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오게 하는 방법
전혀 곱게 다루어 주지 않으리라는 주인의 의지 표명이 확실한 상처투성이의 스마트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방바닥 한가득 분해된 총기의 부품들이 널려있었고, 그 사이에서 답지 않게 느린 손길로 부품을 닦던 엘의 눈이 한순간 날카로워졌으나 곧 누그러졌다. 오랜만에 얻은 휴가니 건드리지 말라 통보한 상태에서 연락을 해오는 간 큰 녀석은 없었고, 정말 급했다면 전화가 왔을 테고. 결론은 보스나 라텔, 둘 중 하나라는 소리다.
어라, 이것도 좀 이상한데. 두 사람은 분명 중요한 파티에 나갔더랜다. 사람들 상대나 하고 있어야 할 사람들이 한가하게 메시지나 보낸다? …음, 말이 되는 군. 엘은 용의자를 둘에서 하나로 줄였다. 분명 얼마 못 가 지겨워진 라텔이 보낸 것이 분명했다.
‘거 봐라.’
집에 가고 싶다며 덜렁 떠 있는 말풍선을. 엘은 한심하다는 눈으로 혀를 찼다. 경력이야 그렇다 쳐도 서류를 작성하자면 결국 솔다토의 신분이라 그런 중요한 자리에는 갈 수 없다며 열심히 파티에서 빠진 엘이 그럴 주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잠시 화면을 켜기 위해 집어 들었던 폰을 내려놓고, 엘은 지금까지 밍기적거리던 속도가 거짓이었다는 양 순식간에 총기 조립을 마쳤다. 깔끔해진 총을 만족스레 감상하고, 손 안에서 굴려대며 잠깐의 고민에 빠졌다 .이걸 무시 해? 말아? 이리저리 돌아가는 총이 도드라진 손마디에 부딪히는 소리가 울리기를 몇 번. 엘은 폰을 들고 거실로 나가 소파에 털썩 누웠다.
[튀든가]
엘은 지극히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해주었다. 다 죽이고 나오라는 말은 안했으니 이 얼마나 평화적인 해답이란 말인가. 무릎을 세워 다리까지 꼬곤 태평하게 발가락을 까딱이며 답을 기다렸다. 기다렸다, 라고 말할 것 까지 없이 금세 답장이 오긴 했지만.
[야 집에 사고 하나만 쳐봐]
“오…”
이거 진심인가. 감당 돼? 그야 진심일리는 없겠고 파티에 빠지고 싶다는 강렬한 마음을 표현한 거겠지만, 이런 걸 놓치는 엘이 아니었다. 너 진짜 잘못 걸렸어. 엘은 칠이 잔뜩 벗겨진 폰의 모서리로 제 턱을 톡톡 두드리며 고민하다가 이내 다시 화면을 켰다.
[ㅇㅋ 불지르러감]
그 답 직후, 엘은 미련없이 자리에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폰을 소파 구석에 던져놓고, 곧 징징 울리기 시작한 진동을 무시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엘은 가스레인지를 켜고, 프라이팬을 얹어 버터를 휘적휘적 녹이기 시작했다. 헐렁한 옷소매까지 걷어부치고, 비장하게 팝콘 옥수수를 꺼내어 프라이팬에 털어넣었다. 빨리 오지 않으면 탄 팝콘을 먹게 될테니 급하게 와야 할테다. 엘은 키득 웃었다. 파티에서 빠져나오게 해줬으니 무서운 영화나 한 편 사달라고 해야지.
그리고 몇 시간 후, 말 그대로의 ‘무서운 영화’를 산 라텔과 뭐 이딴 영화를 보여주냐며 싸우기 시작한 엘이 정말로 집을 불태워버릴 뻔한 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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