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과 가설 사이 (1)

"택뱁니다!"

도시방위국 본부가 아침부터 시끌벅적했다.

평소 지나가는 사람조차 적었던 로비에는 각종 소포 상자며 편지 같은 것들이 잔뜩 쌓여있었다. 심지어는 네 명이나 되는 배달원이 계속해서 상자와 편지를 가져다 쌓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리 크지 않은 로비의 절반을 꽉 채워버릴 정도였다. 평소에도 종종 택배나 편지가 본부로 도착하곤 했으나 오늘은 이례적일 정도로 양이 상당했다.

로비에 걸린 커다란 시계에는 6, 그리고 1이라는 숫자가 표시되어 있었다. 8월 1일, 아무런 명절이나 공휴일도 없는 애매한 시기였다. 여름휴가를 떠나는 사람이 종종 있어도 택배가 자택도 아닌 본부에 산더미같이 배송되는 경우는 없었다. 게다가, 이 택배와 편지들은 놀랍게도 수신인이 전부 제각각이었다!

"이게 다 뭐예요?"

이번 달 내근 담당인 엔지니어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다.

"글쎄, 멋진 우연의 일치 아닐까요? 그보다 여기 사인 좀 부탁드립니다. 수령인 성함도 적어주시고요."

배달원 중 한 명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하고는 원판 모양의 단말기를 내밀었다. 곧이어 기다란 목록이 홀로그램의 형태로 공중에 떠올랐다. 로비를 전부 차지하고 있는 소포와 편지들의 목록이었는데, 발신인과 수취인, 그리고 주소 등등이 간략하게 표기되어 있었다. 엔지니어는 아주 익숙하다는 듯 홀로그램 깃펜을 쥐고 목록 가장 아래의 인수인 란에 서명했다. 일련의 과정이 마무리되자 홀로그램은 언제 나타났냐는 듯 깔끔하게 사라졌다.

단말기를 안주머니에 챙겨 넣은 배달원이 모자를 살짝 들어 인사했다.

“총 이백서른한 건 배송 완료되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아치형 창문 너머로 네 명의 배달원이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기분 탓인가, 어쩐지 공간 마법이 걸린 배달 가방이 보다 홀쭉해진 것 같았다.

“하아, 그나저나 이걸 다 언제 정리한담.”

“각자 갖고 갈 때까지 여기 두는 건?”

“그건 안 돼! 작은 건 분실되기 쉬우니까.”

비장한 표정의 엔지니어가 로비에 몰려든 구경꾼 중 몇 명을 손가락으로 콕콕 지목했다.

“펀치 볼, 오리아나, 이소타, 너희는 부서별로 물건을 분류해 줘. 에코, 본부 안에 손 비는 녀석들을 찾아다 줄래? 훈련 핑계 대고 안 오려는 놈은 엔지니어 특제 기상 알람을 한 달 내내 틀어줄 거라고 전해줘!”

“네에~.”

장난스레 경례해 보인 에코가 하늘하늘한 스카프를 바람에 휘날리며 사라지고, 로비에는 한동안 상자와 편지를 나누는 소리만 가득했다. 대체 뭘 넣은 건지 몇몇 상자는 부피에 비하여 무척이나 무거웠고, 뭘 잘못 먹인 건지 편지 몇 통은 도망을 가려고 했으므로 소포 분류팀은 한동안 굉장히 난처하고 곤란하며 애를 있는 대로 먹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니까, 이건 시계의 초침이 스무 바퀴쯤 돌았을 때의 일이었다.

에코의 짐꾼 발탁은 생각만큼 잘 되어가지 않는지 여태 온다는 사람이 없었고, 때문에 우편물은 여전히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도시방위국 사람들은 대부분 외근직이라 상주인원이 아주 적은 직업 특성도 한 몫 했다. 짐군이 되었어야 했을 사람들은 지금쯤 너른 오르타 전역을 돌아다니며 도시의 안녕을 지키고 있으리라.

그렇다면 남은 것은 분류 후 추가 배송작업 뿐. 잔업의 향기를 짙게 느끼며, 로비의 네 명은 바쁘게 손을 움직여갔다.

“이건 그럼 2팀으로 보내고…….”

“어?”

“뭐야?”

“뭐, 뭐예요? 아무 일도 없는데 ‘어?’ 금지!”

팔자에도 없는 스트레스를 받은 탓에 한껏 예민해진 세 명이 펄쩍 뛰며 새된 비명을 질렀다. 작은 상자를 든 오리아나는 몹시도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그런 셋을 쳐다보았다.

“이 소포…… 아무래도 잘못 온 것 같은데요?”

뭐라고!

소리 없는 비명이 넷 사이를 가로질렀다. 네 명은 머리를 맞대고 문제의 소포를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갈색 종이로 꼼꼼하게 포장이 되어있는 소포에는 받는 사람의 이름이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정자체로 또박또박 적힌 이름은,

“……오르타 국립대학 마법학과 교수, 라플라스 데우스 엑스 마키나…….”

그 즉시 엔지니어를 제외한 세 명은 소포를 바닥에 놓고 후다닥 뒤로 물러났다. 어찌나 빠르면서도 정확하고 조심스러운지, 상자가 바닥에 닿는 소리조차 나지 않을 정도였다. 물론 엔지니어는 꼼짝도 않고 제자리에 서있었는데, 이윽고 그가 황당하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너희가 그러고도 도시방위국 정규 대원이냐?”

“하, 하지만 그 라플라스 교수님의 택배라고요!”

“뭐가 들었을 줄 알고!”

“맞아맞아! 그 교수님 연구실로 대따 큰 벌레 표본이 들어가는 걸 본 사람도 있다구요!”

펀치 볼은 그냥 벌레가 무서운 것뿐이겠지.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면 굉장히 실례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늘씬하고 멋진 모습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엔지니어가 바닥에 버려진 상자를 주워들었다. 그리 무겁지도 않은데다가 엔지니어의 양손에 쏙 들어올 정도로 작았다. 다시 바꿔 말하자면, 큼직하고 정신없고 취급을 주의해야 할 것만 같은 소포 사이에 섞여서 잘못 굴러떨어지기 쉬울 정도의 크기와 무게라는 뜻이었다.

“흐음, 이걸 어쩐다…….”

“고민이 많아보이네요, 엔지니어.”

“오, 파나세아.”

건물 안쪽에서 성큼성큼 걸어나온 청년이 살가운 낯으로 말을 걸어왔다. 엔지니어도 택배 상자에서 눈을 떼고 웃는 낯으로 그를 맞이했다. 오늘 오전까지만 해도 같은 사무실에서 얼굴 마주보며 일하던 사이기는 했지만.

파나세아는 멀찍이 떨어진 세 사람을 한 번, 그리고 분류 작업이 한창이라 엉망인 로비를 또 한 번, 마지막으로 작은 상자를 들고 있는 엔지니어를 한 번 쳐다보고는 고개를 슬쩍 기울였다. 아무래도 현재의 상황이 썩 원활하게 이해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에코 말로는 짐 나를 사람이 필요하다기에 왔는데, 또 다른 문제가 있는 모양이네요?”

“그리 심각한 건 아냐. 단지 쟤들이 호들갑을 좀 떠는 것뿐이지.”

호들갑이 아니라고요! 셋이서 이구동성으로 소리쳤으나, 어째선지 음량은 아주 작았다. 맨손으로 마물을 때려눕히던 기세는 다 어디갔담? 코웃음을 친 엔지니어가 파나세아에게 성큼 다가가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얼떨결에 상자를 받아든 파나세아가 눈으로 물었다. 이게 뭐예요? 그는 특별히 받을 택배가 없었기에 더욱 어리둥절한 모양이었다.

반면에 엔지니어의 눈은 보다 생기있게 반짝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대량의 잔업에 휩쓸려 지쳐가던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또 무슨 잔머리를 굴리는 게 분명하다니까요. 이소타의 중얼거림에 두 사람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엔지니어는, 귀찮지만 꼭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본인이 꼭 해야 할 일은 아닌 경우 요상한 쪽으로 꾀를 부릴 때가 많았다… 그러니까 지금 같은 상황이 아주 적절한 예시이긴 한데.

“봐, 택배가 잘못 왔어.”

“그거 큰일이네요. 그래서…?”

“내가 생각을 좀 해봤는데, 이걸 택배사에 연락해서 회수를 맡겼다가 다시 배송될 때까지 기다리면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릴 것 같단 말이지.”

“아.”

“거기 주소 봐봐.”

라플라스 데우스 엑스 마키나, 파나세아에게도 익숙한 이름 밑으로 깨알같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제 7 거주구 플러렛가 13번지……. 그는 눈동자를 굴려 글자를 전부 읽어내었고, 이후 엔지니어의 머쓱한 표정을 마주하게 되었다. …어쩐지 약간 불안한 예감이 드는데, 애석하게도 이러한 종류의 예감은 언제나 빗나간 적이 없었다.

“네가 그 근처에 살지 않던가? 왜, 탈리아가는 플러렛가랑 아주 가깝잖아.”

“물론 그렇긴 한데….”

“게다가 지금 퇴근하는 길이고?”

“그것도 맞죠.”

“겸사겸사 부탁할게! 내가 지금 어디로 배달을 갈 처지가 아니야! 쟤들은 간이 콩알만해서 이만한 상자도 맡으려 들질 않을 거라고!”

당사자를 앞에 두고 하기에는 약간 부적절해보이는 앞담이 물 흐르듯 자연스레 지나갔다. 이소타도, 오리아나도, 펀치 볼도 이번만큼은 입을 꼭 다물었다. 물론 라플라스 교수의 정체모를 택배를 떠안게 되는 일도 마뜩찮았으나 그것보다는 귀찮은 일을 맡고 싶지 않다는 본능적인 욕구가 앞선 탓이었다. 동료에게는 약간 미안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들도 평범하다면 평범한 직장인임은 별 수 없는 일이다.

결국, 운명처럼, 택배 상자는 온전히 파나세아의 몫이 되었다.

“정말 고마워! 다음에 식사라도 대접할게!”

“건너편 카페의 밀크티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요. 이번에 가향 홍차 몇 종류가 새로 입고되었다는데, 혹시 드셔보셨어요?”

“물론이지! 난 그 중에서 청포도 향 나는 게 좋더라고. 적당히 달짝지근한 느낌이 난달까, 단 차가 마시고 싶은데 또 그렇게까지 단 게 끌리지 않을 때 마시기 괜찮았어.”

퇴근하는 마당에 일거리를 밀어준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지, 엔지니어는 건물 밖 정문까지 파나세아를 배웅해주었다. 파나세아가 몇 번이나 들어가보셔도 된다고 사양해도 소용이 없었다. 어쩌면 그저 때아닌 우편물 분류에 지친 나머지 남은 일거리는 콩알 간 삼인방에게 맡겨두고 농땡이를 피우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겠지만…….

본부 건물의 현관부터 정문까지는 마차가 다닐 수 있도록 큼지막한 길이 트여 있고, 그 양쪽으로는 소담한 화단이 조성되어 있었다. 사실 도시방위국에 마차가 나타나는 빈도는 현격히 낮았기 때문에 두 사람은 거리낄 것 없이 길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 걸어갔다.

하늘이 높고 날씨가 맑았다. 봄의 끝이자 여름의 시작인 유월, 미지근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날이었다. 어느덧 초록빛 나뭇잎을 주렁주렁 단 정원수에서는 시원한 소리가 났다. 파나세아와 엔지니어는 풋내 나는 꽃향기와 꿀벌, 그리고 나비의 춤 사이를 지나쳐 정문에 도달할 때까지 쉼없이 떠들어댔는데 주제는 주로 신변잡기적인, 그저그런 수다거리였다.

“자, 그럼 난 이만 들어가볼게. 조금만 더 늦게 들어갔다가는 녀석들 입이 새 부리만큼 나와버릴 것 같거든.”

경쾌하게 손을 흔들어보인 엔지니어는 조금 잰 걸음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파나세아는, 여전히 손에 상자를 든 채로 정문 앞에 서서 멀어지는 엔지니어의 등을 쳐다보고 있다가, 이윽고 상자 위에 쓰인 글자로 시선을 옮겼다.

한낮의 쨍한 햇빛 때문일까, 그림자 안에 파묻힌 글씨는 건물 안에 있을 때보다 약간 더 읽기 어려웠다. 파나세아는 다시 한 번 속으로 받는 이의 주소를 되뇌었다. 제 7 거주구 플러렛가 13번지. 파나세아의 집은 같은 제 7 거주구의 탈리아가 28번지였고, 두 집 사이의 거리는 느긋한 걸음으로도 20분이 채 걸리지 않을 만큼 가까웠다. 잘못 배송된 택배를 돌려주기에는 이만한 적임자가 없었으리라.

“오늘은 산책을 조금 더 한다고 생각하면 되니까.”

그럼, 출발해볼까!

가방 안에 상자를 쑤셔 넣은 레녹스가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맡은 바 임무가 있기 때문이었을까, 걸음걸이가 평소보다 힘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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