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ISIUM

Mission 4

834194 by 경위

혁명의 끝이 아른아른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들 이십 여 년을 살아가던 방식은 한낱 인간이 쉽게 뿌리칠 수 없는 것이라, 라리에나는 그 어떤 때보다 명징한 동시에 벼락처럼 혼란해했다. 그는 죗값을 치러야 해. 누군가는 이 굴레에 대한 책임을 영원히 끌어안은 채 한 시대를 풍미하는 사물이 되어서, 모든 사람의 저주와 악몽을 담는 매개체가 되어서, 계속해서 살아가야 해. 그렇게 만들어야 해. 간혹 케일럽을 붙잡고 주절거리는 말들은 사람이 한다기보다 원혼이 만들어가는 말 같았다. 케일럽은 그를 섣불리 위로하기보다 그가 해야 할 일들을 직시하게 하곤 했다. 다만 해야 할 일이 해묵은 과거의 상징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의 논의가 된다면 그마저도 할 수 없었다.

흰색 옷을 입은 노인은 어느 순간 시들어버린 것처럼 작은 모니터 안을 겨우 채우고 있었다. 주노 아이리스의 외침과 칼리오페 안젤로의 담담한 제안 이후 침묵이 뒤덮일 때, 케일럽 윈터는 자신이 태어나고 살아온 구역을 떠올리고 있었다. 각자 생각할 시간을 가지고자 회의실에서 나가서 뿔뿔이 흩어지는 동안, 회의의 결과를 기다리던 몇 혁명군들이 쿼터 특집의 생존자들에게 하나 둘 시선을 주었다. 그들 또한 바라 마지않는 결과가 있을 것이나 타인이 알아낼 수 있는 생각은 아니리라.

케일럽은 방으로 돌아가는 대신 회의장에 남아 물끄러미 모니터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노가 쭈뼛거리는 동안 칼리오페가 남은 서류들을 정리하여 그에게 맡겼다. 어느덧 빈 손이 된 혁명군의 수장은 게임메이커를 먼저 내보내고 케일럽의 옆에 섰다.

“신기한 것을 보듯 하는군.”

“예. 실감이 잘 나지 않아서요.”

“우리들의 노력이 바라마지않던 결말로 치닫고 있는 것이? 그도 아니면 포르티아 나인이라는 자가 이렇게 붙잡히게 된 것이?”

같은 말을 다르게 표현했을 뿐인데도 그건 어쩐지 아주 다르게 들렸다. 케일럽은 둘 다요, 하고 대답했다. 칼리오페는 생각을 가다듬듯 나지막하게 목을 울렸다.

“8구역, 특히 네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단원들은 꾸준히 포르티아 나인에 대해 사형이 아닌 처벌을 선택할 것을 요구했다. 살아서 죗값을 짊어져야 한다는 말에는 나도 동의해. 다만 처벌이 정해지고 난 다음을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채 빠지지 않은 녹슨 못처럼 껄끄러운 기분이 들어.”

“안젤로 씨께서도 알고 계셨군요. 그들의 동력을.”

“비단 이 곳에서 라리에나 샌드만이 그러하겠나.”

그건 라리에나나 그와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몇 단원들, 그리고 케일럽 윈터의 사정이 별반 특별하지 않다는 말과도 상통했으므로 케일럽은 이어지는 고민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모니터 속 포르티아 나인은 주노의 외침까지 들어낼 것처럼 보였던 조금 전과 달리, 다시금 모든 힘과 열정을 잃은 한낱 노인에 지나지 않았다. 만약 그가 계속해서 살아 있다면요. 케일럽 윈터가 입을 뗐다. 그가 살아 있다면…….

“…분명 책장을 넘기지 못할 이들이 생겨날 겁니다. 그를 보며 과거를 떠올리고, 적법한 형벌이 이행되고 있는지 확인하면서. 영영 묶여 있을 거예요.”

“지극히 사적인 일에 바탕을 둔 것처럼 들리는데.”

“이게 제 최선이니까요.”

칼리오페는 별달리 말을 얹지 않고 회의실의 끝으로 걸어나갔다. 단방향의 시야만이 허락되는 유리 너머로 13구역의 정경이 보였다. 케일럽도 그를 따라 함께 눈을 돌렸다. 쉼 없이 오르락거리는 엘레베이터, 콘솔과 스크린을 붙잡고 빠른 논의를 하며 지나가는 캐피톨과 구역 출신의 사람들, 의자에 앉아 전쟁의 종식을 예고하는 라디오를 듣는 아이들…….

“윈터, 네가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복수심에는 마침표가 찍히지 않아.”

“그렇겠죠. 저는 그들의 괴로움을 영영 모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과는 달리 미래를 바랄 줄 알지.”

케일럽은 그에 긍정하는 대신 미약한 웃음을 내어 보였다. 유리창에 비추어진 청년의 얼굴은 언제나 그랬듯 무덤덤하고 어설픈 모습이었다. 칼리오페는 가만히 보다가 네 의견을 존중하겠다며 그가 행사한 표가 받아들여졌음을 알렸다. 케일럽은 꾸벅 인사하고 회의실을 떠나려고 했다. 칼리오페가 문득 질문을 건넨 것은 문이 막 열리기 전이었다.

“고향에 가 봐. 이번 안건과는 별개로, 한 번은 들러야 하지 않겠어.”

혈육의 소식이 궁금하지 않나? 느릿하게 덧붙여진 말에 케일럽은 그저 선선히 고개를 저었다.

“이 곳에서의 일이 마무리된다면요.”

“그래…….”

회의장의 문이 닫히고, 칼리오페 안젤로는 혼자 남아 모니터를 바라보다가 버튼을 눌러 꺼 버렸다.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