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망했다면 바로 포기

인생이 망했다면 바로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아보는 것도 방법이다(완)

히어로라는 건 절대로 악당에게 굴복하지 않고, 모두를 살려내는 게 히어로가 아니었나. 옆에서 아칼립스 4의 결함이라는 제목의 책을 같이 본 우융은 너는 중요한 사람이니 둘에게 빌면 살 수도 있다면서 말했지만, 코마는 발걸음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반대로 여기서 코마가 둘을 살려달라고 말하고 희생하면 이대로 코마의 심장은 고철 덩어리에 갇히겠지만, 둘은 살 수도 있었다.

 히어로라면 여기서 어떤 선택을 해야하지?

 

 그렇게 생각하던 도중에 코마의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와 진짜, 분위기 깨는 게 일품이다."

 진지하게 싸울 준비를 하고 있던 우융이 말했다. 파이브는 자신의 능력인 물로 방어를 해야하나 고민하면서 손 안에서 물을 생성하고 있었다가 코마에 기깔나는 분위기 깨기에 능력을 미세하게 조절하고 있던 파이브의 손 안에 있던 물은 그대로 중력의 영향을 받아 파이브의 손을 적셨고, 파이브의 손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졌다. 유감.

 코마는 본부장과 빌 그리고 앞서 말한 둘보다 더 무섭게 자신을 노려보는 파이브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문자를 확인했다. 

 행크의 문자였다.

코마는 행크가 보낸 문자의 쓸데없는 서론은 빠르게 넘겨버리고 중요해보이는 부분부터 읽어보기로했다. 3줄 요약이 되어있지 않은 긴 문자에 코마는 미간을 찌푸렸다.

 [코마, 내 생각에는 너에게는 이제 히어로를 그만해야하는 날이 온 거 같아.]

   서론을 너무 넘겼나,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 이런 소리가 나온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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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크가 보기에는 코마는 자유로운 아이였다. 분명, 다른 이들에게도 코마에 대해 물어본다면 무조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파이브라는 히어로처럼 물 속에 있지도, 플래그라는 히어로처럼 하늘에 있지도 않는 모든 인간들과 똑같이 지상에 서 있는 코마지만, 행크는 그 어떤 히어로 아니 그 어떤 사람보다도 코마가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코마가 히어로가 되겠다고 밝혔을 때는 행크는 조금 의아했다. 히어로라는 건 책임감과 불안감이 항상 뒤따라 다닌다는 이야기는 어느 실력 있는 히어로들이 흔히 하는 얘기 아니었나.

 그 어떤 것도보다 자유로운 코마와 히어로라는 직업은 어울리지 않는 거 같다고 행크는 생각했다. 사실 그렇게 따지면 코마가 할 수 있는 직업이 있나 싶긴 한데.

 예상 외로 코마는 생각보다 히어로를 잘 해나가기 시작했다. 책임감과 불안감이라는 코마와 상성이 좋지 않은 것들은 코마는 재미라는 것 하나로 이겨내고 있는 듯 했다. 행크는 드디어 코마가 흥미 있는 걸 찾은 건가라는 생각에 코마에게 축하를 건네줬다. 비록 코마는 왜 이제와서 축하냐며 축하를 해줘도 뭐라했지만.

 그런데 코마, 재미라는 것만으로 히어로를 이겨내기에는 역시 역부족이었나봐.

"그냥 히어로를 하면 할수록 내 인생이 망해가는 기분이 들어서"

 그 말을 들었을 때, 보통이었다면 코마가 잠깐 지쳤다거나 누구나 다 겪는 슬럼프를 겪는 중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코마가 아직까지도 히어로를 즐기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런데 행크의 눈에는 히어로의 무게를 견뎌내기에는 이제 재미 하나만으로는 불가능 해보였다. 파이브라는 히어로처럼 정의감이 또 있으면 몰라, 코마는 재미가 히어로를 하는 이유에 한 90% 쯤 차지했다.

 행크의 생각에는 그런 코마의 재미가 점점 하락하고 있었고.

 

 아닐 수도 있지만, 행크는 언젠가는 코마가 히어로를 그만두는 날이 오게 될거라고 예상했다. 

 히어로 코마를 지금까지 있게 해주는 건 코마에게 남은 재미와 그리고 고등학교 3년의 미련이었다. 코마는 자신이 다른 직업을 하기에는 늦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던데 인생의 반절도 살지 않은 주제에 그런 생각은 금물이다.

 원래 도전이란 건 인생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거 아니었나. 물론, 씁쓸하게도 실패는 나이같은 요소에 영향을 받지만.

 코마는 아직 어렸고, 행크는 자신의 소중한 친구가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며 가다가 하게 된 히어로를 향해 쭉 달리는 도중에 결국 히어로를 포기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다시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기보다는 잠시 멈춰서 더 넓은 것을 바라보길 바랐기에.

 또 재미가 사라지고, 3년의 미련을 잘 정리한 다음 천천히 새로운 길을 찾길 바랐기에.

 행크는 오글거리고, 어울리지 않은 글자들을 휴대폰 속에 나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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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크의 정성따위는 가볍게 무시하고 말 그대로 읽고 싶은 부분만 읽은 코마는 문자를 보낸 이의 의도와는 다르게 당혹감에 빠지고 말았다.

 

[히어로라는 게 말이야..]

 얘가 지금 나 실력 없다고 맥이는 건가. 그거 정도는 이미 지금 상황 덕분에 충분히 느끼고 있는데. 코마는 행크가 도움이 된 적이 같이 게임하면서 밤 새줄 때 빼고는 잘 없다는 점을 기억하고 문자 내용을 쓸모없다고 판단했다.

 가볍게 휴대폰 전원을 끄고 본부장을 바라보았다. 코마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아주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살려주시면 안되나요?"

 되겠냐고!!!

 그렇게 시간을 끌어놓고 자신 있는 표정으로 한 말이 그거라니 파이브와 우융의 원성이 코마의 귀를 가득 채웠다. 아니, 혹시 모르잖아. 될 줄 알았다고. 미안해 그래 내가 미안하다고! 조용히 해봐!

 

 끼기긱-

 그런 소리가 나고 가장 앞에 있던 로봇이 입에서 불을 뿜었다. 불이 날라오는 걸 보고 정신을 차린 파이브는 빠르게 막긴 했지만, 이런 상황에 정신 못차리고 다투다가 죽을 뻔한 나머지 둘은 이제야 진짜 망했다는 게 온 몸으로 느껴졌다.

 로봇의 입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불을 뿜는 모습을 보니 드래곤 같았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드래곤한테 덤빈 곧 죽을 멍청한 엑스트라 3인조 같았다. 그런 쓸모없는 생각을 하는 도중에도 로봇들은 각자 쓸 수 있는 능력을 쓰고 있었다. 몇 개는 능력 한 번 쓰니 망가져버렸지만, 몇 개는 멀쩡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고 지금 저 많은 적들을 파이브 혼자 상대해야한다는 거다.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하나 뿐이다. 파이브 너만 믿을게"

"너네는 진짜 일은 일대로 다 저질러놓고 쓸모가 없어!"

 셋 중 한 명이 기지를 발휘하기 전까지는 파이브가 버티고 있어야했다. 우융이 급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코마는 그냥 옆에서 응원하고 있었다가 넌 진짜 뭐하냐라는 우융의 타박을 듣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띵 - 하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귀에 익숙한 소리인데 어디서 나는 소리였더라. 엘리베이터 소리! 코마가 외치는 말에 우융이 엘리베이터 쪽을 불안하게 바라보았다. 혹시 본부장의 동료가 더 있는거라면 이대로 죽음을 맞이할 게 분명하다. 동료가 아니어도 이대로 가다간 죽었겠지만.

 

"너네 뭐야?"

"선하?"

 선하다! 선하!

 선하가 우릴 구해주러 왔어! 우릴 구하러 왔던 건 아니었던거 같은데. 어쩌라고.

"선하! 도망쳐!"

"뭐? 알겠는데."

"아니, 우리도 데리고 도망가야지!"

 우왕좌왕하던 선하는 자신의 능력인 염력을 이용해 멍청이 셋을 엘리베이터로 이동시켰다. 본부장이 당황하는 소리와 그 능력을 쓰는 로봇들이 엘리베이터를 향해 마구잡이로 능력을 사용하는 소리가 뒤섞여 들렸다.

"뭔데무슨상황인데. 시계가 갑자기 풀려서 찾아와봤더니만 이딴 지하실은 또 뭐고 너네는 또 무슨 사고를 치건데."

"선하 넌 진짜 우리의 구원자야. 그런데 구원 한 번만 더 해줘 지금 내 생각에는 엘리베이터 추락하기 직전이거든? 일단 밖으로 나가야해. 빨리. 지금 당장!"

 살다살다 구원 한 번만 더 해달라는 놈은 처음 본다. 무슨 상황인지는 몰라도 친구가 진지하게 얘기하는 말은 들어줄 수 밖에 없는 선하는 엘리베이터 자체를 띄워서 밖으로 나갔다. 이거 다 본부의 소중한 재산인데. 본부를 누구보다도 아끼는 선하는 본부를 망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미 친구의 부탁을 들어준 뒤였다.

 

방금 일하고 와서 능력 쓰는 거 힘든데! 

본의 아니게 추가로 능력을 쓰게 된 건 나중에 코마에게 정당한 값을 받을 거라고 다짐했다.

"그래서 이제 뭘 해야하는건데? 저 미친 로봇을 부술려면 우리가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역부족인 거 같은데."

"계획이 있어!"

"전혀 신뢰가 안 가!"

"조용히 하고 들어봐, 우융과 선하는 본부 내에 있는 모든 히어로들을 불러. 그리고 플래그 전화번호 있는 사람?"

"..갑자기 플래그는 왜? 일단 나 있긴 있어. 그리고 너네 둘은 뭐할건데."

 아까 말했지만, 지금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인 선하는 조심스럽게 휴대폰을 켜 플래그의 연락처로 들어갔다. 아직 선하에게는 아무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코마는 휴대폰을 받아들고 말했다.

"파이브는 지금 바닥 뚫고 오는 로봇들 막아야하고, 플래그는 이런저런 사정이 있는데 설명은 우융이 가면서 해줘! 그리고 아칼립스 4는 걱정하지 마. 걔는 내 심장이 있어야 완성되니까 내가 죽기전까지 그 유리 밖으로 나오지 못해."

"와 진짜 대충 말한다. 그리고 나만 막아? 나만?"

"히어로 하루 이틀하는 것도 아니고, 이정도는 파이브 혼자서 할 수 있지~"

 네가 뭔데.

이렇게 평화롭게 말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 그 이상한 로봇들이 천장을 뚫고 위협해오고 있었다. 파이브는 선하와 우융이 다른 히어로들을 데려오기 전까지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하며 결국 코마의 계획에 응했다. 코마는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 있는 듯이 보였다. 진짜 쓸모없어.

 그래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파이브는 코마가 아니었으면 몰랐으리라. 저래보여도 코마는 본부장을 막으려고 애쓰고 있었을 것이다. ... 아닐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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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냈어요!]

 사실 이 상황에서 누구보다 애썼을 이에게 코마는 해피엔딩을 알리는 문자를 보냈다.

 

"어?"

 파이브가 당황했다. 파이브의 떨리는 눈동자가 바라보는 곳을 바라봤다.

"어?"

 파이브에게서 당황스러움이 가득 묻은 소리가 나온 이유가 있었다. 코마 역시 그것을 보자마자 똑같은 소리를 냈으니. 넓은 범위의 레이저가 바닥을 뚫고 그대로 하늘까지 시원하게 부쉈다. 그런 미친 능력을 가진 히어로는 듣도보도 못했는데.

 아칼립스 4가 코마를 응시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아칼립스 4는 분명 플래그나 코마의 심장이 없으면 유리 밖으로 나오지 못할텐데. 코마는 다시 기억을 더듬었다. 그리고 주저앉으려는 다리에 힘을 주었다.

 생각해보니 아칼립스 4에게 심장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심장은 '완벽한' 아칼립스 4에게만 필요했던 것이지. 아칼립스 4의 결함은 능력을 한 번에 하나밖에 쓰지 못한다는 것과 능력을 바꾸는 시간이 길다는 것이었다. 

 날아오른 걸 보니 아칼립스 4가 현재 쓰고 있는 능력은 비행이었다. 잠깐, 그렇다면 아까 쓴 레이저는 도대체 무엇이냐. 능력을 바꾸는 게 분명 느릴텐데 레이저를 쓰는 능력을 쓰고 바로 비행으로 능력을 바꾸진 않았을 터.

 그래, 그건 그냥 아칼립스 4의 팔에 기본 장착된 레이저다. 아칼립스 4는 능력을 쓰지 않아도 충분히 위협되는 로봇이었다. 

 파이브와 코마가 당황하든 말든 계속해서 아칼립스 4 전에 만들어진 실패한 로봇들도 바닥으로 들어와 파이브를 공격했다. 아까 그 레이저 막아낼 수 있을까 이 상태로? 파이브는 차마 확신하지 못햇다.

 솔직히 밸런스 너무한 거 아니냐.

 아칼립스 4가 공격하려고 하자, 파이브는 바짝 긴장을 했다. 양 손이 저릿했고, 물로 쳐 놓은 방어막도 점점 약하게 만들어지는 바람에 계속 쉽게 깨지기를 반복했다.

 히어로 하루이틀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 위기 상황 쯤은 몇 번이고 겪었다. 그때마다 파이브는 자신의 뛰어난 능력으로 해결해나갔으므로 이번에도 부디 자신의 능력이 조금 더 버텨주길 바랄 뿐이었다.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아칼립스 4는 파이브의 방어막을 뚫었다.

 지금 구석에 박혀있는 코마보단 파이브를 노릴 확률이 더 많았다. 파이브는 빠르게 한 손으로 자신과 아칼립스 4 사이에 방어막을 쳤다. 그리고 다시 공격을 해서 타격을 입혀야하는데...

"어어어어어어?"

 아칼립스 4가 코마에게 전속력으로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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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이라는 히어로 본부장이 있었다. 그녀의 꿈은 세계정복이었고, 그녀는 곧 빌이라는 한 과학자를 만났다. 빌은 여러방면으로 런과 잘 맞았고, 능력도 뛰어났다.

 런은 세계 정복을 원했고, 빌은 세계를 정복할 완벽한 로봇을 만드는데에 흥미가 있었다. 그렇게 둘은 세계 정복으로부터 한 발짝 나아갔다.

"이게 무슨!"

 곧 자신들의 발 아래 있게 될 히어로들을 얕본 탓일까, 계획이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의 방심이나 자비는 안되겠어. 지금 당장 저 히어로들을 싹 다 죽여버리는 게 더 좋겠네!"

"잠깐, 아칼립스 4를 쓰겠다고? 헛소리 하지 마."

"저런 실패한 로봇들을 가지고 히어로들을 다 죽여버릴 수 있을 거 같아? 아칼립스 4로 빨리 해치우고 나중에 아칼리스 4를 마저 만들자."

 그렇게 되면 히어로들 때문에 아칼립스 4에 흠집이! 그리고 이 정교하게 만들어진 로봇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땐 어떻게 할거지? 이 로봇은 내 일생의 역작이야 완벽하지 않은 상태로 사용해서 망가진다면 오.. 상상도 하기 싫으니까, 당장 그만둬.

"조잘조잘 시끄러워."

 런은 들고있던 총을 망설임 없이 빌에게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오랜 동업자의 사망이었지만, 애초에 런의 목적은 세계 정복이었고, 빌의 목적은 이 완벽한 로봇이었다. 목적이 다르면 언젠가는 갈라졌을테니 지금 죽여도 괜찮을 것이었다.

 세계 정복의 날이 머지 않았다.

"자, 아칼립스 4. 솔직히 말하면 나도 네가 히어로들에 의해 망가지면 곤란하거든.. 그러니까 밖으로 나가면 코마의 심장을 가장 먼저 얻으렴. 네가 코마의 심장을 스스로 자기 몸에 이식할 수 있도록 지금 당장 프로그래밍 해줄테니까."

 그 다음은 다 죽이고.

 이것이 아칼립스 4가 눈을 떠서 주황색 후드 안에 빛나는 파란 눈을 보게 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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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냈어요!]

 오래전에 연락이 끊긴 한 동료의 폰에서 온 문자는 그 동료의 말투는 아니었고, 한 어린 히어로의 말투여서 플래그는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플래그, 많이 힘들어...?"

 자신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빌런들을 데리고 플래그는 히어로 본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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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하늘과 싱그러운 풀들 그런 것들을 지나쳐 도착한 히어로 본부에는 비릿한 혈향이 났고, 건물은 반 쯤 부서져 먼지가 가득했다.

"이게 무슨.."

충격적인 모습에 혜비는 뒷 말을 더 잇지 못했다. 그 참담한 광경에 한 중간에 있는 건 알 수 없는 로봇들이었다. 저게 도대체 뭐야? 혜비는 계속 주변을 둘러보았다. 곳곳에는 부상을 입은 히어로들이 가득했다. 그 중 눈에 띄는 분홍색 머리카락의 히어로에게 혜비는 달려갔다.

"선하!"

혜비의 소중한 친구는 고개를 들었다. 친구는 갑자기 혜비의 팔을 붙잡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얘들아, 코마가 X됐어..."

"으응?"

그렇게 말하고 정신을 잃은 혜비의 친구는 아무리 흔들어도 다시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치료형 능력의 히어로들, 그리고 알 수 없는 로봇들과 계속 싸우고 있는 히어로들도 보였다. 아무래도 보통 위급상황이 아닌 거 같았다. 혜비는 뒤를 돌아 플래그를 마주봤다.

"아무래도 히어로분들이 위험에 빠진 모양인데, 이거 빌런들이 도와줘야하나?"

"이상한 허세 부리지 말고, 빨리 도와주기나 해. 우리는 부상자들 좀 살필테니까."

능력이 없는 세 명은 쪼마니의 말이 끝나자마자 빠르게 부상자들을 살폈다. 플래그와 혜비는 심호흡을 했다. 능력이 약해지긴 했지만, 저런 고철덩어리들한테 질 정도는 아니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는 이것들을 다 해결하고, 지금 위기에 빠진 한 히어로에게 들어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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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행운의 신이 코마를 바닥에 냅다 던진 다음에 쓰레기통에 버린 건 아닌지, 타이밍 좋게 선하가 도착해 코마가 죽기 직전인 상황을 보고 염력을 사용해 코마를 반대편으로 내던졌다. 아파라.

 

 그 뒤부터는 난장판이었다. 아칼립스 4는 코마를 향해서 미친듯이 레이저도 쏘고 능력도 바꿀 수 있으면 바꿔가면서 공격해대고, 다른 로봇들은 눈에 보이는 히어로들은 공격하고 히어로들은 일단 싸우긴 하는데 왜 싸우는 지 몰라서 혼란스러워하하고. 부상자들 때문에 치료형 능력 히어로들은 비상이지.

 건물은 부서지고, 비명소리가 울려서 정신이 어지러운 와중에도 선하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표적이 된 아무 능력 없는 코마를 지키다가 부상을 입었다.

 코마는 이 난잡한 상황에서 생각했다.

 능력을 하나밖에 안 쓴다면 승산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없다. 이건 진짜로 없다. 진짜 정도껏해야지, 이걸 어떻게 이기라고. 하하.

"이 상황에 웃어? 웃냐고."

"어이가 없어서 웃었어.."

 웃는 거 가지고 더럽게 뭐라 그러네.

 이대로라면 히어로 건물은 완전히 붕괴될지도 모른다. 붕괴의 가장 큰 원인은 아칼립스 4가 쏘는 저 괴랄한 레이저였다. 여기서 아무 쓸모없는 코마가 할 수 있는 건 이대로 저 멀리 튀어서 아칼립스 4로 일어나는 피해들을 다른 히어로들이 받지 않게 하는거였다.

 아, 플래그 말 들을 걸 그랬다. 지금은 부상만 있을 뿐 히어로들이 잘 버텨주고 있지만,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가 있었다. 다른 히어로들의 목숨을 먼저 안전하게 하는 게 우선이었는데 너무 성급하게 굴었나?

 

 그렇게 생각해봤자, 능력이 없는 코마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일단은 히어로 본부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사람이 없는 곳으로 달렸다. 정신은 자책하고 있어도 몸은 가만히 있으면 안됐다.

 아칼립스 4는 무서운 속도로 쫓아왔고, 얼마 안 가 잡힐 거 같았지만, 코마가 사라진 걸 눈치 챈 파이브와 우융이 와서 코마가 최대한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는 걸 도와주었다. 사람 없는 곳으로 가봤자 아칼립스 4를 죽일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일단 가서 생각하자.

 셋은 죽기 살기로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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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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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을 하긴 무슨 생각을 해. 이 생각없는 코마야.

 겨우 도착한 곳이라고는 나중에 새로 건물을 지을 예정인 폐건물이 가득한 곳이었다. 아직도 폐건물을 철거 안했어? 하지만, 오히려 완전 빈 공터였으면 도망치기 곤란했을거다 건물이 있는 편이 시간을 끌기 적당했다.

"얘들아, 계속 도망만 다닐거야?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와 생각을 하다니 놀랍다. 야! 속도 늦추지 말고 뛰어!"

"이대로 가다간 그냥 저 범위 넓은 레이저에 맞아서 셋 다 죽을 거 같은데, 아무래도 내가 희생하는 편이 나을 거 같다."

 우융이 달리다가 멈춰섰다. 그게 무슨 소리야 우융, 너 이런 캐릭터 아니었잖아. 정신 차리고 달리기나 해.

"생각을 해 봐. 내 능력을 사용하면 말이 안 되는 것도 아니야. 저 로봇의 레이저에 내가 맞으면 내 몸도 시원하게 뚫리겠지만, 저 로봇 몸도 시원하게 뚫리지 않겠냐? 이 말이지."

"아니, 헛소리 하지 마. 애초에 니 능력이 로봇한테 통해?"

"모르지? 나도 내 능력이 발동하는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어떤 사물은 되고 어떤 사물은 안되긴 해. 근데 안해보는 것보다는 낫지 않아?"

"응, 안 나아."

'세상에 포기하지 말아야할 건 인생밖에 없더라.'

행크는 그 말을 내가 아니라 우융한테 해줬어야 했다. 코마는 일단 다급하게 우융의 헛소리를 말리긴 했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그 방법 빼고는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다른 방법이 있을까?

몸을 숨길 폐건물도 이제 다 부서져갔고, 이제는 정말로 죽어야했다.

 마지막 건물이 부서지고, 아칼립스 4가 한 자리에서 셋을 볼 수 있을 때가 되자 우융이 이젠 정말로 방법이 없다고 중얼거렸다.

 코마는 당장이라도 힘을 주면 순간이동을 쓸 수 있을 거 같아서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변하는 건 비참하게도 단 하나도 없었다. 내가 왜 히어로를 하겠다고 버텨가지고.

 

미련이었다.

 사실 가볍게 생각하는 척해도 능력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고, 히어로말고는 무엇을 해 나가야할지도 정해놓지도 않은 판에 이대로 갑자기 히어로를 그만두게 된다면, 코마의 3년은 누가 책임져주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겠어서 히어로가 재밌다는 핑계로 다른 건 다 무시한 채 계속 히어로만 바라보았다. 능력이 없는 것도 문제였지만, 자신이 이제 히어로 일을 버거워한다는 것도 문제였다.

 처음 능력이 사라졌을 때로 돌아간다면, 바로 본부를 나갔을 것이다.

'세상에 포기하지 말아야할 건 인생밖에 없더라.'

 전에 했던 말을 취소해야겠다. 행크는 그 말을 정확히 들어야 할 대상에게 들려주었다. 행크의 말대로 인생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히어로 일을 그만둬도 코마는 분명 어디인지는 몰라도 어디론가 향했을 것이다. 도대체 멍청하게 무엇을 두려워했던건지.

 

 레이저가 우리의 눈 앞에 놓이자, 파이브는 급하게 방어막을 쳤다. 이미 체력이란 체력은 다 소진한 상태해서 펼친 방어막은 빈약했고 방어막이 깨지는 그 순간에도 뇌가 돌아가는건지 파이브는 뒤에 있던 코마와 우융을 뒤로 밀쳐서 둘의 안전을 확보하고 파이브는 레이저를 정통으로 맞지는 않았지만, 레이저의 여파로 꽤 멀리 날아갔다.

"야 쟤 살아있어?"
"모, 몰라."

 기절한 거 같이 보이기는 하는데, 잘 모르겠어. 진짜로. 코마는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이 무엇을 말하는지도 잘 모른 채로마구잡이로 단어들을 내뱉었다. 옆에 있던 우융이 얘 맛 갔네라고 코마의 말에 가볍게 반응했다.

 그리고나서 우융은 목소리가 떨리지않게 힘을 주며 말했다.

 

"자, 코마 어린이 생각을 해보세요? 여기서 너가 죽고나면 쟤가 다른 타겟을 찾아 죽일 확률이 높지만? 만약 죽는 게 나고, 만약 내 능력이 쟤한테 통한다면 여기서 세계 정복을 막을 수 가 있어요. 어떻게 할래요?"

 코마는 우융의 말을 못 들은 척 무시했다.

"야방법이 없잖아. 못 들은 척 하지말고."

 다른 히어로들도 데리고 왔어야 했는데, 아직까지 로봇들과 싸우고 있을까? 그렇겠지, 이렇게 늘어놓아서 그렇지 지금 이 상황이 되기까지 몇 분 걸리지 않았다. 다른 히어로들이 10분도 채 안되는 시간에 그 많은 로봇들을 처리했을리가 없고, 예상치 못한 싸움에 부상자들도 많았으니 도움을 받기에는 너무 늦었다.

 히어로들이 더 온다고 해서 이길 수 있을까?

 두려워하지 말고 바로 은퇴했다면, 코마는 지금 히어로에게 보호받는 평범한 시민의 역할이었을텐데.

 지금 당장이라도 은퇴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세계 정복 따위는 나 몰라라 하고 은퇴해버린다면 그거야말로 정말 미련이 남을 거 같았다. 어떡하지, 어떡해야하는건데?

 할 수 있는 게 없다.

 코마는 주머니를 뒤졌지만, 잡히는 건 아칼립스 4와 추격전을 하다가 살짝 부서진 폰 뿐이었다. 위급한 상황에 왜 그런 짓을 한 건지는 코마, 자신도 잘 모르겠지만, 코마는 휴대폰의 전원을 켰다. 바로 보이는 건 행크의 장문의 문자였다.

[근데 그렇다고 쉽게 포기하면 안되는 건 알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서 미련은 최대한 남기지 말고 힘내!]

 행크는 예언가도 아니었고, 심리상담사도 아니었지만 어떻게 지금 상황에 딱 필요한 말을 해주는 건지 신기했다.

 아칼립스 4가 다시 레이저를 준비하고 코마는 우융과 함께 빠르게 피했다. 우융의 다리에 레이저가 살짝 스치긴 했지만, 아직은 버틸만했다.

"너 지금 이 중요한 상황에 갑자기 폰은 왜 하는데?"

"중요한 걸 보려고."

 거지같은 로봇은 다시 몸을 돌려 우리 쪽으로 레이저의 방향을 맞추었다. 옆에서 자신이 희생해야한다는 우융을 한 대 치고 나서야 우융은 조용해졌다. 이대로 우융이 죽는다면 미련이 남을 것이고, 이대로 아칼립스 4를 막는 것을 실패해도 미련이 남을 거 같았다. 

 할 수 있는 게 없고, 쓸모도 없지만 코마는 세상을 지켜내야했다. 히어로라면 응당 그렇게 해야하니까.

"우융, 근처에 강이나 바다가 있었나?"

"있기야 한데, 이런 미친!"

 솔직히 대화할 때는 기다려주는 게 빌런의 도리 아니냐. 아칼립스 4는 로봇이라서 그런지 도리 따위는 개나 주고 레이저를 쏘았다. 

"우융, 그쪽으로 달려!"

"갑자기? 왜?"

 달리라면 달려!

 의심 하나 더럽게 많은 친구를 앞에 두고 코마는 골목 쪽으로 달렸다. 일직선인 바람에 레이저 맞기 딱 좋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순간 아칼립스 4가 눈 앞에 나타났다.

 익숙한 능력이었다. 저기 있던 로봇이 갑자기 이곳으로 오는 능력은 하나 뿐이다. 순간이동.

 미치겠네. 그건 내 능력이라고 이 고철덩어리야.

 코 앞에서 아칼립스 4가 레이저를 쏘려고 하자 우융이 주머니에서 특수 제작 무기, 그러니까 칼을 꺼내 로봇을 공격했다. 당연하게도 그 단단한 로봇에는 통하지 않았다.

 아니, 왜 하필 단단한 부분을 찔러! 차라리 틈이 있는 곳을 찌르지.

 아칼립스 4는 온몸이 단단하긴 했지만, 중간 중간에 틈이 있었다. 틈 쪽에는 이상한 부품들이 보이기도 했는데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틈을 공격하면 쉽겠지만, 아칼립스 4도 자신의 약점이 그 틈이라는 걸 아는 지 쉽게 틈을 공격하게 두진 않았다. 로봇 주제에 똑똑해! 아니, 로봇이니까 똑똑한건가.

 그 틈을 공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우융은 일단 잡히는 대로 칼을 레이저가 나오는 곳에 박아넣었다. 그리고 코마는 로봇의 차가운 온도를 느끼고 말았다.

 아, 그러고보니 로봇에게는 레이저 달린 팔 말고 다른 팔도 있었지.

 라고 생각하자마자 코마는 골목 벽 쪽에 박혔다. 아파!

 우융은 로봇이 코마처럼 자신을 때리기 전에 피해서 쓰러진 코마를 억지로 일으켜서 달렸다. 

 로봇은 몇 번 레이저가 달린 팔을 휘적거리다가 다른 팔로 칼을 뽑아냈다. 

로봇이 그러는 동안 코마는 바다가 눈 앞에 보일 정도로 왔다. 우리 본부 근처에 이런 바다가 있었다고, 언뜻 본 기억이 나긴 하는데 이렇게 보니까 신기하네라는 생각을 하자마자 로봇은 다시 눈 앞에 나타났다.

 로봇은 코 앞에서는 레이저보다는 주먹이 더 빠르고 낫다는 결론을 내린건지 바로 팔을 들어 휘둘렀다. 로봇의 공격을 피하긴 했지만, 코마의 다리는 미처 피하지 못했다. 코마는 우토가 절실해졌다. 우토라면 이 정도 다리 부상은 순식간에 치료해줄텐데.

 "도대체 여기로 왜 온건데? 우리 둘 다 죽는 거 말고 더 있어?"

 좁은 골목, 그리고 순간이동을 쓰는 로봇. 둘은 무기도 없고 쓸모 있는 능력도 없다. 지금 우융이 희생해봤자, 희생한 의미 따위는 없이 코마도 죽을 것이 분명했다.

 우융은 생각 없이 행동하는 코마가 바다로 가자고 했을 때 조금 더 의심해야했다고 후회했다.

 그런데 이 멍청한 친구는 헛소리를 내뱉었다.

"우융"

"왜 이제진짜방법이없는거같아? 나도알아"

"그게아니라"

 우융은 그 와중에도 공격해오는 로봇에 애써 방어해봤지만 손만 뒤지게 아플 뿐이었다. 아칼립스 4는 이제 코마와 우융이 더 이상 반항할 힘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는지 레이저를 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앞으로 10초 정도면 둘은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었다.

 코마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우융에게 말했다.

"날 바다로 던져 우융."

"얜 또 왜 갑자기 미친소리지?"

 빨리! 다급하게 재촉하는 코마에 우융은 아까전에 코마 말을 들어줬다고 후회했는데 이걸 들어줘도 되는건가 고민했지만, 이렇게 죽나 저렇게 죽나 죽는 건 다 똑같아서 비명을 지르는 다리를 일으켜 코마를 던졌다.

 코마는 바다 코 앞에 내동댕이쳐졌다. 바다에 던져야하는데 실수했다 미안!

 

 아칼립스 4는 목표물이 사라졌다는 걸 순식간에 알고 바로 뒤를 돌아 순간이동 했다.

 잠깐. 우융은 싸늘한 느낌에 코마를 바라보았다. 설마, 코마가 저라도 살리겠다고 던지라고 한거면 우융은 진짜 다시는 코마 말을 듣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안 죽어!"

 그렇게 말한 코마는 순간이동으로 코 앞에 온 로봇을 무시하고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로봇과 함께.

#

 아칼립스 4의 결함은 2개만 있지 않았다. 마지막에는 로봇임이라는 이상한 결함이 있었다. 

 코마는 그걸 기억했다.

 아칼립스 4는 로봇이었고, 정교하게 만들어졌으며, 틈이 있었다. 코마는 빠르게 바다로 가야한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바다 안 쪽으로 들어간다면 저 정교한 로봇이 코마를 따라 들어와 로봇 안에는 물이 가득 찰 것이었다. 부디 바다가 저 로봇을 망가트리기를 코마는 빌었다.

 우융은 코마의 말을 잘 따라주었다. 바다에 던져달라니까 바다 앞 땅에 처 박은 거 빼고는 괜찮았다. 던지고 나서 무언가 깨달은 듯한 표정의 우융이 코마는 보았지만, 그건 오해였다. 코마는 우융이 살길 바라서 모두가 살길 바라서 자신의 몸을 던져 바다에 간 것은 맞지만, 코마는 죽을 생각은 아니었다. 그저 로봇이 바다에 익사하길 기다렸다가 빠져나올 생각이었으니까.

"안 죽어!"

 그렇게 말하고 코마는 망설임 없이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로봇은 당연하게 따라들어왔고, 코마는 더 깊게 들어갔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아칼립스 4가 자신의 죽음을 느끼고 바다 속을 빠져나오려고 해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물 속에 완전히 잠기고 나서도 코마는 앞으로 향했다. 아칼립스 4에게 가장 정교하게 만들어진 것은 히어로들의 능력을 쓰는 부품일 것이다. 아칼립스 4는 더 이상 순간이동을 하지 않았다. 바다가 로봇을 점점 죽여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칼립스 4는 코마보다 빨랐고, 코마는 죽었다가는 진짜 낭패니까 따라잡히지 않으려 애를 썼지만, 잘 되지 않았다.

 코마는 자신의 이마에 레이저가 나오려는 열기를 느껴서, 눈을 꼭 감았다.

 후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칼립스 4가 죽었다!

 마침내 바다가 그 로봇을 침몰시키는데 성공한거다! 이제, 나가는 일만 남았다. 코마는 위를 바라보고 나가려고 했다.

 그러고보니 코마의 몸은 비명을 지르고 있는 상태였고, 물은 코마에게 무거웠다. 코마는 아래로 내려가는 아칼립스 4를 보면서 침몰하는 건 로봇 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안돼, 안돼.

 이러면 우융은 내가 희생한 줄 알 거 아니야 난 우융따위한테 목숨을 버릴 정도의 착한 사람이 아니라고....

 코마는 원래부터 몸이 괴로웠던건지 아니면 물이 몸 안으로 들어와서 괴로운건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알 수 있는 건 죽는 건 무섭고, 매우 아프다는 것 두 가지였다.

#

 "물이라면 지긋지긋하니까 당분간 내 앞에 두지 마."

 결론만 말하자면 코마는 살았다.

 한참은 걸릴 줄 알았던 아칼립스 4를 위해 만들어진 그 다량의 로봇들을 처리하는 일은 예상 외의 지원군으로 빠르게 끝났고, 그 예상 외에 지원군에 해당하는 플래그는 일이 끝나자마자 코마 쪽으로 향했다고 했다.

 플래그는 그 로봇들과 싸우면서 자신이 약해졌음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 하긴, 원래 플래그였으면 더 빨리 끝내서 내가 바다에 몸 던질 일도 없이 다 처리하고 나랑 우융을 도와줬을텐데.

 아무튼, 전에도 말했다시피 행운의 신은 코마는 쓰레기통에 버려서 태우지 않은 모양인지 아니면 밸런스의 신이 이 밸런스는 자신이 생각해도 개에바인건지 플래그를 타이밍 좋게 우융과 만나게 해줬고, 우융은 신속하게 플래그에게 코마가 익사하기 직전이라고 말했다.

 대충 그런 식으로 코마는 살았다.

 다시 생각해보면, 타이밍의 신이 내 편인 건가?

"신 타령 그만해. 그냥 내가 쩔었던거야."

 플래그는 그렇게 말하고, 코마 옆에 놓여있던 초콜릿 하나를 먹었다. 참고로 초콜릿은 코마는 부서진 히어로 본부의 의무실에 있었다. 우토가 치료는 다했지만, 쉬는 게 좋겠다는 진단을 내려서였다. 근데 나도 멀쩡한 병실에서 쉴 줄 아는데 왜 하필 부서진 건물에서 쉬어야하는건데?

"그냥.. 딱히 널 좋은 곳에 두고 싶지 않아."

"쓰레기야?"

 주변에서 빌런들과 히어로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어이없는 이유로 코마를 본부 의무실에 놔둔 우토도 함께 웃다가 갑자기 진지한 말투로 물었다.

"내가 네 부상을 딴 건 다 치료하긴 했는데, 딱 하나. 능력이 사라진 부상은 치료 못했어."

 그렇구나.

"우융 말로는 네가 아직 히어로를 하고 싶어한다고 들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반대야."

 이번 같은 일이 아니더라도 히어로는 역시 위험한 일이고, 너 같은 무모함을 가진 애라면 더 걱정된다는 게 이유였다. 코마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조용히 우토의 얘기를 듣고 대답했다.

"나도 이제 히어로는 그만 두려고."

"정말?"

 응.

 흥미도 떨어졌고, 미련도 없어. 

 은퇴하기 딱 좋네.

"그럼 이제 뭐할거야?"

"글쎄, 그건 생각해봐야지."

 코마가 누구인가?

 그 질문의 대한 답을 코마는 앞으로 천천히 다시 쌓아가기로 했다.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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