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퀘글

단편 1-3 이후 재호미정

"저기, 미정 형사."

"왜요?"

"나랑, 데이트 해 주지 않겠어?"

"...데이트요?"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서 밖으로 불러낸 서재호의 말에 오미정은 눈을 날카롭게 빛냈다. 전에 있었던 일로 기분이 몹시 상한 터라, 업무에 관련된 것이 아니면 사소한 말도 잘 안 붙였다. 대놓고 혹한의 바람이 부니 다른 팀원들도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밖에 없었지만 묻지는 않았다. 그녀에게 있어 단순히 사과로 화가 풀릴 만한 것이 아니었지만 언제까지고 찬바람을 쌩쌩 불러 일으킬 수도 없는 일이었다. 시간만이 약이라고 생각하던 참에 말을 걸어오는 것에 또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냐는 투로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음, 말이 좀...이상하네. 그게, 그러니까..지난번에 오 형사의 기분을 내가 생각하지 못 했던 것 같아서. 사과하고 싶어. 그 날 내가 해 주지 못 했던 걸 하고 싶어."

"아빠랑은 안 만나기로 했는데요? 데이트 할 만큼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잖아요?"

"꼭 데이트가 아니더라도, 하루 동안 날 짐꾼처럼 열심히 부려먹는 건 어때? 혼자 가 보지 못 했던 곳도 가고, 맛있는 저녁도 뜯어먹고 말야."

사내 연애, 정확히는 팀내에서의 연애는 관심이 없다고 누누히 말한 게 서재호였다. (그 증거로 오미정이 교통과나 다른 과에 속한 여 형사들이나 순경들의 소개팅 이야기를 하면 흥미를 곧잘 보이곤 했다.) 비록 연기라고는 하나 오미정의 가짜 애인 행세 제안을 받아들였던 것, 받아들인 것에 그녀의 억지가 작용한 것도 분명했기에 오미정은 서재호가 익숙하지 않은 게 분명해 보이는 데이트 제의에 조금은 마음이 누그러졌다.

"좋아요."

"정말 고마워! 내가 그 날은 정말 잘 할게!"

***

데이트라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남녀가 황금같은 주말에 만나 시간을 보내는 게 통상적인 데이트의 의미였다. 모처럼 입을 기회를 노리던 새 원피스에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내리곤 서 형사를 기다렸다. 약속 시간에 딱 맞추어 나올수도 있었지만 지난번에 서 형사가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었던 걸 생각해서였다.

"이번에도 그 부스스한 꼴로 나오는 건 아니겠지?"

정말 잘 한다는 말을 믿음과 동시에 일 할 때의 자신 못지 않게 꾸미고 다니는 모습을 잘 알고 있기에 가정을 아예 떨칠 수 없었다.

반신반의한 생각을 고개를 저어 흩어버렸다.

"미안해, 많이 기다렸어?"

"......"

"왜, 왜? 시간에 너무 딱 맞춰 와서 화났어?"

약속 시간에 딱 맞춰 왔다고 화가 날 것도 없었지만 조금 빤히 바라보기는 했다.

기장은 두고 머리숱을 조금 쳤는지 전보다 깔끔해 보이는 머리는 무스를 발랐는지 한쪽으로 넘겨져 있었고 -취향은 아니었지만 노력의 기미가 무척 보였다- 옷도 말끔한 정장이었다. 어쩐지 팀에 처음 합류했을 때가 생각났다. 그 때는 지금보다 더 어수룩했었지.

"아뇨, 그렇게 입을 수도 있구나 싶어서요."

"오 형사가 원피스를 입고 나올 거라고 생각해서. 나도 꿀릴 순 없잖아?"

"다행이네요. 이번에도 전처럼 하고 나왔으면 뒤도 안 돌아보고 갈 생각이었는데."

"잘 보였다면 다행이네.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어?"

"일단 점심부터 먹어야죠. 서 형사야말로 어디 생각해 둔 곳 있어요?"

"옷차림에 맞는 고기를 썰어볼까 했는데. 어때?"

"그럼, 안내해 봐요."

서 형사와 나란히 걷는데 여자를 대하는 -그러니까, 이성과 데이트하는- 모습은 또 처음이어서 원래 이런 건지,

아니면 단순히 '화를 풀어주기 위해서' 잘 보이기 위해서인지 알 수가 없었다.

***

서 형사가 미리 예약해 둔 곳에서 고기를 썰고 있으려니 기분이 묘했다.

가운데 놓인 촛불이 흔들렸다. 그 불빛을 받으며 식사를 하고 있으려니 묘한 기분이 썩 가시질 않아서 분위기를 가볍게 하고자 질문을 던졌다.

"월급에 비해 비싼 데로 온 거 아니에요?"

"나도 스테이크 먹고 싶었거든. 왜, 부담스러워, 오 형사?"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오늘 되게 딴 사람 같은 거 알아요, 서 형사?"

"에헴, 준비 많이 했단 말씀! 나도 할 때는 한다고."

"그런데 왜 아직도 옆구리가 시리실까. 소개팅 시켜줘도 오래 못 가잖아요?"

"겍, 그건..."

"단번에 또 표정 굳기는. 때론 뻔뻔하게 굴어야 여자가 넘어간다구요. 너무 착하고 솔직하기만 하면 인기 없어요."

"그거 칭찬이야?"

"칭찬이에요."

"고마워."

배싯 웃는 얼굴 다음에는 또 다시 식기가 달그락 거리는 소리, 고기를 씹는 소리마저 들릴 것 같은 부드러운 침묵이 깔렸다.

나이프로 자른 고기조각들을 보다가 포크로 꾹 누르는 것을 그만 두고 말했다.

"미안해요."

"엉?"

"화가 났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기껏 시간을 내서 온 서 형사를 그렇게 돌려보낸 거 말이에요."

"아냐. 화 낼 만하다고 생각했고,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오늘 일로 기분을 풀고 전처럼 잘 지낼 수 있다면 그걸로 괜찮아."

그렇게 말하곤 또 웃는다.

괜시리 부끄러워져 스테이크를 먹는데 집중했다.

"흠, 흠..이 다음에 어디 갔으면 좋겠는지 천천히 생각해보자고. 오 형사."

"설마 식사로 준비한 게 끝이에요?"

"아니 뭐, 오 형사가 좋아하는 디저트집이라거나 옷가게 같은 건 내가 알 수가 없으니까 물어보는 거지."

"서 형사 같은 남자는 들어오기만 해도 귀여운 거에 오그라들어 버릴 걸요?"

"이거 왜 이래, 나 귀여운 거 좋아해!"

"그럼 있다가 두고 볼게요."

아직 점심이었다.

아직도 점심이었다.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HL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