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ISIUM

이벤트 2-2

834194 by 경위

“…그럼 이만하여 이번 계획에 대한 사전 브리핑을 마치지요. 기간도 촉박하거니와, 계획으로서는 다분히 단순하고 간단하니까요. 개인의 임기응변과 행운에 기대는 꼴이 되겠습니다만 우리는 이미 불운으로 자욱한 새벽녘을 뚫고 나온 자들이 아닙니까?”

라리에나가 의무병의 군장으로 둔갑한 각종 도청 장치와 카메라, 통신기 따위를 마구 쑤셔 넣고 있을 때 맞은편에 앉은 사람은 웃고 있었다. 드물다 못해 존재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광경을 목도하면, 사람은 허탈하든 우습든 간에 실실 웃음이 나기 마련이다. 목제 의자에 거꾸로 앉아 등받이에 턱을 기댄 채로 실실거리던 혁명군은 결국 입 밖으로 생각을 꺼내고야 말았다.

“윈터와 샌드가 쥐약을 제대로 먹었군?”

“닥쳐.”

“오, 나나 오크통 오두막 사람들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던 라리에나 샌드가! 역시 티토 칼리하우어 정도의 괴짜는 되어야 진지하게 고려해준다는 거였을까? 캐피톨의 온갖 악한들도 울고 가겠네.”

라리에나는 옆에 놓여 있던 무언가를 붙잡아 자신의 친구이자 동료라 자칭하는 상대의 얼굴로 내던졌다. 멋지게 이마를 가격하기 전 손으로 받아낸 물건은 어떤 기계의 설계도를 어설프게 따라 그린 스케치 뭉텅이였다. 상대가 깔깔 웃으며 종이를 한 장씩 넘겼다. 라리에나는 날카로운 짜증과 미지근한 분노가 뒤섞이는 것을 느끼며 그 종이를 그려낼 때의 혼란을 떠올렸다. 포로들의 소재지와 인원수가 파악된 것은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13구역이 처한 여러 가지 요건들은 구출을 우선하기 힘들게 했다. 75회 헝거 게임이 ‘일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후, 여타 우선되는 계획에도 인원이 충원된 지금에서야 겨우 안건을 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만 포로들의 이송지가 베일 속에 싸여 있다는 점에서 캐피톨의 간섭이 느껴졌고, 라리에나의 의지는 꺾이기 직전이었다. 티토 칼리하우어가 손을 들어주기 전까지는.

“이봐, 라리에나. 좋은 건 좋게 생각해. 계획 자체가 네가 원하는 대로 진행되고 있음에 감사하라고. 도로 한가운데에서 군용 트레일러를 ‘하이재킹’ 한다는 괴상한 선택지는 티토 칼리하우어가 아니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렇게 꼬치꼬치 짚어 말하지 않아도 알아. 그 사람의 관심이 불쾌할 뿐이라고 했잖아.”

“하지만 네가 케일럽에게 과하게 모질었다는 건 사실이기도 하지.”

“...트집만 잡을 거라면 나가. 두 시간 후에는 2구역으로 향하는 수송기를 타야 해.”

“그러지 말고 좀. 슬슬 진정한 보호자가 되어 봐.”

라리에나 샌드에게 그따위 조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었다. 오랜 친구, 혹은 둘도 없을 괴짜! 불쾌한 참견과 그리 불쾌하지 않았던 포옹이 다시금 떠오르면 짜증이 치솟았다. 라리에나는 말동무를 자처하던 ‘친구’ 에게 축객령을 내렸고 그는 냉큼 꽁무니를 뺐다.


소형 호버크래프트 두어 채가 거대한 운반차에 실려 차고로 진입하고 있었다. 날개 안쪽에 달린 프로펠러가 반파된 채라 완전히 들것에 들려가는 부상병의 꼴이었다. 시끄러운 활주로 옆으로 트레일러 여러 대가 숨바쁘게 지나가는 가운데, 형광 조끼를 껴입은 평화유지군 이등병 하나가 교대 인원과 자리를 맞바꾸었다. 그는 곧바로 기지 내부로 돌아가는 대신 무언가를 큰 목소리로 캐물었다. 거대한 진동과 소음 사이에서 정비공이 막 도착했다는 내용이 전달되었다. 이등병은 고개를 끄덕이고 교대자의 어깨를 어설프게 두들겼다. 교대자는 이상하다는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상대를 훑어보았으나, 헬멧 아래로 보이는 흉터 묻은 단단한 턱이나 한쪽 팔의 깁스를 감안하여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이등병은 시선으로 일별하고 조끼를 벗어 팔에 걸쳤다. 트레일러의 꽁무니를 따라 차고로 들어간 그는 안을 확인한 다음, 묵직한 철제문을 밀어 닫았다. 어두컴컴한 침묵이 몇 초 지속되기도 전에 벽에 매달린 간이등이 반짝 켜졌다. “빛이 있으라.” “…….” “이런, 유명한 문장이라고요?” 실없는 웃음을 매달고 스패너를 집어 드는 정비공을 보며 이등병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손목의 버클을 꽉 채운 헐렁하고 낡은 수트와 허리춤에 맨 각종 공구. 정비공의 탈을 쓴 티토 칼리하우어는 다른 어떤 때보다 익숙한 자리에 심어진 것처럼 보였다. 정작 망가진 무언가를 실제로 고치기보다는 멀쩡한 벽을 뜯어내어 13구역에만 필요한 기능을 덧바르는 일이 주가 되었지만서도 그는 꽤 즐거운 기색이었다. 이등병은 트레일러의 뒷문을 열어 크기를 확인한 다음 조수석 문을 열어 올라탔다.

“트레일러의 자율주행 기능 쪽은요?”

“캐피톨이 허용하는 능동성이라봐야 거기서 거기라서요. 회로 한두 개만 끊어두면 도로 고철 더미가 된답니다.”

“티토 씨의 판단이 그렇다면야 믿겠습니다.”

“아무렴요. 그런데 괜찮겠어요?”

이등병은 정확히 무엇을 묻는 말인지 모르겠다는 뜻을 무언으로 나타낸다. 그는 오버헤드 콘솔이나 글로브박스 따위를 한 번씩 열어젖혔다가 조수석에서 내릴 때까지 입을 다문 채였고, 티토는 우스운 기시감을 느끼며 킬킬댄다. 헬멧을 벗은 이등병, 케일럽 윈터는 티토 앞으로 걸어오며 이어지지 않는 부연에 고개를 기울인다.

“무엇이 말입니까?”

“케일럽 씨, 실탄이 허용된 외출은 이번이 처음이지요.”

그제야 의도를 알아낸 케일럽은 티토의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먼 산을 보듯 눈을 올린다. 철제 계단으로 연결된 차고의 위쪽은 평화유지군 기지로 통하는 문이 달려 있었다. 위험이 없다고 판단할 때까지 답하지 않던 그는 질린 기색을 띄웠다.

“이 또한 주시는 염려입니까, 또 다른 흥미입니까?”

“둘 다라고 칠까요? 둘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기술 자문 겸 설계자로서의 확인 절차라고 하죠.”

케일럽은 대답하지 않고 자유로운 한 손을 펼친다. 가타부타 따지고 대답하는 대신 필요한 것만 요구하는 것이 칼리하우어를 상대하는 새로운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애초에 누구를 염려하여 질문하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이거야 원, 다 큰 청년을 완전히 토라지게 만들었다는 짧은 소감과 함께 티토는 준비했던 것을 얹어 주었다. 작은 도청 장치는 조금 전 도착한 한 장교의 가방 안에서 떼어낸 것이었다. 포로 탈취 작전이 승인된 이상 이것이 아마도 갖춰야 할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되리라. 갈까요? 그럽시다. 그들은 약 5분가량의 차이를 두고 차고를 떠났다.


평화유지군 본부의 뒤뜰에는 큼지막한 군용 텐트가 수십 채 펼쳐져 있었다. 기실 제대로 된 혁명의 불길은 각 구역에서 세기를 키우고 있었으므로 중앙까지는 채 닿지 않았다. 아직 텅 빈 텐트가 많다는 뜻이기도, 캐피톨이 이번 ‘반동분자들의 이례적인 움직임’ 을 전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니 야심한 밤, 그 사이를 걸어 다닐 수 있는 자는 의무병이거나 부상병이거나 둘 중 하나여야만 했다. 흰 마스크를 쓴 의무병 하나가 손전등을 몇 번 두드려 앞을 밝혔다. 조금 뒤, 화답하듯 텐트 중 하나에서 옅은 빛이 비추어졌다. 주변을 확인한 다음 서둘러 텐트로 들어선 의무병은 마스크를 내렸다.

간이침대에 앉아 펼쳐진 지도를 확인하던 이들 중 하나가 인기척에 일어섰다. 여전히 상체와 팔에 붕대를 둘둘 만 채인 케일럽 윈터가 반가운 투로 말을 꺼내기 전, 의무병은 빠르게 본론을 꺼냈다. 함정 탐지와 암호 해체를 겸하는 손바닥만한 기계를 꺼내 재생 버튼을 누른 것이다. 1구역과 2구역, 4구역의 기지가 차례로 홀로그램으로 떠올라 세 바퀴를 돌며 천천히 확대되었다. 붙잡힌 포로들이 주로 억류되는 지하 감옥과 탈출로가 붉은 선으로 표시되는 것은 덤이다. 의무병, 라리에나 샌드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정보를 덧붙였다.

“포로 이송이 가까워지면 어디선가에는 이송지에 대한 정보가 흘러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조용하더군요. 이번 건을 아예 함정으로 두고 있는 게 확실하죠. 그러니 우리는 변경 없이 첫 번째 계획으로 진행합니다.”

“2구역의 상황은 어떠하던가요, 샌드 씨?”

일말의 효용도 없는 얼음팩을 팔꿈치에 붙이고 있던 티토가 냉큼 물었다. 라리에나는 좋지 않은 기억이 다시 스멀스멀 기어 나오려는 것을 참아내고 대꾸했다.

“칼리하우어의 예상대로 억류된 포로의 숫자가 가장 적었어요. 단순히 병력으로 차출되는 인원이 여타 구역보다 많은 탓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글쎄요, 여전히 감옥으로 향하는 경계는 삼엄하던걸요.”

“...결국 목적지는 2구역과 캐피톨, 둘 중의 하나입니까.”

“그래. 그러니까...”

차분함을 되돌린 케일럽을 바라보며 라리에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가 맡아 기른 아이는 가끔 놀라울 정도로 순응이 빨랐다. 본래도 좋은 눈치와 본능적인 감각을 감안하면 저것은 주변의 상황을 우선하고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다. 잠깐의 침묵 사이에서 녹색 눈만이 번쩍였다. 라리에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도청기는 회수했고?”

이윽고 라리에나에게 도착한 작은 칩이 콘솔에 끼워 넣어지자 캐피톨 장교와 부관의 나지막한 대화가 시작되었다. 이번 포로 이송 자체를 하나의 함정으로 기능하게끔 정보를 통제했다는 내용은 예상대로였으며, 1구역과 4구역에서 출발하는 이송 대열이 중간 길목에서 합류하게끔 하라는 지시 또한 그들이 상정한 계획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이송 중의 습격에 대한 위험성을 저평가했는지 무장 강도가 낮다는 점이었다. 라리에나는 칩을 꺼내 손끝으로 가볍게 비벼 파기한 다음 마스크를 올려 썼다.

“1구역에 잠입한 단원 몇에게 협조를 구해뒀어요. 작전 당일에는 그들과 발을 맞추어 움직입니다. 우리 셋은 동이 트기 전 트레일러를 운반해서 4구역에 진입할 거예요.”

티토는 늘 그렇듯 선선한 투로 긍정했고 케일럽은 고개를 끄덕였다. 라리에나는 양순히 앉아 집중하는 케일럽을 착잡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당신, 케일럽 씨를 아직도 용서하지 못했잖아요?’ 하지만 내가 어떻게 그 아이를 용서할 수 있겠어요?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말이 이렇다. 라리에나 샌드, 분노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우승자의 삶이란! 그건 판엠에 의해 연신 깎여나가는 영혼을 주워 담으며 평생을 살아내는 일이었다. 케일럽은 그의 곁에서 살아가는 짧은 평생 내도록, 슬퍼하지 않고 괴로워하지 않는 라리에나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라리에나 샌드는 자신의 아이가 어떻게 그 어린 혁명가의 슬픔과 괴로움을 진창으로 처박을 수 있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라리에나는 케일럽에게 한동안 멍한 눈빛을 보내다가, 티토의 시선을 느끼고 짜증스럽게 몸을 돌렸다.

“둘 다 조금 자둬요.”


사실대로 말하자면 케일럽 윈터와 라리에나 샌드는 제대로 된 대화를 해본 적이 없었다. 적어도 말랑말랑했던 두개골이 단단해지고 길러진 품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선택과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 이후로는. 케일럽은 타고나기를 말이 없었고, 라리에나는 말을 많이 해서 좋은 꼴을 본 적이 없었으므로 그들은 일종의 제스쳐와 눈빛으로 모든 것을 이루어냈다. 모든 것이 어긋난 지금까지도 이루어낼 수 있다고 믿고 있을지도, 다만 회피하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티토 칼리하우어가 어떤 이유로든 그들에게 어떤 타고난 기질을 발휘하는 순간 밀폐되어 있던 상자의 뚜껑은 열리고 모든 일은 급격히 가속화된다….

“상상했던 모습보다는 한결 낫지 않습니까?”

무엇인지 묻는 대신 케일럽은 조수석에 앉은 티토를 바라보았다. 지난한 무언가를 보는 듯한 시선에 티토는 이 모든 것이요, 하고 부연했고 케일럽은 또다시 대답을 내놓아야만 했다. 그렇네요. 티토는 소리내어 몇 번 웃고는 사이드 미러를 바라보았다. 험비 한 대가 그들의 뒤를 바싹 따라붙고 있었다. 둘은 또 다른 험비의 운전석에 앉아 있었고, 4구역 포로들을 실은 트레일러를 따라 통제된 도로를 달리는 중이었다. 트럭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작은 화물칸에는 물론, 라리에나가 타고 있었고.

시작부터 기묘했던 3인이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단순했다. 1구역에서 출발한 트레일러와 합류하여 대열을 점검하는 순간 연막탄과 최루탄을 터뜨려 혼란을 가하고, 그 사이 트레일러를 운전해 3구역까지 빠져나간다는 계획이 그들이 가진 전부였다. 그럼에도 티토가 말한 대로, 상상했던 것보다 나쁘지만은 않았다. 불안을 더는 가장 큰 요소는 그들이 산탄총이나 기관총 따위를 쓰지 않기로 했다는 점이었고, 그 다음은 4구역의 기저 곳곳에 심어진 혁명군과 그의 협력자들이 그들의 이송 작전에 작게나마 도움을 주었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타이어에 손상이 가지 않은 험비를 운전병과 정비공의 신분으로 운전할 수 있었고 간단한 무장 역시 허용받았다.

그러니 가까워진 1차 목적지까지 도달할 때까지는 간단한 사담을 할 여유가 있었다. 케일럽은 운전대를 느릿하게 회전시켜 대열을 따라가며 물었다.

“라리에나와 무슨 대화를 하셨습니까?”

“대화라 하시면?”

“넘어가려 하실 때의 목소리는 이미 압니다.”

“하하.”

“상상했던 것보다 그녀가…….”

“당신에게 수용적인가요?”

케일럽이 떠올린 표현은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다, 쪽에 가까웠으나 얼추 어울렸으므로 굳이 고쳐 말하지 않았다. 티토는 시선을 옆으로 하다가 다시 도로를 바라보며 태연하게 답했다.

“저는 샌드 씨가 잠시 잊고 있던 것을 상기시켜주었을 뿐이랍니다.”

“신뢰하기 어렵습니다만.”

“오, 케일럽 씨의 판단과는 달리 그것이 진실인걸요.”

티토의 목소리가 이전보다 나긋하게 들린다고 생각하는 순간, 화물칸과 통하는 창이 벌컥 열렸다. “잠깐, 케이브. 차를 멈춰!” 그 순간 눈앞에서 굉음이 들렸다. 앞에서 날아온 무언가가 트레일러의 차창을 꿰뚫었는지 유리 파편이 날렸고, 좌우로 흔들리던 트레일러가 옆으로 쓰러졌다. 케일럽은 뒤늦은 브레이크를 밟는 대신 핸들을 단숨에 꺾었고, 가드레일에 범퍼가 처박혔다. 뒤따라오던 또 다른 험비가 트레일러에 그대로 들이박는 광경이 백미러로 비친 순간 에어백이 터졌고 그것이 의식의 마지막이었다.

케일럽은 뻐근한 목덜미를 붙잡으며 숨을 들이켰다. 뻑뻑한 시야가 온통 회백색인 가운데, 조금 떨어진 곳에서부터 연신 격발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숨이 다 빠진 에어백을 손으로 휘저어 치운 다음에는 곧장 곁에 앉아 있던 이를 찾았다. 티토 칼리하우어 역시 에어백의 충격에 정신을 잃은 와중이었다. 목과 코 아래에 손을 대어 보자 숨은 케일럽은 으깨진 차문을 열어젖혔다. 사위가 온통 연기로 자욱했다.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 든 채 케일럽이 화물칸을 두들겼다. 가늘게 앓는 소리가 들려와 그는 주저않고 뒷문을 열었다. 라리에나가 피가 흐르는 머리를 붙잡고 안전띠를 잘라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라리에나가 빠르게 속삭였다. 칼리하우어는? 괜찮아. 의식이 있어. 안도의 숨을 내쉰 후 그는 말을 이어가며 몸을 일으켰다.

“일이 꼬였어. 1구역 트레일러에 검문이 있었대. 그들은 트레일러를 직접 운전했고…"

“우리가 함정에 빠진 건 아니지?”

“...아닐 거야. 아니길 바라.”

하지만 포로들이 여전히, … 까지 말한 순간 멀리서 다시 한번 총성이 들렸다. 케일럽은 기울어진 차체 안을 빠르게 둘러본 뒤 권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우리는 아직 발각되지 않았어. 겉으로는 같이 전복된 것처럼 보여. 난 우리와 같이 움직이던 군인들을 확인하고 앞으로 가볼게. 티토 씨가 깨어나면 우리 쪽 트레일러를 함께 확인해.”

“너 지금 제정신이야? 지휘관은 나야.”

“라리에나. 시간이 없어. 총성이 들렸어.”

그들을 살리고 싶잖아. 케일럽은 라리에나가 말을 잃게 하는 방법을 잘 알았다. 당장의 그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꺼내면 된다. 순식간에 이뤄진 대화 후 케일럽은 안심하라는 듯 자신의 평화유지군 군복을 보란 듯이 건드렸고, 말릴 새도 없이 차량을 떠나 앞으로 달려 나갔다.

라리에나는 조각조각으로 남아 팔과 다리에 엉겨 있는 안전띠를 마구 풀어 헤쳤다. 총성이라도 들릴까 하여 숨이 가빠왔다. 작은 계단을 뛰어내려 조수석 문을 붙잡자 때마침 티토 역시도 기침을 콜록대고 있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거진 굴러 내려오듯 몸체가 떨어져내린다. 황급히 두 팔로 받쳐 들었으나, 6인치는 족히 차이 나는 몸체에 짓눌리는 수준이었다. 이마를 매만지며 겨우 고개를 든 티토에게 라리에나가 말했다. 쥐어짜인 아픔을 담아. “오, 이런. 당신 말이 맞아. 다 맞다고….” 티토는 떨리는 손아귀와 드디어 마주한다. 우는 여인은 이번 쿼터 게임을 모른다. 보려고 하지 않았다. 아리아 라이징의 목숨이 애도 하나의 의미조차 지니지 못하게 만든 소년이 어떤 방식으로든 죽을 자리를 찾아간다면 그것은 적절한 사죄가 되리라-아니, 그럴 수는 없다. 우는 여인은 소년이 두려울 때와 불안할 때, 거짓말을 할 때와 바라지 않는 일을 할 때 어떤 눈을 하는지 너무나 잘 안다. 소년은 내색하지 않으나 자신의 삶이 그 어느 순간부터 사람이 아닌 삶이 되어가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여인은 누구보다 그것을 잘 알았다…….

“라리에나 샌드!” 티토 칼리하우어가 선명하게 외친다. 늘상 적절한 때만은 귀신같이 재는 사람이었으므로. “정신 차려요. 할 수 있죠?” 흐릿하던 눈동자가 되돌아오자 티토는 그가 권총을 쥘 수 있게 손을 올려 주었다. 

망자들이야말로 판엠에서 가장 무결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불운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낸 자들이라서.


결과적으로, 포로의 탈환 작전은 성공했다. 1구역 트레일러를 운전하던 혁명 단원의 정체가 발각되었으나 그들은 곧장 실어 두었던 연막탄을 터뜨렸고 감시로 따라붙던 평화유지군 셋 중 하나가 죽었다. 총격전이 탄환만을 소모하며 막바지로 치달을 때쯤 케일럽 윈터가 개입했다. 그는 4구역 평화유지군 둘을 무력화시키고 그들이 타고 있던 차량에 포로들을 태웠다. 3구역으로 빠져나가는 길목으로 그들을 먼저 출발시킨 다음 1구역의 교전에 끼어들었다. 부상자가 붙잡혀 평화유지군과 대치하는 등 여타 작은 소란이 있었으나, 케일럽이 둘 모두에게 발포하기 전 티토 칼리하우어와 라리에나 샌드가 합류해 전투가 끝났다. 혁명군 모두 방탄조끼를 입고 있었기에 중상자는 없었다. 3구역 공장에서 전원 합류 후 호버크래프트를 타고 귀환하기까지 1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포로로서 붙잡혀 있던 혁명군들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들의 행선지를 알지 못했으나, 확실한 것은 도착하는 순간부터 네들 정신 따위가 모조리 무사하지 못할 거라며 평화유지군 심문관들이 으름장을 놓았다는 것이다. 칼리오페 안젤로는 이와 같은 보고를 듣고 라리에나 샌드에게 말했다. 무모했군. 하지만 적절한 인선이었어. 라리에나는 미묘한 얼굴로 곁에 선 티토를 돌아보았고, 그는 여상한 얼굴로 눈을 찡긋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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