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퀘글
남자는 형사와 함께 종종 밥을 먹곤 했다.
매일 먹는 것은 아니었고, 일이 있을 때만이었다. 그마저도 점심 쯤이었고 형사의 경우 본 업무로 곧장 복귀해야 하곤 했어서 배를 채웠으니 술을 마시자! 는 상황은 두 사람 사이에서 거의 없는 일과 같았다. 밤에 '일' 이 떨어지지 않는 한에는. 하지만 백반집에서 배를 채우고 나오는 길에 담배를 물며 나오는 상황은 아주 빈번하게 일어났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뭔데?"
"넌 친구 없냐?"
"치인구?"
"네가 날 만나는 걸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같은 경찰서 동료들한테 나같은 불량해 보이는 놈과 한데 있는 거 보여봐야 좋을 일도 없을 텐데 왜 허구헌날 나랑만 점심 먹냐, 이 말이다."
"짬밥을 먹었으면 그냥 조용히 친구 아니었더라도 밥 먹고 같이 담배 좀 많이 태우면 친구 먹었겠거니 하면 되지 꼭 너랑 나는 부랄 친구보다 오래 가는 우정을 쌓자! 고 말해야 친구 먹냐? 옌장."
"친구 취급이 이렇게 개떡같은 줄 몰랐지."
"내가 개떡이면 너는 뭐 꿀떡인 줄 아냐? 바라는 거 더럽게 많네."
하지만 남자는 알았다.
이 형사가 허허실실 적당히 어울리는 듯 하다가도 본질적으로 지금 속해있는 경찰 무리에서 겉돌고 있다는 것. 이쪽 일을 할 때나마 그 본질을 조금씩 드러내곤 했고, 남자와 어울릴 때는 완연히 과거 잠입작전 시절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것도. 전자의 경우는 경찰로서 온전히 신분이 복귀된 게 아니라 박근태의 사냥개가 되는 것이 더해졌기 때문이라 쳐도 후자의 경우는 남자도 짐작하기 조금 어려울 따름이었다. 남자의 본질적인 정체를 아는 것도 아닐 테고 -그랬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선수필승의 전략을 택했을 것이다- 그 반쪽짜리였던 시절이 그리워서도 아닐 텐데, 대체 어째서. 남자가 짧은 생각에 빠져있는 동안 형사는 투덜거림을 멈춘 채 남자에게로 손을 뻗었다. 살기도 없었고 별 것 아닌 동작이었으나 주정재가 이상행동을 하는 때면 남자는 늘 전전긍긍하곤 했다. 반격은 무릇 가장 결정적인 순간 단 한 번으로 끝내야 하니까.
"담뱃재 옷에 떨어진다, 새꺄. 지가 말 붙여놓고선 멍 때리고 앉았어."
"고마워 죽겠네, 아주."
다행히 담뱃재가 코트 자락에 묻는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길을 걸으며 담배를 피우는 건 남자의 취향이 아니었으나 형사와 함께할 때면 종종 이렇게 길 가며 담배를 피우게 되곤 했다. 자기는 그렇다 쳐도 형사로서는 그러면 안 되는 게 아닌가 하고 언젠가 물음을 던진 적도 있었지만 '준법 정신에 입각해서 딱지 대차게 떼 주랴?' 하는 살가운 대답밖에 듣지 못 했다. 제 몫까지 남자가 덮어쓰고 싶지 않으면 입이나 다물고 담배나 피라는 의미였다.
"야."
"왜."
"나 외로워. 오늘 일 없으면 들렀다 가."
"내 시간은 공짜가 아닌데."
"쓰벌, 등쳐먹는 제비놈 대사 같군."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 해야 하는 일이면 돈이라도 받아야지."
"말이라도 못 하면..아, 좋아. 내 월급일 얼마 안 남았으니까 푼돈 벌어가시라고. 네 일터에서는 보너스도 안 나오잖아?"
"형사놈 얇은 월급 봉투 찌꺼기 긁어먹는 게 보너스만큼 쏠쏠하지도 않은데."
"준대도 지랄..."
"농담이다."
담배 연기를 자욱하게 흩뿌리며 가다 보면, 자신이 입에 물려진 담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형사도 그 비슷한 생각을 가끔이든 자주든 할 것이다. 남자처럼 '그런 방식' 으로 살아남은 만큼. 악우라고 부르기에도 지나치게 먼 곳을 떠나왔지만, 비로소 그 언젠가 칼을 꽂을 날까지 시간을 죽이며 어울릴 요량은 있었다.
"여기서 더 피우면 정말 딱지 떼겠군. 야, 너도 형사씩 되어서 경범죄로 걸리기 전에 여기다 꽁초 버리고 가."
"아유, 준법시민 나셨네 나셨어. 버리고 갈려고 했다, 안 그래도."
날선 겨울 햇빛은 따스했지만 눈을 찌를 듯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꽁초 두 개가 낡은 쓰레기통 구석에 쳐박히는 것을 본 뒤에야 남자는 형사의 뒤를 따랐다. 얼마 가지 않아 곧 갈림길에서 헤어질 수순이었다.
"그럼 자기, 있다 만나자?"
"자기는 무슨, 웩.."
두 사람은 서로 손욕을 찐하게 주고받은 뒤 헤어져 거리를 걸었다.
겨울 초입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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