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L

05.

오리진 로그 -23.12.15 말리부 생일 로그

창고 by 카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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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Birthday

Dear. Maribu

23.12.15 by.카리야

 

 

 

 

 

 

 

뽀얀 입김이 계절을 알려주는 시기가 돌아왔다. 겨울은 서율에게 크게 특별한 계절이 아니었다. 애당초 출퇴근의 거리가 짧았기 때문에 되려, 겨울을 실감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해가 바뀔수록 나이를 먹을수록 계절을 느끼는 감각과 신호는 늘 둔감해졌다. 그것이 때때로는 한서율, 개인의 문제이기도 했고 어떨 때는 외부요인의 문제이기도 했다.

서율은 이제 막 손에 쥔 따뜻한 커피를 후, 불며 찬바람에 더운 김을 날렸다. 꽤 길어진 외출로 그리고 곧 바삐 돌아가야 하는 업무 탓에 밖에서나마 빠르고 가볍게 식사를 해결하는 것은 어쩐지 오랜만이었다. 그 기분 자체가 생경하고 또 어색해서 서율은 바쁘게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을 관찰하는 것으로 시선을 갈무리했다.

겨울치고는 볕이 따뜻했고, 그로 인한 여파 때문인지 서율은 바쁜 일이 산재했음이 분명한 공간에 유독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연인의 생일이 가까워서일까? 자신이 받는 것도 아니건만, 괜히 제 마음이 들뜨고 설렌다. 겸사겸사 나온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가득했다. 어쩌면 서율의 발걸음을 붙든 것은 그 여파도 한 몫 했으리라.

 

“크리스마스 선물을 미리 준비하세요.”

 

빨간 벽돌 앞에서 산타 복장을 한 종업원이 종을 흔들며 서율의 귀를 사로잡았다. 장난감가게처럼 보이는 입구를 바라보며 서율이 커피를 한 모금 홀짝였다. 호객행위가 먹힌 건지 길을 걷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입구로 빨려 들어간다. 서율은 그 평온한 광경을 감탄스레 보며 문득 며칠 전의 일을 떠올렸다.

 

 

 

‘말리부는 어릴 때 많은 것을 양보하며 살았겠군요.’

 

불쑥 튀어나온 문장이 행여 그에게 상처인 것은 아닐까. 그제야 서율이 아차하며 제 입술을 깨물었다. 곁에서 앨범을 같이 들여다보던 말리부는 조심스레 손을 올려 서율의 아랫입술을 슬쩍 빼낸다. 행동 하나하나에서 묻어나는 다정함에 서율의 마음이 속절없이 부드러워진다.

 

‘글쎄요.’

 

말리부는 느릿하게 눈동자를 굴리며 자신의 앨범을 내려다본다. 앨범의 존재를 안 직후부터 한서율은 자주 그의 앨범을 들여다봤고, 그 여파로 귀퉁이가 제법 닳아 있었다. 그마저도 자주 보는 사람의 성격이 묻어나는 건지. 참 깨끗하고 단정하다. 말리부는 그 흔적조차도 사랑스럽다는양 귀퉁이를 느릿하게 매만진다.

 

‘……저는 그 동안 많이 받지 않았습니까. 동생들이 태어나기 전에 도요.’

‘그렇지만, 그래봤자 당신도 고작 아이였을 텐데요.’

 

서율은 말리부의 어린 시절이 그저 억울했다. 제가 당한 것도 아닌데. 심지어 당사자는 괜찮다는데도 그러했다. 그 때마다 달래주는 손길과 표정이 한없이 부드러워지는 말리부를 보며, 서율은 이래서 손해를 보고 사는구나, 그런 생각도 더러 하기도 했다.

어느새 서율이 멈춘 페이지를 말리부가 느릿하게 넘겨내기 시작한다. 몇 장인가 자신이 가져가겠다며 소유한 페이지를 빼고, 앨범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괜찮습니다. 서율 씨가 그만큼 저에게 애정을 주면 되는 일 아닙니까.’

‘…그런가요. 그러면, 말리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 싶은 건 없으셨습니까? 애기 때요.’

 

구태여 어린 시절의 갖고 싶은 것을 물어가며 집요하게 구는 서율에 말리부는 낮은 웃음을 터트렸다. 이미 지나버린 시간을 되짚어가며 보상받는 것을 말리부는 원하지 않는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서율과의 미래에 힘을 쏟고 싶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제 연인이 원한다면. 말리부는 기꺼이 어린 시절 한 구석에 묻어놓은 낡은 페이지를 펼쳐볼 생각은 있었다.

그저, 한서율이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글쎄요. 합체하는 로보트를 받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로 어린아이다운 물건이 툭, 튀어나오자 도리어 놀란 것은 서율이었다. 갈색의 눈동자를 크게 뜬 채, 빠르게 깜빡이다가 눈동자를 좌우로 굴리는 모양새가 어쩐지 허를 찔린 것도 같았다. 말리부는 놀란 토끼 눈을 한 서율의 몸을 와락, 끌어안고 어깨에 이마를 묻었다. 작게 놀라 몸을 튄 서율이 천천히 손을 올려 말리부의 등을 살짝 토닥인다.

 

‘정말, 아이다운 선물입니다. 올해는 크리스마스에 산타가 오면 좋겠군요. 로보트와 함께.’

‘글쎄요. 산타에게 선물을 바라기에는 너무 커버린 거 아닐까요?’

‘제가 당신이 원하는 것을 들어드리죠. 어떠십니까?’

 

뻔뻔하고 천연덕스러운 제안에 말리부의 입가에서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기대해도 되겠습니까? 은밀한 대답 너머로 말리부가 은근하게 서율의 몸을 매만지며 되묻는다. 물음표의 답을 주는 상대에게 기꺼이 대답을 하며, 서율이 한껏 그의 목에 팔을 휘감았다.

 

 

 

“…로보트.”

 

서른이 넘은 지금 그가 받기에는 너무 어린 물건이었다. 그럼에도 괜히 그의 어린 시절을 지금이나마 제 손으로 보상해주고 싶단 생각이 불쑥불쑥 치솟는다. 의무감이 아닌 그저 애정을 기반으로 생각한 일에 서율의 마음이 갑작스레 조급해진다. 구태여 그 작은 물건이 아니더라도, 하다못해 다른 것이라도.

어렸을 말리부 맨더슨에게 주고 싶은 선물이라고.

 

서율은 여남은 커피를 입 안에 털어 넣고 빨간 벽돌로 지어진 곳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느긋한 걸음에서는 이상하리만치 조급함이 엿보였다.

 

◆ ◆ ◆

 

 

오늘따라 말리부 맨더슨은 연락이 뜸한 연인에게 아주 살짝, 골이 나 있었다. 출근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외근이 추가되었으며, 그로 인해 업무의 종료 시간이 늦어져 야근할지도 모른다는 연락까지. 평소라면 너그럽게 이해할만한 일도 유독 오늘이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서운함이 밀려온다.

오늘. 그러니까 말리부 맨더슨은 오늘 세상에 첫 울음을 터트렸다. 생일을 특별하게 기대했던 것은 어린 시절로 졸업한줄 알았건만, 사랑하는 연인이 생기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지난달에 있던 서율의 생일 때는 나란히 외출하고, 좋은 레스토랑에서 식사까지 했더랬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왜 하필 오늘 같은 날. 말리부는 몰려오는 약간의 설움을 애써 억누르며 휴대폰의 화면을 톡톡, 두드렸다. 마지막으로 온 메시지는 정확히 3시간쯤 전이었다. 퇴근 시간은 지났고, 서율은 외부에서 다른 업무가 터져 그쪽으로 곧장 가버렸기에 사내에서 얼굴을 볼 수도 없었다.

[미안합니다. 바로 집으로 가겠습니다.] 15:41

[식사는 꼭 같이해요. 7시까지 들어가겠습니다.] 15:42 

[괜찮습니다. 천천히 들어오십시오.] 16:03

마지막 메시지를 끝으로 갱신되는 내용은 없었다. 서율이 말한 시각이 있으니, 그 시간은 반드시 지키기는 하겠지만…. 실상은 그저 보고 싶어질 따름이었다. 말리부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가볍게 집 안을 둘러보았다. 두 사람이 꾸리기 시작한 공간은 사랑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두 사람의 성격대로 깔끔하고 단정했으나, 군데군데 보이는 소품이 두 사람의 관계를 설명해주기에 충분했다.

말리부는 그 공간을 찬찬히 둘러보며 둘이 찍은 사진과 나란히 꽂힌 앨범을 살폈다. 문득, 제 앨범 곁에 꽂힌 서율의 앨범으로 시선이 옮겨졌다. 본가에서 가지고 온 그 앨범은 한없이 얇았지만, 서율의 성장시절을 충분히 엿볼 수 있었다. 언젠가 생일에 찍었던 서율의 사진을 말리부는 어느새 제 부적마냥 지갑에 넣고 다니기 시작했다. 서율 또한 보답이라며 말리부의 어린 시절 사진을 한 장 지갑에 넣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 얼마 전의 일이었다.

 

“서율 씨는 어디쯤이려나.”

 

자정. 정확히 0시가 되던 시간에 속닥이던 축하의 말이 떠오른다. 생일 축하한다고,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말하던 그 입술에 가벼운 입맞춤을 내리며 온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럼에도 지금이 아쉬운 것은 그만큼 서율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리부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괜히 앨범을 매만지며 말리부는 어쩔 도리 없이 현관 쪽으로 몸을 돌렸다. 여전히 꽉 닫혀있는 문이 못내 아쉬웠고, 금세라도 열리며 찬 기운을 가득 묻힌 서율이 미안하고 머쓱한 얼굴로 들어올 것만 같았다. 그 때, 말리부의 휴대폰이 울렸다. 당연하다는 듯 떠오른 이름을 보며 말리부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서율 씨.”

- 말리부. 미안합니다. 지금 집 안이십니까?

“예, 맞습니다. 어디쯤 오고 계시나요? 식사는 하신건가요.”

 

조급한 물음이 연이어 터져 나오자, 휴대폰 너머로 나직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급할 거 하나 없다는 양 느긋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리부의 궁금증을 하나하나 해소하기 시작했다.

 

- 식사는 아직 이고, 곧 도착합니다. 이런 날에 당신을 기다리게 했군요.

“…괜찮습니다. 축하는 이미 진작에 해주지 않으셨습니까.”

- 그건……. 말뿐이지 않았습니까.

 

조금 먼 곳에서 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말리부는 예민하게 그 소리를 눈치 채고 차고지가 보이는 창가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헤드라이트가 짧게 창을 비추고, 금세 사라진다. 그것만으로도 누구인지 훤히 알겠다는 듯 말리부가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말리부는 하얀 입김을 토해내며 차고지 쪽을 연신 기웃거렸다. 전화 너머로 들리는 부드러운 숨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며 말리부가 입술을 열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당신이 곁에 있어주지 않습니까.”

- 선물이 필요 없다는 말로 들립니다, 말리부?

 

조금은 장난스런 기척으로 되받아치며 휴대폰 너머로 차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번갈아 들렸다. 서율이 걷는 소리가 들리고 점점, 그 소리가 가까워짐과 동시에 말리부의 심장이 세차게 뛴다.

 

“그건-, 아닙니다. 서율 씨가 주신다면 뭐든 기쁠거예요.”

-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라면 그렇게 말해 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점점 가까워지는 인영에 말리부가 입술을 달싹였다. 휴대폰 너머의 목소리조차도 안달 나는 것은 기분 탓일까.

 

“-말리부.”

“서율 씨.”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동시에 두 사람이 시선을 마주한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달음질로 서로를 껴안으며 깊게 고개를 파묻는다. 서율은 손에 들린 것을 은근슬쩍 뒤로 감추며 비어있는 손을 올려 말리부의 등을 가볍게 문질렀다.

 

“추운데 왜 나와 있습니까. 감기 걸리잖습니까.”

“목소리를 들으니까 보고 싶어져서요. 안 됩니까?”

 

어리광처럼 들리는 말리부의 말에 서율의 입매가 절로 휘었다. 종종 제 앞에서 보여주는 이런 면모가 서율은 그저 달가울 따름이었다. 말리부의 질문에 서율은 구태여 대답하지 않고 한 번 더 꽉, 끌어안았다. 어깨에 이마를 묻고 달가운 살 냄새를 한껏 흡입한다. 그 행동이 간지러운지 말리부가 작게 웃으면서도 서율을 품에서 놓아주지 않는다.

 

“많이 기다리셨나요? 미안합니다. 오늘 종일 바빠서…. 당신의 생일인데.”

“괜찮습니다…. 그래도 약속한 시간까지는 오지 않으셨습니까.”

 

아주 조금 서운했던 마음이 들기도 했으나 서율의 얼굴을 본 순간 그조차도 날아갔다. 말리부는 요 근래 들어 얼굴과 성격이 취향이면 부정적인 감정도 금세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매번 경험하고 있었다. 그래도. 서율은 못내 미안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말리부의 턱 끝에 입술을 살살 비볐다. 간지럽게 이어지는 스킨쉽이 달가운지, 말리부는 서율의 몸을 끌어안은 채로 뒤뚱뒤뚱 걸으면서 집 안까지 들어갔다.

 

“말리부. 잠깐, 이것만 놓고요. 응?”

“서율 씨가 너무 늦게 온 탓이에요.”

 

한껏 껴안은 채, 투정부리는 듯한 어조가 귀엽다. 저보다 한창은 큰 사내가 이렇게 엉겨 붙는 것이 귀엽고 사랑스럽다니. 서율은 달래듯이 말리부의 머리를 쓰다듬고 목덜미를 매만지며 등을 토닥거렸다. 꽤 오랜 시간 코를 박은 채 서율의 체향을 맡던 말리부가 낮은 숨을 토해내며 살짝 몸을 물렸다.

 

“이제 좀 만족하셨습니까? 당신에게 주고 싶은 것이 있는데 보여드리지도 못 했어요.”

 

서율은 잠시 머뭇거리며 제 손에 들린 자그마한 쇼핑백을 불쑥 내밀었다. 크기가 엄청 크지도 않고 손바닥만한 사이즈의 쇼핑백을 보며 말리부가 잠시 멈칫했다. 내민 손이 민망한지, 서율은 검지를 꼼지락거리며 말리부의 손에 반쯤 억지로 쇼핑백을 들려주었다. 꽤 묵직한 무게감에 말리부가 눈을 크게 뜨고 서율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조금…, 급하게 준비했습니다. 사실 다른 걸 드리고 싶었습니다만 그건 당신이 준비하고 싶어할 거 같아서.”

 

서율은 여상한 어조로 말하며 말리부의 손을 부드럽게 쥐고 안으로 이끌었다. 순순히 걸음에 맞춰 들어오는 말리부를 보고 서율이 즐거운 듯 눈을 휘며 웃었다. 커다란 몸을 소파에 앉히고 테이블 위에 쇼핑백을 올려둔다.

반듯한 직사각형의 모양의 상자는 무언가를 연상하게 했지만, 크기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유독 크고 높았다. 말리부는 의문스런 표정으로 상자를 살피다가 예쁘게 묶여있는 푸른색의 리본을 풀어냈다. 흰색 상자로 감싸인 물건은 제법 묵직했다. 가늠되지 않는 물건에 말리부의 얼굴에 연신 물음표가 떠올랐다.

 

“얼른요. 이상한 거 아닙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을 하는 것이 아닌데…. 말리부는 그런 표정으로 흰 상자를 열었다. 동그란 형태의 유리 볼이 말리부의 시야에 먼저 들어왔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고 서율의 얼굴을 보자, 어서요, 하며 부드러운 채근이 이어졌다.

 

“………스노우 볼이군요.”

 

기어코 상자를 다 펼치고 드러낸 물건을 중얼거리며 말리부가 원형의 유리 돔을 매만졌다. 유리의 차가운 감촉과 매끄러운 감각을 손끝으로 매만지며 천천히 손가락을 쭉 내려 안의 내용물을 살폈다.

유리돔 안에는 작달막한 나무와 통나무집, 그리고 크기가 서로 다른 작은 인형이 그 집 앞에 나란히 배치되어 서 있었다. 빼곡하게 그 위를 덮은 흰 눈의 결정체가 눈의 마을을 연상하게 했다. 말리부는 홀린 듯이 밑동을 쥐고 가볍게 흔들었다. 하늘거리며 돔 안에서 흩날리는 휜 눈을 바라보고 있자니, 서율이 곁에서 손 위에 제 손을 올리며 겹쳐 쥐었다.

 

“제작이 되는 곳이 있어서 만들어봤습니다. 특별한 건 아니지만…, 당신에게 꼭 이걸 주고 싶었어요.”

“어째서 스노우 볼인지 물어봐도 괜찮습니까? 어쩐지 서율 씨가 선물한다고 생각하니 의외라서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서율이 잠시 멈칫했다. 손끝으로 괜히 물건을 매만지고 손가락을 걸쳐 쥐며 음, 짧게 침음했다. 사실은. 짧은 단어와 함께 서율이 얕은 숨을 토해냈다.

 

“…당신의 어린 시절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습니다.”

 

조금 이상한가요. 멋쩍은 듯 덧붙이며 서율의 시선이 빗겨나가자 말리부가 손을 뻗어 서율의 뺨을 보드랍게 매만졌다. 그렇게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데. 생각하는 와중에도 어쩐지 말리부의 입가에 커다란 미소가 걸렸다.

 

“당신은 괜찮다고 하지만, 제가 좀…, 신경이 계속 쓰여서………. 생일선물이라기엔 너무 초라합니까?”

 

비싼 것도 그렇다고 유달리 특별한 것도 아닌 선물이었다. 처음 맞이하는 연인의 생일에 이런 것으로 괜찮나, 서율은 한참을 고민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지나간 그의 시간을 어떻게든 보답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고작 이런 물건으로 채워질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서율의 대답을 들은 말리부는 말없이 스노우 볼을 톡톡, 건드리며 재차 흔들어보기도 했다. 저보다 더 저의 과거를 안타까워하고 보듬어 해주고 싶어 하는 사람. 문득 그의 몸을 끌어안고 한참이나 그의 체향을 들이키고 싶단 충동이 들었다.

말리부는 손을 뻗어 그의 몸을 품에 안으며 가만가만히 목덜미에 코를 박았다. 희미하게 나는 살 내음과 바람 냄새가 말리부의 코끝을 간질였다.

 

“-너무, 의외라서. 놀라서 그렇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로보트는 아닌 거 같아서, 이걸로 타협했습니다. 역시 로보트가 좋았나요.”

 

농담 같은 서율의 말에 말리부가 나직하게 목을 울리며 웃었다. 이윽고 고개를 내저으며 천천히 부정하면서도 이걸로 충분하다며 작게 중얼이기도 했다. 이걸로 충분하구나. 서율은 내심 안심하며 말리부의 뒷머리를 살살 매만진다. 습관처럼 보드랍게 감기는 검은색 머리칼을 손으로 휘감으며 귓바퀴에 얕은 입맞춤을 자아낸다.

 

“마음에는 드십니까? 선물을 고르는게 꽤 오랜만이라….”

“서율 씨가 그걸 계속 마음에 두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마음에 담고 있었다기보다 당신의 어린 시절을 보상해주고 싶은 이기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온전한 어린 시절을 제가, 작게나마 보상해주고 싶어요.”

 

여전히 이기적이고 오만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그라면, 말리부라면 이런 마음조차도 온전히 받아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서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말리부가 와락 서율의 몸을 껴안는다. 갑작스런 힘에 휘청거리며 바닥에 눕혀진 서율이 아이를 달래듯이 커다란 등을 톡톡, 다독인다.

 

“행복합니다. 제가 지금 말로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행복하거든요.”

 

지난 시간을 보상받을 수 있으리라고 서율도 말리부도 둘 중 누구도 그런 생각을 하진 않는다. 되려, 지나간 시간이 오히려 지금의 당신과 나를 만들어낼 수 있을 따름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당신과 나는 지금 만나서 다행이라고.

“당신이 행복하다니 좋습니다. 원래 주려던 것은….”

 

서율은 말을 맺길 꺼려하며 괜스레 말리부의 왼손 약지를 매만진다. 그리곤 이내 말리부의 코끝에 짧은 입맞춤을 남긴다.

 

“-당신이 주기를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괜찮겠죠?”

 

뻔뻔하게 되묻는 서율의 얼굴은 평온했다. 약한 웃음마저 머금은 그의 얼굴을 빤히 내려 보던 말리부는 사랑스러움에 재차 그의 몸을 끌어안고 얕은 키스를 퍼부었다.

 

“알겠습니다. 꼭 기다려주십시오, 서율 씨.”

 

답이라는 양 서율의 손가락을 매만지며 대답한다. 당연하다는 듯 돌려주는 긍정의 대답이 서율은 퍽 마음에 드는 듯 얼굴 가득 웃음을 지어 보인다. 그러곤 뒤늦게 깨달았다는 듯 말리부의 귓가에 나지막한 축하의 말을 쏟아낸다.

 

“생일 축하합니다, 말리부.”

 

조금은 늦은 축하의 언어조차도 제 것이라는 듯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말리부의 입술이 서율의 입술을 덮쳐들었다. 입술을 벌리고 밀려오는 체온을 받아내며 서율이 살포시 눈을 감는다. 특별한 듯 특별하지 않은 두 사람의 하루가 서로로 가득 찬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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