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뜬 양시백은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저 멀리서 면도하는 서재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전날 밤 수염 따가워요. 라고 말한 바로 다음날 아침이었다. 뭐가 그리 좋은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면도 중인 모습에 괜히 놀려주고 싶은 느낌이었다. "아저씨, 면도 자주 안 하죠?" "어허이, 무슨 그런 섭한 말을?" "볼에 닿으면 따갑다고요. 아차하면 산적 수
통통통. 노크라기보다는 주먹을 가볍게 쥐고 두드리는 놀이를 하는 것처럼 경쾌한 노크소리에 서재호는 누가 왔나 싶어 재빠르게 현관문으로 이동해 바깥을 살폈다. 양시백이었다.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야?" "요 근처 지나가다가 점심 안 먹었으면 나가서 먹자고요." "정해둔 거 있어?" "네." 양시백은 서재호보다는 고등학생인 신호진이나 문현아 쪽의 입맛에
서재호는 푸하푸하거리며 잠을 도롱도롱 자는 양시백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책상에 앉아 고개를 우측으로 돌리면 자는 얼굴이 정면으로 보였다. 컴퓨터 쪽을 보고 자면 불빛이나 열기가 느껴져서 되려 잠을 이루기 힘들지 않냐는 물음을 던진 적이 있었고, 양시백은 예전부터 늘 그래와서 괜찮다고 대답했다. 너무나도 당연해 생략되어 있었지만 그 사이에는 최재석 관장님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서재호는 잘 때 무언가를 껴안고 자곤 했다. 인형 같은 건 유년기를 벗어난 뒤로 전혀 취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은 이불이나 여분의 베개가 그 대상이었다. 혼자 자면 뭘 껴안고 자든 무슨 상관이겠냐마는, 일련의 사건 뒤에 양시백을 종종 제 집에서 재웠기 때문에 이제는 베개나 이불 대신 어김없이 양시백을 껴안은 채 잠에서 깨곤 했다
양시백이 자고 가는 날이면 서재호는 그렇잖아도 좁은 제 침대를 양시백과 같이 쓰곤 했는데 -절대 내려가서 자는 일은 없었다- 잘 자다가 난데없이 떨어지지 않으려면 틈 없이 꼭 붙어서 자야 했다. 아침 잠 없는 서재호가 이른 아침 눈을 뜨자 덥수룩한 머리카락이 잠결에 뒤엉켜 얼굴을 푹 가린 양시백의 모습이 보였다. 이젠 놀랍지도 않을 만큼 익숙했다. 서재호는
서재호는 가끔 도장 근처를 들를 때면 먹을 걸 사다가 양시백에게 챙겨주곤 했다. 식성도 좋은데 식사를 제대로 챙기지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종종 들어서였다. 어느 날 여덟시를 막 넘긴 즈음 이것저것 사서 받아둔 보조 열쇠로 잠긴 도장 문을 열고 들어온 것도 같은 이유였다. 도장 안은 적막한데다 싸늘했고, 불까지 꺼져있어서 도무지 사람 머무는 곳으론 보이지
"혜연 씨, 생일 축하해요. 이건 저랑 설희가 같이 고른 선물이에요." "고마워요. 받아도 될까요?" "언니, 대신 집에 가서 풀어보세요!" "응, 그럴게. 고마워, 설희야." 권혜연 씨는 설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겨울이 막 가실 즈음의 생일이다. 주변을 둘러싼 것들은 달라진 것이 없고 여전히 막막한 느낌이지만 그렇게 처질수록 더욱 서로를 챙겨주
시백이가 설희를 돌봤고, 주말에는 혜연이가 설희와 함께 지내곤 했다. 딱 잘라서 정한 건 아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암묵적으로 그렇게 되어있었다. 주말이라고 시백이의 일상이 확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도장을 청소하고, 부족한 잠을 자고, 고장났던 텔레비전을 얼기설기 고쳐 방송을 시청하는 정도였다. 내가 그렇듯이. 그러다 그 주말의 두세번쯤 내 집에 찾아와
양시백이를 보며 제일 먼저 하는 생각은 그것이었다. 준혁이에게 습격당한 이후 병원에서 절대안정 딱지가 붙은 채 의식을 차리지 못 하고 있다가 사건이 끝나고도 남은 한참 뒤에야 내가 함께할 수 없어 결락된 부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가 찾던 최재석 관장과의 재회, 그리고 죽음, 준혁이와 상일 형님, 박근태 의원의 최후, 하태성 경위의 일, 무사히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