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711

오미정 생축글

상일 경위님은 내 도움을 필요로 한다고 하셨다. 직접 찾아오시기까지 아직 시간이 있었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도울지, 돕지 않을지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이미 전자로 결론을 둔 상태였고, 그것은 변함이 없으리라.

생각해야 할 것은 앞의 것과는 다른 문제였지만, 가장 본질적인 문제였다.

나는 상일 경위님을 사랑하고 있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대체 어느 순간을 기준으로 그 마음에 불이 붙은 것인가 생각해 내야할 의무감이 갑작스레 들었기 때문이었다. 전에라면 품지 않았을 의문 자체의 발생 때문에 솔직히 혼란스러웠다. 이런 어중간한 마음으로는 제대로 도울 수 없다. 대답을 미룬 채 어찌어찌 돕는다 해도 결정적인 순간, 혹은 언제고 방해하는 자가 나타나 내 앞을 막아선 순간에 치명적으로 작용하리라. 그래서는 안된다.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상일 경위님을 돕기 위해서라도,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감정의 원인을 똑바로 판단하고 직시해야 했다.

진정 사랑한 순간은 짧았을지 모른다. 꽃이 피었다 지는 덧없는 기간에 피어난 사랑들을 무시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상일 경위님은 혜성 같이 나타나 오랜 작전을 마무리짓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다른 잠입요원들과는 달리 빠른 신분 전환 수속 이후 팀에 합류했다. 외모 또한 호감을 갖기에 충분했지만 어느 것에 진중히 몰두하고, 한결같은 의리와 가족애에 대한 것 또한 내가 쭉 바라고 있던 것, 즉 이상에 닿아있었다. 처음에는 그 이상을 겹쳐보며 호감을 가졌였다.

불꽃같이 타오르는 사랑을 하고 싶다고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 당시에는 아마도 좋은 의미로, 정열적이고 화려하게 타오르는 붉은 장미와 이미지를 연결시킨 듯 했지만, 본디 불꽃은 사람들에게 있어 후자의 의미로만 받아들여지곤 했다.

-나의 불꽃으로 그 분을 가두고, 태우는 상상.

고개를 저었다.

***

-당신은..이용당한 겁니다. 그리고 동시에 약해진 선배를 이용한 겁니다.

배준혁. 양반.

전부터 약간의 꺼림칙함을 품게 하는 남자였다. 때때로 한 발 늦은 듯이 반응하면서, 놀랍게도 정곡을 찌르거나 할 말을 잃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는 그 거부감이 반발로 치환되어 있었다. 그러나 내가 변한 만큼, 양반은 정곡을 날카롭게 찌르는 그 점을 더욱 갈고 닦은 듯 목구멍까지 차오른 반발감으로도 한 마디의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이용?"

그 말은 틀렸다. 엄연히 쌍방의 합의 하에 이루어진 활동으로 내가 경위님께 협력하고 있다는 것이 옳다.

아니, 이용이어도 상관없다. 이용당한다 해도 기꺼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에 왈가왈부 할 수 있는 건 당사자인 나와 상일 경위님 뿐이다.

그 외의 타인이 그렇게 말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쏘아붙일 말도, 지금 떠올리는 생각도, 뒤늦은 방문자들이 떠난 뒤에야 구체화 되어있었다. 한심했다. 완전히 정리해내고 잘라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나는 그렇게 하지 못 한 건가.

뒤로 묶여있는 것을 풀어내기 위해 손을 이리저리 꺾듯이 뒤틀었다. 옷가지로 얽힌 매듭이 약간의 틈을 보이며 늘어난듯이 덜렁거리기 시작했다.

손목이며 팔이 뻐근했지만 오래지 않아 묶인 것을 풀 수 있었다. 그 옷가지를 모조리 집어다 카운터 아래에 쳐박았다.

그 분이 부탁하신 것이 있다.

나는 그것을 이루어 드릴 것이다.

그리고 그 분의 곁에 있을 것이다.

상일 경위님을 위한 마음과

내 개인을 위한 마음의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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