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후(邂逅)

서재호의 집을 나선 양시백이 도장으로 돌아가는 길의 날씨는 점점 매서워질 겨울인데도 그날따라 푹하다고 해도 될 만큼 따사로웠다. 양시백이 골목길을 꺾어가며 몸을 움직이자 목에 걸린 인식표가 서로 맞물리며 짤랑 거리는 소리를 냈다.

양시백이 하고 있는 군번줄 목걸이는 오래된 물건이었다.

10년 전쯤, 직업소개소에 흘러들어갔다가 아닌 밤중의 홍두깨마냥 칼에 찔려 죽을 뻔 했을 때였다. 분명 까무룩 기절해 있었건만 양시백은 누군가에게 구해졌고, 응급실 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 누군지는 몰라도 내가 구했다는 증표처럼 군번줄 형태를 한 목걸이까지 둘러져 있는 상태였다. 병원을 나와 목숨을 구해준 은인을 찾아 나섰지만 서울에서 김 서방 찾는 꼴이었다. 그러던 중, 최재석을 만나게 되었다.

“그 사람은 관장님이었을까?”

양시백은 잠시 멈춰 선 채로 목가를 더듬어 내려가 누군가의 군번과 소속, 이름이 쓰여 있었을 인식표 겉면을 매만졌다. 최재석이 그를 구하고도 다시 만났을 때 모른 척 한 걸까?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한 차례 폭풍이 휘몰아치고 몸과 마음을 수습한 지금은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재석은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지 않았듯, 양시백에게 과거를 묻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

이제와 짐작해 보아도 모를 일이었다.

양시백은 한숨을 쉬었다. 진짜 그렇다 해도 이미 최재석을 잃은 지 오래였다. 자신을 지금의 모습으로 있을 수 있도록 격려해 준 사람, 바로잡아준 사람. 때론 엄하고, 때론 부드럽고, 때론 친구였고, 가족이 되어준 사람. 아버지가 살아있었다면 분명 최재석과 비슷했을 것이다.

“아버지, 라…….”

어머니에 대한 양시백의 기억은 오랜 시간에 무뎌져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산산조각 나 있었다. 얼굴조차 본 적 없는 아버지는 그만도 못 했다. 처참한 노릇이었다. 양시백 스스로도 그 어마어마한 차이에 쓴맛을 느꼈다. 불효자나 다름없다고 자책하며 한 걸음 걷다가 어느 순간 주춤했다.

현기증이 나는 듯 어지러웠다.

맑은 날씨가 어지러움을 배가시키는 것처럼 일그러졌다. 그 어지러움에 쓰러질락 말락 하려는 몸을 지탱하기 위해 양시백은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담벼락을 짚었고, 한숨 돌리다가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밥을 너무 부실하게 먹었나.”

총상을 입고 입원한 상태에서 영양상태는 중요했다. 병원 밥이 나오는 대로 꼬박꼬박 챙겨먹었지만 양시백 정도의 덩치라면 아무리 넉넉히 먹어두어도 모자랐다. 조금 전의 현기증은 밥 좀 먹고 쉬라는 몸의 신호일지 몰랐다. 밥은 먹어야 할 필요성을 확실히 느꼈지만 뒤의 것은 따져주기 힘든 양시백이 중얼거렸다.

“쉬고 있으면 도장은 누가 열고, 하태성은 또 누가 쫓아.”

그렇게 중얼거리며 벽에서 손을 뗐다.

“……?”

손에 닿았던 벽의 촉감은 우둘투둘하지 않고 평평했다.

양시백은 의문을 느끼며 벽에 잠시 시선을 주었다. 분명 붉은 벽돌담이었던 것 같은데, 진한 황갈색 담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잘못 안 건가 싶어 길을 둘러보았지만 벽돌담은 한참이나 더 떨어진 곳에 있었다. 잘못 본 것인지, 아니면 착각한 것인지, 익숙하지 않은 길로 들어선 것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양시백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로 하며 길을 마저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번 길을 굽이굽이 들어가고 나오고를 반복할 즈음 양시백은 조금 전 괴현상에 대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길을 잘못 들었다.’

아무리 봐도 눈에 익은 골목이나 건물의 생김새, 하다못해 그 흔한 마트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다. 양시백의 인상이 지나가던 사람도 위축시키는 것을 생각한다면 아주 힘든 일이겠지만 누구라도 사람이 있으면 붙들고 대로까지 길을 물어야 할 판이었다. 골목길을 빠져나오니 잘 닦인 길과 고급스러운 빌라며 저택이 보였다. 대체 어디까지 헤매며 들어섰는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리던 양시백은 저만치에서 누군가 벽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았다. 사람이다!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게 -어서 빨리 도장에 가고 싶었기에- 다가선 양시백이 되도록 무해하고 선량한 표정을 지으려 노력하며 입을 뗐다.

“저, 죄송한데 길 좀 물어봐도…….”

될까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양시백은 눈을 깜빡이며 자신이 말을 붙이려던 남자를 보았다. 회색 양복에 녹색 넥타이. 무스 같은 것으로 깔끔하게 넘긴 듯한 머리 스타일.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눈이 마주치면 마주친 상대를 그 자리에 옭아맬 것 같은 가공할 눈매는 조금씩은 달랐지만 전체적으로는 흡사하게, 거울을 보는 것처럼 닮아있었다. 양시백과 눈이 마주친 중년 남자는 막 불을 붙인 것으로 보이던 담배를 툭 떨어뜨렸다.

“양……시백.”

중년 남자의 턱 풀린 목소리에 양시백은 멍하니 있다가 겨우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남자가 양시백에게 손을 뻗었다.

“그…목걸이.”

양시백이 대답하지 못 하고 얼어붙어 있는 동안, 중년 남자가 넥타이를 느슨하게 하고는 셔츠 단추를 두 개 풀었다. 그리고 그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어떤 것을 바깥으로 빼냈다. 양시백이 걸고 있는 것과 꼭 같은 것이었다.

“그, 러니까…….”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일까. 양시백은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말하기가 어려웠다.

길을 헤메며 걷다가 자신과 닮은 남자를 만났다. 그 남자는 자신이 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목걸이를 하고 있다.

“아저씨가 미래의 나…같은 건…아니겠죠?”

“…….”

얼마나 멍청한 소리로 들렸을까. 양시백은 스스로 바보 멍청이! 라고 자책하면서도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말을 잇지 못 했다. 중년 남자는 무어라고 말하려는 듯 벙긋거렸지만 곧 감정을 다스린 듯 말을 이었다.

“…그래, 그렇다고 치자. 잠깐 저기 의자 있는 곳에 앉자. 앉아서…이야기 하자.”

이 이상한 만남에 양시백은 목 뒤가 쭈뼛거리는 느낌이었지만 남자가 말하는 대로 조금 떨어져 있는 작은 의자에 앉았다.

“…어떻게,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길을, 잃어서…….”

“…많이, 힘들었겠구나.”

별 것 아닌 말에 남자가 목이 메는 듯 잠시 말을 끊었다. 양시백은 이 이상한 분위기가 점차 고조되는 것이 싫었다. 이상했다. 무언가가 가슴을 뚫고 나와 넘쳐흐를 것 같았다.

“그나저나, 미래의 나는 아저씨처럼 몰라보게 출세하나 보지? 그 양복, 되게 비싸 보이는데.”

그래서 양시백은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남자가 흐릿한 얼굴로 웃었다. 왈칵 울 듯한 얼굴이었다.

“고생이 많았지.”

“역시 잘 나가려면 죽도록 고생할 수밖에 없나…….”

“앞으로도 힘들겠지만 분명 잘 해낼 거야.”

“…이제는 정말 혼자니까, 어떻게든 잘할 수밖에 없긴 하지.”

“혼자?”

“최재석 관장님이…없으니까.”

최재석, 이라는 이름은 중년 남자에게도 각별한 이름이었는지 눈에 깃든 수심이 한층 더 깊어졌다. 양시백도 가슴 한구석이 찔린 듯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남자가 양시백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네가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아저씨는, 안 외로워?”

“외로웠지. 정말 외롭고, 포기하고 싶고, 나 자신을 자책하다 죽어버릴 것 같았지만…이제, 너를 만나서 외롭지 않게 됐어.”

양시백은 남자의 말들이 때로는 자신을 향하고 때로는 남자 본인을 향한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몰랐던, 모르는 척 도리질치며 외면했던 사실이 점차 빛을 발했다. 그럴 리가 없잖아. 그리 중얼거리는데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양시백도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서로 마주 서자 같은 색의 눈동자가 거울처럼 부딪혔다.

“양시백.”

“…….”

“시백아.”

어색했다.

반가워해야 하는 걸까?

눈물이라도 흘려야 하는 걸까?

이제까지 무얼 했냐고 말해야 하는 걸까?

양시백은 무슨 연극 같은 거냐고, 몰래 카메라 같은 거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아무 말이라도 튀어나와주길 바랐는데, 간질간질하게 엉킨 감정이 목구멍에 뚜껑이라도 덮은 듯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아 말하지 못 했다. 남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 번 안아 봐도……될까?”

대답이 없자 중년 남자가 천천히 양시백을 안았다.

애타게 곱씹듯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느릿하게 귓가를 탔다.

“오랫동안 찾았어. 아주 오랫동안. 절대 너를 버린 게 아니었는데도, 찾지를 못 했어. 잘못되지는 않았을까, 내가 너무 늦은 게 아닐까…….”

“…….”

“이렇게 건강하고, 듬직하게 자란 걸 보니까…내가 지금 하려는 일이 완전히 무의미하지 않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어.”

안은 손이 천천히 풀렸다.

탄탄한 손이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한없이 부드럽고 눈물로 축축하게 젖은 얼굴. 이끌리듯 말했다.

“…아빠.”

관장님을 아버지처럼 생각한 적은 있어도 그렇게 부른 적은 없었다. 처음이었다. 아버지도 아닌 아빠라는 호칭을 입에 담는 것은 더더욱. 기억도 안 나는 어릴 때 돌아가신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였기에 지금의 순간이 너무나 어색했지만, 용기를 내어 다시 한 번 아빠, 라고 불러보았다.

너무 힘들었다고, 이제까지 어떻게 살아왔냐고 소리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 불뚝 솟았지만 곧 젖은 모래성마냥 무너졌다. 나와 닮은 얼굴로 글썽이는 걸 계속 보고 있자니 나도 왈칵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서였는지도 모른다. 고개를 저으며 혹시나 있을지 모를 눈가의 눈물을 휙 떨쳐냈다.

“…나, 스물일곱이에요.”

“그래.”

“이 목걸이…내가 죽을 뻔 했을 때 날 구해준 사람이 목걸이만 건네주고 모습을 감췄어요.”

“…그래.”

“생명의 은인이 누군지도 모르고, 목걸이를 증표로 여기면서…그 사람을 찾아 헤매다가 언젠가 내 얼굴을 보는 날이 오면 그 사람의 존재를 알 수 있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

“…그러니까, 아빠.”

목에 뜨끈한 것이 콱 걸린 듯 메여왔다. 그것을 꿀꺽 삼키고 겨우 내뱉었다.

“그때까지…포기하지 말고 계속 찾아줄래요?”

“그래……반드시 찾아서, 다시 만나야지. 내 아들이 이렇게 듬직하게 자라나는 걸 바라보며 또 살아가야지.”

“그 때까지만 다시 안녕해요.”

“다시 만나면, 꼭…안녕이라고 말하마.”

이제 가야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보내듯 짧은 말과 함께 어깨를 감쌌던 손이 옆으로 미끄러지듯 이동했다. 등 뒤를 토닥이는가 싶더니 곧 아주 살짝 밀어주었다. 뒤를 돌아보면 발이 또 다시 못 박힐 것 같아서 돌아보지 않고 그저 앞으로 나아갔다.

붙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내 의지로 머무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런 걱정이 고개를 쳐들었다. 위기에 빠지고, 구해져 낡은 목걸이를 걸기 전의 어렸던 나는.

관장님과 유상일이, 준혁 선생님이 건넨 부탁을 끝내지 못 한 나는 대체, 어떻게.

눈가를 훔치며 앞으로 나아가는데 뿌연 시야에도 주위의 배경이 일그러졌다가 단박에 펴지는 것이 보였다.

눈에 익은 골목길과, 반듯한 도로 표지판과, 후줄근해진 낮은 건물들이 눈에 보였다.

…나는 그제야 뒤를 돌아보았다.

도망치듯 걸어온 길은 죽 곧게 나 있었다. 처음부터 그랬다는 듯.

…이제 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돌아가야 하는데. 힘이 쭉 빠져버린 다리가 후들거리다가 턱 풀렸다.

마침내 오가는 사람 없는 길 한가운데에 주저앉은 나는 엉엉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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