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긴] 상처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소란 by 레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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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똑.

짧은 노크가 연달아 세 번. 알아듣기 쉬운 신호가 적막을 깼다. 소파에 늘어져 있던 고개를 들자 바늘이 자정을 향해 뛰고 있었다. 오늘 꼭 오겠다더니. 무리하지 않는 게 좋은데. 한참 어린 애인의 절박함을 알 리 없는 연상의 어렴풋한 생각이었다. 눌린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현관으로 다가가자 달빛을 등진 실루엣이 눈에 잡혔다. 지체 없이 문을 열어젖히면 얌전히 기다리던 그림자 대신 피로한 모습이 성큼 다가왔다.

“오늘 온다며. 자정 다 됐는데.”

“아직 자정 아니니까 괜찮아요.”

뺀질대던 평소의 얼굴이라면 웃기지도 않는 소리라고 볼멘소리를 했을 테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럴 수 없었다. 최근 들어 밤마다 과격한 녀석들이 이곳저곳 들쑤시고 다니는 탓이다. 피를 보고 싶으면 내분이라도 일으킬 것이지. 쏟아내고 싶은 불만도 덩달아 목구멍 너머로 삼켰다. 정말로 그 말을 하고 싶을 사람이 아무 말도 않고 소파에 걸터앉았으니까.

“뭐 마실래?”

“그럼 일단 맥주 한 캔만요.”

“뭐?”

“농담이에요.”

술 마시고 들어갔다간 히지카타가 정신 빠졌냐고 시끄러울 테니까.

아마도 진심이겠지. 알고 있었다. 사람을 벤 냄새를 풍기는 채 잠들 듯한 연인을 물끄러미 보던 긴토키는 소리 없는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터덜터덜 부엌으로 사라졌던 이가 돌아오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왼손에는 김이 나는 보리차를, 오른손에는 구급상자를 든 채였다.

“웬 거예요?”

“시치미 떼지 말고 옷 벗어. 베였지?”

“…… 왜 아는 거예요? 히지카타한테도 안 들켰는데.”

모르는 척 해 주는 거라는 발상은 아예 없는 모양이었다.

“됐으니까. 빨리 안 벗으면 화낸다.”

“협박이라기에는 참…….”

차마 웃지 못하는 얼굴을 한 이는 한 꺼풀씩 옷을 벗었다. 조끼를 벗을 즈음 셔츠 위로 드러난 상처는 그리 깊지 않아 보였으나 마냥 가벼운 꼴도 아니었다. 수없이 전장을 누볐기에 알 수 있는 상태였다. 옆구리 위쪽, 혼자서 갈무리하기에는 이도 저도 아닌 위치의 상처를 물끄러미 보던 눈이 구급상자로 내려갔다. 소독용 알콜을 뜯고 솜을 꺼내는 동안 잠시 침묵이 앉았다가 휘발했다.

“왜 이렇게 됐어.”

“어쩌다 보니까요.”

“너 정도나 되는 녀석이?”

말도 안 되는 소리.

영 곤란한 듯한 표정의 애인을 눈앞에 두니 마음이 약해지는 기분이었으나 속아줄 생각은 먼지만큼도 없었다. 그 정도로 약한 녀석이 아니라는 걸, 아주 오랜 세월 함께한 이들만큼이나 잘 알기 때문이었다. 속이 뒤틀리는 듯한 기분과 별개로 묵묵히 손이 움직였다. 소독을 하고, 지혈을 한 뒤 붕대를 감을 즈음이 되어서야 띄엄띄엄 본심이 놓였다.

“실은 말이죠.”

“응.”

“…… 오늘 온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그래서……. 약속을 못 지킬까 초조했어요. 그게 다예요.”

“바보 아냐?”

“어쩔 수 없죠.”

동네가 뒤숭숭해지기 전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던 얼굴이었다. 그리고 밤공기에 피 냄새가 섞인 건 삼 주가 다 되어가고 있던 참이었고. 이 주 조금 넘게 못 본 것만으로 이렇게 되는 건가. 심한 소리였다. 붕대 끝에 테이프를 붙이고 있자니 두통이 이는 것 같기도 했다.

“오늘은 여기서 자고, 해 뜨면 일하러 가기 전에 병원부터 가.”

“해 뜨기 전부터 움직여야 하는데도요?”

“대장 하나 없다고 무너질 조직은 아니잖냐.”

시큰둥한 답과 함께 구급상자를 닫은 몸은 제법 뻔뻔하게도, 환자의 곁에 앉아 가만히 기대었다. 네가 다치면 속상하다는 한 마디를 못한 채였다. 알았다는 답을 듣고도 한참 눈을 뜨지 못한 건 밤에 마주한 불빛이 시려서라고, 말하지 않을 핑계를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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