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비지타임] 준쟁_수인au
준수, 니 그거 아나, 개는 암컷한테 발정기가 있거든. 수컷은 그거에 휘둘리는 거라.
갑작스러운 말치고 목소리는 퍽 나긋했다. 성준수는 손질하고 있던 토끼를 내려놓고 재유를 바라보았다. 어린 녀석들은 잡내를 없애줄 풀을 따러 간 탓에 동굴엔 둘 뿐이었다. 녀석들이 듣지 않아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왜 이럴 때 없어서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드냐며 혀를 차야 할지 몰랐다.
무슨 소리야?
그래봤자 할 수 있는 건 되묻는 것밖에 없었다. 진재유는 쓸모없는 말을 할 리더가 아니었다. 그는 몸집이 작은데다가 강한 개체도 아니었지만 누구보다 영리하게 사냥감을 몰아넣을 줄 알고, 함정도 능숙하게 피할 줄 알았다. 무리를 위험에 빠트리지 않는 진중한 리더였다. 그런 남자의 말에 의미가 없을 리가 없었다.
발정기 때매. 여는 전부 수컷이니까 그런 건 따로 신경 쓸 필요가 없었거든.
점마들은 아즉 어리기도 하고, 대수롭지 않은 말이 덧붙었다. 고기와 뼈를 분리하는 모습이 능숙했다. 칼을 움직일 때마다 머리 위로 솟은 동그란 귀가 쫑긋거렸다. 저렇게 재료 손질은 퍽 잘하면서 요리는 영 못하는 게 웃겼다. 준수는 제 요리 실력도 비슷하다는 것을 떠올리곤 다시 가죽을 반쯤 벗긴 토끼로 시선을 돌렸다.
근데 늑대는 다를지도 모르이 함 물어봤다.
감추고 있던 귀가 쑥 머리 위로 솟아올랐다. 재유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뾰족하고 큼직한 귀였다. 얼핏 보기에는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었으나 그 본질은 전혀 달랐다. 고기를 큼직한 솥에 던져 넣은 재유가 고개를 돌려 준수를 바라보았다.
캐서. 준수. 니는 어떤데.
준수는 보지도 않고 재유의 앞에 가죽을 벗긴 고기를 던졌다. 손등에 튄 피를 핥던 그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늑대는…. 우두머리만 짝이랑 교미해.
짝은 일평생 단 하나. 죽어야 다른 짝을 찾는다. 성준수는 이전 무리에서도 지금도 리더가 아니다. 짝짓기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언젠가는 자신의 무리를 찾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별 것 없는 대답에 재유가 심드렁하게 글나, 하고 대꾸했다.
응. 그래.
다시 고기와 뼈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뼈가 잘 뽑히지 않는지 힘을 준 어깨가 움찔거렸다.
그러며는, 니는 성욕이 없나?
재유의 고개가 갸우뚱 기울어졌다가 제자리를 찾았다. 오늘따라 뼈가 잘 뜯기지 않는 모양이지. 준수의 시선은 재유의 어깨에 꽂혀 있었다. 성욕은 적은 편이다. 아직 새로운 무리를 만들고 싶은 욕구도 없었다. 그러나 어쩐지 곧이곧대로 대답하고 싶지는 않았다. 준수는 가만히 입을 열었다.
재유 너는.
어쩐지 뒷덜미에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발정기를 입에 올리는 것도, 교미를 입에 올리는 것도 처음이 아닌데 묘하게 발등이 간지러웠다. 아까 손등에 묻은 토끼 피가 입에서 자꾸 맴도는 것 같았다.
너는 어떤데?
입이 마음대로 움직였다.
내는 왜.
나만 말하는 건 불공평하잖아.
불공평할 것도 없었다. 재유는 무리의 리더고, 리더가 무리의 개체를 파악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준수는 뻔뻔스럽게 말했다. 재유가 이 정도는 허락해줄 것이라는 걸 알아서였다.
부끄러워. 나만 말하는 거.
맞나, 하는 대꾸가 돌아왔다. 재유는 자꾸만 헛손질을 했다. 토끼는 잔뼈가 많아서 손질이 어렵기는 했다. 가죽을 벗겨봤자 장갑이나 신발 정도나 만들 수 있을까. 아직 애들이 어리다고 작은 것만 사냥하니까 그렇지, 하고 준수는 속으로 꿍얼거렸다.
성준수는 토끼보다 노루를, 노루보다 소나 돼지 같은 가축을 좋아했다. 지금 무리로서는 잡을 수 없는 큼직한 사냥감을 몰아 목을 물어뜯을 때의 짜릿함을 사랑했다.
그런데 재유와 말을 섞는 지금이 그것보다 더 고양된 기분이었다. 어쩐지 모르게 아랫배에서부터 올라오는 쾌감이 있었다.
응. 맞아.
준수의 얼굴에 미소가 퍼졌다. 재유의 목덜미는 옆에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확연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밖은 아직 해가 쟁쟁하다. 어린 녀석들은 풀을 뜯으러 멀리까지 가서는 저희들끼리 까불고 노느라 늦게 들어올 것이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배고프다며 종알거리겠지.
내도, 뭐, 없는 건 아인데….
재유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아, 부끄럼탄다. 준수는 괜히 손등을 다시 핥았다. 아까보다 고기를 바르는 손이 느릿해진 것이 느껴졌다. 이제 남은 토끼는 없었다. 준수는 제가 할 일을 마쳤다는 걸 알자 느긋하게 자리를 정돈했다. 몇 방울 튄 피를 지푸라기로 대강 문지르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자투리 조각을 끌어모아 한 무더기로 만들었다.
없는 건 아닌데?
그리고는 슬그머니 재유의 옆으로 가 앉았다. 재유의 손 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피가 달라붙은 칼과 고기를 자를 때 쓰는 넓적한 나무 조각뿐이었다. 재유는 입술을 깨물고 곤란하다는 듯 동굴 밖을, 아무것도 없는 곳을 애써 보고 있었다.
순간, 성준수는, 진재유가 순전히 저를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재유.
어.
그거 내 마음대로 생각해도 돼?
...뭐를.
준수는 대답 대신 재유의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닿자 재유의 몸이 움찔, 떨렸다. 뜨거운 피가 목덜미 아래에서 두근두근, 심장 소리를 알려주었다. 이대로 송곳니에 힘을 줘 가죽을 뚫어버리면 달콤한 피 맛이 날 것이다. 그러나 준수는 그러지 않았다. 옅은 잇자국 위를 혀로 부드럽게 핥으며 속삭였다.
이런 거.
진재유는 반항하지 않았다. 몸을 축 늘어트리고 거친 숨을 뱉는 모습이 사냥감과 다를 바가 없어 흥분이 들끓었다.
너도 싫지 않다고 생각해도 돼?
나긋한 목소리에 재유의 시선이 흔들렸다. 준수는 그의 몸을 끌어안고 뺨을 핥았다. 사냥감의 숨통을 끊는 것은 특기다. 단번에 몸을 제압하고 목을 꿰뚫는 것도. 망설이지 않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러나 성준수는 지금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대답을 들어야만 했다.
나만 그런 거 아니지.
‘그런 거’가 뭔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지 그런 걸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생각이 엉키고 감정이 멋대로 켜졌다. 그러니까 그가 할 수 있는 건 묻는 것 뿐이었다. 너도 나와 같지 않냐고.
준수는 대답하지 않는 재유에게 자신이 미뤄 두었던 대답을 들려주었다.
성욕은…없는 편인데…. 재유, 너한테는 자꾸 닿고 싶고 그래.
햇빛이 동굴을 비췄다. 햇살에 비친 재유의 눈이 반짝였다. 뺨이 붉어지자 주근깨가 더욱 도드라졌다.
니 때메 이제 내는 발정기는 몬 오겠다….
개 무리의 유일한 늑대는 그제서야 알아차렸다. 아, 이건,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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