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퀘글

벚꽃놀이 가는 생존조

-여, 시백이랑 혜연이. 같이 있어?

"네. 설희랑 도장에서 놀아주고 있어요. 이쪽으로 오시게요?"

-아니. 지금 가봤자 거기서 자고 올 거 아니면 왕복이 피장파장이라서. 주말 동안은 설희와 보내기로 했을 테니 내일까지 쭉 있을 테고...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아, 아니, 괜찮으면 다 같이 맛있는 거 싸들고 꽃놀이 가자는 거지. 다들 가고 싶어했잖아?

양시백은 꽃놀이에 그리 목 맬 만큼 관심이 있진 않았으나 -느긋하게 도장을 비우고 꽃놀이를 간 적이 그리 많진 않았다- 권유를 거절할 정도는 아니었다. 양시백은 홍설희와 놀고 있는 권혜연에게 물었다.

"권혜연 씨, 재호 아저씨가 내일 꽃놀이 가자고 하는데, 괜찮아요?"

"괜찮아요. 근데 서울에서 벚꽃 좀 피었다는 곳은 사람들이 몰릴 텐데 괜찮을까요?"

-아, 그건 걱정하지 말라 전해줘. 이래봬도 조용한 곳으로 봐둔 곳이 있으니까.

"..어디 이상한 샛길 이런데로 새는 거 아니죠?"

-자넨 가끔 날 너무 불신해.

"농담이에요. 그럼 먹을 거는 대충 도시락들 사 가면 될까요?"

-다들 준비할 짬 없으니 그래야지. 나도 가는 길에 이것저것 사 갈 테니까, 너희쪽에서도 나름대로 사 오도록 해. 설희도 좋아하는 과자랑 간식 같은 걸 사게 해 주고. 그럼 내가 차로 오전 9시까지 데리러 갈 테니, 너무 늦게 자지는 말고.

"알았어요. 근데 아저씨, 차 없잖.."

그러나 말을 맺기도 전 서재호가 전화를 끊었고, 양시백은 의문점에 대해 다시 걸어 확인해 볼까 하다가 무슨 생각이 있어 그러는 거겠지, 하며 권혜연에게 자신이 들은 것을 전해주었다.

"설희야, 재호 아저씨가 벚꽃 구경 가자고 하시네?"

"정말요?"

"농담이야."

"권혜연 씨.."

"농담의 농담. 재호 아저씨도 이거저거 준비하실 것 같은데 조오기, 시백 오빠랑 언니랑 같이 편의점 가서 살 거 없는지 봐볼까?"

"네! 좋아요!"

농담의 농담 부분에서 시무룩해했던 홍설희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시간이 늦지 않았더라면 슈퍼로 갔겠지만 시간이 열시쯤 되다보니 슈퍼 아주머니가 장사를 접은 지 오래였다. 코앞이긴 했지만 겨울 바람은 아직 차가웠다. 바로 앞인 편의점에 들어간 양시백은 설희에게 먹고 싶은 과자를 고르라고 이야기했고, 권혜연과 함께 음료수와 간식거리를 살펴보았다.

"음료수는 한 두 병쯤이면 될 거 같고..이것도, 저것도, 요것도.."

"양시백 씨..."

"..좀 덜어야 할까요?"

"더세요."

"네..."

시무룩해하며 적당히 덜고 있는 가운데 -양시백의 먹성과 손을 생각하면 적당히였지만, 일반인 기준으로는 꽤 많았다- 홍설희가 고른 과자들을 계산대에 올려놓았고, 권혜연은 쭉 둘러보고는 오케이 사인을 띄워보였다.

"자, 그럼, 철수!"

"철수!"

"철수우..."

양시백은 꽤 묵직한 짐을 제가 들기로 했다. 도장에 들어온 뒤 권혜연은 홍설희를 재운 뒤 양시백이 짐을 정리하는 것을 도운 뒤에야 내일은 약속한 시간에 꼭 맞춰 오겠다며 인사를 하고 늦은 귀가길에 올랐다.

***

7시. 칼 같은 기상은 최재석이 몸으로 체득하게 해 준 것이었다. 벌떡 일어나 정신을 차리고 씻기까지 완료한 양시백은 옷을 갈아입은 뒤 시간을 체크했다. 30분 정도. 홍설희를 깨울까, 했지만 약속한 시간은 9시였던 만큼 8시에 깨우기로 하고 냉장고를 체크했다. 음료수와 간식은 그대로 두고 과자류만 먼저 꺼내 봉투에 차곡차곡 넣었다. 그 다음에는 창문을 조금 열어 환기를 시키고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다가 텔레비전을 켜서 아침 프로그램을 보았다.

8시가 된 뒤 홍설희를 깨우고 입을 옷을 준비했다.

막 씻은 보송보송한 얼굴로 다가온 홍설희는 이 옷 어때? 하는 양시백의 물음에 제가 고를게요, 하고 답한 뒤 옷을 골라 관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나...패션 감각 같은 거 없는 걸까?"

"뭘 그렇게 중얼거려요?"

"깜딱이야!"

"우와, 깜짝 놀랬잖아요!"

"마찬가지거든요!"

권혜연은 뾰로통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래로 갈수록 넓게 퍼지는 A라인 셔츠에 딱 맞는 바지는 겨울에 보았던 옷차림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양시백 역시 따사로운 봄날씨에 맞춰 -옷을 정리하다보니 봄옷은 얼추 있었던 덕분에- 얇은 티셔츠에 물이 살짝 빠진 청바지, 얇은 가디건을 걸치고 있었다. 도복에 비하면 심플했다.

"언니, 안녕하세요."

"설희, 새 옷 입었구나?"

"정말 예쁘다, 설희야."

개나리 꽃을 닮은 생기 있는 노란빛 원피스는 꽃잎처럼 하늘거렸고, 밝은 색깔이 새 옷을 입은 아이의 얼굴을 더욱 활기차보이게 했다.

9시에 가까워지면서 양시백은 음료수와 다른 냉장 간식들을 꺼내 챙긴 뒤 서재호에게 연락했으나, 통 전화를 받지 않았다. 늦는 거 아냐? 하고 생각하는 사이 바깥에서 자동차가 멈춰서는 소리가 들리고, 도장 문이 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열렸다.

"내가 늦을까봐 연락한 게야? 이래봬도 시간엄수에 엄격하다고."

"알았어요. 딱 맞춰서 잘 오셨어요."

"그나저나 재호 씨, 차는 어디서 빌려오신 거에요?"

"아, 친구 녀석에게 잠깐 빌렸지."

과자와 음료, 도시락 같은 것을 트렁크에 실은 뒤 양시백이 조수석, 권혜연이 홍설희와 함께 뒷좌석에 앉았다.

"그럼, 출발하자고."

***

서울을 아예 벗어나는 건 아니지만 외곽까지는 달려야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양시백은 멀미 방지 겸 빈 속을 달래기 위해 작은 비닐봉투에 챙겨둔 삶은 달걀이며 소시지 같은 간식들을 나눠주었다. -운전중인 서재호에게는 먹여줬다- 도로가에도 벚꽃나무가 심겨진 곳이 많아 맑은 하늘 아래 분홍색 꽃무더기가 물감을 낭자하게 흩뿌린 듯 커다란 한 줄로 보였다.

-찌든 얼굴이~ 이젠 익숙해~

카 오디오에서 다른 곡을 선택한 양시백이 차창 너머를 보며 말했다.

"이렇게 보기만 해도 예쁜데 천천히 보면 더 예쁘겠죠?"

"그렇겠지. 설희는? 자나?"

"안 자요."

"아저씨는 졸려.."

"...제가 운전할까요?"

"아뇨, 양시백 씨, 제가..."

"...농담도 못 해요, 농담도."

"농담할 걸 하셔야죠, 설희도 있는데."

"그나저사 아저씨, 얼마나 가야하는 거에요?"

"조금만 더 가면 돼."

차가 북적북적하던 도로변에서 꽤 한적한 곳에 이르자 소리부터 조금씩 가셨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길이 아니라 사람이 많이 다녀서 만들어진 것 같은 흙길이 보였다. 서재호는 그 길 옆에 난 주차 공간에 차를 댔다.

"자, 여기서 내려서 올라가면 돼. 여기까지 벚꽃 미친 거 보이지? 짐들 싸자고."

"자, 설희는 언니 손 잡고."

"얼추 도착했네요. 으쌰."

서재호와 양시백, 권혜연은 각각 짐을 나눠들고 흙길을 걸었다. 막 부푼 팝콘같이 뽀얀 벚꽃이 점점이 보이다가, 어느 지점을 지나자 중간에 막혀있었다는 듯 반기는 벚꽃무리가 휘장처럼 두 갈래로 나뉘어 사방에 펼쳐져있었다.

하늘거리는 떨어지는 분홍 꽃잎.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 듯한 고요함. 조용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벚꽃무리는 사람들과 뒤섞여 보는 것과는 아주 달랐다. 서재호는 아주 큰 왕벚나무 아래를 점찍어뒀다며 큼지막한 돗자리를 펼치고는 자신이 든 짐으로 한쪽 모서리를 고정시키듯 내려놓았다. 권혜연과 양시백도 제가 든 짐을 돗자리의 모서리에 내려놓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그들은 본격적인 꽃구경 전에 아침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권혜연은 편의점 도시락 외에도 오는 길에 김밥을 사 왔다며 펼쳐보였다.

"권혜연 씨 덕분에 봄소풍 온 기분이네요. 그나저나 아저씨, 이런 명당은 어떻게 알았대요?"

"기자일 하다보면 아는 게 많아지니까 말이지. 좀 외지기도 하고, 산이랑 이어져 있지만 산쪽에서 오기는 좀 힘든 쪽이라서. 밥 먹고 꽃 구경하면서 시간 긋기에는 나쁘지 않을 걸."

"최고에요."

"최고에요, 재호 아저씨."

"끝까지 재호 오빠라고는 안 해주는구만..."

왕벚나무라는 이름처럼 꽤 큰 나무의 끝에서 벚꽃이 소복소복 떨어지고 있었고, 그 중 하나가 양시백의 코끝에 내려앉았다.

"푸헷취!"

커다란 재채기 소리와 위로 밀려났다가 저만치 아래를 향하며 날아가는 꽃잎. 양시백에게 시선을 집중한 세 사람은 각자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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