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L

04.

오리진 로그

창고 by 카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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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율의 휴일은 언제나 비슷비슷했다. 최근에 생긴 연인이 생겼어도 그의 루틴이 크게 바뀌진 않았으며, 되려 상대가 한서율에게 맞춰주고 있는 실정이었다. 서율은 느릿하게 타블렛을 검지로 내렸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올린다. 익숙한 자신의 공간에 있는 타인이 거슬리지 않고 되려 반가움을 자아내는 것은 굉장히 생경한 기분이었다.

“말리부.”

저도 모르게 습관처럼 상대의 이름을 부르자, 뒷정리가 끝난건지 이윽고 몸을 틀어 한서율을 바라본다. 가만히 눈을 올려 시선을 마주하자 말리부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었다. 그것이 대답이라는 양, 접히는 눈매에 한서율은 저도 모르게 가슴 한켠이 간질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어찌저찌 집을 오가며 반동거 비슷하게 생활하게 된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동안 서율의 생활에서 말리부 맨더슨이라는 존재를 빼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워졌다. 자연스레 제 쪽으로 걸어오는 말리부를 눈으로 쫓던 한서율은 타블렛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몸을 옆으로 슬쩍 빗겨냈다.

“부르셨습니까.”

“조금 쉬라고. 계속 일만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마뜩찮은 얼굴로 가볍게 미간을 찌푸리며 서율이 불만스레 대답했다. 가볍게 그의 몸을 끌어안으며 잘했다는 양, 보드랍게 감기는 머리칼을 살살 쓰다듬는다. 손 끝에 감기는 머리칼의 감촉에 고개를 기대며 서율이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의 행동에 말리부가 목 안으로 웃으며 그대로 그의 몸을 끌어올려 품에 꼭 안아버린다.

“먹고 뒷정리를 하는 건 당연하죠. 서율 씨는 바쁘지 않습니까.”

“...으음, 어젯밤에 제대로 못 본 탓이 컸죠. 당신 덕분에.”

“꼭 제 탓이라고 하기는….”

그런가. 서율은 목 안으로 중얼이고는 가만가만 제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고개가 절로 기울어진다. 눈이 살짝 감기고 때이른 잠이 오는 것을 느끼면서도 품 안을 벗어날 생각은 절대 들지 않았다. 서율의 집에는 물건이 제법 많이 늘었다. 삭막했던 처음과는 다르게 곳곳에 생활감이 묻어나는 물건들이 늘었고, 때때로 그 물건은 세트마냥 두 개인 경우도 있었다. 말리부는 새삼스레 그의 집 안을 둘러보며 뿌듯함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품 안의 상대를 저도 모르게 꽉 틀어안고 얼굴 곳곳에 입술을 꾹, 도장마냥 내리 눌렀다.

“-..말리부,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간지러움에 결국 웃음을 터트린 서율이 그의 얼굴을 손으로 슬쩍 밀어내며 물었다. 손바닥에마저 키스를 퍼부어대던 말리부가 웃음을 꾹 삼켜내며 손바닥에 이마를 살짝살짝 비벼낸다.

“그냥, 갑자기 이러고 싶어서요.”

서율은 가만히 그의 낯을 살펴보았다. 단정하고 곧은 이목구비 너머로 단단한 애정이 엿보인다. 어느새 짧아져 드러난 뒷목을 손으로 가만가만 매만지며 한서율은 문득, 이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말리부와 함께 생활을 꾸리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말리부.”

네에. 느리게 대답하는 그의 목소리에 서율은 참을 수 없이 웃음이 새어나왔다.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그의 단단한 목을 끌어안아내며 찬찬히 어깨에 이마를 비볐다.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애교섞인 행동이 어색한 것도 잠시간이었다. 어느새인가 습관처럼 굳어진 서율의 행동에 본인조차도 심지어는 받아주는 상대조차도 이것이 어리광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다.

“집을 알아볼까합니다. 조금 갑작스럽나요.”

함께 살자는 말을 먼저 꺼낸 것은 말리부였다. 그가 생각한 동거의 형태는 어쩌면 지금 현재와 많이 닮아있지 않을까, 서율은 문득 생각한다.

“아니요. 갑작스럽진 않습니다. 집으로 알아보는 겁니까?”

보다 완전하고 완벽하며 견고한 것을 원한다. 서율은 눈 앞의 제 연인도 이것을 바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집.’

그 한 단어에 담긴 서율의 욕망과 서율이 원하는 형태의 관계를 떠올린다. 자연스레 말리부와 서율은 같은 단어를 연상시켰을 것이다. 되묻는 그의 질문에 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 더 꽉, 말리부의 몸을 끌어안고 틀어쥔다. 움켜쥔 것에 잔뜩 욕심을 내는 아이마냥.

“여기서 그렇게 멀지는 않은 곳으로 살 겁니다. 같이 보러가면 좋겠습니다.”

업무를 보고 있던게 아니었나. 말리부의 시선이 자연스레 바닥에 떨어져서 굴러다니는 타블렛으로 향한다. 까맣게 변한 화면에 비치는 건 말리부와 서율의 모습 뿐이었다. 말리부의 시선을 따라 자연스레 타블렛을 보던 서율이 턱을 틀어쥐고 가볍게 뺨을 깨물었다. 장난스런 스킨쉽에 말리부의 입술새로 웃음이 쉬어나온다.

“…서율 씨는 언제가 좋습니까?”

“다음 휴일에 같이 돌아보는게 어떨까요.”

“좋습니다. 다음에는 밖에서 데이트를 하게 되겠네요.”

데이트. 그마저도 사랑스러운 단어로 포장하는 것이 지나치게 사랑스럽다. 서율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리부의 몸을 꽉 끌어안는다. 사이사이에 퍼부어지는 말리부의 입술에 서율의 입술에선 연신 작은 웃음이 흘러나온다. 또 하나의 약속이 쌓인 평화로운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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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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