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오리진 로그
작게 울리는 알람음에 서율의 미간이 얕게 찌푸려진다. 무의식 중에 손을 뻗어 협탁 위를 더듬는 손길이 평소와 달리 조급했다. 서율은 낮게 앓는 소리를 내며 배개에 파묻은 고개를 들어올린다. 어깨에서 떨어지는 이불에도 아랑곳않고 손 안에서 진동하는 휴대폰 화면을 반쯤 노려본다. 누구지. 멍하니 잠에서 막 깬 얼굴로 고개가 절로 기울어진다. 이윽고, 손을 뻗어 통화 버튼을 길게 누르고 한껏 잠긴 목소리로 그제야 입술을 연다.
“…한서율입니다.”
약간의 침묵 후에 습관과도 굳은 이름을 내어본다. 누군지 확인하지도 않고 이제 막 동이 튼 시간이 지나 창 너머로 하얀 해가 들어온다. 서율은 여전히 깨어지지 않은 뇌로 창 밖을 보다가 기어코 비어있는 제 옆을 더듬는다. 평소와 다르게 비어있는 옆자리가 허전하다. 서율은 반대로 고개를 기울이다가 슬그머니 환한 빛을 내는 휴대폰 화면을 재차본다. 휴대폰 너머 상대는 웃음을 삼키는 모양새였다.
- 이제 일어나실 시간 아니십니까?
단정하고 다정한 음성이 서율의 귓가에 꽂힌다. 서율은 그제서야 짧은 탄식을 내뱉으며 제 잠옷자락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한 켠에 있는 시계로 시간을 확인하니, 어느새 깨어날 시간이다. 해가 짧은 겨울은 아침조차도 어두웠기에 서율은 요 근래 종종 늦잠을 자기 일수였다. 그런 그를 말리부가 모를 리는 없었다.
서율 씨? 유달리 늦은 서율의 대답에 말리부가 조심스레 서율의 이름을 부른다. 가만히 귀를 대고 말리부의 목소리를 듣고 있던 서율은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 고개까지 끄덕이며 성실하게 반응했다.
“네, 듣고 있습니다.”
- 다시 주무시는 줄 알고…. 일어나셨습니까?
“일어났습니다. 당신이 나가는 줄도 모르고 잠들었군요.”
서율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커튼을 열었다. 희미하게 비춰들어오던 햇살이 그제야 온전히 방 안을 비춘다. 깨끗한 방 안을 둘러보며 서율이 슬그머니 거실로 걸음을 옮겼다. 익숙한 루틴을 함께하던 이가 없다는 것이 조금은 아쉽고 서운하다.
- 곤히 주무시길래 깨우지 않고 나왔습니다. 놀라셨습니까?
“…허전해서. 놀라기도 했고 말입니다. 자기 전까지 당신이 밤에 출근한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심지어 서율은 그가 나갈 시간에 알람까지 맞춰놓고 잠들었더랬다. 아마도 깊이 잠든 서율을 배려해서 말리부가 끄고 나갔을 것은 자명했다. 서율은 민망함에 제 뒷 목을 꾹 누르며 부엌 의자에 앉았다. 토스트기에 빵을 굽고 냉장고에서 계란을 꺼내며 모자란 손에 어깨와 귀 사이에 휴대폰을 끼워 넣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 깊이 주무시라고 제가 껐습니다. 그보다 서율 씨. 휴대폰 화면은 확인 하셨습니까?
“화면이요?”
부드럽게 묻는 음성에 서율이 후라이팬에 계란을 까 넣고 불을 올렸다. 슬쩍 말한대로 휴대폰 화면을 확인하자 상단에 뜬 이름이 이상했다. 심지어는 몇 년 간 쓰고 있던 익숙한 번호였기에 서율의 의문은 더욱 커졌다. 어. 서율이 얼빠진 소리를 내며 갈색 눈동자를 깜빡거렸다.
- 지금 아셨습니까? 서율 씨 답지 않은걸요.
장난이 성공했다는 양, 말리부가 즐거운 목소리로 답했다. 서율은 그의 목소리에 절로 제 귀 끝이 발긋하게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귓가를 간질이자 서율의 입가에도 미소가 걸린다. 말리부는 그 침묵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건지, 재차 서율의 이름을 부드럽게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 휴대폰, 가져다 주실거죠? 저한테. 서율 씨의 휴대폰도 제 손에 있지 않습니까.
약간은 애교가 섞인 그의 목소리에 결국 서율의 입가에서 나직한 웃음이 터졌다. 말리부는 연신 애교섞인 목소리를 내며 서율의 대답을 재촉했다. 토스트기의 가벼운 알람음이 들리자 서율이 몸을 돌린다. 갓 나온 따끈한 빵을 꺼내 접시에 덜어내며, 일부러 침음하며 대답을 보류했다. 그런 서율의 반응에 안달난 것은 말리부 쪽이었다.
- 서율 씨이….
“어떻게 할까요. 오늘은 오전에 처리할 일도 많은데.”
말꼬리를 길게 늘이며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서율이 괜한 장난을 건내본다. 서율의 말에 말리부가 일부러 시무룩한 목소리를 내어본다. 서율은 불을 내리고 적당하게 익은 계란을 접시에 담으며 식탁에 앉았다. 잠시 고민하다가 그제서야 전화 너머의 상대에게 가장 간단한 것도 묻지 않은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고보니, 당신. 아침은 드셨습니까?”
- 아, 아직입니다. 서율 씨는 지금 드실 예정이죠?
“예. 간단히 식빵을 구웠습니다. 계란도요. 당신이 없는게 가장 큰 흠이네요.”
- 오늘만 참아주십시오. 내일은 제가 꼭 차려드리겠습니다.
딱히 그걸 바란게 아닌데. 서율은 괜스레 간지러운 기분이 들어 제 손 끝을 꼼질거렸다. 식빵을 천천히 씹어넘기며 서율은 보류했던 대답을 하기로 결정했다.
“오늘은 제가 배달해드리겠습니다. 한…, 그래요. 30분만 기다려주세요.”
- 30분이요?
“예. 조금만 기다리시면 되는데. 당신이 가져다 달라던 휴대폰도 갔다 드리겠습니다.”
- 알겠습니다. 그럼, 조심해서 오십시오. 아셨죠?
예. 서율은 단정한 어조로 대답하고 까맣게 변하는 휴대폰을 소중하게 손에 꼭 쥐었다. 절로 입꼬리가 들썩이며 부드럽게 입가가 휜다. 더 이상 진동하지 않는 화면을 빤히 보던 서율이 조심스런 동작으로 입술을 슬쩍 묻는다. 촉, 가벼운 소리가 들릴만큼 화면에 입술을 붙이고 부비던 서율의 고개가 아쉬움이 묻어난다.
빨리 보고싶다. 고작 몇 시간 가까운 시간을 보지 않았음에도 어쩐지 보고 싶은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서율은 남은 빵을 입 안에 밀어넣으며 빈 그릇을 싱크대에 넣는다. 자연스레 뒷정리를 하고 욕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유독 조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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