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비탕

통통통.

노크라기보다는 주먹을 가볍게 쥐고 두드리는 놀이를 하는 것처럼 경쾌한 노크소리에 서재호는 누가 왔나 싶어 재빠르게 현관문으로 이동해 바깥을 살폈다. 양시백이었다.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야?"

"요 근처 지나가다가 점심 안 먹었으면 나가서 먹자고요."

"정해둔 거 있어?"

"네."

양시백은 서재호보다는 고등학생인 신호진이나 문현아 쪽의 입맛에 더 가까웠다. 분식도 좋아하고, 햄버거도 좋아하고, 치킨도 좋아하고. 물론 서재호도 좋아하긴 했으나 한식의 비율이 조금 더 높았다. 오늘은 어디 가서 먹자고 하려나. 묻지 않고 가만히 따라가 보니 한산한 갈비탕집으로 향하는 게 아닌가.

"웬일로 한식이래?"

"저도 패스트푸드만 먹진 않거든요? 이렇게 추운 겨울엔 따끈한 국물을 먹어줘야 기운이 난다고요."

"뭐, 잘 먹는 양시백이가 고른 집이니 맛있겠지? 갈비탕 하나!"

"체, 누가 보면 먹보인 줄 알겠네요. 이모, 여기 주문이요~! 갈비탕이랑 특으로 하나씩!"

주문을 받은 종업원은 물병과 컵, 물수건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밑반찬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서재호는 제 옆에 놓인 수저통에서 두 사람 분의 수저를 꺼내 앞에 착착 놓았다.

"요즘 어떻게 지내?"

"입에 풀칠 좀 하고, 하태성 소식도 알아보고, 아저씨랑 권혜연 씨랑 설희랑 애들 안부 체크하고 뭐 그렇죠. 아저씨는?"

"주 거래처 털리고 나서 좀 빡세긴 해. 일감이 줄었거든."

"거기도 참 기업의 이름으로 남의 일터 뒤엎어 놓는덴 선수라니까요."

양시백은 최재석 실종 직후 엉망이 되었던 도장을 떠올리며 그리 말했다. 이제는 정돈된 상태였지만 도장을 열기엔 돈도, 시간도, 여유도 부족했다. 서재호는 손을 가볍게 내저으며 덧붙였다.

"그래도 산 사람 입에 거미줄 칠 순 없는 법이지. 백석은 사방에 적이 많아. 그러니 나처럼 밉보인 놈에게 컨택해오는 놈도 있을 거란 말이지."

"아저씨가 받아주기나 하고요?"

킬킬거리며 작게 웃다가 곧 침묵이었다. 양시백은 창 너머의 거리를 보았고, 서재호 역시 양시백의 시선을 따라 밖을 바라보았다. 특이한 광경은 없었다. 몇몇 사람들이 바삐 걸어다녔다가 버스나 택시를 타고 사라지고, 몇몇은 식당에 들어갔다. 대한이 지난 하늘은 맑았고, 산 사람 황태 만들던 추위도 눈 녹듯 천천히 가시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가고 계절이 가도 사람 속이 좋게 좋게 아물고 영글어지는 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갈비탕 나왔습니다. 작은 운반용 카트를 끌고 온 종업원은 갈비탕 두 그릇과 공기밥 두 공기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안쪽으로 사라졌다.

"자자, 먹기나 하자고요. 여기 갈비탕 맛있으니까."

"그래, 천천히 먹자고."

뚝배기 속 큼직한 갈빗살을 앞접시에 덜어 한김 식힌 다음, 젓가락으로 살짝 밀어주면 잘 익은 살이 뼈와 절로 분리가 됐다. 큼직하게 집어올린 살을 달콤새콤한 소스에 폭 찍어먹으면 소스, 고기, 국물이 어우러지며 따끈한 쌀밥을 부르게 하는 맛이었다. 양시백은 갈비의 뼈와 살을 모조리 분리한 뒤 잘게 찢어 국물에 도로 넣었고 아예 소스를 쭉 둘러 뿌리곤 밥을 말았다. 호쾌할 정도로 순식같이었다.

"이거야 원, 동네 사람인 나보다 우리 양시백이가 맛집을 잘 찾아내는군."

"기사 쓸 때 아저씨는 가끔 저보다 더 안 챙겨먹으니까..몸보신 되는 걸로 알아봅니다."

"음, 애인한테 효도받는 기분 이상하구만."

"켈룩!"

"어유, 미안하게시리. 자, 먹어. 먹어."

서재호도 고기를 건져 살을 발린 뒤 밥을 뚝딱 말았다. 국물은 맑고 진했고 가끔씩 씹히는 팽이버섯과 아직 불지 않아 탱글한 당면이 목구멍으로 후루룩 넘어갔다.

***

양시백은 밥을 먹은 뒤 쏜살같이 달려가 계산을 끝마쳤고 서재호는 빠르게 음료수를 사는 걸로 합의를 보았다. 곧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인 서재호와는 달리 양시백은 따끈한 바닐라 라뗴를 골랐다. 서재호가 빠르게 다 마셔버린 데 반해 양시백은 걸으면서 홀짝거려 그런지 곧잘 앗뜨뜨, 하며 입을 뗐다.

"의지가 되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반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의지하고 있구나 싶어요."

"우리 양시백이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딱! 의지가 됐다고. 소득이 없다고 시무룩한 거 아니야?"

"그렇게 보인다면..겨울이라서 더 그러나 싶어요. 춥고, 메마르고. 눈이라도 내리면 우수에 젖기 좋잖아요."

서재호는 잠시 멈추어 서서 양시백이 든 바닐라 라떼를 살짝 빌리듯 가져간 뒤 다른 팔로 양시백을 허리를 감싸안았다.

"진짜 괜찮은 사람은, 자기가 괜찮은 줄 몰라. 양시백이도 딱 그런 케이스지. 얼마든지 의지하고, 일어서면 그 때 의지가 되어주면 돼. 지금처럼."

"갈비탕 한 그릇 뚝딱했다고 아까보다 훨씬 기운 나시나 본데요."

"식후에 아메리카노까지 마셨으니 밤샘하다 박카스를 쭉 들이킨 느낌이지."

"카페인 좀 줄이세요."

서재호는 안은 손을 풀어낸 다음 다른 손에 든 바닐라 라떼를 한입 머금으며 말했다.

"앗 뜨!"

"으이구."

"...거, 달콤한 것도 괜찮으니 줄이도록 노력해보겠네."

"아저씨한텐 역시 자판기 커피인가..."

"아니. 아메리카노일세."

"블랙은요?"

"조금 달라."

양시백은 바닐라 라떼를 도로 건네받은 뒤 빈 손을 서재호에게 내밀었다.

배불리 먹고 느긋하게 마셨기 때문인지, 그게 아니면 마음이 풀어지는 상대의 앞이기 때문인지 맞잡은 손은 따끈따끈하기만 했다.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BL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