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고

첫 만남

류차경 시점 (오너 : 은완이 캐해 생각보다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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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일 고등학교에 입학한지 어느덧 한달이 지났다. 차경은 교내 지리를 파악하기 위해 여러 곳을 돌아다녀 이제 모든 길을 알고 있었다.

학교에 어느 정도 적응한 차경은 음악 관련 책을 찾기 위해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에는 사서 선생님이 아닌 다른 학년의 학생만 있었다.

차경은 그를 보고 대수롭지 않게 지나쳐갔다. 도서관은 책을 읽는 곳이니까. 단순하다면 단순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이 깨지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차경은 거의 매일을 도서관에 드나들었고, 그때마다 다른 학년의 학생이 머물고 있었다.

‘아, 설마 도서부원인가? 그래서 늘 도서관에 있는 거고?’

차경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저 책을 읽기 위해 매일 도서관에 들리는 학생이 몇 없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내린 판단이었다. 책을 읽기 위해 매일 도서관에 들린다라는 선택지는 차경의 머릿속에서 지워진지 오래였다.


차경은 매일 도서관에 들렀고, 책을 읽으며 시간을 때웠다. 그때마다 도서관에는 항상 그 학생이 있었다. 차경의 시선이 학생에게로 가는 것은 필연이었다.

자연스럽게 학생에 대한 정보가 하나 둘 늘어갔다. 자신을 제외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사람. 명찰 색이 다른 걸 보니, 한 학년 위의 선배. 주로 읽는 건 아마도 문학 쪽.

‘흐음. 친해지고 싶은데.’

내적 친밀감이 형성된 것은 의도하지 않은 일이었다. 어쩌다보니 알게 되어 어쩌다보니 관심이 갔고 어쩌다보니 친밀감이 형성되었을 뿐이었다.

차경은 대부분 먼저 다가가 친구를 만들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동갑내기에 한해서였다. 한 학년 위의 선배와 친해지는 법 따위 알리가 만무했다.

그렇게 허송세월만 보내다, 차경에게 친해질 건덕지가 주어졌다.

차경이 읽고 싶었던 음악 관련 책이 도서관에 들어왔다는 소식이었다. 차경은 한다름에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음악 관련 책은 보통 M-음 300 번대였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책장으로 향했다. 그곳에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위에서부터 차근차근, 천천히. 차경이 손 끝으로 책들을 밀며 책을 찾았다.

30분의 시간이 흐르고 차경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왜지? 왜 없지?’

있어야 할 자리에 책이 없었다. 차경은 몇 번 더 책장을 살피고는 못 찾겠는지 터덜터덜 책장 사이를 걸어나왔다. 차경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들자, 시야에 학생이 보였다.

매일 같은 자리에서 책을 읽는, 아마도 도서부원일 선배.

차경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차경은 그대로 선배에게 다가가 질문했다.

“선배, 혹시 <음악을 한다는 것>이라는 책 어디 있는지 아세요? 오늘 들어왔다는 소식 듣고 온건데, 안 보여서요.”

“아, 어?”

선배는 조금 당황한 듯 행동했다. 차경은 그런 그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차경은 눈동자를 도르륵 굴려 명찰에 적힌 이름을 확인했다.

“은완 선배, 맞죠? 매일 도서관에 계시는 거 봤어요!”

“아, 응. 나도 너 봤어. 아까 무슨 책 찾는다고 그랬지?”

“<음악을 한다는 것>이요!”

은완은 차경이 말한 책의 위치를 가늠하듯 잠깐 생각에 빠지더니 이내, 걸음을 옮겼다. 차경은 그런 은완의 뒤를 따라갔다.

은완이 책장을 잠시 살피고서 손을 뻗어 책 하나를 뽑았다. 책 제목을 확인하고 차경에게 책을 건네주었다.

차경은 은완이 건네는 책을 받고 기뻐했다.

“선배, 진짜 감사해요! 이 책이 여기 있었구나~ 덕분에 찾았어요!”

“아냐. 그정도야 별 일도 아닌 걸.”

은완은 손사래를 치며 차경에게 말했다. 차경이 책을 두 손에 꼭 쥐고 있는 모습을 보던 은완이 넌지시 질문했다.

“근데 너 작곡하는 거야?”

“앗, 네. 아직 남에게 들려 줄 만한 실력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요. 혹시 선배 클래식 좋아하세요?”

“뭐…가끔 듣는 정도.”

“그러면 제가 작곡한 곡 듣고 피드백 해주시면 안되나요?!”

은완의 대답에 차경이 초롱초롱하게 쳐다보았다. 은완은 잠깐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

차경은 속전속결로 은완과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차경은 책을 들고 음악실로 가면서 팔을 붕붕 흔들어 인사했다.

차경이 은완과 번호를 교환한지 일주일이 되었을 때, 차경이 카톡으로 연락을 취했다.

[ 선배 괜찮다면 피드백 해주실래요? 음악실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


음악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차경이 뒤를 돌아보았다. 은완이 엉거주춤하게 서 있었다.

“아하하, 선배. 피아노 의자 있으니까 빼드릴게요.”

“그 정도는 내가 할 수 있는데…고마워.”

“뭘요. 제가 귀찮게 하는 건데.”

차경이 플루트 케이스에서 플루트를 꺼내 조립했다. 빠르게 조립을 마친 후 보면대를 가져왔다.

시선은 보면대 위 악보에 고정한 채 천천히 플루트를 들어 올렸다. 숨을 크게 들이 쉬고, 플루트 연주를 시작했다.

맑고 따뜻한 음색. 파릇파릇한 이파리들과 지저귀는 새소리가 떠오르는 멜로디.

차경이 플루트를 내려놓고 은완의 반응을 기다렸다. 은완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문을 텄다.

“괜찮은데? 왜 자신감 없어 했는지 모르겠는 걸.”

“아 진짜요? 다행이다! 걱정 엄청 많았거든요!”

차경이 긴장을 풀고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했다. 은완은 간간히 맞장구치며 차경의 말에 대꾸해주었다.

차경은 떠들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 은완에게 말했다.

“선배 쇼핑 가실래요? 제가 사드릴게요!”

“뭐? 아니, 나 괜찮은데.”

차경이 은완의 손을 꼭 잡아오며 말했다. 어쩐지 진지해보이는 모습에 은완이 살짝 긴장했다.

“선배. 선배같은 옷걸이를 가만히 두고 있으면 그건 유죄라구요.”

“그건 아닐 거 같은데……?”

“아니요! 그게 맞아요! 선배 매번 교복만 입고! 선배같은 사람이 옷도 잘 입어줘야 선순환이 된다구요!”

차경의 강력한 주장에 은완이 한 발짝 물러났다.

차경은 끈질기게 은완을 바라보았고 은완은 두 손을 들고 알았다며 긍정했다.

그 후엔 차경이 급발진해서 곧바로 은완과 쇼핑몰로 향했다.

차경은 은완을 데리고 여러 매장을 둘러보며 어울리는 옷을 추천해 피팅시켰고, 은완은 차경이 건네는 옷을 받아 피팅했다.

매장에 상주하는 점원과 차경이 물개박수를 쳤고, 은완은 어색한듯 몸을 이리저리 돌렸다.

“너무 받기만 하는 거 같은데…”

“제 고집에 어울려 주시는 건데 이정도야.”

차경이 결제하며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은완이 미안한 듯한 표정을 짓다가 고맙다고 인사해왔다.

차경은 짙은 미소를 그렸다.


차경이 피어싱을 쇼핑하러 시내로 나온 날이었다. 피어싱 가게에 들어가 여러 피어싱들을 둘러보며 어울리는지 갖다 대보기도 했다.

그러다 스치듯 떠오른 생각에 개구진 웃음을 띄고 피어싱을 골랐다.

“선배, 그런데 피어싱 하셨었어요?”

차경의 말에 은완이 귀를 매만지며 말했다.

“아아, 응. 1학년 초반까진 꼈었는데 지금은 안 끼고 다녀.”

“그럼 제가 나중에 피어싱 선물해 드릴까요? 선배한테 어울리는 거 많을 거 같은데.”

“그래? 그럼 기대하고 있을게?”

“저만 믿으시라구요!”

은완은 분명 장난조로 말했지만 차경은 진심이었다.

심플한 디자인의 피어싱 하나와 꽃 모양 디자인의 피어싱 하나를 결제했다.

다음날, 차경은 등교해서 은완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찾아도 은완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자, 차경은 조회에 맞춰 강당으로 향했다.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 이후 이어지는 학생 회장의 말.

차경은 단상으로 올라가는 학생 회장의 얼굴에 잠이 확 깨었다.

‘은완 선배 도서부가 아니었어?’

은완과 만난지 반 년만에 알게된 사실이었다.

차경은 얼빠진 표정으로 수업을 듣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언제나 은완은 도서관에 있었으므로.

도서관에 들어가자 역시나 책을 읽고 있는 은완이 보였다.

차경은 은완을 보자마자 다가가 물었다.

“선배 도서부가 아니라 학생부였어요?!”

“어? 어. 그렇지?”

은완은 당연한 걸 묻는 다는 식으로 어리둥절하게 답했고, 이내 차경의 반응을 통해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설마…지금까지 몰랐던 거야? 난 아는 줄 알았어.”

“전혀요…! 도서관에 늘 있는데 누가 학생 회장이라고 생각해요? 도서부원이구나~ 하고 말지!”

차경의 말에 은완이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쵸?! 아! 어쩐지 아침에 안 보이더라!”

“어? 나 찾았어?”

차경은 은완의 질문에 가볍게 끄덕이고 주머니에 넣어둔 피어싱을 건넸다.

“선배한테 어울릴 거 같아서 사왔어요. 제가 저만 믿으라고 했잖아요?”

은완은 기억을 더듬어 차경의 말이 어느 맥락인지를 찾았다. 그리고 살짝 놀란 듯 피어싱을 받았다.

“그냥 농담이었는데, 기억하고 있었구나.”

“당연하죠!”

차경은 당연하다는 듯 미소 지어보이며 긍정했다.


그리고 다음날, 은완은 차경이 선물한 피어싱을 하고 왔다.

도서관에서 그 모습을 발견한 차경이 다가와 말했다.

“제가 선물해 준 피어싱, 하고 오셨네요? 꽤 마음에 드셨나 봐요?!”

첫 마디는 평범했지만 두 번째 마디에서 살짝 흥분해 하이톤으로 물었다.

은완은 살짝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차경은 피어싱을 하고 온 은완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역시 잘 어울리네.”

“응? 뭐라고 했어?”

“아니요? 제가 무슨 말을 했나요?”

은완은 어렴풋하게 차경이 중얼거린 말을 들었지만 제대로 듣지 못해 되물었고, 차경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은완은 차경의 말에 별 의심 없이 “그렇구나.”하고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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