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퀘글

드라이브

"...형님, 요즘 드라이브 취미가 생기신 겁니까?"

"엉?"

"그게, 저녁 먹고 항상 드라이브 하러 나가자고 하지 않으십니까. 그, 궁금해서요."

"궁금해?"

"아, 예...."

자신을 포함해 운전수 역할을 할 조직원을 대동하기도 하고 김성식이 직접 운전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에는 혼자 외출하는 경우였지만) 정은창은 그 드라이브에 주기가 있다면 파악하고자 마음먹었고, 그 목적은 당연히 복수의 행보로 귀결되는 것이었다. 요즘 들어 정은창을 대동하곤 했기 때문에 살짝 떠본다 해도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네놈이 기분이 영 꿀꿀해 보여서 선심 좀 쓰고 있지. 이번에 새로 차를 바꿔서 승차감이 괜찮다고."

"아.....저..말입니까?"

꿀꿀하다기 보단 비참하다. 비참하다기 보다는 증오스럽다.

당장 칼질을 하고 싶어도 황도진의 경우와는 달라서 -심지어 원수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황도진을 넙죽 죽여준 꼴이 아닌가- 김성식이나 다른 경호원 놈들이 손쓸 수 없을 때 칼을 뽑아들 기회만을 그저 노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기회가 살랑이는 게 자기 때문이라. 정은창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고는 대답했다.

"..아..예, 제가 좋은 차는 거의 안 타 봤지만 형님과 함께 승차하니 썩 괜찮더라고요. 다음에 또 기회가 있으면 꼭 좀 태워주십시오."

웃기는 소리. 앉으면 다 똑같은 게 차 시트고 자동차지, 썩 괜찮기는 무슨.

정은창은 참 씨알도 안 먹힐 헛소리를 마구 지껄여대는 것에 자괴감이 들었으나 복수를 위해서라면 무엇이 두려우랴. 자, 덤벼라! 김성식의 돌아올 대답을 기다리면서 너무 비굴해 보이지 않는 충성스런 사냥개의 얼굴을 하며 기다렸다.

"좋아. 이 김성식이가 시간을 내주지."

나이스!

"단, 내가 시키는 일을 잘~ 해내야 되겠지?"

..그럼 그렇지.

정은창은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이번에는 무슨 일이느냐고 얼른 물었다.

***

어느 날 저녁엔가, 김성식은 정은창을 호출했다. 예의 그 드라이브 때문이었다.

"빠릿빠릿하게 타."

"..감사합니다."

김성식이 운전해라, 김성식이 운전해라.

그럴 리 없겠지만, 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김성식의 고급 승용창에 몸을 실을 때마다 정은창은 간절히 되뇌었다. 만약 운전석에 앉는다면, 정은창의 자리가 굳이 조수석이 아니어도 목을 졸라 죽여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은창을 대동했던 드라이브가 늘 그랬듯 운전석은 다른 조직원 녀석 하나가 앉았다.

"뒤에 타."

"예..? 아, 제가 어떻게 형님이랑 동석을.."

"어차피 동승하는 처지에 뭘 그래? 피곤하게 하지 말고 빨리 타."

"아..알겠습니다."

이놈이 미쳤나? 정은창은 김성식이 '안 하던 짓' 을 하는 것에 바짝 긴장했다.

이대로 산이라던가 바다라던가 가서 묻. 어. 하고 나직히 말해 파묻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심지어 김성식이라면 표정 하나 안 바꾸고 능히 그럴 수 있는 작자였다. 그것도 그럴 것이, 종종 드라이브랍시고 이 주변을 크게 휘 돌아보는 걸로 끝이 나는 게 아니라 평소에는 가보지 않았던 길로 접어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엔 경호원 겸 운전수로 붙은 녀석 하나만 있어서 누굴 파묻으러 간다고 하기엔 좀 부자연스러웠다.

'..김성식이라면 나보고 저 놈을 담궈버리고 묻으라고 할 수도 있는 놈이지.'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도 20여분이 흐른 뒤에야 김성식이 말하는 목적지에 올 수 있었다.

***

폐공장 앞이었는데, 소완국- 정확히는 이준영과의 첫 만남을 떠올린 정은창은 속에서 영 좋지않다고 캉캉춤이라도 추는 기분을 느꼈다.

"넌 여기서 자리나 지켜."

"알겠습니다."

"정은창, 넌 날 따라와."

"예...예!"

김성식은 천천히 어딘가로 걸어갔다. 폐공장들 중 하나에 들어가나 싶더니 경사 있는 땅에는 마른 풀이 있었던 자국들이 보였다.

그 근방에 딱 사람이 앉기 좋아 보이는 평평한 돌이 큼직하게 놓여있었는데, 김성식은 쯧 혀를 차고는 그 돌을 툭툭 치대다 앉았다.

"뭐해? 앉아."

"저...여기엔 무슨 일로...?"

"앉아서 기다리기나 해 봐, 성질만 급해가지곤."

'성질 급한 게 누군데?'

투덜거림을 꿀꺽 삼킨 정은창은 김성식을 따라 앞을 바라보았다.

저녁 시간이 다 되어가는지라 하늘은 슬그머니 파란색에서 주황색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태양빛이 섞여 금색 띠가 분분히 섞이는 저녁 노을 하늘은 썩 괜찮았다. 공장을 등지고 있어서인지 주변에 높은 건물들이 몇 없어서 하늘이 말갛고 넓게도 보였다. 정은창은 김성식이 이런 광경을 보여주는 게 우연인지, 아니면 '특별히' 보여주고자 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안중에 없었으니까.

조직원은 저 만치에서 딴청을 적당히 피우고 있었고 지금 정은창이 움직인다면 절대 막을 수 없었다. 즉, 정은창이 칼을 꺼내서 저 무방비한 김성식의 목덜미에 찔러넣을 수만 있다면, 고통에 몸부림치다 죽는다 해도 정은창의 승리였다. 정은창은 조심스럽게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었다.

"정은창."

"...예?"

허나 김성식이 나직히 부르는 것으로 정은창은 주머니에서 도로 손을 뺐다.

"난 생각이 많을 때 이 곳에 와서 해가 지는 걸 보곤 해. 보고 있으면 뒈지게 예쁘다고 생각하거든. 어때, 오늘따라 노을이 아주 예쁜데, 네 기분은 좀 나아졌나?"

"예...저도 무척 예쁘다고 생각했습니다. 뭣보다 형님이 절 그렇게 생각해주시다니..무슨 말씀을 더 드려야 할지..."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말 몇 숟갈 얹는 걸로 되겠어?"

"아, 그렇죠..그, 정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그럼 몸으로 때우도록 해."

"예, 앞으로도 잘...."

김성식은 자리에서 일어나 정은창의 코트 앞섶을 제 앞까지 훅 잡아당겼다.

코가 닿기 직전. 김성식의 얼굴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은 또 없는지라 정은창은 진심으로 당황해서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고 김성식은 그 눈을 빼먹기라도 할 듯 빤히 바라보다가 움켜쥔 손을 턱 놓았다.

"해가 다 져버렸군. 돌아가지."

그렇게 말한 김성식은 등을 돌려 딴청을 피우던 조직원이 있는 곳으로 걷기 시작했다.

정은창은 조금 전 뚫어지게 교환하던 시선에 대해 곱씹으며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

"정은창. 못 들었어?"

"죄송합니다. 지금 갑니다."

그 뒤로 김성식이 드라이브를 따로 나가는 일도,

그 없는 드라이브에 정은창을 대동하는 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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