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는 이유
“고생하셨습니다.”
너덜거리는 몸을 이끌고 돌아온 파트너는 간신히 목소리를 끌어올렸다. 오늘 임무의 난이도는 평소보다 높았지만, 평소보다 쉬웠고,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들었다. 그 이유는 당연히 보스가 임시로 불러들인 그 유명한 ‘전 카포’ 탓이었다.
“저, 엘그비르 씨.”
“왜.”
엘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임무 내내 늙은이 어쩌고 죽어라 저쩌고 끊임없이 투덜거리던 것이 거짓말이라는 듯. 원래대로라면 무시당했을 부름에도 대답하는 것을 보면 그것은 명확했다.
“그… 라텔 씨 말입니다만.”
“그 늙은이?”
“늙… 큼. 흠. 그분은 왜 은퇴하신 겁니까? 오늘 보니까 굉장히 멀쩡해 보이시던데….”
멀쩡하다 못해 아주 날아다녔다. 온종일 지켜본 폭력적이다 못해 파괴적인 장면이 뇌리에 쿡 박혀 오래도록 빠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물론 일이야 편했다. 왜 그가 그렇게 유명한지 몸소 깨달았다고나 할까. 다만 그를 피곤에 절게 만든 것은 라텔이 아니라 엘 쪽이었다.
[나한테까지 맞출 필요 없어.]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뀌던 엘의 사격 타입을, 파트너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평소와 달리… 아니, 그게 평소였겠지. 그것은 서로의 동선이라고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무자비한 세례였다. 그러나 쏘아지는 총알 하나하나는 라텔의 자유를 방해하는 일 없이, 그 어디에도 불필요하게 쓰이지 않고 오직 임무의 완벽한 수행만을 향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비참할 정도였다. 엘의 눈에 자신은 얼마나 하찮게 보였길래 배려 따위를 받고 있었는지.
“아… 그 늙은이. 그냥 슬슬 그만두고 싶어서 그런 거야. 별 이유 없어.”
“예? 저는 큰 부상을 입었다고 들었습니다만.”
“다 개뻥."
파트너가 아연하게 입을 벌리는 사이, 엘은 낄낄 웃어댔다.
“그런데 오늘 보니까 하지 말라고 할 걸 그랬나 싶다?”
“...엘그비르 씨는 말리지 않으셨던 겁니까?”
“오히려 은퇴하라고 부추긴 편이었지."
엘은 손질한 라이플을 옆에 세워두곤 장난치듯 의자를 뒤로 젖혀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았다. 발을 까딱까딱,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언가를 생각하는가 싶더니 천천히 다시 말을 잇는다.
“아무리 적성에 맞는다 쳐도 그놈은 몸을 너무 많이 썼어. 평범한 사람들도 관절이 삐걱거릴 나이인데, 걘 오죽하겠냐?”
아무리 봐도 관절이 삐걱거린다는 소리가 나올 법한 움직임은 아니었으나, 파트너는 조용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일단 ‘라텔’이라는 변수를 뺀다면 맞는 말이긴 했으니.
“어차피 다른 일도 있는데 굳이 이 일을 할 필요가 있느냔 말이지.”
그렇게 말하던 엘은 돌연 한숨을 내쉬었다. 엘이 균형을 깨자 뒷다리만으로 서있던 의자가 바닥에 콱 부딪히며 제 자리를 찾았다.
“나라고 그놈 보내고 싶었겠냐. 너 같은 띨띨이 올 거 뻔히 아는데. 솔직히 그 늙은이만 한 놈이 또 없거든.”
파트너는 비수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엘의 목소리를 들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화가 난다기보다는 오히려 신기할 지경이었다. 목소리 한 번 듣기가 그렇게 힘들다는 엘이 수다를 떨듯 이야기를 늘어놓다니. 잠시 생경함에 사로잡혔던 파트너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물음을 던졌다.
“그러고 보니 아까 그분과 있을 때는 그런 말씀 없으셨잖습니까.”
“음?”
엘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파트너를 쳐다보았다가, 이내 턱을 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 새끼 앞에선 당연히 안 하지. 그놈 기 세워서 좋을 게 뭐가 있냐고. 게다가 요즘 좀 재밌거든.”
어째 답지 않게 질투하는 꼴이.
그렇게 생략된 말을 파트너는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무언가, 라텔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말이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는 엘의 입가에 맺힌 미소를 보며 가만히 생각했다. 지금 엘의 모습을 주인에게만 가시를 세우는 특이한 애완 고슴도치 같다고 하면… 지금 당장 죽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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