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V.57 따뜻한 수프

이슈가르드 하층 ( 8.6 , 11.9 )

다육이 by 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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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ALFANTASY14의 '창천의 이슈가르드' 스포가 있을 수 있음.

*이름 외의 모든 캐릭터 설정은 날조임

어서 오십시오.

'초코보 수송' 서비스를 이용하시겠습니까?

이슈가르드의 초코보 관리인은 오늘도 눈을 맞으며 서있다. 홍보용 검은 초코보가 그의 곁에서 발을 구르고 날개를 파닥이며 수선을 떤다. 최근 이슈가르드의 정세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수선한 분위기가 사람들을 험악하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로데리크는 오늘도 같은 영업멘트를 말할 뿐이다.

이곳에서는 '초코보 수송'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원하시는 초코보 정류장까지

손님을 안전하고 빠르게 모셔드립니다.

"로데리크!"

싸늘하게 흩뿌려지는 눈바람 속에서 활기찬 여성의 목소리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로데리크는 초코보 가면 아래 숨겨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뜨며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았다. 성도의 문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휴게소에서 머리를 곱게 땋아 묶은 여성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수프 한 그릇 어때요?"

갓 끓인 따끈한 달멜 수프를 두 손으로 들고 다가오는 여성은 에르미앙스다. 그녀는 얼마전부터 휴게소에 커다란 냄비를 걸어두고 성도의 사람들에게 수프를 무료로 나눠주고 있었다. 신전기사부터 구름안개의 꼬맹이까지 불러모으더니 여유를 가져야 한다며 음식을 나눠주었다. 거기에 나까지 포함되는 것은 그닥 달갑지 않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지금은 근무중이라."

고개만 까닥이고 다시 초코보를 매만지는 척 몸을 돌렸다. 이 자식 고삐는 또 언제 물어뜯은거야.

"어차피 요즘 손님도 없잖아요. 따뜻할 때 먹어야 맛있을텐데."

에르미앙스는 몇 번째 거절당했음에도 웃는 얼굴로 끈질기게 수프를 권해왔다. 그러면 로데리크는 한숨을 쉬며 마지못해 가면을 벗는다. 그는 은근히 웃는 낯에 물렀다. 에르미앙스는 요령을 터득했다.

"어때요. 맛있죠? 제 요리실력이 꽤 그럴듯 하거든요."

"그냥 달멜 수프입니다."

로데리크는 퉁명스럽게 말하면서도 바닥까지 싹싹 긁어 비웠다. 얄미운 사람. 에르미앙스는 빈 그릇을 가지고 뿌듯하게 돌아갔다. 로데리크는 바닥에 내려두어 차가워진 물로 입가심을 하며 다시 가면을 썼다. 이상한 여자야.

***

초코보 몇 마리가 배앓이를 한다. 사료에 문제가 있었는지 물을 잘못 마신건지. 이유를 알 수 없어서 하루내내 상태를 살피고 간호를 했다.

"선배님, 퇴근하십쇼. 이제 좀 괜찮아 보이는데 그 애는 제가 보고 있겠슴다."

"......그래. 부탁한다. 아침에 물 좀 데워주고."

로데리크가 피곤한 미간을 꾹꾹 누르며 유니폼을 갈아입고 가면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보니 오늘은 에르미앙스를 만나지 못했다. 휴게소에 얼굴을 비치지 않은 모양이던데.

"...쓸데엢는 생각을. 퇴근이나 해야지."

로데리크는 가면에 눌린 뒷머리를 헤집으며 머리를 비우기로 했다. 이미 초코보 간호에 심력을 잔뜩 써버려 피곤이 관자놀이에서 찰랑거린다. 하지만 흘긋 눈을 준 휴게소에서 웅크린 어깨를 발견했을 때 머릿속은 다시 시끄러워졌다.

"안 춥습니까?"

로데리크는 꺼져가는 휴게소의 모닥불에 장작을 던져넣었다. 무릎을 껴안고 웅크리고 있던 에르미앙스는 눈물자국이 남은 얼굴로 모닥불을 뒤적이는 로데리크를 올려다본다. 멀어지는 발소리를 들어서 떠나는 줄 알았는데 새 장작을 옆구리에 끼고 돌아왔다.

"추워요."

불씨를 살려낸 로데리크는 에르미앙스의 곁에 털썩 주저 앉았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불씨가 나무를 태우며 타닥이는 소리가 침묵을 채웠다. 로데리크는 말솜씨가 없었기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서 늘 말을 붙이는 것은 에르미앙스의 몫이었고 오늘도 그녀는 제 몫을 하기로 했다.

"오늘은 오라버니 기일이에요. 못난 동생을 지키다 돌아가셨죠. 저를 원망하는지 꿈에도 나타나주지 않네요."

에르미앙스가 작게 소리내어 웃었다. 웃음소리가 멎고 어깨가 불규칙적으로 떨리기 시작했다. 울음을 참는 신음소리가 무릎 사이로 새어나온다. 피붙이를 잃은 경험은 한두해가 지난다고 잊혀질 것이 못되었다. 그리고 로데리크는 두 사람의 음울한 공통점을 나열해보기 시작했다.

"저는 동생이 있었습니다. 남동생이었죠."

로데리크는 위로에 재능이 없었다. 어떤 말을 해야 울음을 그치게 할 수 있는지 몰랐고 그녀가 어떤 말을 듣고 싶어하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제 이야기를 함께 늘어놓았다.

"저보다 키는 작았는데 힘은 훨씬 셌죠. 그래서 병사가 됐어요. 용을 많이 잡아서 호강시켜주겠다고 얼마나 자신만만했는지."

로데리크가 장작을 하나 더 던져넣었다. 불꽃이 기다렸다는듯 마른 나무껍질을 날름 핥아댄다. 그날 동생의 유품을 태우던 불과 꼭 같은 색이다.

"왼쪽 다리만 돌아왔습니다. 다른 부분은 훼손되어서 확인할 수 없다더군요."

용의 발톱에 소중한 사람을 잃는 일은 이슈가르드의 흔하고 평범한 불행이다. 죽음은 가깝고 추위는 위로보다 절망을 부른다. 혈욱을 잃은 두 사람의 고해가 바꿔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모닥불을 피웠지만 에르미앙스는 인간의 온기가 더욱 절실해졌을 것이다. 멀지 않은 거리를 붙어오더니 로데리크의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 어깨의 주인은 레이디가 불편할까 몸을 살짝 기울여 높이를 낮춰주었고 무심한 상냥함에 에르미앙스가 눈을 감았다.

"오늘 구름안개거리의 꼬맹이가 당신이 어디갔는지 물었습니다. 적어도 그 꼬맹이는 당신을 보고싶어 할 겁니다."

"로데리크는요?"

"...배고프더군요. 저는 달멜 고기보다 베이컨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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