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한잔

가족

전력도시 / 키워드 : 가족 / 베스타


서혜성은 액자를 바라본다.

그린 듯이 화목하게 웃고 있는 가족사진은 그야말로 동화 속의 이야기다. 고상하게 차려입고 웃고 있는 엄마, 근엄하게 굳은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아버지. 그 속에서 이 모든 것을 망쳐버린 어리숙한 자신. 완벽한 가족을 망쳐버린 태어나지 말아야 했던 존재.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충동적으로 책상 서랍을 열었다. 굴러다니던 펜들 사이에서 유성 매직이 그의 손에 잡힌다. 가만히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어린 날의 자신 얼굴 위를 검은색으로 뒤덮는다. 한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그렇게 반복 한 뒤에야 펜을 내려놓으면 그제야 가족사진은 완벽해진다.

“하하….”

완벽해진 가족사진을 내려다보던 그는 펜을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가방을 열어 손에 잡히는 대로 무작정 채워갔다. 그게 옷이던, 속옷이던, 쓰잘머리 없는 것도 아무렇게 쑤셔 넣는다. 묵직해진 가방을 어깨에 걸쳐내고 방을 쭉 둘러본다. 

이곳엔 자신의 것이 없다. 

아아, 가족! 지긋지긋하고, 더러운 그 이름.

그는 미련 없이 운동화를 구겨 신고 현관문을 연다. 늘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열쇠는 문손잡이에 걸린 우유 주머니에 넣어두고 거리낌 없이 밖을 향한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아직 저 하늘 높이 올라간 태양이 눈부시게 쨍했다.

“내가 버린 거야….”

내가, 가족을 버린 거야. 내가 버려진 게 아니라, 내가 버린 거야. 서혜성은 허공에 중얼거렸다. 마치 그것은 자신을 다독이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고, 하늘에 변명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뭐가 됐던 상관 없다. 서혜성은 그렇게 가족을 버렸다.

도화지를 펼친다.

가운데 서혜성의 이름을 적는다. 그의 이름 옆으로 작대기를 길게 긋지만 바로 이어질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는 고찰한다. 애초에 서혜성의 삶에 가족이란 글자는 제대로 된 단어였던가. 기억이 나기도 전에 가정을 떠난 아버지를 두고 어머니는 그를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다… 너 때문이야.”

그는 그게 의문이었다. 왜 그게 자신의 탓일까. 기억이 나지도 않는 사람이, 집을 떠난 것을 왜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의 탓으로 할까! 서혜성은 오히려 되묻고 싶었다. 엄마 탓이 아니고? 그냥 내 탓 하는 거 아니야? 어린아이들은 순진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 진실과 근접한 것을 떠올린다. 하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애정과 애정이 아닌 것이 뒤섞여있다는 것을 알아서 그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식탁엔 일주일에 한 번 씩, 십만원이 있었다. 그것이 서혜성의 생활비였다. 밥을 차려주는 사람은 없었고, 같이 밥을 먹는 사람도 없었다. 온기 없는 부엌에 올려진 돈을 보며 어느 날은 그저 헛웃음만 나왔다. 이게 다 학교 탓이다. 가정의 달이라며 어버이날, 어린이날 등의 헛바람을 가득 담아 수업 시간 내내 가정 이야기를 해댄 것이 전날이다. 쉬는 날마저도 비어버린 집과 명목상 올려진 돈을 보여 그는 봉투째 구겨 주머니에 넣었다. 

주면 땡큐지.    

수업시간에 서툰 솜씨로 접은 카네이션은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기대 안 했어….

기대 안 했다. 그런 가정이었다. 이 집은. 그의 집은.

기대 안 했지만, 서혜성은 세상이 다 거짓말 같았다. 눈앞으로 현장을 똑똑히 지켜봤던 방관자들은 입을 싹 닫고 거짓말을 늘여놓았고, 오만하게 굴었던 놈은 끝까지 오만하게 턱을 치켜들고 자신을 내려다봤다. 담임 선생님 조차 돈 아래 자신을 외면하고, 아무도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이렇게 느끼고 싶지 않았다. 숨이 턱 하니 막히고, 머리가 멍해졌다.

그래도… 가족이라면,

믿어줘야하잖아.

고개를 돌린 서혜성은 자신을 향해 쏟아진 혐오의 감정이 담긴 그 시선을 마주한 순간, 그 순간 모든 걸 내려놓았다. … …아, 그래. 됐어. 이제 정말 됐어. 다 됐어. 기를 쓰며 소리를 외치던 것도 포기했다. 학교에선 쫓겨나고, 자신의 얼굴을 보기도 지긋지긋하다며 저녁에 집을 나서버린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서혜성은 한숨조차 내뱉지 않았다.

동화 속에 그려진 가정의 형태는 모두 거짓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화다. 현실에는 존재 할 수 없기 때문에 동화에 그려졌다. 다정한 아버지와 상냥한 어머니, 사랑받는 그들의 아이. 꿈같은 이야기다.

서혜성은 자신을 바라보는 카메라를 향해 한껏 웃었다.

그려진 듯한 미소를 향해 좋아하는 반응을 새벽 늦게까지 바라봤다. 스크롤을 내리고, 캡처하고, 또 스크롤을 내리며 서혜성은 자신을 향해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는 이들을 계속 눈에 담았다.

괜찮아.

가족따위 없어도, 나를 사랑해준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

봐봐, 

카메라 앞에 계속 설 수 있다면, 무대에 오를 수 있다면 이들은 계속 자신을 사랑해 줄 것이다. 그걸로 그는 괜찮았다. 정말 괜찮았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 그것을 가질 수 있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에게 내민 기회. 서혜성은 탈락자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저사람들 보단 낫잖아. 내가? 

“피디님.”

서혜성은 웃었다.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웃어야지. 기회를 잡기 위해 웃어야지. 스마일.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Non-CP
캐릭터
#서혜성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