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ido

2부 5화

피데이스와 창술수업

“반갑습니다. 이번에 제게 창술을 가르쳐 주실 선생님이시라고 들었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시도폰은 자신을 보며 말을 잇지 못하고 감격에 찬 기사를 올려다보다, 결국 먼저 말을 걸었다.

“기초적인 창술을 베론 님께 배웠지만, 다수에 적용할 수 있는, 그러니까 악마들을 상대할 수 있는 기술은 아직 몰라서요. 저기…, 괜찮으신 거 맞습니까?”

기사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베론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눈빛을 폰에게 보냈다. 그 나름의 사과 표현이었는데, 폰은 그냥 베론이 계속 가르쳐 주변 안 되나 라는 생각뿐이었다.

“큼, 제 소개를 해보겠습니다. 소개받았다시피 앞으로 집행자께 창술을 가르쳐드리게 된 기사, 피데이스라고 합니다. 창은 정말 아름다운 무기죠. 나는 마음껏 공격할 수 있지만, 상대는 내 안전거리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이점은 악마들을 상대할 때 다소 효과가 떨어집니다. 인간과는 다르게 그들에겐 이성이랄 게 없어서, 마구 달려들기 때문이지요.”

잃어버린 지성을 어디서 찾아왔는지, 피데이스는 갑작스레 강의를 시작했다.

“당연히 기사단은 악마에 대한 대응책을 몇십 년에 걸쳐 연구했고, 악마들이 신성력을 마주하면 머뭇거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뒤돌아 후퇴할 정도로 물러서지는 않으니 결국 싸우긴 해야 하지만, 기사들에겐 그 잠깐의 시간이라도 소중했으니 유의미한 깨달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저와 함께하실 훈련은, 신성력을 무기의 방향과 일치하게 휘두르는 것입니다.”

이해하지 못했다는 표정으로 시도폰이 피데이스를 올려다보았다.

“이전에 집행자께서 다른 이들과 대련하는 것을 몇 번 지켜보았는데 신성력을 몸에 두르는 방식으로 사용하시더군요. 그것도 나쁘지 않은 방식이긴 합니다만, 기왕 이렇게 멋진 창을 가지게 되셨으니 활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피데이스는 시도폰이 들고 있는 창을 보며 눈을 빛냈다. 맛있는 음식을 보고 있는 것 같은 표정에 시도폰은 슬쩍 창을 제 등 뒤로 숨겨보았다.

“앗, 자, 잠시만요. 왜 그걸 감추시는 거죠.?”

“선생님께서 이 무기에 보내는 눈빛이 심상치 않아서요.”

안절부절못하는 피데이스에 시도폰은 다시 무기를 제 앞으로 가져왔다. 처음 봤을 땐 집행자라는 직책 때문에 감격하는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다. 피데이스는 환해진 얼굴로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할버드의 날은 세 방향으로 튀어나와 있었는데, 피데이스는 이 방향을 따라 신성력을 뻗어 나가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창은 길어질수록 멀리 있는 적을 공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무게가 무거워지니 사용자의 움직임이 구속되는 단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알다시피 신성력엔 물리력이 작용하지 않으니, 이 힘을 이용하여 다수의 적을 처치할 수 있겠지요.”

어느새 베론은 사라졌고 시도폰은 강의에 집중하느라 그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집행자께서 사용하시는 신성력인 불은 흐르는 성질보다는 발산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정한 방향으로 조종하는 게 힘드실 겁니다.”

“맞아요, 창에 둘러서 써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차라리 불을 쏘는 게 더 나은 것 같아요.”

“급하면 그런 방법도 도움이 되겠지만, 아마 그런 역할은 함께 출전한 동료에게 맡기게 되실 겁니다. 당신께선 가장 앞에 나서야 하실 테니까요.”

피데이스가 담담하게 내뱉은 말에. 시도폰은 남들을 이끌고 선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 심장이 쿵 내려앉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각성한 날, 기사의 뒤에서 마주했던 악마의 인상은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시뻘겋게 충혈된 눈깔과 기사를 찢으려고 발광하는 발톱, 피와 진흙으로 범벅이 된 다리. 속삭이는 듯한 기이한 소리가 비명과 같은 세기로 울렸는데 어떻게 그 광경을 잊을 수 있을까? 하지만 이젠 그 기사의 자리에, 아마도 베론이 서 있던 그 자리에 자신이 서야 한다. 실전에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배워 새삼스레 그런 깨달음을 얻게 된 시도폰은, 살짝 떨리는 자신의 손을 마주 잡았다.

“뭐, 아직 단장님을 비롯한 숙련된 기사들이 은퇴하려면 멀었으니까요. 지금 당장 그렇게 부담감을 느끼실 필요는 없습니다. 초조함을 느끼는 것보다는 그 기술을 즐기는 것이 습득에는 훨씬 도움이 되니까요. 그럼 이제 시작해 볼까요?”

피데이스는 활짝 웃으며 자신의 창을 꺼내 들었다.

“제 속성은 식물, 그중에서도 저는 덩굴이 마음에 들어 그쪽으로 신성력이 발현된 것 같습니다. 덕분에 쭉쭉 뻗어 나가는 창에 신성력을 접목하기도 좋았죠. 아까 말씀드렸던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드리면 이런 느낌입니다.”

그의 창은 시도폰의 할버드와 다르게 직선으로 곧게 뻗어있었는데, 곧 녹색의 힘이 구불거리며 창을 타고 올라갔다. 만족할 만큼 길어진 창을 공중에 휘두르던 피데이스는 ‘이렇게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라며 순식간에 방사형으로 뻗친 덩굴들을 만들어냈다. 이 고슴도치 같은 공격에 많은 악마가 내상을 입고 그대로 쓰러졌으리라.

“아마 당장은 이렇게까지 응용하기 쉽지 않으실 겁니다. 저기 있는 나무로 실험해보죠. 올곧은 직선 모양으로 나무에 흉을 지게 하시면 됩니다.”

시도폰은 피데이스가 가리킨 나무의 밑동에 작은 불씨를 피웠다. 덩굴의 모양을 상상하며 쭉 뻗어 나가는 불길을 만들고자 했지만, 힘을 너무 준 나머지 나무의 윗부분에 불씨가 튀어버렸다.

“음…. 왜 안 될까요? 덩굴 모습을 상상하고 힘을 준 건데.”

“아마 그렇게 사용해보신 적이 없으셔서 그런 것 같습니다. 몇 번 더 해보죠.”

그렇게 10분가량 불씨를 날리던 시도폰은 여전히 이리저리 튀는 불씨에 절망하며 주저앉았다.

‘대련할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상하다.’

“억지로 뻗어 나간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새로운 점을 원래 점의 바로 옆에 찍는다고 생각해보시면 어떻겠습니까? 선을 그을 때 한 번에 붓으로 긋는 것과 점을 연속해서 찍는 방법이 있는 것처럼요.”

좋은 생각이라며 시도폰이 다시 손에 불을 모았고, 마침내 나무에는 가지런한 불씨 자국들이 직선을 그려냈다.

“근데 이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네요. 하지만 방법은 이제 알았으니까 반복 훈련만 하면 시간은 줄일 수 있겠죠?”

“당연하죠. 이제 창에 똑같은 방법으로 해봅시다!”

훈련은 낮에 시작해서 해가 저물어서야 끝났다. 시도폰의 신성력이 거의 바닥날 때까지 훈련하는 바람에 피데이스는 축 처진 시도폰을 베론에게 보였다가 된통 혼이 났다. 결국. 시도폰이 눈을 뜬 것은 다음날 점심쯤이었고 루카는 도대체 무슨 훈련을 했길래 곤죽이 되어서 왔느냐고 걱정 반, 분노 반이 섞인 잔소리를 퍼부었다.

“훈련하다가 그럴 수도 있지. 어디 다친 데는 없으니까 괜찮아. 그나저나 선생님은?”

“피데이스는 오늘 아침 보호소로 갔습니다. 자주 봉사활동을 하던 곳인데 오늘이 마침 가는 날이라고 뻔뻔하게 외출 요청을 하더군요. 나 참.”

“…보호소라고요?”

“예. 초기에 그에게 창술 훈련을 맡기지 못했던 것도 그가 봉사활동에 전념하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고, 당번으로 돌아가는 봉사였기 때문에, 한 달 정도는 제가 당신을 담당해도 괜찮을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시도폰은 보호소라는 단어만 들어도 이상하게 소름이 돋았다. 돌이켜보면 솔라가 그렇게 이상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기분이 이상한 걸까?

“오늘은 쉬십시오. 어제 너무 무리하셨습니다.”

베론은 그 말만 남기고 쌩하니 방을 나가버렸다. 루카는 베론 님이 저렇게 말씀하실 정도니 얼마나 심각한지 아시겠죠? 라며 시도폰을 침대에 다시 눕혔다.

“훈련이 없는 날이라니 어색하네. 뭘 해야 하지.”

“푹-쉬세요, 푹!”

“잠은 다 깨서 누워있기만 하면 심심하단 말이야.”

게다가 날씨가 매우 좋았다. 맑은 하늘에 적당한 온도, 밖을 나가지 않으면 손해 봤다고 할 정도로 좋은 날이었다.

“요즘 기사단엔 별로 행사라고 할 게 없어서요. 책이라도 가져다드릴까요?”

시도폰은 책상 위에 쌓여있는 고서적을 흘끔 쳐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책을 좋아하진 않아서, 그냥 빈둥거리고 있을게.”

폰이 그렇게 말하며 이불 속으로 파고 들어간 채 손을 흔들었고 안심한 루카가 문을 닫았다.

‘당연히 거짓말인데 루카가 순진한 걸까 내가 성직자치고 약은 걸까?’

지금 북부 마을 어딘가에 유랑극단이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사단 건물로 부르면 안 되겠냐고 베론에게 제안해보았으나 속세의 음악이 이곳에서 울리는 건 불가능하다고 거절당했다. 찬미가도 두 세기 전에는 성서와 관계없는 내용이라며 교회 내부에서 연주 불가능했던 걸 고려하면 베론의 반응이 이상하진 않았다.

“그 사람들이 여기 못 오는 거면 내가 가야지.”

옷을 갖춰 입은 폰은 창문을 열었다. 수행단으로 왔던 시절에 저기서 두코와 프라이에가 천으로 자신을 받아주려 기다리고 있었던 게 생각났다.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린 폰은, 아무도 없는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살짝 고개를 들어 창문에 닿을 듯 뻗어있는 나뭇가지를 잡았다.

“흠, 별거 아니었네.”

그대로 나무를 타고 내려온 시도폰은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잽싸게 나무 사이로 몸을 숨겼다.

“그래서, 극은 잘 보고 오셨나요?”

이젠 화조차 나지 않는지, 루카는 웃으면서 시도폰을 맞이했다. 창문으로 엉거주춤하게 들어오던 시도폰은 얼굴을 바닥에 갖다 박을 뻔했지만, 간신히 균형을 잡아 그런 참사는 면했다.

“아니, 보다가 중간에 나왔어.”

시도폰이 답지 않게 시무룩한 얼굴로 대답하자 루카는 극이 무슨 내용이었길래 그러시냐 물었다. 머뭇거리던 폰은 극의 문제가 아니었다고 답했다.

“생각할 거리가 좀 있어서 그래, 혼자 있고 싶은데….”

외출복을 받아든 루카가 나가고 폰은 침대에 몸을 쭉 펴고 누웠다. 극은 평범했다. 자주 사용되는 소재, 그저 그런 연기와 노래 실력, 잠깐의 유흥이 필요했던 관객들이 모여있었기 때문에 폰도 거부감없이 무대를 지켜보았다. 낮은 목재 단 위에 올라선 시인과 배우들이 연기한 극은 어느 기사와 여성의 로망스로, 성전에 나가려던 기사를 여성이 말리다가 거절당하는 내용으로 전개되었다. 여성은 남편이 있는 유부녀였지만 내심 로망스가 이어지길 바라던 시도폰은 결말에 크게 실망하고 돌아왔다. 거절당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던 극에서, 여성은 자신이 기사를 유혹해서 악한 길에 빠져들게 하려 했다는 사실에 자책감을 느꼈다. 괴로워하던 여성이 남편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높은 탑에 가둬지는 것이 극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위험한 곳에 가는 건 당연히 말리고 싶은 일이지 않나?’

누군가는 신의 뜻을 좇는 길을 방해하는 건 당연히 잘못된 행동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시도폰은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전쟁이 신의 뜻이라면 두 사람의 사랑도 신의 뜻이다. 인간이 사랑하는 사람을 걱정하는 건, 신이 인간을 만들 때 부여한 사랑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사도 말려줘서 고맙다고 하면서 밤새 고민했잖아. 결국, 여자를 지키려면 전쟁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나간 거고.’

극이 끝나고 폰의 근처에 서 있던 아저씨가 딸인 것처럼 보이는 여자아이에게, 남편이 있는 여자가 저런 행동을 하면 벌을 받는 거라며 경고하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결론이 어떻게 그렇게 되는 거냐며 따지려던 시도폰이었지만, 집행자로 이미 알려진 자신이 그렇게 말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상조차 되지 않아서 참았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얼마나 적어지는 거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때문에 고민하던 시도폰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피데이스 입니다. 몸은 좀 괜찮으신가요?”

“네, 쉬었더니 괜찮네요. 훈련을…하기엔 늦은 시각인 것 같은데요.”

“아, 다른 일입니다. 잠깐 들어가서 뵈어도 되겠습니까? 소개해 드리고 싶은 아이들이 있어서요.”

‘아이들이라고 하면, 보호소 아이들이겠지?’

“…네, 괜찮습니다.”

시도폰이 자리에서 일어나 앉은 것과 동시에 문이 열리고 피데이스가 들어왔다. 그의 뒤로 따라 들어온 아이 중엔 당연히 솔라도 있었다.

“베론 님께 제가 보호소로 꽤 자주 봉사활동 간다는 사실은 들으셨을 것 같은데요, 이 아이들은 오늘부터 기사단 소속이 될 예정입니다. 정식 기사로 서임을 받으려면 열여섯이 되어야 하니 당장 기사로서 활동할 순 없겠지만, 또래 아이들이니 같이 어울리시기엔 좋을 겁니다.”

대충 훑어보니 정말 폰과 나이가 비슷한 아이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솔라를 비롯한 여자아이들이 섞여 있었고, 피데이스는 시도폰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말을 이었다.

“집행자께서 정식으로 서임을 받으신 이후로 여자아이들도 기사가 될 수 있도록 규칙이 바뀌었습니다. 이것도 당신께서 만들어낸 변화지요.”

시도폰은 자신이 무언가를 한 적이 없으니 제 덕은 아니라고 부정하려 했지만, 그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온갖 질문을 들었다. 신전에서 신의 곁으로 돌아갈 순간만 기다리며 눈을 감고 있었던 아이들은 시도폰에게 단순히 동경심이라고 정의되는 것 이상의 감정을 가득 가지고 있었다.

“그때 힘을 받게 되셨을 때 어떤 기분이셨나요?”

“훈련하실 때 어떠셨어요?”

“하나씩 대답해줄게. 음…, 솔직히 말하면 그때 당시는 잘 기억이 안 나. 등이 아파서 쓰러지고 나서 깨어나고 보니 침대더라고.”

노래가 들렸다는 말은 생략했다. 이야기했다가는 대화가 너무 길어질 것 같았다.

“그리고 훈련은 너희도 받아봐서 알 것 같은데 힘들어. 피데이스 님과 한 건 어제가 처음이었지만, 그전에도 부기사단장 님과 기초훈련을 하면서 체력이 고갈된 적은 몇 번이나 있을 정도였지.”

“오늘 침대에 계신 것도 혹시….”

“아, 어제 피데이스 님 수업이 너무 재밌어서 무리하다가 그만 신성력을 너무 많이 써버려서 오늘은 좀 힘들더라고. 그래서 쉬기로 했어. 더 궁금한 거 있어?”

소심해 보이는 아이에게 친절하게 대답한 시도폰은 예의상 덧붙인 말에 아이들이 더 신나게 질문을 해오자 당황했다. 시도폰이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피데이스를 바라보자 그는 눈을 피했다.

“얘들아, 어차피 자주 뵙게 될 텐데 그때 다시 여쭤보는 게 낫지 않을까? 특히 무기에 관한 거라든가, 신성력에 관한 거라면….”

여태 한마디도 하지 않던 솔라가 입을 열자 아이들이 서로 눈치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 사이의 실세가 솔라였는지 그들은 다음에 꼭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말하며 방을 나갔다. 맨 마지막으로 나간 솔라는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지으며 푹 쉬라고 말했다.

‘어째 솔라는 볼 때마다 사람이 달라지는 것 같단 말이지.’

처음 보호소에서 만났을 때, 각성 직후 신전에서 다른 사람들 모르게 만났을 때, 피데이스를 알게 된 후에 정식으로 소개받은 지금을 비교해보면 솔라는 각각 다른 사람 같았다. 사람이 쉽게 바뀌는 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기에 그런 변화가 더욱 두렵게 느껴졌다.

‘물어본다고 하더라도 뭐라고 물어보려고? 원래 모습이 어땠는지는 뭐라고 말하려고?’

끙끙거리며 머리를 부여잡던 시도폰은 도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솔라 주변의 아이들이나 피데이스는, 이런 솔라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건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건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그냥 자신이 유난을 벌인 것일 수도 있지 않나. 요즘 들어서는 답 없는 고민만 쌓이는 것 같다고 한숨을 쉰 시도폰은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다음날, 말끔히 회복된 시도폰이 합류한 훈련이 시작되었다. 피데이스는 처음 베론이 시켰던 것처럼 체력 단련을 위주로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매번 하던 것이라 시도폰은 별로 감흥이 없었다. 차라리 개인 훈련을 하면서 기술을 익히는 게 나을 것 같았다는 생각이 들 때쯤, 솔라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저, 집행자께 대련을 신청하고 싶습니다.”

쩔그렁-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아이들이 제 무기를 손에서 떨구며 솔라에게로 고개를 돌렸고, 시도폰은 놓치려던 창을 간신히 잡아챘다.

“안 됩니다.”

‘거절이 너무 빠르지 않나?’

“왜 안 된다는 거죠? 집행자께선 이미 다른 기사님들과 많이 대련해보셨을 것 같은데요.”

“솔라, 그들이 기사라는 사실을 방금 말하고도 인지하지 못한 것 같네. 네 말대로 이분과 대련할 수 있는 이들은 전부 기사급이야. 지금 네 수준으로는 부상의 위험이 커.”

“그럼 제가 이걸로, 싸우고 신성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하면 괜찮지 않을까요?”

시도폰은 창을 바닥에 놓고 나무로 된 적당한 굵기의 봉을 집어 들었다. 창보다 가볍고 끝부분이 뭉툭한 봉이었기에 다루기에도 어렵지 않았다. 고민하던 피데이스에게, 솔라는 시도폰의 봉이 제 몸에 닿자마자 대련을 그만두겠다고 제안했고, 그제야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사실 솔라, 네 기술을 보는 건 오늘이 처음이야. 잘 부탁해.”

“영광입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솔라는 두 번째 만났을 때처럼 눈을 빛냈다. 자신을 감격스럽게 쳐다보는 그 눈은 이쪽이 제 본모습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 서로 다치지 않게 주의하세요. 이대로 시작하면 되겠습니까?”

솔라는 훈련용 목검을 한 손으로 들더니 준비가 되었다 말했다. 시도폰은 두 손으로 검을 들어도 막지 못할 텐데 무슨 배짱을 부리는 거냐고 당황해하면서도 은근히 자존심이 상해서, 말도 없이 자리를 박차고 돌진했다.

“…아하, 이래서.”

화살처럼 빠르게 날아가던 시도폰은 급하게 발을 바닥에 찍어서 멈추었다. 반 발짝 앞에는 십자가 모양의 물체가 날아와 박혀 있었고, 솔라의 검은 그것의 방향을 지시하는 듯 움직였다.

‘하나가 아니잖아? 몇 개까지 만들어 낼 수 있는 거지?’

시도폰은 솔라의 옆에서 그를 수호하듯 떠 있는 두 개의 십자가를 보았다. 땅에 박힌 십자가가 뽑히려고 하는 것을 밟고 공중으로 뛰어오른 시도폰은 순식간에 솔라의 앞으로 다가가 봉 끝을 그의 턱밑에 가져다 대었다. 주변에서 지켜보던 아이들은 헉-하는 소리를 냈지만 정작 당사자인 솔라는 그런 시도폰 때문에 얼어붙은 채 서 있다가 양손을 들고 신성력을 거두었다.

“기술은 활용도가 높아 보이지만 그렇게 반응 속도가 느리면 제대로 활용하기 힘들어. 그쪽을 중점적으로 훈련하면 좋을 것 같은데. 저건 세 개까지 만들 수 있는 건가?”

솔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켜보던 피데이스는 한 손으로 턱을 괴었다.

“그동안은 솔라의 반응 속도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 또 색다르군요. 좋은 대련이었습니다.”

여전히 얼떨떨한 상태였던 솔라는 간신히 ‘대련…,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지만, 정신을 차린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이대로 대련을 끝내도 문제는 없겠지만 시도폰은 한마디 더 얹기로 했다.

“근거리로 적이 다가오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어?”

솔라는 그제야 잠에서 깬 사람처럼 더듬더듬 대답했다.

“예상하셨을 테지만…, 십자가를 이용해서 막을 생각이었습니다.”

“왜 검을 쓸 생각은 하지 않은 거야? 아까 보니까 검도 잘 사용하는 것 같길래 난 검으로 내 공격을 막을 거라고 기대하고 거리를 좁힌 거였는데.”

둘의 대화에 피데이스가 불쑥 끼어들었다.

“제가 신성력 사용에 익숙해질 때까지 검을 쓰지 말라고 말했기 때문일 겁니다. 솔직히, 솔라가 당황하면 제가 말한 걸 잊고 검을 쓸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아니더군요.”

“저 같아도 아까 같은 상황이면 바로 검을 휘둘렀을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거리던 시도폰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손뼉을 쳤다.

“피데이스님, 제가 불을 쏘는 것에 관해 이야기한 거 기억나시나요?”

“예? 예, 창에 힘을 두르는 것보다 멀리서 불을 쏘는 게 낫겠다고 이야기하셨었죠.”

“솔라의 반응 속도를 높일 방법이 생각났어요.”

적당히 단체훈련만 참가하려던 시도폰은 노선을 바꿨다. 솔라가 왜 바뀌었는지도 궁금했지만, 베론이 자신을 가르쳐줬던 것처럼 남들을 챙겨주고 싶기도 했다.

‘나는 집행자가 되지 전까진 기사가 되려고 이렇게 노력하진 않았으니까…. 솔라나 이 애들이 나보다 대단한 걸지도 모르겠네, 그래서 도와주고 싶은 걸까.’

시도폰은 주변을 물리고 솔라와 마주 본 채로 거리를 벌렸다.

“솔라, 신성력 쓸 준비 해, 십자가는 최대 몇 개까지 사용할 수 있어? 세 갠가?”

피데이스를 제치고 앞으로 나선 솔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시도폰은 ‘알겠어, 그럼 이제 이것들을 전부 막아내는 거야!’라고 외치며 불덩어리들을 공중에 만들어내어 던지기 시작했다. 당황한 아이들을 진정시킨 피데이스는 솔라가 침착하게 불을 하나씩 없애는 것을 뒤에서 바라보았다.

‘마구잡이로 던지시는 것 같지만 솔라가 막아내지 못하는 불은 몸에 닿기 전에 거두고 계셔, 속도도 솔라가 간신히 반응할 수 있을 정도로 조절하시는군.’

“열 개는 못 막은 것 같지만 오늘이 첫날이니까, 내일은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괜찮아?”

불덩어리를 쏴대느라 숨이 거칠어진 시도폰은 다른 아이에게 부축받고 있는 솔라에게 다가갔다. 고개를 숙이고 있길래 괴로워하고 있나? 라고 걱정했던 폰은 금세 눈을 반짝이며 얼굴을 치켜드는 솔라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괜찮습니다! 내일 또 부탁드려도 될까요?”

뒤에 서 있던 피데이스가 솔라의 머리를 힘줘서 눌렀다.

“내일…은, 안 됩니다. 지금 솔라 상태를 보아하니 신성력이 많이 고갈된 상태에요. 쉬어야 합니다.”

“어제의 저와 똑같은 상황이 되었네요, 미안해. 적당히 조절해야 했는데.”

솔라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뇨,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모레 다시 부탁드려도 될까요?”

“당연하지, 오늘 잘 쉬어.”

그 말을 뒤로하고 폰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씻으라는 루카의 잔소리에 주섬주섬 옷을 챙기면서, 시도폰은 저도 모르게 콧노래를 불렀다. 누군가를 가르쳐준다는 일은 생각보다 뿌듯한 일이었다. 다른 아이들도 힘내서 훈련을 따라오고 있었지만, 솔라는 정말 독보적으로 재능이 있었다. 그렇기에 앞으로 폰의 좋은 훈련 상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분명 처음 목적은 솔라에 대해 알아보는 거였는데, 뭐 이렇게 친해지다 보면 본심을 들을 날도 있겠지. 카리타스는 나 없이도 운동 잘 하고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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