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텔엘

일상...?

케이카OC by 케이카
2
0
0

 

 

일개 건달부터 정부에서조차 함부로 손댈 수 없는 마피아까지 온갖 더러운 인간군상이 밀집된 지역이라지만 어차피 그들은 범죄자에 불과했기에 그들이 활동하는 장소의 대부분은 버려진 시가지 따위일 수밖에 없었다. 토박이 수준의 엘은 조금 과장 보태면 눈감고도 길을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였다. 왜 과장을 보태야만 하느냐. 그것은 매일 같이 벌어지는 크고 작은 다툼-이라고 하기엔 조금 귀여운 표현 같기는 하지만- 탓에 하루가 멀다고 장애물이 부서지고 생기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그만큼 그에게 익숙한 장소라는 뜻이다.

엘은 색바랜 콘크리트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린 채 스코프 너머로 건물의 입구를 내다보았다. 아직 개미 새끼 한 마리 지나가지 않았으나 곧 숨어있던 조직원들이 거래를 위해 밖으로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 입구 근처로는 라텔을 필두로 한 기습팀이 산재해 대기 중이었다. 팀이래도 열도 안되는 수였지만, 이런 좁은 곳에서는 많아 봤자 서로 자멸할 뿐이니. 서로 이래저래 잡담이라도 나누는 듯 입을 뻐끔거리던 사람들이 한 명을 빼고 일제히 긴장하는 것이 보였다. 안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진 모양이었다.

 

[준비해.]

“알고 있어.”

 

엘은 귀에서 들리는 라텔의 목소리에 대충 흘리듯 대답하며 입구 바깥으로 밀려 나오는 한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하나, 둘. 조직원들이 빠져나오기 시작하고 이내 마지막 인원까지 모두 모습을 드러내자, 엘은 선두에 선 이의 머리를 곧장 날려버렸다. 소음기를 장착한 총은 조용하기 그지 없었으나 그 총알의 끝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리 먼 곳은 아니지만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도 그들의 소란이 크게 들려왔다. 라텔 쪽 전투원들이 나서기 시작하자 그야말로 개판이 따로 없다.

 

[너 안 나서도 되겠는데?]

 

적들이 생각보다 시시한 실력을 가졌는지 라텔이 처음과 다를 바 없는 평온한 목소리로 말하며 한 사람의 목을 꺾었다. 어후. 엘은 저런 괴물 같은 놈과 같이 사는 자기 처지의 불쌍함을 새삼 깨달았다. 라텔이 알면 기함을 토할 생각이라는 것은 당연하고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면 먼저 간다?”

[그걸 말이라고-]

[-근처에 스나이퍼 쪽 콤비가 하나 더 있을 거다! 찾아!]

 

순간 라텔과 연결된 무전 너머로 흐릿하게 들려온 목소리를 들은 엘은 자연스럽게 방아쇠를 당겼다. 그것은 마치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은 행동이었다. 엘은 이를 바득 갈았다. 콤비? 콤비라고?

 

“그 머저리한테 가만 안 두겠다고 전해.”

[전할 사람을 냅두고나 말하지 그러냐.]

 

라텔은 방금까지만 해도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치던 남자가 침묵한 채 바닥에 널ㅂ,러진 것을 보고는 어이없다는 듯 대답했다. 엘은 라텔에게 괴물이다 뭐다 비웃듯 놀리고는 했지만 좁은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난전 속에서 움직이는 목표의 이마를 정확히 꿰뚫는 솜씨는 사돈 남 말할 때가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조직 모두가 인정하는 파트너이건만 정작 서로만이 인정하지 못하는 콤비 중 한 명인 엘은 그러고도 분이 안 풀리는지 이미 죽은 이가 다시 일어나기라도 하는 양 찢어진 눈을 매섭게 치켜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엘은 뒤에서 신발이 쓸리는 소리를 들었다. 미세한 음량이었으나 신경을 곤두세운 그가 못 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엘은 아무렇지 않게 그 자리에 가만히 엎드려있다가, 몸 위로 그림자가 지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옆으로 몸을 굴렸다. 총을 안고 구른 탓에 방아쇠가 잘못 눌려버린 것은 뒤에서 습격한 남자가 휘두른 철봉이 바닥에 부딪힌 것과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

 

라텔은 난데없이 자신의 뒤편에 내리꽂힌 총알에 금이 간 바닥을 돌아보았다. 다리 쪽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간 것이 천운이었다. 조금만 더 삐끗했다면… 라텔은 옆에서 덤벼드는 적의 턱을 후려쳐 기절시키며 소리쳤다.

 

[이건 좀 너무하지 않냐? 죽이려면 임무 끝나고 해!]

“나 아냐, 새꺄!”

 

물론 방아쇠를 당긴 손가락은 엘의 것이지만 그렇게 된 이유는 갑자기 공격해 온 적의 탓이었으므로 엘은 억울했다. 엘은 곧장 몸을 일으켜 허벅지 포켓에 넣어두었던 권총을 꺼내 들곤 상대의 가슴팍을 쐈다. 쏟아지는 피 분수를 뒤집어쓴 엘은 더더욱 기분이 나빠져 결국-

 

“이게 다 늙은이 니 탓이다!”

 

-라는 괴상하고도 일상적인 결론을 내리고야 말았다.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