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퀘글

"젠~장할, 눈 오는 빨간날 크리스마스면 뭐하냐고! 나 혼자인데."

"야, 주! 네 목소리 복도 끝까지 다 들린다!"

"뭐야 촐싹이 아냐."

"얌마, 내가 한 촐싹 하는 건 맞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서 촐싹이라고 부르면 섭하다고."

"내참, 그럼 뭐라고 불러줘?"

"네가 성 따서 주, 하고 불리는 것처럼 나도 '소' 나 '소 형' 쯤은 되지?"

"됐네요. 여튼. 소완국이. 너는 왜 본거지에 콕 박혀있는데?"

"상일이 녀석은 가족, 재석이하고 은창이 녀석은 선약이 잡혀 있어서 영 동떨어져 버렸지 뭐야."

"발 넓어보이더니?"

"넌 발 넓어서 지금 혼자냐?"

말을 말자. 주정재는 정은창의 '소완국과 대화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복장이 터진다' 고 했던 말을 떠올리고 한숨을 폭 쉬었다. 하필 남아도 꼭...그렇게 생각하는 줄 아는 지, 모르는 지 소완국이 빙글거리며 웃다가 말했다.

"거 보아하니 주도 크리스마스에 쓸쓸하게 옆구리 시려 보이는데 나랑 같이 술이나 마시러 갈래?"

"내참, 난 남자는 안 받아!"

"치, 은쫭이랑 먹으러 가는 거 내가 봤거든? 나랑 안 먹어본 것도 아니면서 그러네."

"그야 정은창이 있으면 그 녀석한테 치대니까 내가 그 가공할 입담을 감당할 필요가 없잖아."

"누가 들으면 3일 밤낮을 떠드는 놈으로 알겠네. 자, 그럼 적당히 할 테니 가자고."

"아 누가 간다고나..."

"형님이 쏜다."

"정재 갑니다."

참고로, 둘은 동갑이었다.

***

"여기 소주 세 병이랑 짬뽕이랑 오뎅국이랑 해물볶음이랑 떡볶이랑 튀김요!"

"야..너무 많이 시키는 거 아니냐?"

"술 먹다 보면 꿀떡꿀떡 잘만 들어가니까 걱정마. 정 안 되면 싸가면 돼."

익숙하고 여유있게 주문을 마친 소완국은 소주와 오뎅국이 먼저 나오자 병을 쥐어 살짝 흔들고는 팔꿈치로 병 뒤를 콕콕 찍었다. 언제봐도 느끼는 거였지만 소완국은 속칭 끼 부리는 게 장난이 아니었다.

"자, 소완국 특제 부드러운 소주맛 첫 잔을 받아라!"

"어유, 소맥말면 기절하겠네."

주정재는 잔을 받은 뒤 소주병을 받아들어 소완국의 빈 잔에 따랐다.

혼자 마시는 것보단 확실히 덜 적적한 밤이었다. 크리스마스 밤이라는 것만 빼면.

"건배!"

주정재와는 달리 소완국은 혼자 있어도 마냥 쾌활할 것 같은 분이기였지만.

"근데 솔직히 말해서, 깡패놈이랑 어울려주는 여자가 있긴 하냐?"

"..깜빡이 켜고 들어와라, 엉?"

"아니, 그렇잖아. 둘 다 나름 선진화파에서 먹은 짬밥이 얼만데 돈 주는 거 받고 나갈 거야? 아니잖아. 근데 어떤 여자가 조직폭력배 좋다고 하겠어."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

"그냥. 시간 되는 날엔 이렇게 술이나 짠! 하고 먹자는 거지."

"별...난 나 좋다는 여자 찾아갈 거네요."

"여자 만날 시간은 있냐..."

은근히 정곡 콕콕 찌르는 게 정은창이를 닮았다.

한솥밥을 저보다는 자주 먹었을 테니 마냥 이상할 것도 아니었지만 주정재는 괜히 삐죽 짜증이 솟는 것을 느꼈다.

"체, 너라면 얼굴도 곱상하니 남자라도 좋다고 하겠지만 말이다."

"호, 그래? 주는 어떤데?"

"픕..!"

"뭐, 엔조이라면 나쁘진 않지."

"술맛 떨어지게시리."

"헹, 이 형님한테 반하지나 마라."

"동갑이면서 얼어죽을 형님을 무슨..."

"비록 생일날은 같지만 내 쪽이 좀 더 어른스러우니까 말이지."

소완국의 옅은 색 머리카락과 또렷한 눈빛은 주정재로 하여금 전혀 다른 누군가를 생각나게 했다. 그게 짜증나면서도 아주 조금은 반가웠다.

"아, 좋아. 좋다고. 술에 잔뜩 취해버리면 될 거 아냐."

"좋았어, 한 번 코가 비뚤어지게 마셔보자고."

마침 소완국이 주문했던 안주들이 착착 플라스틱 테이블 위로 배달되었다.

***

"여, 은쫭!"

"왔냐...."

크리스마스 다음날에야 돌아온 정은창은 휴게실에서 마치 밤샘한 것처럼 초췌해 보이는 주정재와 소완국을 보고는 짧게 말했다.

"빨간 날이라고 엄청나게들 퍼마셨냐..?"

"아, 그렇지..."

"너무 그러지 마. 나름 거사를 끝마쳐서 기운들 없으니까."

"무슨 거사? 도박이라도 했어?"

"아니, 우리 사귀기로 했거든."

사랑에 제한을 두지 않는 열린선진화파~

같은 멘트가 정은창의 머리를 휙 스치고 지나갔다. 말한 사람이 하필 소완국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진위여부나 단어 선택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 정은창이 주정재를 보며 물었다.

"사실이냐?"

"아 몰라. 엔조이야, 엔조이."

"정재, 적어도 비즈니스~ 라고 해 줄래?"

"...완전 콩가루 같은데."

"뭐, 난 상관없어. 조폭 놈들이 그런 거 따져서 뭐해. 정재! 그럼 난 내 방에서 쉴 테니까 뭔 일 있으면 내선 전화 떄려~"

안녕! 하며 윙크까지 찡긋하고 간 소완국은 방을 나섰고, 정은창은 그 사라지는 폼을 망연하게 보다가 주정재를 보았다.

"......"

"......"

"어...파이팅..."

주정재는 딴청을 피웠고, 정은창은 이해하기를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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