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퀘글

양꼬치

"정은창, 저녁에 시간 돼?"

"엉?"

"저녁 나가서 먹을 건데, 혼자 먹으러 가긴 좀 그래서 같이 갈 사람을 찾고 있었거든. 근데 재석이는 곯아떨어져 있고, 주정재는 먼저 나갔는지 방에 없더라고."

"술까지 마실 거라면 안 가."

"오늘은 그냥 고기만 먹을 거네요. 그것도 보통 고기가 아니란 말이지. 그래서 어때? 같이 갈래?"

황도준 사건 이후 유상일과 최재석과는 종종 어울려서 점심이나 저녁을 같이 먹곤 했어서 유상일의 제안은 이상한 일도,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정은창은 짧게 고민하다가 한두 번쯤 고기를 먹어주는 것도 좋겠다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 짧은 대답에 유상일의 준수한 얼굴이 활짝 펴졌다.

"그럼 이제 저녁 시간이니까 얼른 가자. 붐빌라."

***

10분쯤 걸었을까. 북적거리기 시작하는 거리에서 한 건물 앞까지 온 유상일은 이쪽이라며 먼저 출입 계단을 올라갔다. 바로 뒤따라 올라온 정은창은 도착한 음식점을 둘러보고는 유상일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낮은 소리로 물었다.

"...분위기가 좀 이상한데...잘못 온 거 아냐?"

"여기 처음 오면 다들 그 얘기 하더라. 그냥 이국적인 중국음식점이라고 생각하면 돼."

"중국음식점이면 짜장면이나 짬뽕 먹자고 온 거야?"

"아니, 고기 먹으러 온 거 맞아. 양꼬치라고."

"두 분이신가요?"

종업원이 다가와 물었고 유상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에 손님들이 꽤 있었지만 만석은 아니었던지라 둘은 빈 자리에 바로 앉을 수 있었다.

정은창은 종교적 장식물이나 금색 무늬가 잔뜩 들어간 붉은색 발, 국내 가요가 아닌 음악이 흐르는 낯선 상황속에서 영 낯설었다. 유상일은 알아서 척척 주문하고는 정은창과 시선을 맞췄다.

"자자, 안 잡아먹히니까 진정하고. 여기서 파는 꼬치는 우리가 먹어본 닭꼬치랑은 달라. 숯불에 고기 꼬치들을 빙글빙글 돌려가면서 먹는데, 양념 주는 거에 찍어먹으면 그렇게 맛있더라고."

"은근히 너도 육식파다..."

"고기 싫어하는 사람이 어딨어."

"그거야 그렇지..."

"삼겹살이랑, 새우랑, 소고기랑, 양꼬치랑 구워먹으면 골라먹는 재미도 있고. 아, 맥주는 역시 생각 없으려나?"

"딱히. 술 생각 없어서."

최재석이라면 모를까, 유상일이 음식집을 추천해주는 건 처음이었다.

최재석이 질보다는 양 파라면 유상일은 그 반대로 양보다는 질을 중시했다.

까다로운 유상일의 입맛에 맞는 곳이라면 맛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문제였다.

"꼬치 나왔습니다."

곧 숯불이 놓여지고 꼬치를 끼우는 판이 올라왔다.

"자, 여기 좋아하는 걸로 구워서 먹는 거야. 내가 쏘는 거니까, 많이 먹어."

"안 사도 되니까, 너도 많이 먹어."

둥그런 접시 위에는 유상일이 말한대로 삼겹살과 새우, 소고기, 양고기 꼬치들이 잔뜩 놓여있었다. 정은창은 두세개쯤 집어 불판에 올려놨고, 유상일도 비슷하게 집어 판 위에 올려놨다.

"요즘 네 얼굴이 반쪽이 됐다 싶어서 걱정했어. 우린 몸이 재산이니까. 기운 내게 하는데는 고기가 최고지 싶어서 같이 오자고 한 거야."

"일도 일이지만 일단 날이 더우니까..삼계탕 먹으러 가자고 안 한 게 다행이네."

"정은창 너 이열치열이라면 치를 떠니까. 그랬으면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고 했겠지."

"그렇지. 다른 녀석들은 그거 종종 잊는 거 같은데."

"난 안 잊어."

"다른 녀석들도 그렇게 세심히 생각해 주면 얼마나 좋을지 모르겠네."

"나밖에 없지?"

"그래, 그래."

이야기를 나누다가 꿰여진 꼬치를 뒤집고, 다시 한 번 노릇하게 구워가며 뒤집다가 잘 익었다 싶을 때 제 앞접시로 가져와 덜어먹는 것으로 고기 파티가 시작되었다.

***

"나...더...못 먹어."

"음, 많이 먹었지. 생각보다 과식하더라, 정은창."

"음식 남기면 못 써."

고기와 새우 등을 양껏 섭취한 정은창은 택시를 타고 갈까 생각했지만 그랬다가는 택시에 일을 하나 더할 것 같아서 고개를 가로 저었다.

"유상일. 산책이라도 할래?"

"산책?"

"고기 냄새 밴 것도 좀 떨치고, 이거 소화도 시킬 겸 좀 걷자는 의미지. 주변에 뭐 공원같은 데 있던가..."

"꼭 저녁 후 데이트 신청 같네."

"데이트는 무슨..."

"응, 농담이야. 그럼 같이 산책하자."

"어디..아는 데 있냐? 이 근처는 잘 몰라서."

"그럼 내가 자주 가는 곳으로 안내할게. 자, 손."

"...뭔데, 이 손은?"

"그야, 길 잃을까봐. 아까보다 사람들이 배로 늘어났는 걸?"

그 말대로, 양꼬치 집에 들어가기 전부터 북적거리던 거리는 이제 인파로 빽빽하게 붐비고 있었다. 유상일은 키가 훌쩍 커서 어딜 가나 잘 보이겠지만 괜히 낯선 곳에서 길을 잃는다거나 휩쓸려서 허둥대기는 딱 질색이었다. 정은창은 할 수 없이 내민 손을 잡고 거리를 벗어나기로 했다.

유상일은 거리를 벗어나 공원에 도착하자 잡은 손을 살그머니 놓았다.

"에스코트는 만족스러우셨는지?"

"..다른 애들이랑 있을 때도 그렇게 느끼한 농담 자주 던지냐?"

"아니. 너한테만."

정은창은 무어라 말을 덧붙이지 않은 채 유상일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다.

유상일은 깍지를 낀 채 두 팔을 위로 쭉 뻗어 기지개를 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너..얼굴에 감사해라. 그런 느끼한 말을 다른 녀석이 했으면 뒤도 안 돌아봤을 걸."

"지금 무지 감사하고 있어. 그럼 가 볼까?"

정은창은 유상일이 제게 무언가를 바라고 빙글빙글 도는 건지, 아니면 유상일이라는 사람의 됨됨이가 제 테두리 안의 사람들을 위해주는 방식이 다 그런 것인지 잠시 고민하다가 후자에 무게를 지우고는 공원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밤바람이 위에서 아래로 불어오면서 여름 풀냄새가 고기 냄새를 조금씩 덮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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