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퀘글
-결정했어. 나, 잠입요원 일에 지원할 거야.
박근태는 그 말을 처음 들었던 날을 똑똑히 기억했다.
돈의 흐름을 따라 하나 둘씩 서울로 상경한 조폭무리는 적지 않았다. 개중에서 가장 큰 세력을 지닌 것이 바로 선진화파였다. 호랑이를 잡고 나면 호가호위하는 무리들은 금세 뿌리 뽑을 수 있을 터. 경찰의 옷으로 보기 좋게, 드러나지 않게 가렸을 뿐, 박근태는 유구하게 조직폭력을 증오했고 선진화파 역시 증오해 마지 않았다.
잠입요원 작전은 어느 정도 경력이 뒷받침 되는, 정의심과 공명심을 갖춘 인력을 투입해 내부에서 선진화파를 무너뜨리는 작전이었다. 작전은 적어도 반년, 길어도 해를 넘기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 과정에서 죽거나, 크게 다칠 수 있었다. 공을 세우고 말고는 사실 부차적인 일이었다. 권현석과 함께 짜올린 계획, 그 둘에게 큰 힘이 되어주고픈 유상일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너무나 위험했다. 이기적이라 욕해도 좋으나 박근태는 소중한 이인 유상일이 잠입요원으로 지원하지 않고 제 곁에 있어주었으면 했다. 권현석의 마음도 그와 같았다. 시간이 더 흐르면, 유상일이 뜻을 꺾지 않는다면 뒷말이 나올 것이 분명했다. 박근태는 마지막으로 유상일을 자신의 집무실로 불렀다.
***
"근태 형."
"상일이."
유상일은 조용히 문을 닫고 박근태의 앞에 섰다. 훤칠한 키, 떡 벌어진 어깨. 날카로운 듯하지만 웃으면 순하게 둥글어지는 눈매. 웃고 있는 입매. 처음 만났던 어린 아이의 모습은 드문드문 남아있는 청년이 박근태의 눈앞에 있었다.
"잠입요원으로 지원하겠다는 마음은, 여전한 건가?"
"나도 오랜 시간 생각했어. 형들이 말리는 것도 이해해. 분명 생각보다도, 상상보다도 훨씬 위험하겠지. 하지만 난 이제 경찰이 되었고, 잠입요원 작전이 아니더라도 훗날 위험한 작전에 지원해야 할 때가 올 거야. 지금 피하게 된다면, 그 훗날에도 나설 수 없게 될 거야."
"나나 현석이가 끝내 말려도 듣지 않겠군."
"맞아. 미안해. 하지만 난 믿어. 근태 형과 현석이 형이 세운 작전이잖아? 분명히, 예정대로 작전이 끝나서 복귀할 수 있을 거야. 그때까지만 잠시 이별일 거야."
후...
깊은 한숨과 함께 박근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 유상일에게 다가가 그 큰 몸을 안았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이라도..지금이라도 잘못 생각했었다고 말해줬으면 좋겠어."
"근태 형이 이렇게 먼저 안아주니까 기운이 더 나는 걸."
박근태는 탄탄한 어깨서부터 등을 훑듯이 천천히 쓰다듬었다. 적어도 반년, 길면 일 년 이상. 어쩌면 그 이상이 될 지도 모르는 사지에 유상일을 떠밀 것을 생각하니 제 팔 하나를 끊는 것 같은 슬픔이 천천히 번져나가고 있었다. 유상일 역시 박근태의 등을 세게 안았다. 긴 포옹이 끝나고 유상일은 조금 울 것 같은 얼굴로 박근태의 볼에 입술을 갖다댔다가 떼었다. 조금 긴 침묵이 끝나고 유상일은 말없이 박근태를 바라보다가 고개 숙이며 인사하고 사무실을 나갔다. 박근태는 유상일이 나간 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잠입요원 명단에 유상일을 추가했다. 결재까지 마친 서류를 봉한 뒤 박근태는 얼굴을 가리고 차마 보이지 않았던 눈물을 떨궜다.
***
옛 꿈을 꿨어. 근태 형님.
잠입요원 지원할 적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근태 형님이나 현석 형님이 뜯어 말리는데도 스스로 그 작전에 지원하겠다고 했고, 근태 형님은 조용히 날 불러서 끝까지 갈 생각이냐고 물었지. 그러더니 포기하지 않는 날 껴안고 다독여주더라. 참으로 다정했지. 참으로 다정했어. 꿈속에서 보이는 나도 사무실을 나가자마자 울지 않았을까 생각돼.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울었겠지.
감싸안았던 손은 곧 목을 조르리라. 유상일의 목을, 그리고 박근태 자신의 목을.
유상일은 벌써부터 박근태의 양손에 목을 죄이기라도 한 것처럼 발작적인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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