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은 동색

thinkinu by 가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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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은 동색

 

 해운대 바다가 힐끔힐끔 보이는 곳에 위치한 수성복집은 이따금 수련생을 받았는데, 진재유도 그 중 하나였다. 요리를 배운지 3년이 조금 넘어 스무 살이 된 재유는 뜬금없이 복요리를 배워 보겠다며 나섰다. 니 칼은 쓸 줄 아나? 자격증도 땄습니다. 학생 아니가? 학교 안 다닙니다. 고등학생? 자퇴했나? 고졸입니다. 간단하게 면접을 본 뒤에 우럭 한 마리를 회 떠 보라고 했다. 재유는 잘 벼려 놓았던 칼로 우럭 회를 한 사라 떴다. 사장님은 재유가 얇게 떠 놓은 회 한 점을 들어 형광등에 비추더니 와사비 올려 맛있게 드셨다. 개미 한 마리 못 죽이게 생깃구마. 제법이다?

 

 

그날 이후로 진재유가 수성복집에 출근한지 5개월이 되었다. 계절은 곧 여름, 부산을 둘러싼 해안선으로 사람들이 마구 몰려들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부산의 온갖 숙박업소의 방들이 꽉 들어찼을 때, 뜬금없이 해운대 옆 장산의 고시텔 방 하나가 나갔다. 갑자기 와 이런 데에 내려왔데? 집 주인이 세입자에게 물었다. 세입자는 커다란 나이키 더플백을 좁은 방에 내려 놨다. 부산에 들어본 데가 해운대밖에 없어서요. 집주인이 옵션 책상 위에 부동산 계약서를 놓았다. 세입자는 허리를 잔뜩 굽혀 계약 사항을 읽어 본 뒤 서명했다.

 

서명

성준수

 

집 열쇠를 건네받은 성준수는 곧바로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건물을 나갔다. 지하철로 두 정거장, 걸어서는 30분. 성준수는 벌써부터 더워지기 시작한 부산 길거리를 걸어 출근하기로 했다. 지나가다 마주칠 수도 있잖아, 염병할 내 미래를…….

 

 

가게에서 일하는 모두가 거의 동시에 이렇게 말했다.

“누구예요?”

“…저요?”

두 글자에서도 서울 깍쟁이 티가 났다. 사장님이 뭐 그렇게들 난리냐고, 오늘은 잠깐 있다가 내일부터 진짜로 출근할 사람이라며 준수의 등을 은근히 밀었다.

“자기소개 해라.”

“아. 성준수라고 합니다. 주차장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한데이.”

“잘 부탁드립니다.”

우뚝 서 있던 준수가 뻣뻣하게 고개 숙여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다들 뭐 이렇게 생긴 아가 있냐며 칭찬인지 조롱인지 모를 이야기를 하곤 각자 자리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재유도 어색하게 준수에게 인사한 뒤 모자를 다시 쓰며 주방으로 돌아가려는데, 사장님이 그런 재유를 붙잡았다.

“재유 니랑 동갑이랜다.”

“아, 네.”

“친하게 지내라.”

“예.”

대충 넘어가려 했는데 타의로 나이까지 까게 되어 영 무시하기 어려웠다. 재유는 어색하게 허허 웃으며 준수에게 손을 내밀었다. 준수가 엉거주춤 손을 맞잡았다. 얼레. 생각보다 손이 거치네.

“저는 진재유고… 주방에 있으니까 심심할 때 오면 뭐라도 만들어 드릴게요.”

“네.”

“예에. 그럼…”

“…스무 살?”

뒤도는 재유를 준수가 말로 붙잡았다. 재유가 엉거주춤 다시 돌아 네, 뭐. 그렇게 대답하자 준수가 바지 뒷주머니에 손을 넣고 쭈뼛대며 말했다.

“동갑인데 말 편하게 할래?”

재유는 준수가 참 웃긴 놈이라 생각했다. 그런 말을 듣자마자 웃음이 났기 때문에. 재유가 그래, 그럼. 싱겁게 대답하고 주방으로 돌아갔다. 숫기 없게 생겼는데 웃긴 애네…… 행주로 조리대를 닦아내며 또 그렇게 생각했다. 나중에 또, 또 생각해보니 준수는 웃긴 애가 아니라 조금 간지러운 애였다.

 

 

부산 MBC 근처에 있는 재유의 자취방에서 수성복집까지는 오토바이로 10분 정도가 걸렸다. 재유는 출근할 때 가게 주차장 구석에 오토바이를 세워뒀다. 사실 가게까지 지하철을 타고 다녀도 됐지만, 처음 받은 수성복집 월급에 감격해선 설레는 마음으로 오토바이를 질렀다. 남색 헬멧을 벗어 핸들에 걸어두고 가게로 올라가 출근했다.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뒤에는 주방을 한번 마른 행주로 싹 닦았다. 업자가 들여오는 복어들이 수조에 몇 마리나 있는가를 세었다.

창가에 있는 수조를 쳐다보고 있으면 준수가 출근하는 것이 보였다. 준수는 덜렁 몸만 와서는 가게에 올라와 출근 지문을 찍고 대충 인사하고 내려갔다.

“준수 왔나.”

“안녕, 재유.”

재유가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면 내려가다가도 올라와 한 마디 해줬다. 내려간 준수는 찜통되기 딱 좋은 2평짜리 주차안내 관리실에서 형광 조끼를 꺼내 입고 재유의 헬멧을 부스 안으로 넣어 놨다. 처음에는, 퇴근하던 재유가 어, 내 헬멧, 하고 당황하자 더 당황한 준수가 아 맞다! 하고 부스 안에서 헬멧을 꺼내줬었다.

미안. 누가 가져갈까 봐.

아무도 안 가져간다, 여 씨씨티비 있어서.

혹시 모르니까.

고맙다, 신경 써줘서. 준수 니는 퇴근 안 하나?

어, 이제 가야지.

낼 보재이.

잘 가.

말도 별로 안 하는 주제에 참. 낯 부끄럽게 하는 구석이 있다니까. 헬멧을 곱게 넣어둔 준수가 수협 부채를 펄럭이는 걸 쳐다보던 재유는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다.

 

 

성준수. 스무 살. 서울 출신. 혼자 부산 옴. 부산에 아는 사람 없음. 그럼 부산 왜 왔는데? 묵묵부답. 준수는 말이 적었다. 가끔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들 몇몇이 모여 퇴근 후 술자리를 할 때도 큰 덩치로 자리만 지키고 입을 열지 않았다. 술자리마저도 오토바이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는 재유가 같이 갈래? 하고 물을 때나 참석했다.

“생면부지인 데에 와가 뭔 짓을 할라는 건지. 어? 말 좀 해봐라.”

“…….”

“임마는 덩치값도 못하고 술찌다.”

“취해도 말을 안 하는데 뭐고? 야, 니 부산 왜 왔냐고오.”

“…….”

“이거 또 입 꾹 다무네. 재유 니도 모르나?”

재유는 어깨를 으쓱하며 콜라를 마셨다. 이르게 시작된 열대야로 바닷가에 사람들이 꽤 많이 나와 있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술집에서 몇 번이고 열리는 성준수 청문회. 재유는 사람들을 딱히 말리지도, 그렇다고 부추기지도 않았다. 성준수가 궁금한 것은 재유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동시에, 성준수를 궁금해 한다 해서 뭐 바뀌는 게 있나… 싶어서 중립을 유지했다.

“대답 안 할 거면 술이라도 마시라.”

“…잔 비었는데요.”

이미 알딸딸한 준수가 소주잔을 톡 건들며 말했다. 맞은 편의 재유는 속으로 성준수는 참 요령도 없다고 생각하며 몰래 잔에 물을 채워줬다. 그러자 준수는 재유를 빤히 쳐다보더니 잔을 들어 물을 창밖으로 촥 뿌려 버렸다. 아래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끼약 비명 지르는 것이 들렸다.

“잔 비었다고.”

“아 새끼 성격 참… 재유 니가 좀 따라도.”

얘 진짜 뭐냐. 재유는 하는 수 없이 준수의 잔에 소주를 따랐다. 준수는 재유의 눈을 똑바로 보며 소주를 삼켰다. 얼굴은 시뻘개서는 뭐냐 진짜로. 재유가 먼저 눈을 피했다.

 

 

자리를 파했다. 재유는 오토바이 뒤에 준수를 태우며 다들 잘들 들어가라고 인사했다. 여분 헬멧을 꺼내 준수의 얼굴에 씌워줬다.

“준수. 좀 괘않나?”

“어어…….”

“힘들면 그냥 택시 타고. 오토바이 불편하니까.”

“아냐…….”

준수가 헬멧 안으로 손을 넣어 눈을 부볐다. 눈이 잘 떠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재유도 헬멧을 마저 쓰고 준수 앞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 니 장산 산다캤제? 준수가 고개를 끄덕이는지 목덜미에 헬멧이 닿는 게 느껴졌다. 흔들리니까 잘 붙잡아라. 그러자 준수의 팔이 허리를 감쌌다. 뭐야? 어린애도 아니고…… 재유가 허리에 감긴 준수의 팔뚝을 흘끗 내려다 보곤 오토바이를 출발시켰다.

도로에 차가 얼마 없었다. 속력을 높여 달리는데도 준수가 잠들었는지 어깨에서 자꾸만 헬멧이 덜컹덜컹 부딪히는 것이 느껴졌다. 와중에 허리를 잡은 팔은 여전했다. 빨간 신호 앞에서 멈췄다. 허리가 계속 붙잡혀 있는 게 괜히 쑥쓰러웠고, 이제 골목에 들어서야 하는데 정신을 못차린 준수가 걱정되기도 해서 말을 걸었다. 준수. 대답이 없다. 준수, 준수! 그러자 어깨가 조금 가벼워졌다.

“잤나?”

“…아니….”

“근데 준수. 내도 사실…… 좀 궁금했거든.”

“뭐가?”

“니 부산 왜 왔는지.”

“…….”

“혹시 뭐 진짜 여자 따라 왔나?”

“…….”

“…내 생각은 아니고, 가게에서 사람들이… 아이다. 미안.”

“…맞아.”

“어?”

뭐가 맞다는 건데? 순간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었다. 재유가 허둥대다 겨우 출발했다. 바람이 다시 쌩쌩 불었다. 갑자기 허리를 감싼 힘이 더 세졌다.

“야! 위험하다고!”

“맞다고!”

내 애비랑! 그 새끼랑! 바람난 여자! 족치러! 부산 왔어! 준수가 어깨 뒤에서 소리쳤다. 재유는 오토바이를 부르릉 몰며 고막을 바람에 털어내고 싶었다. 너를 만나러 부산에 왔어, 같은 말로 시작하는 판타지 로맨스 영화 대사를 원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성준수가 본인 아버지를 죽이고 싶어한다는 사실과 그 아버지가 바람이 났다는 사실을 알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준수를 장산의 고시텔 건물 앞에 내려놓았다. 준수는 헬멧을 쓴 채로 가만히 서 있었다.

“헬멧 이리 도.”

“…….”

“야. 정신 좀 채리라.”

“재유.”

“와?”

“내가 아까 했던 말.”

“…어.”

“…다음에 말해줄게.”

준수가 그렇게 말하며 헬멧을 느리게 벗었다. 재유의 품에 헬멧을 넘겨주는 얼굴이 술기운으로 여전히 벌갰다. 그새 눌린 머리카락이 머리통에 착 달라붙어 준수를 아주 조금 초라하게 만들었다.

“안… 안 말해줘도 된다.”

“내가 말하고 싶어서….”

“맞나….”

“어.”

알아도 되나? 궁금하긴 했지만. 남의 가정사를 함부로 알고 싶지 않으면서도, 그 성준수가 자기한테만 이야기해 준다는 게 되게 사람 마음을 혹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다른 사람의 좋지 않은 이야기를 굳이 비밀로 삼고 싶지 않았다. 약점을 함부로 듣는 취미는 없었다.

“너도 궁금하다며.”

준수의 건조한 목소리가 들렸다. 재유는 느리게 헬멧을 집어넣고 핸들을 부웅 돌렸다. 사방이 어두워 준수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으나, 재유가 감히 예상하기로는 간절한 얼굴이었다.

“그… 준수. 내일 점심 나가서 먹을래?”

“…어. 그럴래.”

“내일 보재이.”

고시텔 앞을 떠났다. 재유는 부산 MBC로 제법 먼 길을 다시 돌아가며, 입술을 앙 다물었다. 호기심은 가끔 사람을 죽인다지. 멍청하게 죽는 사람들한테 주는 상도 있다던데. 복어 독을 처음 먹은 사람도 호기심 때문에 무심코 그걸 삼켰겠지. 그럼 나는 지금 복어 독주머니를 삼킬 각오를 한 걸까. 재유는 스스로 복어 요리를 할 자격이 있을지 의심했다.

 

 

처음 요리를 시작한 것은 집에서, 요리사인 친척 분이 놀러 와 직접 방어회를 떠 주셨을 때 잠시. 방어의 살을 저며 접시에 올려 뒀을 때의 감상은 그냥 재밌다, 였다. 사시미 칼은 날카로우니까 조심하고 집중해. 친척 분이 그렇게 말해줬다.

그다음에는 일상으로 돌아와 하던 것을 했다. 재유는 원래 농구를 했었다. 키가 작지만 날래고 손을 잘 써 중학생 때는 늘 주전이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진학했으나, 농구부가 폐부되었다. 같은 팀에 있던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농구와 이별했다. 어떤 아이는 엉엉 울었고, 어떤 아이는 욕을 해대며 분노했다. 어떤 아이는 농구공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그대로 맥가이버 칼을 들어 찢어버렸다. 재유는 찢긴 농구공의 가죽을 보며 방어 회를 떠올렸다.

이젠 아무도 하지 않는 걸 하고 싶었다. 주변에서 다들 했던 농구, 다같이 해야만 했던 농구, 다섯 명이 있어야만 했던 농구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자꾸 농구 생각이 나서 힘들었다. 공부를 하면 집중이 풀리는 틈을 타고, 아무도 없는 코트에 농구공이 퉁퉁 구르는 소리가 떠올랐다. 아주 정교해야 하고 그래서 여유가 없어지는 일, 딴 생각이 들 새도 없는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문득, 사시미 칼이 무척 날카로웠던 게 떠올랐다. 요리를 할 때는 손이 베이면 안 돼서 신경이 더 날카로워진다는 말. 주방은 사실 사람이 다칠 만한 상황이 많아서 집중력이 좋아야 한다는 말. 재유는 요리를 배우며, 그렇게 여유가 없어지는 기분을 즐겼다. 머리털이 뿌리까지 바짝 당기는 기분. 몸에 어떤 틈도 생기지 않고 수축되는 기분.

수조에서 건져낸 복어는 도마 위에서 몸을 크게 부풀렸다. 재유는 복어를 기절시켜 등의 가운데를 갈라 피를 빼내고, 천천히 살을 발라내 독이 있는 모든 것들을 제거하는 과정에 온전히 집중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죽어. 이걸 먹는 사람이든, 이걸 만지는 나든. 재유는 그래서 복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었다.

 

 

다음날 준수의 출근이 조금 늦었다. 수조 창문 너머로 후다닥 달려오는 모자 쓴 준수가 보였다. 가게로 올라와 안녕하세요, 급하게 인사하는 준수와 눈이 마주쳤다. 인사 하느라 모자를 잠깐 벗은 준수는 정돈 안 된 얼굴이었다.

“숙취는 괘않나?”

“어, 어어.”

급하게 모자를 눌러 쓴 준수가 어물쩡 대답하며 계단을 내려갔다. 재유가 주방에서 급히 나와 준수의 뒤를 따라 뛰었다. 준수! 부르자 준수가 뒤를 돌았다.

“점심 나가서 먹자고.”

“…어. 기억해.”

“아… 맞나.”

“응.”

그럼 점심 때 내가 주차장으로 내려 가께… 재유가 말끝을 흐렸다. 준수는 다시 모자를 꾹꾹 눌러 쓰며 고개를 끄덕였다. 탁탁탁 계단 내려가는 준수의 슬리퍼 소리가 들렸다. 도마 위에 놓인 생선들이 팔딱이는 소리처럼 들렸다.

 

 

점심 시간, 재유는 수성복집이라고 적힌 유니폼을 입고 주차장에 내려갔다. 준수가 형광 조끼를 벗고 있었다. 뭐 먹을래? 재유가 물었더니 준수는 아무거나, 이 근처 잘 몰라. 라고 대답했다. 재유는 그냥 준수를 롯데리아로 데려갔다. 불평할 법도 했지만 준수는 키오스크 앞에서 말없이 메뉴를 띡띡 눌렀다.

“너도 골라.”

“나?”

“사줄게.”

“됐다. 내가 사께.”

“입막음 비용이라고 생각하고.”

어서. 준수가 한 걸음 물러섰다. 아, 사람 참 곤란하게 하네. 재유는 메뉴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신메뉴를 눌렀다.

학교 담장을 넘어 온 것 같은 몇몇 중고등학생들을 빼면 손님이 없었다. 대신 계속 배달 주문이 들어왔고, 연결된 매장 스피커에서는 배달의 민족 주문, 배달의 민족 주문, 벨이 욍욍 울렸다. 덕분에 준수와 대화 없이 밥 먹는 것이 그렇게 어색하지는 않았다.

준수는 햄버거를 다 먹고 감자튀김을 손가락으로 집었다. 먹지도 않고 손가락으로 굴리기만 했다. 재유는 티슈로 입을 닦아냈다. 모자 써도 키가 커서 얼굴이 다 올려다 보이네. 콜라를 호록 빨아 마실 때, 준수가 입을 열었다.

“근데 혹시 내가 어제 한 얘기 듣기 싫냐.”

“……어… 들어 봐야 알제.”

응, 듣기 좀 거북해. 남의 가정사를 이렇게 쉽게 알고 싶지 않았다. 친하지도 않고……. 눈을 아래로 내리 까는데 테이블 바깥으로 삐져나온 준수의 발이 보였다. 엄청나게 흰 발. 발가락이 길쭉한… 어제 허리를 감았던 흰 팔도 아주 길었고 그 끝에 매달린 손가락도 되게 길었는데. 가정사도 그렇게 길고 긴 거냐. 모든 것은 길면 엉키게 되는 법이다.

“그래도… 들어 주면 안 될까.”

“근데 내한테 말해도 되나?”

“너 아니면 들어줄 사람 없어.”

“맞나.”

“응.”

대답은 왜 하는 건데… 결국 재유는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릴 작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흘긋 눈을 들었는데, 아까까지만 해도 잘 보이던 준수의 얼굴이 모자 챙으로 쏙 숨어 있었다.

성준수는 만취상태에 말했던 대로, 바람난 애비를 잡으러 부산에 왔다. 스무 살이 된 뒤 오로지 그 생각만 머리에 가득했다. 매일매일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부산에서 지낼 방의 보증금과 생활비를 마련했다.

애비 바람난 게 뭐 어때, 솔직히 그런 사람 널리고 널렸다. 사랑과 전쟁, 부부의 세계, 애로부부 그런 프로가 왜 만들어졌게? 이런 말은 준수가 덧붙인 것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농구를 했던 준수는 성실하게도 대입까지 농구를 했다. 아등바등 어떻게든 대학에 붙었다. 인쇄한 합격 통지서를 거실 식탁 위에 올려 두었던 밤. 아버지가 베란다에서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해운대 가서 드라이브나 할까?

껄껄… 그러거나 말거나 준수는 그대로 방에 들어가 침대에 드러누워 잤다. 아주 간만에 깊게 잠들었다.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침대 속에 누워 있었다. 일어났을 때는 대학 등록금과 아버지가 증발한 뒤였다.

“한 학기 등록금이야 금방 다시 만들 수 있지, 엄마도 일하시고 집에 모아둔 돈이 없던 것도 아니고….”

“그래?”

“내가 내려온 건, 그냥 좀… 억울하잖아.”

몇 천일지 몇 억일지 모를 돈 들여 아들 놈 선수 만들겠다고 지랄 떨었으면서, 선수하겠다니까 갑자기 쏠랑 내빼버리는 걸, 아들 된 준수는 눈 감아 줄 수가 없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차라리 다른 돈을 가져갔더라면 이렇게 화가 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왜 하필 등록금 통장을 털어 간 건지, 왜 아들의 미래를 털어 간 건지. 준수는 등록금 통장에 적혀 있던 수많은 공들을 황망히 바라보다가 부산행을 택했다. 수성복집에서 주차안내를 하면서도 쉬는 날 밤에는 온갖 술집이니 해변이니를 돌아다녔다.

 

 

쟁반을 반납하고 가게로 돌아오는 길. 날이 더웠다. 재유는 준수에게 마실 거라도 사주려다 방금까지 콜라 얼음까지 콰작콰작 씹었던 게 떠올라서 말을 말았다. 뒤따라서 슬리퍼 끄는 소리를 내는 준수가 참 신기했다.

준수의 이야기를 흘려듣지 못했다. 준수도 농구를 했다고 해서. 사실 중간에 끼어들어 ‘어, 내도 농구 했었는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준수가 농구를 생각하는 만큼, 재유는 농구를 생각하지 않았다. 준수는 공을 쫓아 서울에서 부산까지 내려온 거지만 재유는 농구를 버리기 위해 칼을 들었다. 절대 같은 종류의 농구가 아니었다. 그래서 준수에게 말하지 못했다.

횡단보도를 기다리며 또 침묵. 준수의 사연을 곱씹던 재유가 조용히 물었다.

“니 그라믄… 너희 아버지가 등록금 안 가져갔으면 부산 안 왔겠네?”

“그래도 왔을 걸?”

“와?”

“이혼하고 엄마한테 위자료 주라고 닦달해야 하니까.”

“니 혹시 그냥… 아버지 싫어하는 거 아니가.”

“그것도 맞지.”

티 났냐? 재유는 그렇게 묻는 준수가 제법 웃겼다. 진짜 이상한 애다. 봤던 서울 사람 중에 제일 이상해.

“왜 내한테만 말해 주는데?”

재유가 물었다. 옆에서 주머니에 손 넣고 앞만 보던 준수가 고개를 돌려 재유의 눈을 쳐다봤다. 햇빛에 준수의 목덜미가 벌겋게 익어 있었다.

“너라면 말해도 될 것 같아서…….”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럴 때만 말 끝 흐리는 건 대체 뭐냐.

 

 

주방에 돌아와 사장님이 복어 손질하는 꼴을 멍하니 쳐다 봤다. 동그랗게 부풀어 오른 복어가 파닥였다. 재유, 정신 안 차리나? 죄송합니다! 재유가 괜히 허리를 꼿꼿이 폈다. 발라낸 복어의 내장이 폐기물 처리통으로 풀썩, 떨어졌다.

준수 니는 모르지. 니는 이미 여기서 혼자 밖에 없어. 눈에 띌 수밖에 없어. 모든 사람들에게 성준수는 한 명이다. 니뿐이라고. 근데 왜 갑자기 니는 주변에 내밖에 없다는 식으로 말을 하냐… 사람 껄끄럽게. 다시금 생각하자면, 준수는 정말 간지러운 애였다. 재유는 준수를 생각하며 죽어가는 복어를 쳐다봤다.

 

 

이후로 준수는 가게에 자주 올라왔다. 화장실을 갔다가도 괜히 주방을 슬쩍. 그럼 재유는 몰래 준수에게 해삼이라도 줬다. 웬 해삼? 스끼다시 낼 건데 니 하나 무라. 못생긴 해삼을 질겅질겅 씹던 준수가 비리다며 얼굴을 찡그렸다. 재유는 비린 것을 삼킨 준수의 표정을 쳐다보는 게 재미있어서 매일매일 다른 해산물을 줬다. 바다 냄새가 그나마 덜 나는 것, 구운 생선이나 버터 전복 같은 걸 좋아하는 준수가 어린 아이처럼 느껴졌다. 물가에 내놓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느 때처럼 재유가 앞접시에 덜어 준 해산물을 먹던 준수가 물었다.

“복어는 무슨 맛이야?”

“아, 한 점 주까.”

“있어?”

“아니, 사실 못 준다. 내가 썬 거 먹고 니 죽으면 어떡해.”

“네가 날 왜 죽여.”

“내도 아무나 죽이기 싫으니까 배우지… 자격증 따면 해주께.”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준수가 눈을 도로록 굴렸다. 재유가 뭔가 하며 빈 접시와 젓가락을 치웠다. 준수는 허리를 굽혀 턱을 괴었다. 눈이 마주쳤다.

“근데 복어 독, 저거.”

“어.”

“저거 뭐 혹시 갖다 팔아?”

준수의 손가락이 주방 구석에 있는 폐기물 처리통을 가리켰다. 재유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 가게는 아이다.”

“그래.”

“응.”

“퇴근하고 밥 먹으러 갈래?”

“그래.”

“그럼 이따 보자.”

잘 먹었어. 준수가 인사하고 터벅터벅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성준수가 먼저 밥 먹자는 소리를 다하네.

손님이 유독 없는 밤이었다. 본격적으로 여름 휴가철이 시작되기 전, 폭풍전야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준수한테 이것저것 더 많이 먹이는 건데. 준비된 상태로 대기 중인 수십 개의 접시들이 말라가고 있었다. 수십 개의 테이블 중 딱 다섯 테이블만 손님들이 있었다. 서빙을 하는 직원이 주방에 대고 샐러드 드레싱 좀 더 달라고 하길래 재유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 이거 맞나? 하고 소스통을 들어 보여주는데, 툭탁툭탁 급하게 계단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서빙 직원과 함께 계단을 쳐다보니 준수가 뛰어 올라오고 있었다. 누군가 뛰지 말라는 잔소리를 하기도 전에 준수는 주방으로 쳐들어왔다.

“야, 준수, 들어오면 안…!”

“잠깐만 쓸게!”

재유가 소스통을 들고 이리 저리 팔을 휘저었으나 준수는 우당탕탕 조리대 위에서 손짓했다. 그래서 준수의 손에 들린 것은 도마와… 구석에 있던 폐기물 처리통이었다. 순간 재유는 복어 독을 먹은 것처럼 멈췄다. 쟤 뭐해, 지금? 쓸데없는 것을 궁금해 할 쯤엔 준수가 닫혀 있는 룸의 문들을 죄다 열어 대고 있었다. 다른 직원들이 쫓아가 달라붙었지만 준수가 도마를 휘두르고 있어 누구도 준수를 말리지 못했다. 그러다 닫혀 있던 마지막 미닫이 문을 연 준수가 조용히 말했다. 아무도 듣지 못했을 것이나 재유는 똑똑히 들었다. 준수의 입술이 느리게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씨발 것들…….”

재유가 바로 주방에서 튀어 나갔다. 간만에 종아리 근육이 바짝 당겼다. 허벅지가 단단하게 굳었다. 팔꿈치가 직각으로 접혔다. 이 느낌. 아주 익숙했던 이 느낌. 슬로우 모션이었다. 재유 본인이 달리는 것과 준수가 방 안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이.

너라면 말해도 될 것 같아서……

이런 의미였냐. 땡볕 아래, 시뻘건 목덜미로 부끄럽게 말했던 그 말은 이런 의미였냐. 재유는 준수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며 생각했다. 야 성준수. 내도 농구 했었다? 니 혹시 내가 농구했던 거 알았나? 그래서 내를 알아봤나? 내가 니랑… 동류라고. 그래 생각했나. 그래서 내한테 그렇게 말했나. 니 가장 밑바닥이라도 보여주는 것처럼 부끄럽게 말한 거냐고……

“준수!”

방 안의 준수는 도마로 손님의 머리를 내려찍기 직전이었다. 폐기물 처리통도 내던지기 바로 전이었다. 재유는 준수의 등 뒤에서 높이 있는 어깨를 감싸 안았다. 씩씩 대는 준수가 동작을 멈췄다. 재유가 질끈 감은 눈을 떴다. 햇볕에 벌겋게 까진 준수의 목덜미가 눈앞에 보였다. 준수는 훅 훅 숨을 내쉬며 도마를 바닥에 떨구고 폐기물 처리통은 식탁에 턱, 올려뒀다.

땀을 삐질 흘리던 손님은 준수를 보며 말했다.

준수야.

노리는 자에게 먹이가 찾아온다. 준수가 처리통을 툭 쳐 쓰러트렸다. 식탁으로 비린내 나는 복어의 피와 내장들이 엎어졌다. 동그란 초록색 쓸개가 회 접시 위로 철퍽 떨어졌다. 준수는 천천히 방을 떠났다.

재유는 비린내 나는 테이블을 쳐다보며 무심코 생각했다. 그냥 내가 복어 손질할 걸. 피 좀 덜 뺄 걸. 그럼 성준수가 이런 거 안 만져도 되지 않았을까… 사실 우린 전혀 동류가 아니잖아. 니는 복어를 죽일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잖아.

준수는 바로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손님은 준수야, 준수야! 외치며 준수를 뒤따라갔지만 준수는 멈추지 않았다.

 

 

재유는 엉망이 된 바닥을 고무장갑을 끼고 사람들과 함께 치웠다. 맨살에 안 닿게 다들 조심해라. 고참 직원이 건조하게 말했다. 재유가 흐느적한 내장을 집어 통에 담을 때, 삐요삐요, 자동차의 경보음이 주차장에서 올라왔다.

다 치운 뒤에는 직원들 전부가 퇴근했다. 오늘 술 마실 사람? 누군가가 힘 없이 물었고 대다수가 손을 들었다. 재유는 고개를 저었다.

다들 아래로 내려갔다. 주차장에는 재유의 오토바이만 남아 있었다. 당연히 헬멧이 없었다. 직원들이 주차장 관리실을 흘깃 쳐다보며 지나갔다. 재유는 오토바이 옆에서 가만히 서 있다가 관리실을 두드렸다. 조끼도 안 입고 앉아 있던 준수가 얼룩진 창문 너머로 재유를 쳐다봤다.

“…준수.”

“헬멧 줄게.”

원래도 까맣던 준수의 눈 아래가 푹 꺼져 있었다. 독이라도 먹은 사람같이 얼굴에 핏기가 없었다.

“밥 먹자며.”

재유가 그렇게 말했다. 헬멧을 건네주던 준수는 빤히 재유를 쳐다봤다. 재유가 헬멧을 머리에 쓰자 정수리를 긁던 준수가 뭐 먹을래, 물어보며 관리실에서 나왔다.

오토바이 뒷자리에 올라탄 준수가 또 재유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아까의 재유처럼.

“아빠가 미안하대.”

오늘은 왜 이리도 준수의 목소리가 똑똑히 들리는 건지. 헬멧끼리 툭툭 부딪히는 소리에도 준수의 목소리는 먹혀 들지 않았다. 재유는 속력을 올리지도, 내리지도 않았다.

“복어 그거 그냥 그 인간 입에 처넣을 걸…….”

“준수.”

“어.”

신호대기. 재유가 준수에게 말을 걸었다. 준수는 여전히 커다란 몸통을 재유에게 맡기고 있었다.

“복어가 막 부푼다이가. 그래서 돌고래들은 복어를 공처럼 가지고 논다카데.”

“응.”

“…근데 내도 농구 했었거든.”

돌고래가 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저 공놀이에 불과하기를 간절하게 바랐던 것일지도 모른다. 농구가 마음속에서 단순해지기를, 퉁퉁 튀기다 바람이 빠지면 질리게 되기를.

하지만 그러면 안 됐던 걸지도 모른다고, 그럴지도 모른다고…… 그걸 못해서 복어에 칼을 대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재유는 아까 달렸던 감각을 생각했다.

“진짜?”

“어… 그냥 내는 니만큼 농구 좋아한 적이 없는 것 같아가 말 안 했다.”

“왜?”

“내도 나중에 말해주께.”

나중이 언제가 되려나. 준수는 내일이면 수성복집에서 주차 안내를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애비를 찾았으니 서울로 다시 올라갈지도 모르지. 농구를 다시 하러 갈 수도 있지. 기약 없는 나중을 생각하며 재유가 다시 속력을 올렸다. 뒤에 있던 준수가 말했다.

“그때는 롯데리아보다 좋은 거 사줄게.”

“뭐?”

“더 맛있는 거 먹으면서 얘기 하자고.”

“와?”

“너하고는 그래야 할 것 같아서…….”

푸학. 재유가 웃었다. 준수가 헬멧을 톡톡 치며 왜 웃어? 하고 물었다. 재유는 그저 이번엔 내가 사줘야 되는 거 아이가…… 말했다. 나중이라는 흐릿한 때가 바람에 영영 흩어진 기분이 들었다. 준수가 한 번 더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 힘은 선명해서 괜찮았다. 준수만은 선명해서 괜찮았다. 준수가 괜찮았으면 했다. 언제일지 모를 나중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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