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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딩 엘베조

초등학교에 이어 고등학교에 이르러서야 다니는 학교가 같아졌지만 셋은 늘 함께 다녔다. 세 사람의 부모님들이 아는 사이였기 때문에 조금 먼 거리기는 해도 못 만날 정도는 아니었고, 중학교라는 간극이 있었지만 고등학교 입학 후 한 반이 된지라 어울리는데 문제될 것은 없었다.

"으, 오늘따라 선생님 종례 엄청 안 끝나더라."

"뭐 안 좋은 일 있으셨나..."

"내가 알기론 평균적으로 끝났어."

"난 가끔 네가 담임 편인지 우리 친구인지 모르겠더라."

하태성은 농담도, 라고 작게 말했고 양시백은 툴툴거렸지만 늘상 보아온 레퍼토리 중 하나였기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아, 붕어빵 천막이다, 우리 붕어빵 먹자!"

"네가 사 주게?"

"그래, 까짓거 오늘은 내가 사지 뭐!"

권혜연은 얼른 천막 안으로 쏙 들어갔고 하태성과 양시백도 곧장 들어갔다. 겨울의 냉기가 밀가루와 단팥이 빚어내는 뜨끈하고 살랑거리는 온기에 사르르 녹아내렸다. 붕어빵을 굽던 주인은 들어온 세 사람을 보더니 몇 개 줄까? 하고 말을 걸었다.

"10개요!"

"권혜연..용돈 탔냐?"

"치 3개 사서 1개씩은 감질나고 다섯개는 야박한 느낌인 걸."

5개는 미리 구워진 상태로 올라와 있었지만 나머지 5개는 주인 아저씨가 새로 구워야 했기에 세 사람은 종이컵을 하나씩 들고 옆에서 은은하게 끓고 있는 오뎅 국물을 따른 뒤 홀짝거리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하면 같은 학교 생활도 끝이네."

"나나 태성이는 경찰대를 지망하고 있으니까. 우리 둘은 내년에도 같은 학교를 다닐지도 모르지만."

"대학 입학해도 자주 만나게 될 걸. 부모님들도 자주 만나시잖아."

"그렇지 뭐. 나는 삼촌...관장님 따라서 태권도장 일을 도와볼까 해."

"시백이 너는 가업을 잇는 거잖아. 그것도 쉬운 일 아니다 뭐."

"뭐 너나 하태성도 아버지를 따라서 경찰이 되고 싶다고 말했으니 똑같은 거 아닌가.."

"그러려면 일단 합격해야지."

너무도 당연한 소리였지만 전교 수석의 말은 깊이가 달랐다. 양시백도 권혜연도 으응, 그렇지...하며 잠시 시무룩해 했으나 오뎅 국물을 홀짝이며 이 얘기 저 얘기 하는 사이 붕어빵 다섯개가 차례차례 모습을 드러냈다.

"서비스로 하나 더 넣었으니 사이좋게 나눠 먹으려무나."

"감사합니다. 여기요."

"아저씨, 많이 파세요~"

"많이 파세요."

천막을 나오니 다시금 찬바람이 휘이잉 불어댔지만 세 사람은 따끈한 붕어빵을 하나씩 꺼내 먹으며 길을 나섰다. 고3 생활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붕어빵을 다 먹었다고 해서 즉각 집으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 해서 놀이터 뺑뺑이 -누군가는 인간 원심분리기라 부르는 놀이기구- 에서 바람을 피하며 하교하면서 떠든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너흰 주말에 뭐해?"

"별 거 없지..고3인데 어디 놀러갈 수나 있겠어? 수능 끝난 다음날이면 모를까."

"그럼 수능 다음날에 다른 애들까지 해서 놀이공원 갈까?

그 말을 한 사람이 다름아닌 하태성이었기에 권혜연도 양시백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조용한 편에 노는 것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던 하태성이 수능 다음날이라는 조건을 붙이긴 했어도 먼저 놀러가자고 하다니. 하태성은 두 사람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된 것에 웃었다.

"나도 놀고 싶지. 당연하잖아. 성적이 잘 나오면 부모님이 너무 좋아해주시니까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하기는 해도."

"아니..그건 그렇다 쳐도 태성이 너...놀이기구 못 타지 않아?"

"그러니까. 저번에 디스코 팡팡이나 바이킹 한 번 탔다고 얼굴 새파래지지 않았었나?"

"아."

소꿉친구나 다름없는 두 사람도 시간이 지날수록 보기 드물어지는 벙찐 하태성의 표정에 곧 사람 없는 놀이터에서 작은 웃음바다가 터졌다.

"놀이공원이 그런 것만 있진 않으니까 괜찮지. 관람차도 있고, 커피컵도 있고, 범퍼카도 있으니까."

"크, 이번에도 나랑 권혜연만 롤러코스터를 타겠구나."

"수능 돌파 기념으로 자이로 드롭은?"

"나도 그건 좀 무서운데..."

붕어빵이 불어넣어준 온기가 가실 즈음에야 세 사람은 조금 높게 세워진 뺑뺑이 안을 빠져나왔다.

"주말 잘 보내고, 다음주에 봐!"

"너도 잘 들어가!"

"잘 가, 혜연아, 시백아."

"내가 여기서 제일 집이 가깝거든~~!"

***

"어, 아빠! 웬일로 이 시간에 집에 있어?"

"아빠가 경찰인 거 모르면 사람들이 탄식하겠네..모처럼의 주말인데 아빠도 쉬어야지. 그보다 하교 시간 좀 지났는데 지금 온 거보니 오늘도 친구들이랑 수다?"

"응, 태성이랑 시백이랑."

"날 추운데 집안에서 얘기하지는."

"놀이터에서 떠들다 가는 게 서로 편하고 좋지 뭐. 두 사람은 버스 타고 집에 가니까."

손을 씻고 옷을 갈아입은 권혜연은 다가오는 방학식 날이 기다려졌지만 고등학생으로서의 마지막 날도 점차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에 기쁘기도 하고, 울적하기도 했다.

"아빠."

"응, 혜연아."

"아빠는 고등학생 마지막 날 때 어땠어?"

"음...드디어 나도 어른이 되는구나 했지. 우리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자고 마음먹었고."

"안 부끄러우니까 시간 약속만 잘 지켜주면 차암 좋을 텐데."

"그 그거는..."

"농담!"

친구들도, 아빠도 여전한 것처럼 내일 자신이 졸업하게 되어도 여전한 구석이 남아있지 않을까.

권혜연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가오는 날에 미리 겁먹지 않기로 했다.

"아빠, 우리 게임하자. 시백이가 알려준 건데 되게 재밌대!"

"하하...게임쪽으론 시백이가 제일 빠삭하구나.."

권현석은 고개를 몇 번 끄덕거리고는 게임기를 꺼낸 뒤 선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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