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한잔

파도

성식은창, 김성식, 정은창. 우리는 그 파도를 바라봤다.

파도

성식은창 김성식, 정은창. 김정. 동갑도시 기반

: 김성식과 정은창이 동갑입니다. 몇 년 전에 썼던 글을 퇴고하여 2023.01.14 배포전에 무료배포 하였던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낡은 기차에 몸을 맡긴다. 싸구려 시트는 조금만 앉아있어도 금방 엉덩이가 배겼다. 그게 너무 불편해서 부스럭거리며 몸을 움직이면 기다렸다는 듯이 옆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떨어졌다. 

“가만히 좀 있어.” 

분명 같은 좌석임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흐트러짐 하나 없어서, 나를 혼내는 듯한 말투에 그저 억울하기만 하다. 

기차에 올라탄 순간부터 이미 몇 번이고 듣은 말이다. 그만큼 똑같이 불평으로 대답을 반복했던 나는 이제 녀석의 잔소리에 대답하지 않는다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이번엔 입 꾹 다물고 창가로 애써 시선을 돌렸다. 한숨 소리가 들린다. 나도 모르게 움찔했지만 애써 안 그런 척 굴었다. 지겨운 풍경이 창밖으로 이어진다. 

전부 풀, 풀, 숲, 그런 것들뿐이다.

정은창은 벌써 한 시간을 넘게 창 밖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덜컹거리는 기차 안에서 울렁거리지도 않는지 그림 하나 없고, 빽빽한 글자로 채워진 책을 읽고 있는 놈과 다르게 그는 창 밖을 바라보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은창은 눈동자를 굴려 유리창에 비친 놈을 바라봤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손보다 조금 큰 크기의 책속의 자그마한 글자를 안경 너머 눈동자가 천천히 읽어간다. 눈동자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고, 옆으로 움직였다가 내려가고. 그것을 두세번 정도 반복하면 페이지가 넘어간다. 

그래, 정은창은 창 밖을 바라보는 중이 아니었다. 김성식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를 보고있으면 신기하다 못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조금 질리기도 했다. 다른 종류의 사람이다.

‘저런 걸 잘도 읽네.’

심지어 책 표지는 딱 보기에도 어렵게 생긴 단어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작가 이름도 꼬부랑이다. 만화책도 글이 많으면 읽기 싫어지는 그는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 

김성식은 정말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와는 다른 놈이다. 

정은창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도 지금 두 사람은 같은 기차에 몸을 실었고, 정은창만 모르는 곳을 향해 가고 있었다. 정은창은 유리창에 머리를 기댔다. 사실 지금 이 모든 상황이 꿈만 같았다. 긍정적인 의미는 아니었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현실감이 없었다. 기차 타기 전, 아니 그것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쭉 그런 상태였다.

 눈을 감으면 선명하게 떠오른다. 의미없는 가로등이 깜빡거리는 동네 골목길은 유독 더 어두워보였던, 달빛만이 은은했던 겨울밤. 자신은 울고 있었고 제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날은 은서를 잃은 밤이었다. 

…그래, 은서를 잃었지. 

정은창은 제 품에 있던 것을 고쳐 안았다. 얇은 천 쪼가리 안에 단단한 재질이 느껴진다. 매섭게 바람이 불던 겨울, 그는 자신의 하나뿐인 동생인 정은서를 잃었다. 

불행은 소리없이 남매에게 다가왔고, 그들의 숨통을 조였다. 모든것은 순전히 불우한 사고였다. 그리고 사고는 언제나 없는 이들에게만 일어나는 법이었다. 정은서가 정은창의 손을 꽉 잡았다. 추운 날씨에 손이 시려울 법도 한데 오빠와 손 잡는 것이 좋은 아이는 시뻘개진 손을 흔들며 해맑게 웃었다. 요 며칠간 제대로 같이 시간을 보내질 못해 늦은 시간이지만 가볍게 산책이라고 하려고 나온 길이었다. 똑닮은 남매가 서로 추워 볼이 빨개진 상태로 마주보며 웃었다.

아이는 신나서 방실방실 웃고, 어서 가자며 계속 오빠를 재촉할 땐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발걸음도 덩달아 신나 동동 구르던 발에 아이는 결국 오빠의 손을 놓고 먼저 앞으로 달려갔다. 눈을 잡을거라고 폴짝 뛰던 아이는 눈 껌벅할 사이에 저 멀리 멀어졌고 아이는 제 오빠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오빠, 빨리와!”

 웃음 서린 목소리가 부드럽게 흩어졌다. 오빠는 손을 놓쳤을 때 순간 걱정이 들었지만, 어차피 곧 다시 잡을 걸 알기에 어쩔 수 없지, 라며 천천히 아이 쪽으로 걸음을 옮기던 찰나였다. 헤드라이트도 켜지 않은 자동차가 갑자기 나타나 아이를 제대로 들이 받았다. 작은 몸이 공중에 붕 떠오르다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가로등의 불이 꺼졌다가 다시 켜졌다. 오빠는 타인의 비명을 듣기 전까지 눈앞에서 본 장면을 제대로 인식할 수 없었다. 

“은서야…?”

아이는 급하게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숨이 떠난 상태였다. 오빠는 동생을 잃었다.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쉽고 허무하게 유일한 가족을 잃었다. 불행은 불행한 자에게만 찾아온다.

 그는 혼자 남았다. 학교도, 직장도 없던 보잘 것 없는 사람. …오빠의 이름은 정은창이었다. 운전자는 음주 상태였고, 사회에선 그에게 자비로웠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었으니까. 대신 정은창의 손에 쥐어진 것은 아이의 손이 아니라 목숨값이라며 전해준 몇푼 안되는 돈 뿐이었다. 

처음엔 분노했고, 이내 실성하다 결국 눈물을 떨어트렸다. 살아오면서 그렇게 흘리지 않으려던 눈물이 쉽사리도 맺혀 볼을 타고 바닥을 적혔다. 

동생의 목숨과 맞바꾼 돈은 얼마가 되었던 도저히 쓸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쓸 수밖에 없었다. 살아생전 아이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는데 장례식마저 제대로 해주지 못한다면 은서의 가는 길이 너무 외로울 것만 같았다. 주변에서 말리는 말도 거절하고 상복을 입었다. 

그렇게 장례식이 치러졌다. 부모의 장례를 동생과 단 둘이 치뤘던 소년은 이제 혼자 빈소를 지켰다. 방문객 데면데면하게 지내던 동네 사람들뿐이었다. 열 손가락 조금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제일 작은 방, 벽 한 쪽에 세워진 은서의 사진은 너무 해맑게 웃고 있었다. 정은창은 또 다시 눈물을 떨어트렸다. 이 사진마저도 없이 치뤄질 뻔 했던 그런 초라하고 빈곤한 장례식이었다.

“…….”

이틀날, 이제 오는 사람도 없던 시간에 그가 왔다. 김성식이, 은서의 장례식장에 발을 디뎠다. 정은창은 얼떨떨한 기분으로 그가 은서에게 향을 올리는 모습을 지켜봤다. 누가 자신에게 그와 친하냐, 라고 물으면 애매한 그런 관계였다. 녀석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래. 그 전까지는 친했다고 이야기 해도 될 것 같다. 김성식에겐 아버지가 있었으나 가족은 없었다. 그래서 녀석은 늘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오는 아버지를 피해 우리 집으로 오곤 했다. 도망친 곳이 우리집이었던 이유도 특별한 이유가 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얼굴이랑 이름 좀 알던 사이였지만 우리 집에는 늦은 밤에 돌아다녀도 걱정할 어른이 없었고 혼낼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 그는 우리 집에 왔고 은서는 새로운 사람을 반겼다. 한두 해를 넘게 그렇게 보냈던 것 같다. 그때도 김성식은 우리집에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책을 구석에서 읽으며 밤을 지새웠고 나도, 은서도 그런 김성식이 익숙해질 무렵 녀석의 아버지 부고 소식을 들었고 기다렸다는 듯 발걸음이 뚝 끊겼다. 그래서 이렇게 만나는 것도 꽤 오랜만이었다. 

상당히, …오랜만이었다.

 “…왔어?”

 정은창은 붉어진 눈가를 애써 문지르며 상체를 일으켰다. 김성식은 정장을 입고 있었다. 정장 입은 모습이 매우 낯설게 느껴졌다. 녀석이 엄청난 어른으로 보이기도 했다. 상복을 입은 자신은 이렇게 어색한데, 가지런히 떨어지는 옷태가 신기했다. 김성식은 아무 말 없이 은서의 사진 앞에 국화를 내려놓고 절을 했다. 지켜보는 제 가슴이 뭉클했다. 은서가 죽었다. 그래서 김성식이 장례식장에 찾아왔다. 문장 자체가 너무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현실이었다.

“밥이라도 먹고 가.”

 방문객이 적어 남는 게 음식이었다. 장례식장 밥이 뭐 특별할 게 있겠냐마는, 김성식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보니 못 본 사이 녀석의 키가 더 자란 것 같았다. 자라기만 한 게 아니라 체격이 붙었다. 마른 건 여전하지만, 비쩍 골았던 옛날과는 확연히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래서 어른으로 보였나 보다. 

홀로 생각하며 별 없는 음식을 상 위로 내려놓았다. 정은창은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김성식이 숟가락을 움직였다.

“사고라고?”

 김성식은 밥을 반쯤 비워갈 때쯤에야 겨우 입을 열었다. 나지막한 목소리는 자신이 기억하는 것과 다르게 한차례 꺾여있었다. 아니다, 원래 이 목소리인가? 생각을 뒤로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 사고. …사고였지. 정은창의 얼굴빛이 가라앉는다. 김성식은 물을 마시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하는 정은창의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김성식은 냉장고에서 가지런히 정리된 술병을 하나 꺼내 들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반대 손에는 잔이 쥐어져 있었다.

“야, 너 술, 아직 미성년….”

“애도 아니고, 넌 한 잔만 해.”

당황해하는 목소리를 단호한 목소리가 선을 그었다. 제 앞에 놓인 잔에 정은창은 불안한 시선으로 주변을 살폈다. 뭐라 할 만한 어른은 없었다. 마치 옛날처럼. 

익숙하지 않은 알코올 향이 퍼졌다. 김성식이 익숙하게 술잔을 넘기는 걸 보고 정은창도 인상을 찌푸리며 술을 쭉 들이켰다. 처음 마시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썩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맛이었다. 목을 타고 넘어간다. 쓰린 맛이 입안에 맴돈다.

“김성식.”

“왜.”

“와줘서, 고맙다.”

“……. ”

“은서도 기뻐, 할 거야.”

 떨린다. 손이, 목소리가, 시선이 떨려온다. 겨우 한 잔 들어갔다고 취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이었다. 김성식에게서 대꾸는 없었다. 혼자 술잔을 기울이고, 그릇을 비워갔다. 금방 돌아갈 거로 생각했던 김성식은 떠나지 않았다. 기나긴 밤, 정은창의 곁에 김성식이 있었다. 

셋째 날, 날이 밝고 여전히 오는 걸음은 없었다. 이제 은서 화장을 위해 움직여야 했다. 은서의 관을 들어줄 사람이 없어 어떻게 동네 어르신 몇 분이 도와주러 걸음 했다. …은서의 사진은 김성식이 대신 들었다. 그에게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고마움이 올라왔다. 혼자일 거라 생각했던 마지막 날, 김성식 덕분에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고운 뼛가루로 겨우 한 줌의 재로 남은 은서를 보고 있으려니 눈물이 또 왈칵 터져 나왔다. 유골함을 품에 안고 흘러나오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은서, 은서야…. 은서, 오빠가, 오빠가 미안해….”

울음 섞인 목소리가 내뱉어졌다. 말 그대로 내뱉는 거였다. 품에 안고 있는 게 너무 딱딱했다. 은서였는데, 너무 딱딱했다. 김성식은 엉망으로 울어 재끼는 자신의 곁에 꿋꿋이 있어 주었다. 진이 다 빠져 진정될 무렵 납골함을 권유하는 직원의 이야기에 고개를 젓고 은서를 품에 안았다. 돌아가고 싶었다. 집으로, …은서가 없는 집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가자.”

그러던 중 김성식이 제 어깨를 잡았다. 흠칫거리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어떤 감정이 그의 얼굴에 담겨있는지 읽을 수가 없었다. 다만 제 곁에 누가 있어 준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큰 위로가 되어서, 정은창은 고개를 끄덕였다. 빌렸던 옷을 벗고 원래 입었던 옷으로 갈아입었다. 낡은 옷이 부끄러웠다. 

은서를 소중히 안고, 장례식장을 나섰다. 긴, 시간이었다. 짧고도 긴 시간이었다. 집까지 돌아가는 길은 멀었으나 차가 있는 사람은 없었고 두 사람 다 말없이 길을 걸었다. 햇빛이 쨍하고, 옆길로 차가 달렸다. 새로 닦아놓은 길에 달리는 차가 많이 보였다. 뒤늦게 생각해보면 택시를 타도 됐었는데 왜 걸었는지 모르겠다. 김성식도, 왜 옆에서 같이 걸어갔는지 모르겠다.

한 시간, 조금 더 걸어 익숙한 동네에 접어들었다. 

“진짜 고마웠다.”

낡고 낡은 동네. 곳곳에 철거 반대라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재개발 때문에 동네가 뒤숭숭했다. 정은창은 초라한 자신의 모습이 어쩐지 부끄러웠다. 김성식도 이만 돌아가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뒤를 돌았다. 그러나 그는 그럴 생각이 없이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어…. 정은창은 멍청하게 말끝을 흘린다.

“지금 네 꼴을 보고 어떻게 가냐.”

답답하다는 듯이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제집 마냥, 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래된 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헐레벌떡 집으로 들어섰다. 우리 집인데, 왜 집주인인 자신이 아니라 그가 더 당당한지. 왠지 그답기도 했다. 김성식다웠다. 정은창은 방에 은서를 내려놓았다. 집안이 서늘했다. 다시 체감했다. 은서는 이제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넌, 안 가도 돼? 학교는.”

정은창은 벽에 기대앉은 그에게 물었다. 방학 할 때인가? 자신이야 학교를 안 다니지만 그라면 아직 다니고 있을 텐데. 보통 학교 다니는 이들의 시간이라는 것은 정은창에게 있어서 낯선 개념이었기에 고개를 기울였다. 김성식의 시선이 자신을 닿았다가 낡은 벽지로 향했다.

“그만뒀어.”

“어, 뭐?”

“작년에 그만뒀어.”

“그럼 지금은,”

“일해. 왜, 궁금하냐?”

“당연히 궁금, 하지….”

궁금한가? 궁금하다고 이야기해도 괜찮은가? 자신도 긴가민가해져 고개를 기울였다가 다시 세웠다. 모르겠다. 그를 보지 못했던 몇 년간, 그에 대해 궁금했던 적이 있었나? 초반에는 왜 안 오지. 정도의 의문은 있었는데 모르겠다. 정은창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게 다 김성식 탓이었다. 

정은창은 이해할 수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의 탓이다. 

해는 금방 저물었다. 겨울이었다. 겨울은 해가 짧지. 전등이 희미한 소리를 내며 깜빡거리더니 팍하고 방을 밝혔다. 김성식을 바라본다. 자고 갈건가. 고민하다가 이불을 깔았다. 좁고 작은 집은 방이 많지도 않았다. 두 개의 이불이 아래 깔렸다. 집 안은 고요했다. 두 사람 간의 말이 아예 오가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전부 짤막한 이야기들뿐이었다. 금방 끊기는 대화, 그런 것들이 오갔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세상엔 온전히 어둠이 찾아왔다. 김성식의 눈치를 보던 정은창은 다시 불을 껐다. 

컴컴한 어둠이 시야를 가렸다. 정은창이 느리게 제 이불 위로 눕자 곧 제 옆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김성식.”

“….”

“자냐?”

괜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정은창은 팔로 눈 위를 덮었다. 은서가 없다는 사실이 불현듯 다가온다. 눈이 뜨겁다. 김성식이 잠들지 않았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지만, 속에 담아놓은 것을 어떻게든 내뱉고 싶었다. 그래서 정은창은, 입을 열었다

“그 날, 은서가 죽은 날…. 나도 같이 있었거든. 원랜 같이 손을 잡고 걸었는데 눈이 오니까 은서가 신난거야. ……그동안 같이 시간을 못 보내서 애가 많이 외로웠겠지. 정말 해맑게 웃더라. 오빠, 빨리와, 하면서.”

정은창은 코를 문질렀다.

“근데 갑자기 차가 튀어나온 거야. …고작 몇 걸음 차이 안났거든. 그 커다란 게 은서를 하늘로 붕 띄우더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은서가 높게 떠올라서… 바닥으로 떨어졌어. 뒤늦게 은서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제서야 상황이 보이더라고.”

진짜, 죽고싶더라. 

“차라리 내가 죽었어야 했는데, …내가 죽었어야 했는데. 은서의 손을 놓지 말걸. 평소에 좀 더 시간을 같이 많이 보낼 걸. 은서에게 더 빨리 갔다면 이런 일이 벌이지지 않았을텐데. …나 처음알았다. 사람이 차에 치이면 그렇게 붕 뜨는구나, 하고.”

횡설수설, 정은창은 죄책감으로 뒤덮인 말을 흘려낸다. 대꾸는 없었다. 눈물이 흘러내린다. 뜨겁다. 말은 엉망이고, 감정이 뒤섞이고, 추락한다. 정은창은 가쁜 숨을 여러 내뱉었다. 말은 계속 이어졌다. 외로웠어. 혼자더라. 혼자가 된 게 무서웠어. …말은 계속 이어졌다. 대꾸는 없다. 한참 이어지던 말이 천천히, 느려졌다. 기운이 빠진 그가 천천히 잠의 수령으로 빠져드는 신호였다.

“…김성 식. 나, ……너무,”

죽고 싶다.

침묵따라 고요함이 흘렀다. 한참을 그렇게 조용해졌을까, 김성식이 몸을 일으켰다. 눈물이 채 마르지 못한 상태로 잠이 든 녀석을 그는 내려다봤다. 죽고 싶다고 말하던 그의 말이 애달프게 들려왔다. 그것은 깊은 진심이었으며 진실한 지옥이었다. 김성식은 손끝으로 그의 눈가를 쓸었다. 축축했다. 잠든 얼굴도 우울하기 그지없다. 김성식은 짧게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계를 한번 보더니 겉옷을 챙기고 대문을 열었다. 낡은 소리다.

해도 늦게 뜨는 것이 겨울이었다. 정은창은 눈을 떴다. 눈꺼풀이 무거웠다. 겨우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익숙한 온기가 없었다. 그래, 은서는, …죽었지. 

눈을 뜰 때마다 깨닫고 마주하는 현실이었다. 방 한쪽에 은서가 보였다. 은서의, 유골함. …저건, 어떡하지. 뿌려줄까. 어디다, 뿌려야 은서에게 좋을까. 비몽사몽 잠이 덜 깬 상태로 생각을 흘리던 그는 금방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변을 살폈다. 옆은 비어있었다. 김성식은, 갔나? 고개를 기울이고 몸을 일으켰다. 창문을 열었다. 담배 냄새가 났다. 고개를 내미니 아래 김성식이 있었다. 처음 봤던 가벼운 정장 차림이었다. 담배, 시선이 머물다가 고개를 올린 그와 그대로 마주쳤다. 안 갔구나. 왠지 안심됐다.

“안 씻냐?”

“아,”

“아?”

“씨, 씻을 거야”

우리 집인데 왜 내가 눈치 보는지 모르겠다. 은서를 한번 보고 화장실로 들어가 물을 틀었다. 차가운 물에 대충 씻고 밖으로 나왔다. 따듯한 물 제대로 나오지 않는 집에 씻는 일 또한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얼얼한 피부를 수건으로 닦아내며 나오니 어느새 김성식이 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의 옆에 못 보던 짐이 있었다. 의아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어디 가?”

젖은 머리카락의 물기를 털어내며 물었다. 김성식의 시선이 제게 향한다. 뭐 때문인지 확 인상을 찌푸리며 혀를 차기에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쟤는 나만 보면 저래. 그런 부루퉁한 생각이 비쭉 튀어나왔다. 이내 고개를 돌리더니 시계를 보는 그를 눈으로 좇았다.

“빨리 준비해. 시간 많이 없어.”

“…어?”

“십, 구, 팔, ….”

“말은 해줘야 할 거 아니야!”

그렇게 버럭 외치면서도 잠옷으로 입던 것을 대충 벗고 말리던 머리는 손으로 빗어 넘기고 옷을 챙겨입었다. 준비라고 할만한 것도 없어서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준비를 한 제게 김성식은 가방을 건네주었다. 안에는 은서가 들어있었다. 가방을 품에 조심히 안았다. 은서야, 작게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김성식이 제 어깨를 툭 쳤다. 기차 시간 얼마 안 남았어. 

“기차? 무슨 기차?”

“바다.”

“…바다? 근데 왜 기차, …아 야! 같이 가!”

그런 이유였다. 김성식은 어디를, 왜 가냐는 제 물음에 답 한번 해주지 않았다. 무작정 택시에 몸을 우겨놓고 기차역에 도착해선 기차에 몸을 우겨놓고, 정신을 좀 차릴 즘에는 이미 기차가 울산을 뜨고도 오래였다. 왜 김성식을 따라왔는가. 김성식은 왜 이렇게 제멋대로 자신을 끌고 가는가. 의문이 피어올랐다. 전자는 자신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랬다. 정은창은 별로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 혼자 두지 않았으면 했다. 아침에 옆자리가 비어있다는 사실에 심장이 철렁했다 곧 김성식을 보았을 땐 안심했다. 담배, 피고 있었지. 흡연자라는 사실이 의외였다. 어울리기도 했다. 기차에 타서 안경을 쓰고 책을 읽는 모습도 의외였다. 뭐가 의외냐면 안경이었다. 눈이 나빠졌나? 물어보지는 못했다.

기차는 꽤 오랫동안 달렸다. 목적지를 이야기해주지 않았으니 정은창은 김성식의 눈치를 보며 역에 정차할 때마다 힐끔힐끔 바라봤다. 김성식은 속도 좋지, 느리게 페이지를 넘겨들었다. 할 것도 없고, 지겹고, 꾸벅꾸벅 졸다가도 자리가 불편해서 제대로 잠이 오지도 않았다. 온몸이 굳는 기분이라 괜히 가볍게 왔다 갔다 하기도 했지만 별 해결책은 아니었다. 다시 김성식의 옆자리에 궁둥이 붙이고 앉아 은서를 안아 들었다. 기차 내에서 방송이 울린다. 또 다른 역이었다. 곧 정차합니다. 어쩌고저쩌고. 그쯤 옆에서 탁 소리가 났다. 김성식이 책을 덮었다.

 “내려.”

말을 꼭 지같이 해. 짤막하게 끊어지는 말에 정은창은 입 안에서 맴도는 불만을 늘어놓으려다 한숨 푹 쉬고는 은서를 조심히 챙겼다. 덜컹거리는 기차가 느린 소리를 내며 천천히 멈췄다. 역이 낡았다. 김성식은 종이 쪼가리를 보더니 따라오라며 손짓한다.

 “내가 개도 아니고….”

 구시렁구시렁 거리는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만다. 우습게도 김성식은 힐끔 바라보는 것 외의 반응이 없었다. 한숨 푹 쉬며 결국 그 뒤를 따라갔다. 대체 뭐 때문에 저를 끌고, 은서를 데리고 이곳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또 차를 타고, 깊숙한 곳으로 들어섰다. 차가 들어갈 수 없을 때쯤 김성식은 돈을 주고 내렸다. 정은창은 시발, 내가 지금 뭐 하는 건지 계속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몰랐다. 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불안에 기반한 짜증이 올라왔다. 

품에 은서를 안고 있어 녀석을 내려칠 수 없는 게 더 짜증 났다. 짜증난 티를 좀 내려고 하면 김성식은 금방 세모나게 눈을 치켜뜨고 저를 바라봤다. 뭐, 왜. 그런 시선으로 마주 봤지만, 곧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돌리는 꼬락서니에 제 머리에 열만 뻗쳐오르지. 산을 왜 타냐고, 산을 왜. 정은창은 거친 숨을 내뱉었다. 

산 길은 다듬어져 있지도 않아 험난했다. 뻣뻣한 바지가 다리에 감겨드는 것 같았다. 빌어먹을, 내가 올라가면, 김성식 먼저 치고 만다. 다짐했다. 김성식이 발걸음을 멈추고, 담배에 불을 붙일 때쯤에야 정은창은 크게 숨을 들이쉬고 주변을 바라봤다. 산에서 조금 나와 있는 곳이었는데 시야가 딱 트여 바라보는 모습은, 절벽이었고 바다였다. 

왠지 짭조름한 공기라고 생각했더니 살면서 한 번도 여유롭게 바라본 적 없는 드넓은 바다가 시야에 가득 찼다. 땀을 식히는 바람이 불어왔다. 파도는 거세고 주변은 조용했다. 파도 소리가 들려오는 풍경에, 마음 한구석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은서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모래 먼지가 일어났다.

“야, …이젠 좀 물어보자. 여긴 왜 온 거야.”

“죽고 싶다며.”

“…뭐?”

정은창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휙 돌려 그를 바라봤다.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담배 연기가 흘러 들어왔다. 머리가 버벅거린다. 아니 생각이. 그의 말을, 이해할, 수가.

“죽고 싶다며. 그래서 데려왔지.”

“…나보고 죽으라고?”

순간 은서 뿌려줄 곳으로 데려온 줄 알고 물었던 답이, 생각 외의 답이라 정은창은 입을 뻐끔뻐끔 열었다. 은서를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 머리카락이 흐트러진다. 김성식은 꺼져가는 담배를 떨어트린다. 바닥에 닿기도 전에 바람에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담배 향이 자신이 있는 곳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바람 소리가 귀가 아프다. 얼얼할 정도로 찬 바람이다.

“같이 죽자고.”

김성식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을 돌려줬다. 

정은창의 눈가가 핑 돌았다.

“…같이, 네가 왜?”

“혼자 못 두겠으니까.”

떨리는 자신의 목소리와 비교될 정도로 덤덤한 목소리가 뚝, 뚝 떨어진다. 정은창은 김성식을 바라봤다. 김성식 역시 자신을 바라본다. 시선이 뒤섞인다. 이해하고자 그를 바라보았으나 이해할 수 없음은, 그의 의도를 모름은, …지친다.

“왜, 겁쟁이라 혼자 못 죽을 것 같아서 직접 밀어 넣어주려고?”

“내가 모르는 곳에서 네가 죽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

동문서답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같은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지 의심이 들었다. 정은창은 은서를 안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겉옷이 펄럭거린다. 휘청거리는 몸을 애써 바로 세웠다. 조금만 더 걸으면 절벽 끝이다. 떨어지기, 좋은 곳이긴 했다. 인적도 없고, 저 검은 파도가 자신을 주저 없이 집어삼키겠지

“대체, 왜…. 네가, 내가 뭔데. 같이 죽어주겠다고  말을 해?”

정은창은 소리를 질렀다.

“알면, 네가 알아?”

김성식의 시선이 정은창을 향한다.

무거운 숨을 삼키고 침묵이 맴돌았다. 파도 소리가 거세다.

“…진짜, 같이 죽어줄 거라고?”

떨리는 목소리가 답을 구한다.

“그래.”

덤덤한 목소리가 답을 놓는다.

시선이 교차하고 알 수 없는 감정이 교차한다. 정은창은 김성식을 이해할 수 없었고 김성식은 이해를 바라지 않았다. 마치 폭풍이 올 것처럼 날카로운 바람이 서로를 스쳐 간다. 정은창은 품에 안은 은서를 더 꽉 안았다. 떨리는 시선이 김성식을 본다. 

김성식은 웃는다. 

파도가 절벽에 부딪히고 깨지며 다시 바다로 흘러간다. 정은창은 걸음을 뒤로 물렀다. 절벽 끝에 더 다가갔다. 김성식이 성큼 걸음을 옮긴다. 정은창의 앞에 선다. 바람에 날아가지 못한 담배 향이 훅 느껴진다. 눈을 감았다. 정은창은 고개를 떨궜다가 다시 들었다. 김성식은 피하지 않고 그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온기 없는 은서를 쥔 손이 떨렸다.

 


파도는 사람을 삼킨다. 저 깊은 바다로 끌어내린다. 

다시 파도는 절벽에 부딪히며 깨진다. 부서진다.

암흑은 그렇게 찾아오는 법이었다.

그들이 뛰어내렸는지, 돌아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파도가 친 자리는 아무도 없었다. 

.fin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