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L

07.

오리진 로그 -200DAYS +1

창고 by 카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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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율은 태생부터 혼자가 아니었다. 태어날 때 발현이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쌍둥이 형에 의해 부족함을 모르는 편이었다. 정확히는 다른 센티넬들이 겪는 불편함을 태어나면서 한 번도 겪지 않았다는 사실에 조금 더 가까웠다.

자라나면서 자연스레 받아들인 자신의 이능력은 서율에겐 신체의 일부와 다름이 없었다. 이는 서율에게 축복받은 환경이기도 했지만, 달리 생각하면 그 부재를 후에 받아들이는 것이 매우 힘들지도 모른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갓 성인이 되던 해에 서율은 그에 대해 뼈저리게 느꼈다. 지금까지 제 쌍둥이 형의 부재에 한 번도 아쉬워하지 않았던 이가 그 때만큼은 절실했으니까. 서율은 그 어린 시절에 제 가이드가 무엇보다 필요했더랬다. 몇 년이 지나 조금은 안정된 직후에도 서율은 본능처럼 그것을 갈망했다.

‘내 가이드. 온전히 내 것으로 소속되는 가이드.’

아주 어릴 때의 서율은 동화를 읽는 것처럼 막연한 꿈을 꾸곤 했었다. 성장하고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그것이 얼마나 허황된 꿈이며 현실과 타협을 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내면 깊은 곳에서는 종종 그 단어를 떠올리곤 했다.

언젠가 그의 앞에서 내비쳤던 말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오리라고 서율은 생각치도 못했다. 온화함을 닮은 그 바닷가에서 나누던 대화를 서율은 선명하게 기억했다. 그 때의 느꼈던 자신의 감정이나 상대의 감정조차도 여전히 선명하고 생경했다.

‘원하는게 있으십니까?’

잡은 손 끝부터 올라오는 체온을 느끼며 서율의 시선이 말리부의 얼굴을 향했다. 말간 웃음을 지으며 바람에 짧게 흐트러진 머리칼이 유독 도드라졌다.

‘지금은 말고 다음에 말해도 괜찮을까요?’

구태여 소원권이라는 명목을 들먹이며 그에게 쥐여준 조그만한 연결점은 사실, 서율이 할 수 있는 약간의 이기심이었다. 이렇게라도 당신과의 연결고리를 놓고 싶지 않다는 빙 돌린 대답이었으며 그조차도 서율은 비겁하게 그에게 선택권을 돌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나중이라는 그의 대답에 서율은 내심 안도했다. 겹쳐쥔 손을 괜시리 여러번 조물거리며 그의 대답에 뭐라고 했더라.

“지금 쓰고 싶습니다. 그 소원권.”

품 안 가득 안개꽃다발을 받은 말리부가 서율에게 문득 말했다. 질문도 아닌 단정짓는 그의 말에 서율이 겉옷을 벗다 말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얼빠진 소리가 입술 새로 새어나가고 눈동자가 좌에서 우로 도르륵 굴러간다. 그 반응이 퍽 만족스러운지 말리부의 입꼬리가 짧게 들썩였다.

“바닷가에서 말했던 그 소원권 말이죠.”

“네, 맞습니다. 무엇이든 들어준다고 하셨잖아요.”

말을 맺자마자 저를 폭, 안는 손길에 서율의 시선이 절로 허리를 감은 손가락에 머문다. 현관에서 급하게 나눈 반지가 그의 손에서 반짝이는 것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서율은 그 위로 제 손을 슬쩍 겹치고 익숙하게 그의 품에 고개를 살짝 기댔다. 익숙한 무게감에 말리부가 자연스레 얼굴을 묻으며 쪽쪽, 가벼운 입맞춤을 남긴다.

바라는게 있는 건가? 서율은 내심 놀랐다. 말리부는 언제고 본인이 원하는 것을 말하는 적이 드물었다. 대부분의 일에서 욕심을 내비치는 경우가 없었으며 되려 그가 저의 욕심에 맞춰주는 것은 아닌가, 서율은 그런 생각도 더러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원하는 것이 생겼다는 것에 꽤나 만족스러움이 스며들었다. 서율, 자신이 해 줄 수 있단 기쁨과 말리부가 저와의 관계에 더욱 욕심을 내주는 것만 같아서, 그런 까닭에 묘한 만족감이 가슴 한켠을 간질인다.

“뭡니까? 뭐든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서율은 느긋한 어조로 답하며 말리부의 손을 쥐어들었다. 단단한 그의 손을 엄지로 살살 문지르다가 기어코 충동을 억누르지 못하며 입술을 슬, 내리기도 했다. 간지러운 스킨쉽에 말리부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서율이 그의 손에 집착적인 것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었건만 말리부는 서율이 그의 손을 만지고 온기를 취할 때마다 늘 웃음을 흘리곤 했다.

“서율 씨는 내 가이드가 가지고 싶다고 하셨죠?”

갑작스런 질문에 서율이 몸을 살짝 뒤틀었다. 순순히 그의 몸을 놓아주며 짙은색의 눈동자가 말리부의 얼굴을 빤하게 바라본다. 어쩐지 따갑기까지 한 그의 시선에 말리부가 민망하고 멋쩍은 듯 제 뒷머리를 꾹, 손으로 눌렀다.

“…사실, 센티넬이라면 누구나 바라고 있을 겁니다. 내심.”

모든 이능력자들은 약간의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언젠가 이 힘에 자신이 먹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류의 불안감. 서율은 평생을 이능력과 함께 했음에도 내밀한 곳에서는 여전히 그것을 의심하고 있다. 이지를 잃고 능력에 미쳐 날뛰는 이들을 여러번 제압했던 경험이 있기에 더더욱.

그래서 한서율은 내 가이드를 동경했다. 바라고 원했으며 손에 넣을 수 있을수도 있었으나, 온전한 제 것이 되지 못했던 그것을. 일부 센티넬들은 그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도 있었으나, 그에 공감하면서도 서율은 그 욕심을 다 내버리지 못했다.

“당신에게도 그래서, 그런 말을…했던 거고요.”

머뭇거리며 입을 여는 서율에게선 평소보다 더 조심스러움이 내비쳤다. 그 때 바닷가에선 꽤 자신있게, 그것도 욕심껏 말했던 거 같은데. 말리부는 그의 반응에 절로 고개가 기울어졌다. 허리에 얹은 손으로 가만히 옷 위를 톡톡 두드리며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그 대상이 당신이라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여전한 욕심과 이기심에 서율의 미간이 절로 좁혀졌다. 사실 서율이 바라는 것은 온전히 제 욕심임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가이드는 평범하게 살 수도 있을 터였고, 구태여 리스크를 안고 센티넬을 케어해야할 그 어떤 명분이나 구속력도 없다.

묵묵히 서율의 말을 듣고 있던 말리부는 그의 표정에서 말로 내비치 못한 내밀한 속내를 읽어낸다. 말리부는 불쑥 서율의 셔츠 안으로 손을 밀어넣었다.

“잠깐, 말리-”

“하고싶습니다, 그거. 서율 씨만의 가이드.”

불쑥 밀려들어온 체온에 서율이 성급하게 그의 손을 쥐었다. 이어진 문장에 눈이 커지고 가만가만 어깨에 얹은 머리칼을 눈으로 응시한다. 그가 거짓을 말하는 성정은 아님을 알고 있다. 막연하게 언젠가 혹은 먼훗날이 될 즘에 그가 저에게 이 말을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했더랬다.

그저, 생각보다 빠른 그의 말과 내민 손이 지나치게 자신을 벅차게 할 뿐.

“괜찮으십니까, 정말?”

가이드는 굳이 센티넬과 각인을 하지 않아도 된다. 되려, 각인을 하는 편이 가이드에겐 족쇄로 다가올 뿐. 그것은 가이드인 말리부가 더 뼈저리게 느끼고 있을 터였다.

서율의 질문에 말리부가 망설이다가 팔을 뻗어 그의 등을 껴안는다. 너른 등에 안겨 가만히 심장 부근에 귀를 대며 서율은 말리부의 대답을 기다렸다.

“소원권이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걸로 하겠습니다, 제 소원.”

“말리부, 당신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주시는군요.”

서율의 입에서 긍정의 답이 떨어지자 말리부의 입가에 긴 미소가 걸린다. 기꺼이 제 목숨줄을 쥐여주고싶다는 사랑스러운이를 어찌 거절하겠는가. 말리부는 천천히 뒷 목을 쓸며 고개를 바짝 기울이고 비틀었다. 그에 화답하듯 서율이 팔을 뻗어 기꺼이 단단한 어깨에 걸친다. 입술이 맞물리고 가벼운 웃음소리가 두 사람 사이에 스쳐지나간다.

지나치게 다디 단 나날들 중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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