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빛이 되고 싶습니다"

그대들과 함께한 지도 어느덧 수백 년이 되었습니다. 제가 무엇인지조차 잊은 채 모래 위에서 깨어난 뒤, 그대들의 보살핌 덕에 제 앞가림 정도는 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습니다. 그대들은 저를 빛이라 명명하였고, 그대들의 말에 따라 저는 빛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허나 빛이라는 것은 너무도 추상적이고 모호한 존재인지라, 그대들이 명명한 빛과 제가 되고자 하는 빛이 서로 다른 색을 보일까 다소 두렵습니다. 그대들은 저를 어떤 빛으로 보고 있는지요? 빛은 세상을 밝게 비추지만 때로는 붉게 물들여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대항할 수 없는 시간에 의해 스러지고 어둠에 잠식되기도 하지요. 아마 그대들은 저에게 세상에 도움이 되라는 의미에서 빛이라 하였을 것입니다. 허나 저는 두렵습니다. 혹여 그대들의 기대에 반하며 세상을 붉게 물들일까, 버티지 못하고 어둠을 등진 채 도망할까 두렵습니다. 또는 다른 빛들을 묻히게 하여 저만이 유일하게 빛나는 행세를 할까 우려됩니다. 그대들에게 이러한 제 걱정을 꺼낸다면, 그대들은 분명 여느 때와 같이 웃으며 그저 어린아이의 헛된 공포로 여기겠지요. 불필요한 고민이라고 함축하며 저를 어리게 볼 것입니다. 

저와 그대들이 살아온 세월이 다르다고는 하나, 저 또한 어엿한 신이며 인간들을 보살피는 존재입니다. 인간들이 의존하고 숭배하는 대상입니다. 그런 저는 그대들에게 있어 어린 개체에 불과할지 모르나, 실제의 저는 필멸자의 입장에서 까마득한 세월을 살아온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확실히 그대들의 온건하고도 굳건한 사상과는 달리 저의 사상은 쉽게 흔들리고 불타버리는 잡초와 다를 바 없습니다. 저 또한 이를 인지하고 있고, 그대들과의 차이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저는 미성숙하며 불완전합니다. 

허나 그대들, 그대들도 까마득히 오래전에는 저와 같은 고민을 하였을 것입니다. 제가 세상에 끼칠 수 있는 영향이 아무리 적어도, 그 적은 영향조차 세상에 해가 될까 두렵고, 상상만으로 목을 옥죄이는 듯한 감정을요. 분명 그대들도 같은 시절을 보냈을 것입니다. 허니 저의 두려움과 공포를 헛되이 취급하지 마시고, 곧 동등한 위치에 설 개체의 걱정으로 받아들여 주십시오. 어린 인간 아이들이 실존하지 않는 존재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가벼이 여기지 마시고, 세상에 조금이라도 선한 존재로 남고 싶은 자의 소망이라고, 어둠이 되어 모든 것을 어그러트리지 않고자 하는 자의 성장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저는 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대들이 바란 것과 같은 세상의 부품이 되고 싶습니다. 모래알을 하나하나 보드랍게 어루만지고, 아름다운 도시에 가득했던 어둠을 몰아내며, 사막의 생물들에게 따스함과 생의 의지를 전하는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그대들과 같이 어떤 고난에도 곤란해하지 않고 웃으며 대처하는, 곤경에 처한 존재들이 안전한 길에 도달하도록 돕는, 그러한 신이 되고 싶습니다. 

허니 그대들이여, 그대들이 저를 어리게 보고 감싸고자 하는 것은 다소 합당하지 못한 처사입니다. 이성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제가 잘못을 한다면 그대들은 저를 벌하는 것이 마땅하고, 제가 평화의 유지에 도움이 된다면 그대들은 이를 당연히 여기며 칭찬하지 않음이 마땅합니다. 빛이 존재함은 당연한 순리이나 빛이 사라지는 것은 잘못된 일이지 않습니까? 저의 이름이 빛이라면, 저의 존재가 빛이라면, 제가 짊어지고 있는 의무는 당연한 것이 되며, 제가 누리고자 하는 권리는 당연하지 않은 것이어야 합니다. 그대들이 저를 빛으로 정의하였으니 마땅히 빛에 걸맞은 대우를 해야 합니다. 저는 그대들에게 있어 보살펴야 하는 대상이 아니고, 마냥 보호해야만 하는 어린 것이 아닙니다. 아직은 미성숙하고 서툴 수도 있으나, 그대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빛으로 존재할 신입니다. 부디 이런 저의 고민과 성찰을 온전한 것으로 받아들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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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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