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오리진 로그 - 서율의 편지
친애하는 말리부에게.
안녕하십니까, 말리부.
새삼스레 서면으로 인사드립니다. 아, 서면이 아니죠. 정확히는 당신에게 쓰는 편지입니다.
그저 어제의 짧은 식사로는 아쉬움이 남는 것만 같아서요. 늘 항상 같이 시간을 보내고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1년이라는 시간을 견뎌주신 당신께 꼭 편지를 쓰고 싶었어요.
그리 길지 않은 편지겠지만…. 당신에게 조금이나마 기쁨이 되면 즐거울 겁니다.
최근, 당신과 보내는 시간이 부쩍 줄어들었음을 새삼스레 체감하게 되었습니다. 제 일이 많아진 탓이긴 했습니다만 편지를 쓰며 돌이켜보니 그게 미안하고 마음에 걸리더군요.
미안합니다.
그런 시간을 견디고 지켜준 당신에게 그 흔한 말도 못 했더군요. 그런데도 당신은 불만 한 톨 없으셨지요. 그동안 외롭게 해서 미안합니다.
이제 요 몇 달만큼 바쁠 일은 없을 겁니다. 뭐, 비상 상황만 발생하지 않는다면요.
편지를 쓰는 와중에도 이렇게 말을 하는 저 자신이 조금 밉네요. 미우면 밉다고 말씀하셔도 괜찮습니다.
어쩐지 당신에게는 그 흔한 싫다는 표현을 들은 적도 많이 없는 거 같아서요.
내심, 당신이 저를 의지하지 않는 건 아닐까.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유는 필히 아니시겠지요.
1년을 당신과 함께한 지금, 당신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알 거 같습니다.
필히, 제 표현이 부족한 탓도 있긴 하겠지요.
당신이 늘 제 표현이 부족함에 있어 답답하진 않았을지. 아니, 꼭 답답했을 것만 같네요. 지금 생각해보니.
1년 전의 여름에 당신과 연인이 되고, 당신의 사랑에 안온함을 느끼는 과정에서 어느새 제가 그 상황에 익숙해져 있더군요. 이건 그다지 좋은 신호가 아닌데도….
그러니까,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생각했을 때 그렇다는 겁니다. 결코 당신에게 어떤 신호를 느끼고 있다는 뜻이 아니에요.
그래서 앞으로는 조금씩이라도 더…, 표현하고 싶어요.
그전에도 말씀은 드렸습니다만 여전히 당신이 주는 만큼은 아닌 듯해서.
말리부.
제가 말리부와 함께하는 과정이 말리부에게 썩 마음에 차지 않았던 적이 혹시 있으십니까?
늘, 궁금했고 편지를 쓰는 지금도 궁금했던 질문이긴 합니다만, 그렇다는 긍정의 대답을 들을까 봐 두려워 마음 한쪽에 담아두기만 했던 질문입니다.
혹여 그런 부분이 보인다면 꼭 말씀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말리부 당신과 한평생을 약속하고 싶은 사람이니까요.
저는 여전히 말리부 당신이 내 연인인 게 때때로 믿기지 않고, 때때로 꿈만 같습니다. 되도록 영원히 깨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꿈이요.
이걸 쓰는 지금도 언제 이런 시간이 흘렀는지, 어리둥절하니까요.
사랑스러운 당신께 고백의 언어도 아닌 어쩐지 고해하는 편지를 처음 쓰게 되는 것조차 미안합니다.
앞으로는 당신에게 미안하다는 말보다 사랑한다는 말을 더 많이 돌려드리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말리부.
온 마음을 다해서요.
2024.08.05
당신의 율.
P.S1: 당신의 왼손 약지에 맞는 디자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세상에 하나뿐인 반지니까 꼭 끼면 좋겠습니다.
P.S2: 당신이 식사한 뒤 이걸 발견하고 매우 놀라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외근을 나갔다가 집으로 퇴근할 예정입니다. 집에서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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