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킹유

#준수재유

thinkinu by 가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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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자는 말을 먼저 꺼낸 것은 진재유였다. 진재유가 그만 만나자는 다섯 글자를 말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며칠이나 될까. 성준수는 연애 날짜를 세어봤다. 얼핏 곱셈만 해도 세 자리 수가 훌쩍 넘어서 관뒀다. 헤어지기 위해 만났다는 생각만 자꾸 들었다.

준수 니는 잔 생각이 없어서 좋다.

성준수는 한숨도 쉬지 못하고 입술을 다물었다. 재유 네 말은 애초부터 틀렸어. 네 생각이 자꾸 나한테로 옮는데 어떻게 내가 생각이 없을 수가 있겠어.

 

띵킹유

 

드래프트에서 신인으로 뽑힌 둘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 처음으로 같은 팀에서 뛰게 되었다. 유니폼이 보라색이었다. 준수는 재유와 나란히 놓인 사물함에서 홈 유니폼을 꺼내 입었다. 타이즈를 신고 바지까지 갈아입는데 옆에서 재유가 말했다.

“니 보라색 잘 안 받네.”

“그래?”

“어. 얼굴이 더 귀신됐다.”

“뭔 귀신…….”

“희멀게서 글치.”

“그래서 나 무섭냐?”

“내가 니를 왜 무서워하는데? 고딩도 아이고….”

그러면서 똑같은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재유도, 보라색이 썩 어울리지는 않았다. 거의 마지막 라운드에 뽑혀 계약한 진재유. 구단에서 진재유를 뽑은 이유는 후보로 점찍어둔 다른 포인트가드들을 다 빼앗겨서라는 소문이 돌았다. 아예 거짓은 아니었으나, 진재유는 그 정도 취급을 당할 만큼의 머저리도 아니었다. 새로 받은 유니폼을 입고 신입 선수들끼리 모여 구단에서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올라온 기사들을 확인하자 둘 다 정말 더럽게 보라색이 어울리지 않았다.

 

 

체육계 특성상 군기 잡히는 일이 많았는데, 가장 최악이었던 것은 회식 때 드래프트 라운드 순서대로 줄지어 서서 거대한 폭탄주를 마시는 거였다. 재유는 마지막 라운드 마지막 순서에 뽑혔기 때문에 늘 맨 끝에 섰다. 키가 작아 아이러니하게도 눈에 띄었다.

“네가 이번 막라야? 자기소개 해봐.”

“지상고 주익대 나온 진재유입니다. 포인트가드입니다.”

“아 너 지상고 나왔어? 개천에서 탈출 했네.”

아직 술도 돌지 않았는데 재유는 벌써 표적이 되었다. 준수는 열중쉬어를 하고 손을 빠득 쥐었다. 재유를 첫 번째로 줄줄이 자기소개를 했다.

“지상고 준향대 나왔고 슈팅가드 보는 성준수입니다.”

“뭔 귀신이 한 명 와 있네. 운동한다는 새끼가 뭐 이렇게 곱상하냐?”

“네, 곱상한 거 아니고 그냥 운동하는 새낍니다.”

언제 끝나냐, 이 짓거리? 준수가 삐딱선을 탔다. 선배들이 아주 정신이 나간 새끼 하나 들어왔다면서 준수에게 소주를 마구 내밀었다. 덕분에 나머지 신입들의 소개는 흐지부지 되었다. 준수는 손에 쥐여지는 잔들을 모조리 삼켰다. 얼마 뒤 화장실로 달려가 속을 게워냈다. 꼰대 새끼들 다 눈이 돌아서는…… 그때 재유가 문을 두드렸다.

“준수 괘않나?”

“아니.”

“지금 다 담배 피우러 나갔다. 물 좀 마시라.”

“어.”

재유가 생수병 한 통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서 났냐니까 아까 구단 사무실 들렀다가 챙겼던 거라 했다. 준수는 고맙다며 받아 마셨다. 내가 새로 하나 사줄게. 빚지고는 못 사는 준수가 그렇게 말하자 재유가 우리 사이에 뭔 물 한 병을 갚느냐며 웃었다. 우리가 무슨 사이인데? 어지러운 머리를 붙잡고 생각했다. 우리는 고등학교 동창 사이지. 10년 동안 친구 비슷한 사이지……

근데 우리가 친구나 될 수 있냐. 성준수는 얌전히 자리에 앉는 진재유를 보며 생각했다. 고등학교에서 같이 농구했다 뿐이고, 숙소에서 몇 년 같이 살았을 뿐이고, 크게 싸우지도 않고 지냈지만 이게 친구가 맞나? 우리가 친구였다면 서로 군대 간 것도 모르고 상무 농구단에서 만나서 깜짝 놀라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준수는 돌아온 선배들에게 다시 표적이 되었다. 그날은 재유가 선수들 숙소로 부축해 주었다. 와중에도 몸만 흐느적거리고 정신은 말짱해서 재유가 하는 말들이 잘만 이해되었다.

“준수, 니 숙소 정리 했나.”

“아익…”

“아직 안 했다고?”

“어…”

“근데 니 운동 열심히 했는갑네? 몸이 무겁다.”

“치해서 그런 거잔아.”

“말은 잘하네.”

귀엽구로…… 준수가 걸음을 멈췄다. 재유가 움직여라 준수, 니 무겁다고. 하며 말해서야 다시 다리를 움직일 수 있었다. 뭐가 귀엽대…… 재유 너 정신 나갔냐. 귀여운 귀신이 어디 있어.

 

 

가끔 매체에서는 ‘전설의 지상고 졸업생 같은 옷 입다’ 같은 타이틀로 준수와 재유에게 인터뷰를 요청하곤 했다. 그때마다 둘은 어울리지 않는 보라색의 져지를 입고 나가 별 것도 없는 답을 해야 했다.

“소속 팀에 워낙 유명한 선수 분들이 많으시잖아요. 롤모델이 있으신가요?”

“…코비 선수요.”

“네?”

“아 준수가 어릴 때부터 코비 선수를 좋아했어서, 네.”

왜 이십대 후반이 되어서도 말을 고등학생처럼 하게 되는 거지? 적어도 그땐 카메라 앞에서 억지 웃음이라도 지어봤던 것 같은데. 준수는 자신을 수습하는 재유의 정수리를 내려다 봤다.

인터뷰가 끝나고 다시 코트로 돌아가는 길에 재유가 조용히 말했다.

“니… 우리 팀 싫나.”

“아무 생각 없는데.”

“그럼 좀 좋게 말해도 되지 않았냐.”

“여기 예전부터 슈터 가뭄이라 득점상 한 명도 없는 거 모르냐.”

“니!”

갑자기 재유가 큰 소리를 냈다. 흠칫 놀라서 눈만 힘주어 뜨고 있었더니 재유가 긴장 풀린 얼굴로 준수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니가 하면 된다이가!”

“뭐를?”

“득점상. 우리 팀 최초로.”

준수는 다른 팀에 최종수도 있고 박병찬도 있지 않느냐고 섣불리 말하려다, 이상하게 재유의 말에 설득이 되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재유가 저런 헛된 희망을 말하는 애가 아닌데 말이지. 그러니까 헛되지 않게 만들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단 후 첫 시즌이 끝났다. 팀은 7위에 그쳤다. 준수는 가끔씩 교체되어 들어갔다. 주전은 아니었으나 반짝 득점을 올려주고 벤치로 돌아오길 반복했다. 재유는 준수보다도 벤치에 오래 앉아 있었다. 내후년 정도면 주전으로 뛰고 있는 포인트가드가 은퇴할 테니, 2군과 1군을 번갈아 가며 뛰라는 감독의 지시가 있었다. 재유는 2군에서는 주전으로, 1군에서는 벤치 멤버로 농구 했다. 재유가 2군에 내려가 있을 때는 얼굴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숙소에서 누워 있다 갑자기 재유 생각이 나면 2군 경기 영상을 봤다. 자유투를 얻은 재유가 관중 없는 코트에서 슛을 했다. 림에 튕겨 나온 공을 상대팀이 잡았다. 방향 전환이 빠르던 특유의 플레이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일부러 템포를 늦추고 상대가 따라잡을 수 있더라도 우리 팀에게 공을 줄 공간을 파악하는 플레이. 대학 리그에서 마주했던 재유와도, 고등학생 시절의 재유와도 다르게 보였다. 일대일 패턴이 없었다. 슛은 외곽으로 돌리지 않고 대체로 포워드에게. 포워드 스스로 디펜스를 뚫게 만들었다. 재유가 들어간 경기는 레이업 슛이 많았고 3점의 비율은 확연히 낮았다. 재유 본인이 직접 득점하는 경우도 보기 드물었다. 이런 플레이를 하는 재유는 처음 봤다.

아직까지 준수는 팀에서 재유의 공을 받은 적이 없었다. 재유는 아마 준수에게 공을 주지 않을 것이다. 준수는 포워드가 될 수 없으니까. 3점슛을 넣어서 프로가 된 성준수는 진재유가 패스하는 공으로는 득점을 내지 못할 것이었다. 득점상을 타려면 진재유와는 경기를 할 수 없다.

계산하고 나니 어쩐지 열이 뻗쳤다. 화가 나서 충동적으로 재유에게 전화를 걸었다. 재유는 태평한 목소리로 어, 준수. 하며 전화를 받았다.

“어디야?”

―러닝 중인데.

“그래서 어딘데?”

―여기 숙소 뒤 공원. 와?

“나 갈 테니까 거기 있어라.”

―뭔 일 있나?

없어. 네가 나한테 공을 줄 일이 없어. 준수는 처음으로 재유에게 짜증을 내고 싶었다.

공원에서 재유는 이온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준수는 ROKA 쓰여 있는 군대 티셔츠를 입고 달려 나갔다.

“무슨 일 있나?”

“너 경기 왜 그렇게 해?”

“내가 뭐…… 니가 2군 경기를 언제 봤는데?”

“대체 왜……”

“나 뭐 이상한 습관 들었드나?”

“공을 왜 포워드한테만 주냐고.”

재유가 마시던 음료의 뚜껑을 잠갔다.

“이런 말 좀 그렇지만 2군 슈터는 더 약하다.”

“그래도 걔가 성공률 제일 높잖아.”

“골 밑이 더 세니까.”

“외곽이 텅 비었을 때는 왜 안 돌리는데?”

“…준수 니 진짜 와 이라는데?”

재유도 짜증이 났는지 목소리가 조금 날이 섰다. 준수는 통풍 잘 되는 군대 티셔츠로 숭숭 들어오는 밤바람을 맞으며 주먹을 쥐었다. 손이 바들바들 떨릴 것 같아서 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었다.

“나한테도 그렇게 공 안 줄 거냐고.”

“…니 설마 2군 오나?”

“안 가. 너도 대답해.”

“니면 주지.”

성준수라면 공을 주겠단다. 준수는 손을 꺼내 얼굴을 박았다. 크게 한숨이 나왔다. 재유는 준수 앞에서 대체 뭐냐고 물었다. 준수는 대답 없이 얼굴을 꾹꾹 눌렀다. 고작 이게 궁금해서. 라인 밖에서 슛을 쏴 넣는 나에게 공을 주지 않을지도 몰라서. 진재유는 어차피 2군 주전이고 1군에 올라 와서는 벤치에만 앉아 있는데…… 성준수는 진재유와 경기를 뛰어야 자신이 득점상이고 뭐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손 좀 떼 봐라, 준수.”

“어.”

“야, 힘을 얼마나 세게 줬으면, 얼굴 빨개짔네. 닌 얼굴이 작아가 그래 하면 얼굴이 죄다……”

“재유.”

“왜?”

“나 너 좋아해.”

“…뭐라카노…… 내도 니 좋지.”

“나 춥고.”

“옷 벗어주까?”

“코트에 너 없어서 농구 재미 없다.”

바람막이를 훌훌 벗던 재유가 멈췄다. 대학 다닐 때도 그랬냐? 애써 평범하게 말하는 재유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너 같이 곱상한 아가 그래 쳐다보면 오해 산다. 빨리 이거 걸치라.”

“곱상한 거 아니고 오해도 아니야.”

“니가 곱상하지 그럼 뭔데?”

“…귀신이라며, 네가.”

“……귀접해 본 적은 없는데 나는….”

준수가 고개 숙여 재유의 얼굴에 다가갔다. 재유는 약간 당황한 얼굴이었으나 피하지는 않았다. 눈이 마주쳤을 때 준수는 그대로 멈춰 버렸다. 이거 괜찮나…… 이래도 되나, 내가 재유한테. 이런 거 해도 되나. 그때 재유가 말했다.

“얼굴값 못하네, 준수….”

그 소리를 듣고서야 키스할 수 있었다.

대학 때는 어떻게 농구했지. 상대팀으로라도 네가 나왔으니까 괜찮았나. 여기서는 왜 같은 팀인데도 너랑 있을 수가 없냐. 난 정말 너 없으면 재미 있는 게 없어, 재유야.

 

 

재유는 여전히 2군과 1군을 오갔다. 준수도 여전히 1군에서 가끔 교체 선수로 뛰어 슛을 넣었다. 준향대에서 같이 뛰었던 박병찬이 경기 중에 물었다. 너랑 같이 들어온 애, 재유? 걔는 어디 갔어? 준수는 우리 팀 2군요. 짧게 대답하고 공을 받아 바로 3점을 넣었다. 너 근데 그거 아냐. 곧바로 리벤지 슛을 넣은 병찬이 물었다.

“걔, 대학에서 누구 발목 부러뜨렸다.”

“네?”

“같은 팀 선배 발목이 부러졌대. 슛 잘 쏘던… 어디 2군 갔다던데.”

“비켜요.”

“너 걔랑 친한 거 아니었어?”

준수는 무리하게 골 밑을 파고 들었고 손목이 다른 선수의 턱에 부딪혀 삐끗했다. 손목을 쥐고 교체하러 나가는 준수에게 병찬이 말했다. 잘 좀 지내라니까, 준수야.

잘 지낸다는 게 뭐지? 연애를 잘 한다는 건 뭐지. 팀 닥터가 파스를 뿌려주고 병원으로 이동했다. 살짝 삐었네요. 잘 쉬시면 금방 나으니까 무리해서 쓰지 마세요. 의사는 그렇게 말했다. 보라색 농구 유니폼을 입고 있는 준수를 다시 보더니 진단을 고쳤다. 부딪히지 않도록 하세요.

 

 

2군 경기가 끝나고 돌아온 재유가 준수의 손목을 멍하니 쳐다봤다. 손목에 힘이 안 들어가 유니폼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준수가 왔느냐며 반겼다.

“네 방도 안 가고 여기 왔어?”

“니 이래 다친 거 첨 본다…….”

“고딩 때는 안 다쳤으니까……. 짐 두고 다시 와. 나 그동안 씻게.”

“씻을 수는 있나? 도와주까?”

“괜찮으니까 갔다 와.”

“준수 부끄럼 타나.”

“아이씨….”

“오늘 이겼다매. 축하한다.”

지금 쟤가 뭐라 한 거야. 준수는 벌떡 일어나 문 앞에서 나가려는 재유를 붙잡았다. 이미 문이 열려 있어서 준수가 닫았다. 재유가 뭐하냐는 얼굴로 올려다봤다.

“뭔데?”

“너 왜 그렇게 말해?”

“…준수 그 말 좋아하나.”

“왜 다른 팀처럼 말해?”

“경기 뛴 건 니다이가. 그니까 글케 말하지….”

“…….”

“닌 가끔 애기처럼 굴데… 내도 이기고 왔다. 됐나.”

“……너 다음에 1군 안 올라오면.”

“뭐야.”

“나 슈터 관둔다.”

재유가 표정을 싹 굳혔다. 문고리를 잡은 준수의 손을 떼어내고 거칠게 문을 열었다.

“그딴 소리 하지 마라, 미친 놈아.”

쾅. 문이 크게 닫혔다. 옆 호실에 사는 선배가 욕을 할지도 모를 만큼 컸다. 준수는 벽에 머리를 박았다. 자꾸 다른 사람 이야기처럼 말하는 게 짜증이 났다. 준수는 운이 좋아 슈터 포지션을 계속 지킨 거고, 슈터는 어디서든 필요로 하니까 프로가 된 것이지만. 재유는 운이 좋든 안 좋든 포인트가드를 했고 누가 하고 싶지 않아도 포인트 가드를 했다. 운 좋게 받았던 고등학생 때 재유의 공. 준수는 아직까지도 그만큼 무거운 공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입단하고 몇 년 뒤, 재유가 이적을 했다. 이전에 단 한번 주전으로 뛰었던 경기에서 만년 10위 구단의 스카우터가 눈 여겨 보고 2군 경기까지 계속 쫓아다녔다고 했다. 재유는 숙소를 나오며 이적한 구단이 있는 도시에 방을 구했다. 준수는 살고 있던 전세를 재계약 했다. 재유의 이사를 도우며 준수는 유니폼 상자를 들었다.

“무슨 유니폼 들어있어?”

“초등학생 때부터 쭉. 다.”

“부산에 안 두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게 좋다. 보물 1호… 는 아니고 한 3호 정도.”

“1호 2호는 뭔데?”

재유가 짐들을 방에 밀어 넣었다. 이상한 표정으로 대답을 피하길래 준수가 다른 짐을 들고 쫓아갔다.

“뭐냐고.”

“보물인데 와 알려 주노, 남이 알면 안 되는 거를.”

“내가 남이야?”

“아니, 그건 아인데.”

“그럼 뭔데? 안 훔쳐 가.”

재유가 주저 앉아 박스들의 테이프를 뜯었다.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준수는 맞은 편에 주저 앉아 신발을 차곡차곡 장에 넣었다.

“지금 니가 정리하는 거.”

“신발이 왜.”

“조던 그거 계약금 받고 처음 샀다. 그게 2호.”

“어쩐지 한번을 안 신더라. 제일 위에 둔다.”

“어.”

“1호는 뭔데?”

“말 안 한다고.”

“고집불통.”

“지는.”

“…….”

할 말이 없어서 신발들만 정리했다.

그 해 시즌 초반, 재유는 몇몇 게임의 주전으로 활약했다. 준수는 재유가 다른 선수에게 넘긴 공을 자주 커트했다. 중계에서는 성준수 선수가 진재유 선수의 패스를 커트하는 능력이 좋다고들 말했다. 재유는 만나게 되면 준수 니는 왜 자꾸 내 공을 가져가냐고 농담으로 툴툴댔다.

“그래야 손에라도 닿아보지.”

“오글거린다.”

“너는 나한테 패스를 안 할 텐데 어쩔 수가 있냐.”

“일대일이라도 할래?”

“싫어.”

“니 진짜 애 같디.”

“아니야.”

“아니겠지.”

킬킬킬, 재유가 웃었다. 준수는 가만히 따라 웃었다. 너네 집에 나도 들어가서 살면 안 되냐. 준수가 말했더니 재유가 손을 내저었다. 너 쓸데없는 데에 돈 한 푼도 안 쓰잖아. 그거 모아서 니 집은 니가 사라. 준수는 고등학생 때 그 좁은 숙소를 떠올렸다. 거기만 우리집이 될 수 있는 건가.

 

 

재유가 이적한 팀에서 한 선수가 시즌 중에 명단에서 내려갔다. 연습 경기 중 부상으로 인한 휴식이라고 기사가 올라왔다. 준수는 택시타고 기차타고 재유가 있는 구단의 지방까지 내려가며 기사를 읽었다. 운동선수 다치는 게 예삿일은 아닌데다, 인기 선수가 아니었던지라 기사의 관심도는 높지 않았다.

재유의 집에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니 집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훈련도 없댔는데 왜 안 왔지. 전화를 걸자 여호세혀? 혀가 다 풀린 재유의 목소리가 들렸다.

“취했네.”

―어엉.

“데리러 갈게, 어디야?”

―니 가티 인기 많은 사람 오명 붕이기 이상해져.

“나 가지 말라고? 제대로 걸을 수나 있냐?”

―엉. 택시 탔따.

“자랑이다.”

―내 자랬냐?

“어, 잘했다.”

진재유가 취한 건 그렇게 오래 알고도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솔직히 좀 궁금했다.

그러나 집에 도착한 재유는 뒷골 긁는 소리만 했다.

“내… 농구 관둘끼다.”

“구라치지 마.”

“관두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다.”

“관두면 더 못 견딜 걸.”

준수가 그렇게 말하자 재유는 말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재유의 옷을 벗겨 정리해주고 침대에 누였다. 주방에서 찬 물을 받아다 주려는데 재유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내가 그랬다.”

“재유 뭐라고?”

“내가 그랬다고!”

“뭐를?”

준수가 방에 들어가 본 것은 가만히 누워 눈물을 옆으로 주룩주룩 흘리는 재유였다.

“너 울어?”

“내가 그 애 발목 조샀다.”

“발목을 부쉈다고?”

“어. 이번에 들어온 안데.”

재유의 귓바퀴로 눈물이 고이길래 얼른 휴지를 뜯어서 막았다. 재유는 자기 탓이라고 계속 말했다. 자기는 바뀌는 것이 없었다고, 답지 않게 자책을 했다.

“밟기라도 했어?”

“아니….”

“네가 뭐 그랬겠냐.”

“게임하다가, 방향 바꾸다가.”

“어.”

“그러다 그랬다.”

그건 그냥 진재유가 잘 쓰던 돌파 전략이다. 리그에 그런 앵클 브레이커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준수는 턱을 괴고 재유를 쳐다봤다.

“넌 하여튼 착해 빠졌어.”

잠들었는지 대답이 없었다.

다음날 아침, 준수보다 먼저 일어난 재유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준수에게 커피를 내밀었다. 준수는 재유의 술버릇이 푸념인가 보다, 간단하게 생각했다.

 

 

팬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그 선수가 발목을 다친 것이 진재유 선수 때문이었다는 이야기가 퍼져나갔다. 인기 없는 선수의 부상이었으나, 문제는 재유가 몇 년의 무명생활을 끊어내고 활약하던 라이징 플레이어라는 데에 있었다. 평소에 플레이 그렇게 잘 안 하잖아. 왜 그런 건데? 음침한 구석이 있잖아 원래 좀. 이게 뭐 기삿거리나 되냐? 그냥 쾌차하라고들 해. 근데 걔 진짜 조금만 더 키웠으면 좋은 감인데. 뭐래 개소리 하지마라. 은근히 재유를 까내리려는 말들이 떠돌았다. 시즌이 시작되었을 때 재유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하필 첫 게임 상대가 준수의 팀이었다. 준수는 벤치에 앉아 있는 재유를 보며 크게 숨을 골랐다. 어쨌든 게임을 계속해야 했다. 진재유가 없더라도.

재유가 주전이 되며 팀의 순위가 5위까지 올랐다. 준수의 팀은 계속 7위였다. 재유의 집에서 같이 플레이오프 경기를 보며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준수가 차를 산지 겨우 3개월. 시즌 중에는 만나는 게 경기 중 밖에 없어서 실질적으로 그 차를 끌고 재유를 만나러 간 날은 고작 일주일. 진재유가 주전으로 겨우 열 경기를 뛴 그 시즌이 끝난 뒤, 고속도로 위에 있던 준수는 재유의 전화를 받았다.

“어.”

―니 또 오는 중이가.

“어떻게 알았지.”

―오지 마라.

“왜?”

―내 미팅있다.

“무슨 미팅? 팀 미팅?”

―아니, 코치.

“코치랑 볼 일 있어?”

―내가 코치가 되는 기다.

“뭐?”

―중학교 코치. ……벌써 고속도로 탔나?

“야.”

―집 정리 안 해 놨는데…….

“재유.”

준수는 갓길에 차를 세우고 핸들에 고개를 숙였다. 왜 관두려고 하는데? 왜? 발목 다쳤다는 선수들은 다들 잘만 회복해서 농구하던데 너는 왜 관두려고 하는데. 네가 다친 것도 아니면서. 한참 전에 끊긴 전화에서는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재유보다도 훨씬 빠른 차들이 준수의 옆을 쌩쌩 달려 지나갔다.

 

 

재유는 은퇴한 뒤에 김해로 내려가 고향의 중학교에서 코치를 했다. 준수는 비시즌일 때 주말마다 내려가 재유를 만났다. 선수 때 살던 집보다 더 좁은 집에서 재유는 중학생들의 어설픈 플레이를 돌려봤다. 집 곳곳에 중학생 선수들의 데이터가 붙어 있었다. 준수는 그 데이터를 못 본 척하며 재유의 어깨에 기대 앉았다.

“지상 가겠다는 아도 있다.”

“요즘은 괜찮나 보네, 학교.”

“이럭저럭 굴러는 간다데.”

“더 좋은 데 보내주지.”

“거기만큼 좋은 데가 어딨다고.”

재유가 농담조로 말했다. 준수는 재유의 어깨를 머리로 툭툭 두드렸다. 그렇게 좋은 데가 어디있냐고. 예전엔 준수도 그렇게 생각 안 했다. 구질구질한 학교. 봉고차 한 대면 선수들이 다 이동할 수 있는 학교. 낡은 농구공으로 슛을 넣어야 했던 학교. 하지만 거기에서는 늘 재유가 준수에게 무거운 공을 던져줬다.

“응, 좋은 데지.”

“닌 그런 말 안 할 줄 알았는데.”

“학교 다닐 때는 네가 나한테 패스 해줬으니까.”

“그거 질리지도 않나. 내가 공 줄 테니까 슛 연습이라도 할래.”

“싫어.”

애 같다, 니. 서른이 넘었는데도. 재유가 준수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나도 지도자 할 수 있을까.”

“잘 가르칠 기다, 니는.”

“그렇게 말하지 마.”

“지도자 하기엔 니는 아깝긴 하지.”

“그렇게도 말하지 마…….”

너는 아깝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하지 마. 재유가 손길을 멈췄다.

 

 

시즌이 또 한 번 끝났고 재유가 서울에 왔다. 이제 숙소 생활을 청산한 준수가 어설프게 정리한 집에서 재유가 일주일을 묵었다. 너네 학교 애들은 어쩌고 이렇게 길게 와있냐고 묻자, 재유는 가들도 좀 쉬어야지, 하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근육이 조금씩 빠져 힘이 줄어든 재유가 낯설었다.

재유를 태우고 서울역에 가서 배웅했다. 같이 호두과자를 먹으며 기차 시간을 기다렸다.

“태워다 주고 싶었는데.”

“됐다, 금방 가는데.”

“뭐래. 도착하면 전화해.”

“준수야.”

“어.”

“그만 만나자.”

준수가 고개를 들어 재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봤다.

“다시 말해.”

“그만 만나자.”

“다시 말하라고.”

“그만 만나자.”

“야.”

“내는 준수 니가……”

영원히 농구 했으면 좋겠어. 내 생각을 그만하고.

 

 

준수는 떠나는 기차를 보며 재유의 말을 생각했다. 영원히 농구를 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재유의 공을 생각했다. 재유의 울던 얼굴을 생각했다. 계속 재유의 생각을 했다. 성준수가 가장 좋아하던 두 가지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영원히 그치지 않을 생각을 했다.

 

 

몇 달 뒤, 준수는 재유가 코치를 맡은 중학교의 경기를 찾아가 관중석에 앉았다. 농구공이 튀기는 소리와 농구화가 코트에 끼긱대는 소리, 선수들과 스탭들의 고함 소리가 사람 적은 관중석까지 크게 들렸다.

“뛰라! 뛰라고! 8초 남았다!”

사투리 억양. 재유의 목소리다. 준수는 영원히 농구를 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영원히 농구를 하는 건 너잖아, 재유야.

재유의 학생들은 그날 승리했다. 학생들과 함께 방방 뛰며 기뻐하는 재유를 보며, 준수는 경기장을 나갔다.

 

다음 시즌, 성준수는 포지션을 포인트가드로 바꿔 2군 리그로 강등되었다. 보라색 유니폼의 넘버가 31번으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성준수가 쓸데없는 욕심을 부린다고 말했다. 신인도 아닌데 이상한 도전을 했다고, 플레이 수준이 고등학생 같아졌다고 마구 욕했다. 성준수의 기사를 보던 진재유는 생각했다. 영원하다는 건 이런 거라고. 계속 돌아가는 거라고. 40분 동안 코트 여기저기를 수없이 구르는 공과 같은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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