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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도3 이후 태성시백 날조글

토요일이면 이른 오전에 빠른 아침을 마치고 집안일에 뛰어들었다. 지금이야 방학이니 주말에도 쉴 수 있는 것이겠지만, 아이들이 개학하고 나면 이 여유도 사라질 게 분명했다. 다행히 둘 다 아침잠이 없어서 일어나는데 용을 쓸 필요는 없었다. 외려 하태성이 더 일찍 일어나서 아침 준비를 할 때가 있어서 경찰 일을 할 때도 저렇게 부지런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일어났습니까?"

"응."

누가 보면 초면이거나 안 친한 사이인 줄 알겠다.

혼자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여전히 존댓말인 하태성 탓도 있었다. 같이 지낸 시간도 석 달이 넘어가는데 어디 하나 느슨해지는 것이 없었다. 물론 그게 나쁜 건 아니었다. 빠릿빠릿하고, 부지런하고, 없는 살림 알뜰살뜰하게 꾸리기까지. 적어도 나보다는 생활력이 강한 것은 틀림없어 보였다. 아침 식사는 별 것 없었다. 라면이 아닌 쌀밥과 가게에서 적당히 사온 반찬. 가끔 여기에 비엔나 소시지라거나 스팸 같은 것, 정말 어쩌다 고기반찬이 올라올 때가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하태성은 식사량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나랑 관장님이 먹는 게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엄청난 점도 있었지만.)

"밥 먹고 빨래나 하자."

"네. 청소는 어제 끝냈으니까요."

"되게 익숙해 보이네."

"어머니랑 살 때도 비슷했거든요."

"사람 사는 거 다 비슷하네."

"둘이서 산다는 게 그렇죠."

내가 먹은 것들을 설거지를 하는 동안 하태성이 식사 전 미리 돌려둔 세탁기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도장 안쪽에서 빨랫줄과 옷걸이, 빨래집게를 꺼내는 듯 부산히 움직였다. 물기를 닦고 나오니 빨랫줄 몇 개가 팽팽히 매어져있었고, 창문은 블라인드가 살짝 내려온 채로 열려있었다. 내 몫의 빨래 바구니를 골라 팡팡 소리나게 털어낸 뒤 반듯하게 옷걸이에 걸었다. 하태성은 이마저도 소리가 작았다. 얼굴 잘생겼어, 머리 좋아, 직업은 살짝 불투명해졌지만 전직 경찰에, 집안일도 잘해 일등은 아니고 이등 신랑감은 될지 모른다.

"..양시백 씨. 제 얼굴에 뭐 묻었습니까?"

"잘생김."

하태성은 빨래를 널던 것을 멈추고 내 쪽을 보았다. 이상하다는 눈빛이었다. 평소에 잘 받아줬잖아! 왜! 하는 생각을 하며 딴청을 부렸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 때면 빨래나 청소를 더 자주 했기 때문에 빨래 바구니에는 양말만이 남아있었다. 반은 자연 건조하고 반은 드라이기로 급속 건조. 언제부터였는지, 왜인지는 기억도 안 났지만 그러는 것에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내가 나머지 반을 빨랫줄에 걸고 오니 하태성이 드라이기를 붕붕 돌리고 있었다. 그 옆에 앉아서 하태성의 옆얼굴을 살폈다.

"오늘따라 되게 귀여워 보이네."

"뭐 잘못 먹었습니까? 아까부터."

"아니 그냥, 나보다 형인 사람이 양말 말리려고 드라이기 돌리는 게 왠지 쓸데없이 그런 생각이 들어서."

"얼굴 값 하는가 보죠."

"와..농담하는 거 처음 듣는 거 알아? 그런 농담도 할 줄 아네."

"당신한테 배웠어요."

"기억 안 나는데..내가 언제 또 그런 농담을 했었어?"

"지금요."

하태성은 키들키들거리며 웃었다. 같이 살게 되면서 좋은 점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저렇게 농담도 하고 미소가 아닌 웃음도 지을 수 있게 된 게 아닐까 싶다. 예전에 곧잘 보았던 서늘함은 요즘에 보이지 않았다. 답잖은 농담 받아치기에 한 박자 늦게 낯이 뜨거워졌다.

"어유, 내가 다 부끄럽네."

"양시백 씨도 귀엽습니다."

"으잉?"

"가끔 예상 외로 치고 들어오거든요."

"누가 할 소리래."

딸깍, 드라이기의 버튼 눌리는 소리가 크게도 들렸다.

하태성은 잠시 드라이기를 내려놓고는 고개를 쑥 내밀어 내 볼에 뽀뽀했다.

"참 잘했어요."

대체 어디가 뽀뽀할 타이밍이었지? 진심으로 궁금했지만 하태성은 다시금 드라이기를 쥐어 양말을 말리기 시작했다.

어쩐지 저 녀석도 부끄러워하는 게 보고 싶어 좀 더 뻔뻔하고 닭살 돋는 멘트를 던져보기로 했다. 옆으로 몸을 찰싹 붙이며 숙인 귓가에 물었다.

"야아, 하태성. 나한테 두 번째로 반했냐?"

"아마도요."

이 놈은 진짜다, 진짜야.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는 동안 하태성이 고개를 슬쩍 돌렸다.

콧등에 숨이 스치고 입술은 닿을락 말락한 거리였다.

"양말 말리지 말까요?"

하태성은 이제 보지도 않고 드라이기의 코드를 잡아당겨 빼더니 내 목을 감싸듯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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