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망했다면 바로 포기

인생이 망했다면 바로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1)

코마가 누구인가? 퍴렀드아잇씀의 평화를 지키는 히어로다.

물론, 코마 외에도 많은 히어로가 있지만, 코마는 그중에서도 나름 유명한 히어로다.

더 설명하자면 

코마를 칭하는 수식어는 많다.

개인주의, 게임주의, 주황색 덩어리, 국가 기밀, 히어로의 탈을 쓴 빌런.. 여기까지 하겠다.

좋은 게 없어 보이지만, 코마는 착실히 히어로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엄연한 모범 히어로다.

오늘만 해도 벌써 퍴렀드아잇씀의 나타난 괴물을 3마리나 처리했다. 일단 급한 일을 다 끝낸 코마는 휴대폰을 꺼내서 뒤적거렸다. 오늘은 어떤 기사가 나왔는지 궁금해서다. 

내심 멋있게 기사가 나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코마는 기사를 훑고(기사 내용은 그럭저럭이었다), 빠르게 댓글로 넘어갔다.

[코마 고3인데 히어로라서 수능 안 치는 건가 ㅋㅋ?]

[ㄴ히어로 해서 인생 폈는데 수능을 왜 침?]

수능 치면 나라 안 지킨다고 뭐라 할 거면서 궁금한 것도 많네.

코마는 인상을 찌푸렸다.

따지고 보면 답글은 맞는 거 같기도 하다. 히어로 일로 이른 나이에 많은 돈을 번 건 사실이니까, 개인 시간과 친구가 줄긴 했어도 친구는 원래 적었으니까 괜찮고, 손해 보는 건 개인 시간, 하나뿐이다. 코마는 댓글 창에 달린 악플들은 가볍게 넘기고, 악플 밑에 답글 창에 열린 콜로세움을 구경하다가 유명 메신저 까톡으로 넘어갔다.

알람이 많이 없는 걸 보니, 이번 전화번호는 아직 안 털렸나 보다.

생각해 보니, 자유나 신상 같은 것도 히어로 일로 인한 손해다. 그럼 히어로 일로 손해 보는 건 3개다. 그래도 이 벌이에 이 정도 손해는 감수해야지.

코마는 쓸데없는 것을 꼼꼼히 따지고, 까톡에 집중했다.

[코마야, 나 중학교 때 니 친구인데 돈 조금만 빌려줘 ㄹㅇ 갚을게]

누군지도 모르겠는데.

대화방을 꾹 눌러서 삭제했다.

[야 니 학교 자퇴함? 요즘 진짜 안 나오네]

[코마 히어로 하다 인성 논란 터져서 학교 안 오는 거임]

[어쩐지 내가 다른 곳 가서는 예의 차리라고 말해줬는데 그걸 못하냐]

기사에 있는 악플들을 누가 단 건지 알 거 같기도 한데.

새어 나오는 웃음소리를 참으며, 대충 센스 있게 대답했다.

금세 지루해진 코마는 휴대폰을 껐다. 그리고 다시 까톡으로 들어가서 한 친구의 프로필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얘랑 이번에 상영한 영화 보기로 했었는데, 괴물과 빌런이 판치는 빈도를 보니 이번 약속도 못 지키겠다. 이번 영화 재밌어 보이던데. 코마가 알 수 없는 속상함에 젖어있을 때도 근방에 괴물이 나왔다는 알림은 봐주는 것 하나 없이 시끄럽게 울렸다.

그래, 빠르게 잡고 "혼자" 영화나 보러 가야지.

나는 히어로니까.

#

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x된 거 같다.

코마의 능력은 순간이동으로 공격형 능력은 아니다. 그래서 히어로 본부에서 특별 제작한 무기로 괴물을 찌르고 순간이동으로 도망치면서 처리하는 식으로 싸운다. 오늘도 그러기 위해서 무기로 괴물을 찔렀는데, 아이거단단히잘못된거같은거있죠제가히어로원투데이하는것도아니고능력을실수로발동못할리가없잖아요이게무슨말이냐면요.

능력이 써지지 않는다.

코마가 괴물을 발 근처로 떨어질 때 본 것은 드래곤 형태의 괴물이 입에서 뱉는 불꽃과 파란색 머리카락이었다.

머리에 강한 충격이 오는 걸 느끼면서 세상이 암전되었다.

#

격하게 눈을 떴을 때는 살아있었다. 코마는 숨을 몰아쉬면서 놀란 심장을 진정시켰다.

이대로 히어로도 인생도 끝인 줄 알았는데, 역시 내 목숨은 질긴가 보다.

주변을 둘러보니까, 곧 이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히어로 본부에 있는 의무실.

곧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리더니, 코마가 누워있던 침대의 커튼이 걷혔다.

"파이브?"

"괴물 잡다가 뻗었더라?"

"피곤했어? 아니면 방심했어?"

"둘 다..?"

"그럴 줄 알았다."

"알면 말 좀 해주지?"

파이브는 코마가 괜찮은지 확인하려고 온 거였다. 멀쩡히 농담을 툭툭 던지는 코마의 모습에 파이브는 원래부터 이상했어서 머리가 다친 건지 안 다친 건지 구분이 안되네라고 생각했다. 파이브가 실없는 생각을 하는 동안 코마의 속은 타들어 갔다.

사실 코마는 아까 전부터 파이브 모르게 순간이동을 시도하는 중이다. 파이브의 말이 귀에 안 들어올 정도로 코마는 당황스러웠다. 고등학교 1학년부터 지금까지 숨 쉬듯 자연스럽게 하던 순간이동이 되지 않으니, 무언가 어색했다. 멍청한 코마야.. 왜 순간이동 하는 법을 까먹니, 이제 숨 쉬는 법도 까먹겠다? 근데 난 똑똑한데 왜 순간이동이 안 되는 거지?

코마는 갑자기 얼굴에 두 손을 파묻었다.

돌발 행동을 하는 코마 정도야, 파이브는 익숙했으므로 딱히 태클을 걸진 않았다.

그건 그런거고, 코마의 생각은 오래 이어졌다.

여태까지 능력을 쓸 수 있었다가 쓰지 못하게 된 히어로 케이스가 있었나? 코마가 아무리 히어로의 역사는 개나 줬어도 그런 히어로가 없었다는 것쯤은 안다.

코마의 침묵이 길어지자, 파이브는 나한테 시간은 넘치지만, 너한테 쏟을 시간은 네 발로란트 킬 수만큼 없으니 가겠다고 말하고 자리를 떠났다. 그래, 오히려 좋다. 코마에게는 혼자 생각할 시간이 간절했으니까.

코마는 천천히 이 사태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했다.

.

.

.

일단, 지금까지 생각해 본 걸로는 난 능력이 사라졌다. 그게 코마가 내린 결론이었다. 코마는 이 똑똑한 머리로 지금이라도 수능을 치면 대학이라도 갈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지만, 당연히 헛소리였다.

코마는 곧이어 이제부터 능력을 못 쓰게 된 자신에게 올 후폭풍을 떠올렸다.

일단 히어로는 더 이상 못하니까, 미래에 할 일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공부를 놓았으니까, 지금까지 모아둔 돈으로 어찌저찌 살 수는 있겠지만, 인생이 내 마음대로 흘러가 준다는 법도 없고 이만큼 돈을 쌓아도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 

그리고 난 특이케이스로 잠시 세상은 난리가 날 테고 나대더니 그럴 줄 알았지 꼴통이다라면서 날 욕하는 사람도 있겠지. 더 이상 본부의 보호도 받지 못하니까, 신상이 조금 위험하겠고, 최악의 경우에는 빌런들에게 목숨을 잃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리고 또 뭐가 있지.

아, 영화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참에 은퇴나 하고, 모아둔 돈으로 청춘이나 즐길까. 성인이 되기까지 아직 몇 개월 남아있으니까 어차피 수능도 끝나서 할 일도 없는 친구들이랑 놀러  다녀야지. 걔네는 수험생 할인도 받을 텐데 부럽다. 

아니면 본부가 지정해 준 숙소가 아니라, 집에서 마인크래프트를 하루 종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

갑자기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몸이 자동적으로 경계 태세를 취했다. 생각이 멈추고 소리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오랜 싸움으로 습관이 된 행동 중 하나였다.

"코마?"

"우토?"

우토가 특유의 표정으로 코마를 쳐다보았다.

코마도 멍한 표정으로 우토를 올려봤다. 우토는 왜 그렇게 보냐고 웃으면서 분위기를 풀었다.

"괜찮아 ㅋㅋ?"

"갑자기 왜 걱정이야 불안하게"

"아니, 뭐 별 건 아니고.."

우토는 옆에 있던 의자를 끌어와서 코마의 앞에 앉았다. 표정이 묘하게 어두운 게 코마를 불안하게 했다. 생각해 보니 우토는 치료 계열의 히어로였다. 코마의 치료도 우토가 했을테니까, 우토는 코마가 능력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 수도 있다. 코마는 고개를 숙이고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하지만, 우토가 한 말은 의외였다.

"조심해, 그러니까.. 음 요즘 우리 상황 알잖아? 빌런들은 더 강해지고, 괴물이 나오는 수는 많아지는데, 활동하다 목숨 잃는 히어로들도 간간히 보이고.. 아무튼 이래저래 좀 위기잖아. 너까지 잃으면 우리 쪽의 손실이 너무 크지."

"응?"

"몰랐어? 우리 솔직히 지금 좀 간당간당해. 선하말로는 닥치는 대로 히어로를 모집해야 할지도 모른대. 이런 상황에서 네가 죽으면 우린 빌런한테 바로 질지도 모르지."

선하한테서 히어로가 괴물과 빌런에게 맞서기에 수와 강함이 부족해지고 있다는 소리를 듣긴 했다. 그래도 이 정도로 심각한 건지는 몰랐는데, 이런 상황이면 내가 히어로를 은퇴해도 빌런이 올까 봐 영화 한 편 마음 편히 못 보겠네.

근데 왜 내가 죽으면이야, 다른 히어로들은 다 어디간건데 우융은 일 안해? 걔 허구한 날 게임하고 있던데. 코마는 딱딱해진 분위기를 풀기 위해서 개그나 쳐볼까 하다가, 우토의 표정을 보고 그만두었다.

"솔직히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

"오.. 그러게."

"이럴 때 플래그라도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코마는 우토가 떠나고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아무래도, 히어로 은퇴는 글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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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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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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