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쟁] 성준수 고백 실종 사건
준쟁 준수재유
"야, 진재유.... 나 너 좋아해."
"므, 머, 뭐? 뭐라고?"
진재유(21세, 남), 술 취한 절친 데리러 왔다가 고백 공격 받다.
?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여느 때와 같은 금요일 밤, 잘 준비를 하던 진재유를 방해한 것은 한 통의 전화였다. 스팸이거나 여론조사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한 진재유의 눈에 들어온 것은 '성준수' 세 글자.
'임마가 이 시간에 웬일이지....'
의아했으나 받지 않을 이유도 없는 지라 진재유는 전화를 받았다.
"어, 준수."
"재유, 나 데리러 와."
"으응...?"
밤 12시에 전화 하더니 다짜고짜 하는 말이 데리러 와, 라니. 순간 진재유는 휴대폰 너머에 있는 사람이 성준수가 아닌 것 아닌가 싶었다. 잠깐의 당황 후에 든 생각은, 준수 임마 술 취했나? 였다.
"어? 재유–, 나 니네 집 근처야."
"니 취했나."
"어. 그니까 데리러 와."
"알았다, 알았다. 니 어딘데?"
"나 ○○포차 앞에 있는 씨유."
진짜로 근처네. 성준수가 말한 곳은 진재유의 자취방에서 걸어서 5분이면 가는 곳이었다.
"금방 갈게. 기다리라."
"응...."
술 취한 사람 치고 목소리가 멀쩡하더니 끊을 때 쯤 되니 말이 점점 늘어졌다. 임마 이런 술버릇 있는 지는 몰랐네. 그 성준수의 술버릇이 전화해서 데리러 오라고 꼬장부리는 거라니, 생각보다 얌전한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진재유는 이 추운 날 친구가 밖에서 자다가 동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걸어둔 패딩을 꿰어입고 밖으로 나갔다. 진재유는 성준수가 말한 씨유 앞에서 75L짜리 검은색 쓰레기 봉투, 가 아니라 검은 롱패딩을 입고 구겨져 앉아있는 성준수를 발견했다. 얼마나 마신 건지 날도 추운데 밖에서 잘도 졸았다. 일으켜 세워도 제대로 걷질 못해서 진재유는 저보다 10cm는 더 큰 성인 남성을 어깨에 지고 자취방을 향해 열심히 걸었다.
그러던 도중 성준수가 맨 처음 나왔던 그 말을 한 것이다. 니는 와 고백을 내가 니 이고 지고 집가는 길에 하는데...? 진재유는 일단 걸었다. 그렇다고 성준수를 길바닥에 버리고 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자취방에 돌아와 성준수를 대충 던져놓...으려다가 얌전히 눕히고 패딩도 벗겨 걸어두었다. 그러곤 진재유 자신도 옆에 누워 생각했다.
'이거... 고백한 거 맞는 거제.'
성준수가? 자신을? 머릿속이 복잡했다. 복잡한데 잘 시간이 지나서 그런가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질 않았다. 모르겠다. 내일 생각하자. 진재유는 눈을 감았다.
?
다음날, 진재유는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눈을 떴다. 연습이 없는 주말이라 다행이다, 싶었다. 진재유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어 늦잠 자게 한 주범은 아직 꿈나라를 여행 중이었다.
'술을 얼마나 퍼먹었길래 아침되면 빠딱빠딱 인나던 아가 아직도 안 인나지. 얘네 학교도 술 마이 맥이납다. 그나저나 야는 술 먹고 얼굴 부어도 잘생깃네....'
옆으로 돌아누워 잠든 성준수의 얼굴을 구경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결국 어젯밤의 그 일이 떠오르고 말았다. 성준수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어제처럼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다른 점은 잠을 푹 자고 일어나 수면부족으로 머리가 안 돌아간다는 핑계를 댈 수 없다는 것.
'준수가 낼 좋아한다고. 왜? 이건 일단 제쳐두고, 어떻게 대답해줘야 되나. 역시 거절해야겠지? 아니 사귀자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좋아한다고만 한 건데 선수쳐서 거절하는 건 아니지 않나.... 애초에 준수 어제 일 기억은 하는 기가....'
농구할 때 만큼은 아니어도 아주 빠르게 돌아가는 머리로 진재유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준수가 어제 일을 기억하지 못하면, 모른 척 하자. 반대로 준수가 어제 일을 기억하고 다시 고백한다면, 일단 거절하자. 널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는 생각해 본 적 없다고. 생각을 마친 진재유는 나름 후련해진 마음으로 씻으러 갔다.
씻고 나온 진재유의 눈에 들어온 것은 머리는 까치집에 다크서클은 턱까지 내려온 초췌한 모습의 성준수였다. 허공을 향하던 초점 없는 눈이 진재유를 보자 조금 살아났다.
"...나 왜 여기있어?"
"니 어제 기억 안나나...."
"몰라. 대가리 존나 깨질 거 같애...."
성준수가 머리를 붙잡고 신음을 흘렸다. 임마 이거 진짜 기억 못하나보네. 기억 못한다면, 모른 척 하기. 진재유는 어제 있었던 일의 일부만 말해주기로 했다.
"니가 어제 내한테 전화해서 데리러 오라고 닦달했다이가."
"...내가?"
"그럼 니 말고 우리집에 누가 있는데? 여 근처라고 데리러 오라데. 니 그런 술버릇 있는 지는 처음 알았다."
그 말을 듣는 성준수는 정말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진짜 미안. 아이다, 니 제대로 걷지도 못해서 끌고 오느라 힘들었지만 괜찮다. 아, 나 존나 개진상이었네. 진짜 미안. 장난이다. 진짜 괜찮다. 해장해야지, 뭐 물래? 근처에 갈 만한 데 있어? 어, 있다. 거 갈래? 어.
일단 이렇게 지나가지만 진재유는 성준수가 금방 다시 고백할 것이라 생각했다. 성준수는 생각과 행동이 바로바로 이어지는 타입이니까.
!
...이렇게 오랫동안 고백해오지 않을 거라곤 생각 못했다. 진짜로. 거절했을 때 상처받으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이 무색하게 성준수는 반 년이 넘도록 고백하지 않았다. 성준수와 진재유의 사이가 멀어져 고백할 기회가 없어진 것도 아니다. 둘은 여전히 사이가 좋았고, 자주 만났고, 그보다 많이 전화와 문자를 했다.
그렇다고 성준수가 더 이상 진재유를 좋아하지 않는 건, 또 아닌 것 같았다. 지금까지 왜 몰랐지, 싶을 정도로 성준수는 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좋은 건 진재유와 함께 하고 싶어하고, 진재유가 싫어하는 건 최대한 피했다. 좋은 일이 있으면 같이 기뻐하고, 나쁜 일이 있으면 같이 욕 해주고—거의 성준수 혼자 하긴 했지만—. 진재유는 약속 장소에서 자신을 발견하자마자 표정이 풀어지는 성준수를 보고 그제서야 정말로 인정하기로 했다. 성준수는 나를 좋아하는 구나.
이 깨달음이 삼 개월 쯤 전. 진재유는 삼 개월 동안 농구하고 밥 먹고 자는 시간 빼고 하루종일 성준수 생각만 했다. 정확히는 성준수가 고백하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를. 처음에난 당연히 거절한다, 였다.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다만 성준수가 본의 아니게 고백하고 잊어버림으로써 생각할 시간을 주고 말았다.... 따라서 진재유는 생각해야만 했다.
성준수를 좋아하는가? Yes.
성준수가 자신을 그런 식으로 좋아하는 게 기분 나쁜가? No.
성준수가 자신과 했던 것들을 다른 사람과 해도 괜찮을 것 같은가? ...No.
성준수의 고백을 거절하려고 했으면서 성준수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건 안된다니, 쓰레기 아닌가. 이 모순을 자각하고 나서야 진재유는 깨달았다. 자신도 성준수를 좋아한다는 것을. 그저 이 관계가 계속되길 바라서 그의 고백을 거절하려 했다는 것을. 이 생각이 성준수의 감정도 제 자신의 감정도 속이는 것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진재유는 용기내기로 했다.
!
주말에 만나 영화를 봤다. 성준수는 데이트 코스 아니야? 싶은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함께 하자고 했다. 친구 사이에서도 충분히 할 법한 것들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성준수가 그렇게 사교적인 인물은 아니지 않은가. 성준수와 진재유는 함께 벚꽃도 보고, 축제도 가고, 1박 2일 여행도 갔다. 이 날도 평소와 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진재유가 용기를 냈다는 것 정도.
성준수는 영화가 재미 없었는지 한참을 무어라 쭝얼거렸다. 맞나. 맞장구는 쳤지만 솔직히 진재유는 영화 내용은 기억도 안났다. 영화에 대한 불평이 끝났는지 말을 멈춘 성준수가 음료를 마시려고 했다.
"준수 니 내가 그래 좋나."
"어. 어, 뭐? 뭐라고?"
타이밍이 조금만 늦었으면 옷이 초코라떼 범벅이 될 뻔했다. 안 마셔서 다행인 초코라떼를 내려놓으며 성준수가 되물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야, 재유?"
"아직도 기억 안 나나."
성준수가 펄쩍 뛰느라 살짝 흐른 초코라떼를 휴지로 닦으며 진재유가 말을 이었다.
"니 접때 술 마시고 내한테 고백했다이가."
"뭐? 아니, 언제?"
술 마시고 다음날 진재유네 집에서 눈 뜬 이후로 필름 끊길 때까지 술 마신 적 없는데. 아, 설마.
"왜, 니 전화해서 데리러 오라고 꼬장부렸을 때."
"아, 미친."
"그때 편의점 앞에서 주워서 가는데 갑자기 내보고 좋아한다 하데."
아 성준수 이개미친또라이진상새끼야.... 좋아하는 사람한테 잘 보여도 모자란데—이미 볼 꼴 못 볼 꼴 다 본 사이긴 하지만— 술 먹고 전화해서 데리러 오라고 주정부리다 못해 기억도 못 할 고백까지 하다니. 성준수는 과거의 자신을 진심으로 존나 패고싶었다.
"암튼 다음날에 니 기억 못 하길래 언제 다시 고백하나 기다렸는데."
성준수는 이제 고개를 테이블에 처박고 들질 못 했다. 쪽팔리고 미안했다. 그때가 겨울이었고 지금이 여름 초입이니 거진 반 년동안 진재유는 그 일을 마음에 담고 있었다는 것 아닌가.
"아무래도 안 하길래 내가 할라고."
"내가 진짜 미안, 잠깐 뭐라고?"
뭐, 라는 말을 몇 번째 하는 건지. 그만큼 성준수에게는 이 상황이 당황에 당황의 연속이었다. 성준수가 테이블에 박았던 고개를 번쩍 들었다. 목소리는 덤덤해서 멀쩡한 줄 알았더니 얼굴은 시뻘게져서 터지기 직전이었다. 진재유가 성준수 옆의 허공을 쳐다보며 말했다.
"내도 니 좋아한다고...."
"어? 어... 어? 잠깐만,"
"잠깐은 뭐가 잠깐이고. 니 이제 내 안 좋아하나?"
"뭐? 그럴리가 있겠냐? 나 너 존나 좋,"
펄쩍 뛰어오르며 소리 지르려는 성준수를 막은 것은 진재유의 손이었다.
"알았으니까 소리는 지르지마라 쫌. 여 카페다."
주말 저녁 치고는 사람이 적은 카페이긴 했지만, 누군가 나 너 존나 좋아해, 라고 소리지르면 누구나 쳐다보게 되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그 누군가가 성준수라면 더더욱. 진재유는 그렇게까지 용기내고 싶지는 않았다. 성준수는 입이 막힌 채 고개를 세차게 끄덕여 소리 지르지 않겠다고 다짐한 후에야 말을 허락받았다.
"재유 너도 나 좋아한다고? 진짜?"
"그럼 가짜겠나. 아무리 나라도 이런 장난은 안친다."
"그, 그럼 우리 사귀는 거야?"
"어, 뭐, 그, 렇겠지?"
너 나 좋아하냐? 돌직구를 날린 것 치고 뜨뜻미지근 한 대답이었지만 성준수는 그것마저도 기쁜 듯 했다. 저래 행복하게 웃는 건 처음보는데. 성준수가 웃는 걸 보니 진재유도 웃음이 나왔다.
"그래 좋나."
"어, 존나 좋아."
그래서 둘 중 누가 고백했는데요? 라는 질문에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 괜찮나, 라고 대답하는 건 멀지 않은 이야기.
첫 글 입니다... 한 달 쯤 묵혀뒀던 소잰데 준쟁포타 천 개 되기 전에 올리겠다는 일념으로 써보았습니다.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예쁘게 봐주세요(제발)
사실 저장 기능이 맛이 가서 다 썼는데 중후반부 다 날려먹고 다시 썼습니다. 잠도 못 자고 이게 뭐람... 또 날라갔을까봐 무서워서 다시 확인하고옴;
재밌게 읽어주셨을까요? 그렇다면 기쁠 것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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