문에 입안에 티라미수 곳간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스물스물 넘어가는 맛은 이 조각이 정말 마지막이라는 것을 아쉽게 했다. 달타냥의 단골 가게가 하나 더 늘어나게 될 것 같았다. 마지막 한 입까지 황홀할 것, 그게 달타냥의 디저트 철학이었다.
포크에 남은 것까지 깔끔하게 먹은 달타냥은 모든 증거를 가게 밖 쓰레기통에 안 보이게 버렸다. 아니, 거의 쓰레기통 깊숙한 곳으로 숨겼다. 포르토스야 굳이 어제 달타냥이 혼자 맛있는 걸 먹었네 떠벌릴 인물은 아니었고, 아라미스는 자리에 없었으며, 아토스는 잠에 깊이 들었으니 이건 완전 범죄가 될 수 있었다. 고작 케이크 하나 먹은 게 무슨 죄라고 이렇게까지 하나. 달타냥은 잠깐 스스로가 서러워졌지만 안일하게 생각하기에는 그동안 들은 잔소리가 너무 많았으므로.
- 아토스.
혹시나 해서 확인차 아토스의 얼굴에 손을 흔들어봤지만 아토스는 세상모르고 자는 게 확실하고, ㅡ숨 쉬는 소리만 아니었으면 전설의 죽음이라고 파리 광장에 벽보가 붙을 뻔했다ㅡ 술도 아니고 고기도 아닌데 티라미수의 냄새가 몸에 밸 리도 없고. 달타냥은 그제야 조금 안심하고 자신의 친구이자 상사 앞에 쭈그려 앉았다. 추운지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것을 지금에야 발견해, 자는 사람의 롱코트를 굳이 벗겨 이불처럼 몸 전체에 덮어준 달타냥은 ㅡ보온의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ㅡ 다시 얼굴이 제 쪽으로 향하게 아토스의 몸을 돌렸다.
- 아토스. 아토스를 보고 지금에야 알았어요.
한 번 더 그의 이름을 담는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무언가 고백할 사람처럼 잔잔하게 깔려 있었다.
- 자는 모습만 천사라는 게 무슨 뜻인지.
달타냥은 철퍼덕 주저앉아 아토스의 주머니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 아토스 때문에 집에 못 가고 있으니까, 이건 제 연장근무 급여로 쓸게요. 아토스가 총무잖아요.
혹시라도 아토스가 잠에서 깰까 봐 목소리 자체의 볼륨은 낮았지만, 분명 들뜬 톤이었다. 달타냥은 양심상 아토스 돈주머니에 든 것의 반만(?) 제 주머니에 옮기고 일어섰다. 이제 동이 트기 전에 친우를 집에 옮겨두고 자신도 집에 가야 한다. 여기서 진짜로 잘 수는 없으니. 조금 억울한 건, 아토스는 이래놓고도 내일 출근을 멀쩡히 할 거라는 거고 자신은 술도 별로 안 마셨음에도 피곤함에 절어있을 게 예상된다는 것이다. 진짜 딱 한 번만 꼬집을 수 있으면 좋겠다. 달타냥은 입을 삐죽대며 길쭉한 아토스를 앉혀 제 등에 업었다.
- 요새 술을 너무 많이 드셨어요ㅡ.
달타냥은 문을 어깨로 밀어 열었다. 끼익, 지푸라기를 밟는 소리와 함께 무겁고 얇은 소리가 울렸다. 가게의 은은한 조명을 배경으로 밖으로 나오는 그의 손에는 아토스가 미처 허리에 차지 못한 칼이 들려있었다. 치사하게 아토스를 혼자 맡게 하고 다 가버리냐는 내일의 투덜거림이 입에 맴도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들은 들은 척도 안 할 테다.
달타냥은 자꾸 흘러내리는 아토스를 중간중간 고쳐 업으며, 어느새 가루비로 변한 비를 맞으며 새벽의 흙 거리에 발자국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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