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04

진단메이커 주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서재호는 잘 때 무언가를 껴안고 자곤 했다.

인형 같은 건 유년기를 벗어난 뒤로 전혀 취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은 이불이나 여분의 베개가 그 대상이었다. 혼자 자면 뭘 껴안고 자든 무슨 상관이겠냐마는, 일련의 사건 뒤에 양시백을 종종 제 집에서 재웠기 때문에 이제는 베개나 이불 대신 어김없이 양시백을 껴안은 채 잠에서 깨곤 했다. 양시백이 웅크려 자는 습관을 갖고 있기 때문인지 용케도 품에 안겨있었다. 안은 손을 조금 풀어 넉넉하게 하며 중얼거렸다.

"이젠 품안의 머리칼을 쓰다듬는 일이 익숙해져 버릴 것 같잖아. 양시백이."

곤란하다는 듯한 말이었지만 말투는 첫 끄트머리에서 반대편 끝까지 부드러웠다.

매일 머리를 감기 때문인지 손끝이며 손바닥에 닿는 감촉이 감겨들 것처럼 작게 찰랑였다. 매일 아침 이렇게 맞닿은 채로 서로의 온기를 주고받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양시백은 최재석과 함께하기 전까지는 혼자였지만 그와 함께 하며 10년이라는 세월을 혼자가 아닌 삶을 살아왔고, 서재호는 오랫동안 혼자였지만 양시백의 존재로 더 이상 혼자가 아니게 되었다. 서로 닮은 꼴 같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때때로 정반대에 위치해 있는 대극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웅..뭐라는 거에요."

"깼어?"

"...조금요."

"더 잘까?"

"...아저씨는?"

"이렇게 꼭 껴안은 채로 더 잘까 싶은데."

"더워요.."

"그러면서도 안 뿌리치네."

"..발은 추워서요."

양시백은 확실히 잠이 덜 깬 듯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잘도 대답했다. 그리고는 흐트러진 이불 아래에서 꼼지락거리더니 다리 하나를 살짝 들어 옆으로 돌아누운 채인 서재호의 다리 위에 슬쩍 걸쳤다. 어이쿠, 하고 서재호가 감탄사 섞인 가벼운 항의의 소리를 냈으나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그 다리를 흔들어 떨쳐내지는 않았다. 확실히 이불 밖에 노출되고 장시간 선풍기 바람에 닿은 다리는 얼음조각처럼 차갑지는 않았지만 맞닿아 있던 상체보다는 서늘했다. 세상에서 제일 푹 자는 방법은 에어컨 틀고 이불 덮은 채 자는 거라고 했던가. 비슷은 하네. 서재호는 제가 번번이 껴안고 가는 값이다, 생각하며 눈을 도로 감았다.

***

두 사람이 잠에서 깬 건 10시 30분을 막 넘겼을 즈음이었다.

보통은 늦은 아침 겸 점심을 준비했겠지만 창 밖의 맑은 날씨를 본 서재호는 깬 시간도 시간이니만큼 밖으로 나가 브런치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연일 긋던 비가 그쳐 구름 한 점 없이 파랗고 맑은 하늘이었다.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곧잘 찾아가는 브런치 집을 목표로 걸었다. 양시백은 부산스러운 머리를 가볍게 손빗질 하며 물었다.

"아저씨, 웬일로 밖에 나가서 먹자고 했어요?"

"라면이나 김밥 같은 거 먹는 게 물리는 날이면 남이 해준 따끈한 밥을 먹고 싶어지니까 말이야. 시백이, 브런치 집은 가봤어?"

"저흰 늘 자체 해결하는 타입이었어서."

"뭐, 거기 무한리필 부분을 선택할 수 있으니까 넉넉히 먹어두자고."

"그거 좋네요."

양시백은 특유의 송곳니를 살짝 드러내는 웃음을 지었다.

"그나저나 여름이라고 쑥쑥 자라는 건지, 관리를 안 하는 건지 나무들이 아주 울창해."

"좋지 않아요? 좀 사람 사는 도시다 싶잖아요."

"우리 시백이 머리카락처럼 울창해."

"머리 자르란 소리죠?"

"아이쿠, 들켰네."

말은 농담조였지만 문득 서재호는 그 울창한 나무들이 양시백과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

브런치 카페에 도착한 두 사람은 창가 자리에 앉을 수 있었고, 접시에 빵이며 오믈렛, 샐러드와 스프, 샌드위치를 적당히 덜었다.

서재호가 별도로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양시백이 주문한 녹차 라떼가 테이블에 올라오면서 비로소 식사가 시작되었다.

"이런 집을 아저씨 혼자만 알고 있었단 말이에요?"

"그래서 알려줄 겸 같이 왔잖아."

"인정. 용서해 드릴게요."

서재호는 킥킥 웃으며 빵을 뜯어먹었다.

양시백은 먹는 속도가 빨랐지만 빈 속에 첫 끼이고 하니 조심스레 빵을 찢어 스프에 찍어 먹고, 숟가락으로 오믈렛을 한입 크기로 잘라 입에 털어넣기도 했고, 샐러드를 콕콕 찢어먹기도 했다. 한 젓가락에 라면 반 개 분량이 사라지는 마술을 보았던 서재호로서는 놀라울 따름이었다. 서재호 역시 스크램블 에그를 푹푹 떠먹으며 양시백이 먹는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빤히 봐요?"

"복스럽게 잘 먹는다 싶어서. 잘 먹는 사람을 좋아하거든."

"켈룩."

"아니 그렇게 반응하면 아저씨 마음에 스크래치가 쫙 가잖아."

"시, 싫어서 그런 거 아니거든요!"

"아니 그럼 좋아서? 흐흥, 양시백이, 부끄러워하는 얼굴도 귀엽네."

"좋아하는 거 다 아시잖아요."

"미안해 솔직하지 못 한 내가~♬"

양시백은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부르는 서재호의 모습에 웃어버리는 것으로 분위기를 무마했다.

"아저씨야말로 너무 듬성듬성 먹는 거 아니에요?"

"나도 자네처럼 느긋~하게 먹고 있으니 너무 걱정 말라고."

"밥맛 없는데 저 때문에 여기까지 왔나 했거든요."

"저녁 시간대라면 고려해 봤겠지만 아침은 나도 무리라서."

"거 다행이네요."

서재호는 첫번째 접시를 비운 뒤 잠시 턱을 괴다가 말했다.

"시백이."

"왜요?"

"오면서, 나무 얘기를 했었잖아. 울창하다느니."

"그랬죠."

"나는 우리 시백이가 꼭 나무 같아."

양시백은 놀리는 거죠, 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마주하는 서재호의 금빛 섞인 눈동자가 부드러워서, 한편으로는 어딘가 쓸쓸함도 담고 있는 것 같아서 우스갯소리라면 그만 하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서였다. 포크를 꾹 쥔 채로 양시백은 서재호의 얼굴과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가끔 걱정하기도 했었어. 다 그렇듯 나무처럼 시들어 버리면 어떡하나. 그럼 나는 또 어떡하나."

또.

제 기억 속 가을을 닮은 남자를 떠올린 서재호는 먹고 있는 음식의 맛과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쓴맛을 느꼈다.

쓴웃음 짓는 것도 잠시 표정은 다시 부드러워졌다.

"그런데 양시백이를 자꾸자꾸 보고 있으면, 우리 시백이가 시들 걱정은 필요하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밟히고, 뭉개져도, 제 색을 잃지 않을 것 같아서. 늘 푸르를 것 같아서. 영원히 시들지 않는 나무가 될 것 같아서, 나는 아주 안심이야."

양시백은 서재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포크를 쥔 손을 들어 제 접시 위에 노릇노릇 구워진 소시지를 푹 찌르고는 말했다.

"..다, 다시 고백받는 기분 들었던 거, 알아요?"

"그냥. 그렇다는 거였어."

서재호가 빙그레 웃자 양시백은 포크를 입으로 가져가 소시지를 와득와득 씹었다.

서재호는 제 빈 그릇을 다시 채우러 일어나면서 양시백에게 물었다.

"밥 잘 먹고 나서 오늘은 하루 종일 데이트나 할까?"

양시백은 다 씹어 삼키지 않아 동그란 볼을 우물우물거리는 채로 고개를 위아래로 붕붕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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