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ISIUM

Mission 3

834194 by 경위

칼리오페 안젤로의 짧은 연설이자 통보는 지금까지의 삶이 모조리 뒤바뀌리라는 선언이기도 했다.

차고로 돌아가는 호버크래프트가 거친 모래바람을 남겼다. 심각한 부상을 떠안은 채 복귀한 몇 명은 의료진에게 인도되었으며, 이미 13구역이 고향보다 익숙할 몇 명은 자신의 자리를 찾아 돌아갔다. 케일럽은 뺨에 묻은 먼지와 흙을 느리게 짚으며 털어냈다. 손끝으로 선명한 흉터가 스치며 지났다. 이번에도, 살아남았다. 그 사실은 아주 짧은 감흥만을 남겼다. 사람들을 따라 옥상 계단을 내려가며 낯선 복도를 지나치는 내내 익숙한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므로. 그렇게 다시 받은 삶은 또다시 한 단계 뒷전으로 내려가고 만다.

어디로 향하는 걸음인지도 모르고 느릿느릿하게 사람들의 말미를 쫓던 케일럽은 돌연 지나가던 의료원을 부른다. “부상이 있어서요.” 평탄한 어투에 의료원은 의심하는 눈초리로 그를 훑었으나, 피가 배어난 자국이 있는 복부를 발견한 후로는 모든 동작이 단숨에 결정된다. 경기장 안에서의 많은 호의로 하여금 죽을 상처는 아니게 되었으나 케일럽에게는 여전히 내상이 있었다. 혀를 차던 의료원은 입을 벌려 보라고 했다. 그가 혀를 씹거나 입 안 살을 해친 흔적은 없나 살피는 모양이었다. 꽤 아팠을 텐데요. 괜찮습니다. 의료원은 진통제를 놓아줄 테니 한숨 자고 일어나라며 자리를 떴다. 객기 부리지 말라는 투였다. 그렇게 케일럽 윈터는 가장 두려워하던 질문의 결과를 마주하기 전 약간의 유예를 얻었다.

한참을 자고 일어나서야 케일럽은 자신이 잠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오랜 피로를 내려놓은 뒤의, 초점의 중심을 잡지 못하게 하는 몽롱함이 그 사실을 알렸다. 반투명한 탁자 위로 깔끔하게 닦인 얼굴이 비춰 보였다. 침대 옆에는 간이 의자가 펼쳐진 채였다. 누군가 다녀갔던 걸까? 혹여나 싶은 마음에 침대의 절반쯤을 가리고 있던 커튼을 걷어내면, 자연스럽게 옆 침대에 누운 인영이 보였다. 아는 얼굴이었다. 

잠에 취한 사이 옮겨졌는지 그들은 다인 병실 안이었고, 대부분의 침대에 사용감이 있었다. 아마도 치료를 끝낸 사람들은 일찍이 돌아간 듯 했다. 그리고, 가브리엘 히스.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그는 르네 라이징의 완전한 부축을 받아야만 했고, 그런 중상으로부터 회복되기 위해서는 꽤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뜻하지 않은 목격으로 케일럽은 그와 대적했던 순간을 떠올린다. 상충하는 소원이 만났을 때 일어나는 비극은 헝거 게임의 근원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헝거 게임에서는 언제고 동료가 만들어지고 친구의 손을 잡으며 가족의 얼굴을 빗대어 보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이번 게임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칼을 맞댄 사람을 목도했을 때, 케일럽 윈터가 순간적으로 떠올린 첫 생각은 그저 단편적인 안도였다.

무심코 가브리엘에게 다가가려는 케일럽을 가볍게 뻗어진 손이 저지한다. 근처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이였다. 절반쯤 찢어진 잡지를 휘적이고 있던 그는 의료팀의 의복을 입고 있었다. 이유를 묻기도 전에 그는 마스크를 턱 아래로 내렸다. 그제야 기억 속에서 상대의 파편을 찾아낼 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8구역에 머무르던, 익숙한 이름을 쓰던 낯선 이들 중 하나였다.

“누군가 한 명은 너를 지켜봐야 한다고 하던데, 마냥 틀린 말은 아니었던 모양이지.”

“해칠 생각은 없습니다. 그가 살아 있는지 궁금했을 뿐이에요.”

“살아있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어.”

캐피톨만큼은 아니더라도 이곳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다고……. 네 눈에는 차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농조로 느릿하게 덧붙여지는 말에는 아무런 악의나 조롱의 의도가 없었다. 허름한 술집의 창고에서 와인통을 관리하던 그는 늘상 주변에 날카로웠으나, 이곳에 와서는 한결 풀린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떤 안전함을 대변하는 듯한 그 모습에 케일럽은 자신이 저지당한 이유를 묻는 것을 미룬다. 그가 할 말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가브리엘에게서 시선을 떼어낸 채 도로 침대맡에 걸터앉자 상대는 어깨를 으쓱이며 간이 의자로 자리를 옮긴다.

“네 상태는 나쁘지 않아. 용케도 그 안에서 치료를 했구나.”

“……도움을 받았거든요. 여럿에게서.”

“그런 것 같았지.”

“저를 지켜봐야 한다고 했던 사람은...”

그는 대답 대신 누구겠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고작 스물한 살에 불과한, 자신의 멘토를 구하기 위해 자진해서 목숨을 내놓은, 어리고 미숙한 청년이 두 번째 게임을 살아내는 것을 마냥 다행으로 볼 수 없을 사람 중 하나. 케일럽은 벌떡 일어나 블라인드가 내려진 창문 너머를 응시했지만, 바깥에는 아무도 없었다.

“네가 저 청년을 죽이려고 했던 걸 알아. 모두가 알지. 그러나 어느 누가 너를 속 편히 원망할 수 있겠어? 네가 헝거-게임 같은 포맷에 도로 처넣어지는 걸 막지 못한 우리를 원망하면 모를까.”

아마 저 애도 마찬가지일걸. 염세적인 어투로 덧붙이는 상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케일럽은 속으로만 대꾸한다. 아니요, 그는 누구라도 원망했을 거예요. 그러나 기어코 끝을 내고 싶어 하던 그를 붙들어 세운 것은 자신이 아니었으므로 생각의 연쇄를 끊어낸다. 

“라리에나 샌드만이 예외이지. 그 애는 네가 무척 대단한 악인이라도 되는 줄 아니까. 일종의 트라우마 증세라고 봐도 될 정도로.”

상대는 가벼운 어투로 말하고 있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케일럽이 할 수 있는 말은 언제나 수긍뿐이었다. 그런가요……. 무력한 목소리가 흘러나와서인지 상대는 짐짓 안타까운 기색으로 용건을 잇는다.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샌드는 널 보기 싫어서 자리를 비운 게 아니야. 너희의 탈출 전후로 단원 전원이 눈코 뜰 새없이 바빠서 말이야. 이미 옥상에서 들었겠지만, 너도 곧 실무에 협력해줘야 하고.”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요?”

“방식은 중요하지 않아. 네 마음가짐이 중요하지.”

“…잘 모르겠어요.”

상대는 이유를 묻는 대신 지긋이 케일럽을 바라보기만 했다. 이후로는 상처가 아문 정도를 확인하고, 그가 머물 방을 알려주겠다며 그를 일으켜 세웠다. 병실을 나서고 복도를 걷는 내내 두 사람이 마주친 이들 중 둘을 특별하게 주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각자의 일거리를 손에 든 채로 분주히 움직이거나, 잠깐의 여유를 가지듯 길지 않은 대화를 나누거나, 각자의 생각에 몰두해 있을 뿐이었다.

이윽고 마지막 코너를 돌자 숙소로 쓰이는 듯한 방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의 문 앞에 멈춰선 상대는 직접 문을 여는 대신 열쇠만 끼워 넣고 앞을 비켰다. 케일럽은 조금 망설이다가 문을 열었고, 뜻밖의 광경에 얼어붙었다. 우승자 구역에 세워진 케일럽 윈터의 주택은 침실 정도가 그나마 사람 사는 집 같았는데 그 방을 그대로 옮겨붙인 것처럼 방의 생김새가 꼭 같았기 때문이다. 완전히 같은 물건을 놓을 수 없다면 비슷한 크기와 질감이 선택되었고, 햇빛이 들지 않는 지하이기 때문인지 창문이 있을 자리에는 보다 밝은색의 커튼이 달려 있었다. 

“…보면 알겠지만, 샌드가 꽤 오랜 시간을 들였어. 언젠가 네가 올 거라고 믿었던 거야.”

비록 제 발로 온 건 아니지만 네게도 심경의 변화가 찾아오리라 생각해. 혁명이라는 것이 늘 숭고한 이의 순수한 투쟁만으로 돌아가지 않으니까 그 점은 염려 말고. 정말, 난 가끔 샌드와 너를 분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샌드는 너야말로 자신과 똑같이 자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나봐……. 케일럽은 원래도 말수가 없었고 그것을 아는 상대는 줄줄이 말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문간에 기대어 선 채 나지막하게 덧붙였다. 잘 왔다. 케일럽은 여전히 복잡하고 또 무엇도 확신하기 어려웠으나, 지금 해야 할 말만은 알았다.

“제가 무엇을 하면 될까요?”

그는 웃으면서 설명했다. 우선 오늘은 편히 쉴 것. 그런 다음에는 네가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을 돌아볼 수 있고, 재회해야 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 혁명에 대한 네 의사가 확인되었으니, 편입되기에 적절한 임무를 위한 간단한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라리에나 샌드는 현재 외출 중이지만 내일 아침의 작은 회의를 마치면 만날 수 있다는 것까지. 케일럽은 고개를 끄덕였다.


케일럽 윈터와 라리에나 샌드의 재회는 조용하고 거룩하게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대체 왜- 로 시작하는 경악 어린 외침은 주로 75회 헝거 게임의 코뉴코피아에서 벌어졌던 뜻밖의 혈투를 지적하는 것이었다. 케일럽은 반박하는 대신 걱정을 시켜서 미안하다는 말로 답했고, 할 말을 잃은 라리에나는 네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만을 남겼다. 그것은 소소하게 시선을 끄는 사건이 되었으나, 13구역은 막 타오르기 시작한 불꽃을 키워내는 데에도 여념이 없었으므로 금세 잊혀지고 말았다.

그로부터 조금 뒤, 케일럽 윈터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았다. 그는 프로파간다의 얼굴이 되기에도, 계획을 수립하는 데에 보탬이 되기에도 영 모자랐으나 눈치가 빨랐고 담력이 좋은 편이었다. 특출나지 않은 능력과 불타오르지 않는 열정이야말로 조직의 기틀이 되곤 하지. 케일럽에게 제대로 된 사격을 가르친 혁명단원은 이윽고 청년이 준비가 되었다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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