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x붕어빵x밴드
마스커레이드
시작은 김주용이었다.
“아!”
저마다 악기를 내려놓고 가진 짧은 휴식 시간.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모였다.
“뭐야, 왜? 무슨 일 있어?”
“무슨 일 있긴. 또 시답지 않은 일이겠지.”
다른 사람들보다 체력이 부족한 허우석은 별로 신경 쓰고 싶지도 않다며 허공에 손을 휘젓고 고개를 돌렸다. 유태희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김주용 옆으로 가서 그가 보고 있던 화면을 바라본다.
“…엥. 이게 뭐야.”
“일생일대의 진지한 고민이 생겼어.”
“이게?”
유태희는 어이없다는 듯이 화면의 스크롤을 내렸고, 그 옆에 있는 김주용은 진지한 표정을 풀어낼 줄 몰랐다. 퍼져있던 황익선이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그들의 곁으로 가서 얼굴을 밀어 넣었다.
“붕어빵… 먹는 순서?”
엥. 에에엥.
“붕어빵?”
한도윤이 의아한 듯 되묻는다. 황익선이 휴대폰을 뺏어 다시 읽어보곤 헛웃음을 내뱉는다.
“붕어빵 먹는 순서로 알아보는 심리 테스트래.”
“겨우 그런 걸로 큰 소리를 내?”
와작 구겨지는 누군가의 얼굴에도 김주용은 여전히 골똘히 고민했다.
“아니, 갑자기 내가 붕어빵을 어디서부터 먹는지 기억 안 나는 걸 어떡해. 이건 중요한 문제라고.”
“붕어빵 이야기하니까 붕어빵 먹고 싶다.”
사람이 많으니 이야기 주제는 금방 엉망으로 섞인다. 유태희가 손을 번쩍 들었다.
“붕어빵이란 자고로 머리부터 먹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래야 들고 있기도 편하고….”
“아니지, 아니지! 붕어빵이란 꼬리의 바삭한 부분부터 먹어야지. 붕어빵은 바삭함이 제일 중요하다고. 머리부터 먹으면 갓 나온 붕어빵의 바삭함이 눅눅해진단 말이야.”
“그냥 대충 처먹어….”
“지느러미부터 먹으면?”
“어째서!”
한도윤도 고민했다.
“붕어빵은 늘 그냥 집히는 대로 먹었던 것 같은데. 그걸 신경 쓰면서 먹는 사람이 있어?”
“이래서 도윤이는 안돼!”
김주용보다 더 진지해진 유태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생각을 해봐. 예를 들면 우리가 당장 1년, 2년 뒤에 엄청나게 유명해져서 인터뷰한다고 했을 때!”
“되겠냐.”
“아니, 들어보라니까. 만약에잖아!”
유태희는 전원이 꺼진 마이크를 들어 한도윤에게 내밀었다.
“아무튼! 인터뷰하시는 분이 이제 딱 물어보는 거지. ‘붕어빵은 어디서부터 드세요?’라고! 그러면 도윤이 넌 재미없게 방금처럼 대답할 거야?”
“…그러면?”
“좀 재미있는 대답을 해야 인터뷰도 재미있어질 거 아니야!”
주제가 왜 갑자기 그렇게 흐르는 걸까. 마이크를 바라보며 눈을 껌벅인다. 유태희는 몸을 돌려 마이크를 황익선에게 내민다.
“리더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흠. 매우 어렵고 고착적인 질문이군요. 자고로 생선이란 머리와 내장을 손질하고 배 쪽의…”
“그건 아니지!”
김주용이 질색이 된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붕어빵이라니까!”
“재미없었나?”
“없어! 절대!”
“애초에 인터뷰에서 붕어빵 먹는 순서를 왜 물어보는 건데.”
허우석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되묻자 그럴 수도 있는 거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마이크를 내려놓은 유태희는 김주용을 바라봤다.
“그래서 붕어빵을 어디부터 먹는다고?”
“…주변에 붕어빵 파는 곳이 있나?”
금방이라도 겉옷을 챙겨 나갈 듯한 모습이 한도윤은 생각했다. ‘이렇게 진지해질 이야기인가?’ 이따금 엉뚱하게 돌아가는 이야기 주제가 일상이라서 딱 그 정도의 감상이었다. 그래서 그도 고민했다. ‘내가 붕어빵을 어디서부터 먹더라.’
“그리고 애초에 붕어빵 먹는 순서로 좀 재미있을 거면 평범하지 않으면 되잖아.”
시선이 허우석에게 향했다. 황익선이 내려놓은 마이크를 들고 그에게 내밀었다.
“그러면 우리 보컬의 입장에서, 붕어빵을 어디서부터 먹어야 좋을까요.”
“뭐? ……구겨서 한입에 먹든가.”
“뭐~?”
“붕어빵을 구겨서 한입에?”
그게 뭐야. 황익선은 조용히 마이크를 내려두었다.
“개노잼.”
“야!”
“그래도 신박하긴 하다. 붕어빵을 구겨서 한입에라니.”
“거기다 접어서도 아니고 구긴다니. 그러다가 옆구리 터지면 어떡해. 뜨거워서 입천장 다 데겠다.”
“그게 중요한 거냐고. 한입에 들어가긴 해?”
“이 정도는 해야 논란이 될 거 아니야!”
우우우! 저마다 엄지를 뒤집어 야유를 보냈다. 이것들이! 벌떡 일어난 허우석을 피해 연습실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이들을 보며 한도윤은 생각했다.
구겨서 한입에. …구겨서 한입에.
한도윤은 질문지를 가만히 바라봤다.
[ Q. 붕어빵을 먹는다면 어느 부위부터 먹나요? ]
선명하게 적힌 글자가 왠지 장난처럼 느껴졌다. 몇 년 만에 짧아진 머리카락이 어색하다. 드러난 목덜미를 손바닥으로 쓸었다가 조용히 그 아래 답변을 적는다.
- A. 구겨서 한입에
지난 어느 날의 겨울에 묻어두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결국 연습실을 나서서 붕어빵을 쥐고 집으로 돌아가던 그 추운 날. 끝까지 어디부터 먹어야 옳다며 투덕거리던 평화로운 시간. 이제 되찾을 수 없는 그날을 회고하며 한도윤은 가벼운 마음으로 답을 적어었고, 눈을 느리게 깜박이다가 펜을 내려놓는다. 손톱 옆에 난 거스러미가 거슬린다. 바짝 깎은 손톱으로 흉터 진 곳을 긁는다. 뜯기지도 잡히지도 않은 곳을 긁어내다가 결국 핏방울이 맺혀서야 손을 멈춘다.
“…밴드가.”
있던가. 한도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서랍을 뒤진다. 포장지가 누렇게 변색될 정도로 오래된 대일밴드를 하나 찾아낸다. 연고도 없이 그 위를 밴드로 그냥 덮어버린다. 아픈 것도, 거슬리는 것도 모두 마주하고 싶지 않아 덮어놓음으로써 회피한다. 그렇게 그는 도망쳤다.
그렇게 그는 도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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