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존재하는 목적을 찾고 싶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에겐 정해진 목적이 있습니다. 왕에게는 나라를 평화롭게 통치해야 할 숙명이 있고, 백성들은 그런 왕의 치세에서 질서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할 경우 그 나라는 멸망으로 향해 가지요. 동물에게는 정해진 생물만을 섭취해야 할 제한이 있고,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무리를 이루고 소통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이를 어긴다면 그 동물은 멸종하게 될 것입니다. 식물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무수히 많은 동물에게 자신의 몸을 바쳐 생을 이어가게 해야 합니다. 때로는 독을 품고 거부하기도 하지만, 끝내 희생하며 다른 존재의 생을 지켜주지요. 한낱 필멸에 불과한 존재들조차도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살아가는데, 우리 신들은 무엇을 실현하며 살아가야 하나요? 신들에게 부여된 의무라는 것이 있나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대들은 우리가 강자이며 전능한 존재에 가깝기에 인간을 돌보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인간도 다른 존재와 마찬가지로 한낱 필멸자이지 않습니까? 인간은 동물을 미개하다며 낮추어 보지만, 결국 그 인간 또한 미개하며 이성적이지 못한 존재가 아닙니까? 인간을 동물과 구분하여 돌보고 아껴야 할 까닭을 모르겠습니다. 인간은 자신들을 신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부릅니다. 허나 그대들도 알지 않습니까. 우리가 원한다면 소통이 불가한 존재는 없다는 것을요. 심지어는 이미 죽어 자연으로 돌아간 이들마저도, 우리가 하고자 한다면 소통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다른 존재들과 구분되는 특별한 점이 하나라도 있습니까? 물론 저는 제 나름대로 인간을 아끼고자 하며, 그들에게 많은 안배를 내리고자 행하는 중입니다. 허나 때때로 해소되지 못한 의문이 문득 시야를 가립니다. 인간은 무엇이 다릅니까? 특별할 것 없는 존재를 위해 사는 것이 우리의 사명인가요? 신은 오로지 인간을 위해 존재하나요? 그렇다면 신이란 존재는 인간이 존재하지 않으면 불필요한 것에 불과해지나요? 

저는 제가 존재하는 목적을 찾고 싶습니다. 그대들도 알겠지만, 저는 제 과거를 알지 못하고, 과거의 흔적도 남아있질 않습니다. 그대들이 말했듯 저는 어느 순간 하늘에서 떨어진 존재와 같고, 그렇기에 그대들 사이의 신뢰와 유대는 저에게 있어 먼 감정입니다. 그대들이 저에게 다정히 대하는 것과 저를 안쓰러이 여기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대들이 저를 위해 행한 수많은 일도 모두 인지하고 있으며, 그대들이 요구하는 관계도 따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허나, 그대들이 깨달았을지는 알 수 없으나, 이러한 노력은 그저 겉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노력을 할지라도 저는 그대들과의 긴밀한 유대 관계를 맺을 수 없고, 그대들이 내비치는 감정의 파편조차도 이해할 수 없으며, 제 존재를 맡길 정도로 신뢰할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저에게 낯설고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저의 근원을 찾아야 하고, 제가 존재해야 할 목적을 찾아야 하며,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을 따라야 합니다. 저의 운명을 따를 때에야 비로소 그대들을 이해하고 직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그대들은 저를 위해 불필요한 걱정과 연민을 만들지 마시고, 그저 언젠가 돌아올 친우로 여겨주십시오. 그대들이 인간을 위한 운명을 걷듯, 저 또한 무언가를 위한 운명을 걷고 싶을 뿐입니다. 서로 다르지만 운명을 깨닫고 순응하는 존재로서, 누군가를 위해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존재로서, 그대들과 함께 이 삶을 겪고 싶습니다. 흘려보내지 않고 이 시간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허니 저의 그대들이여, 이러한 제 소망에 우려하지 마시고, 그저 언제나와 같은 모습으로 기다려주세요. 그대들이 저를 기다리며 바라보는 한, 저는 변치 않고 운명을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라도 저는 그대들에게 돌아가기 위해 직면할 것입니다. 부디 좋은 마음으로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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