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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요리대결

"재석이, 그리고 시백이도. 잠시 여기 좀 앉아보자."

"무슨 일 있어?"

"왜, 아빠?"

"다들 냉장고를 열어봤다면 알겠지만...상태가 갈락말락 하는 것들이 많아. 버리자니 아깝고 더 내버려두면 100% 못 먹을 게 돼. 그러기 전에, 잔반과 그 재료들을 처리하자."

"하긴 추석 음식 많이 받아놨더니 밥값은 굳었지만 금세 물려서 골치가 아플 정도야."

"그래도 우리 셋이서 열심히 먹어치우면 되지 않을까요?"

"아냐, 시백아. 우리 셋이서 무자비하게 먹어치워도 감당하지 못 하고 탈이 날 확률이 높아. 그래서 난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한 거야."

"특단의.."

"조치?"

"재석이, 나랑 같이 요리 솜씨 좀 발휘해 보자. 맛있게 먹기도 하고, 냉장고도 정리할 겸."

"..아빠, 요즘 냉ㅇ고를 부탁한다 많이 보더니..."

양시백이 양태수를 흘끔 보자 -물론 양시백과 최재석도 옆에서 같이 시청했다- 양태수가 얼굴을 붉혔다.

최재석의 반응은 양시백보다 훨씬 긍정적이었다.

"오, 해 보자는 거지? 난 좋아! 찬성!"

"흠, 전 그럼 뭐 두 분을 사이좋게 도와드리면 돼요?"

"아니. 우리 시백이는 요리 심사위원 역할이지."

"그래! 아저씨랑 나한테 맡겨!"

"...되게 걱정되는데요."

하지만 잡다한 것으로 너저분한 냉장고를 처리하려면 무엇이든 시도해 봐야 했고, 양시백도 그리 요리를 잘 하는 편은 아니었어서 더 이상 의욕을 깎지 않기 위해 입을 다물기로 했다. 냉장고에는 은지 슈퍼마켓 아주머니에게 얻은 김치 한 통, 여러 전이 들어있는 반찬통 하나, 계란 6개, 스팸 썰어놓은 것, 삼겹살 반 근, 소고기 구이용 한 덩이, 잡채하려다 실패해 불려놓기만 한 당면, 상태가 가기 직전인 새송이버섯 한 묶음, 대파 한 묶음, 양파 3개 등이 들어있었다.

"어디, 요리 대결 하면 역시 메뉴부터 정해놔야지."

"먼저 골라."

"올, 아저씨, 자신감 있어!"

"그런 거 아냐."

"알아알아. 난 그럼, 무난하게 부대찌개로 가겠어!"

"괜찮네요. 딱 그 부대찌개 해 먹기 좋은 재료들이기도 하고."

"그치? 그치?"

"아저씨는?"

"소고기 구이랑 야채볶음, 계란찜으로 간다. 전도 데워먹을 겸 같이 지지고."

"나는 찌개, 아저씨는 한상 차림이네."

양시백은 어쩐지 이전보다 의욕에 불타는 두 사람을 보며 도장에 부르스타를 하나만 들여놓지 않았었나 갸우뚱거렸지만 얻어온 것인지 새로 산 것인지 모르는 부르스타가 하나 더 등장함으로서 걱정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

환풍기가 맹렬히 돌아가고 있었지만 양태수와 최재석이 엎치락 뒤치락 썰고 지지고 볶는 것을 완전히 잡을 순 없었다. 창문을 조금씩 열어두고 도장 문도 반쯤 열어둔 양시백은 부지런히 두 사람이 요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며 남은 재료 자투리를 얼른얼른 치우느라 바빴다.

최재석은 새송이버섯을 하나는 세로로, 하나는 가로로 썰고, 김치도 먹기 좋을 정도로만 썰어 냄비 안에 차곡차곡 올려두었고, 파와 양파도 큼직하게 썰어넣은 뒤 고추장에 다진 마늘, 설탕과 소금, 간장을 조금 넣어 양념 간을 하고 보글보글 끓이기 시작했다. -양시백은 중간에 맛을 보던 최재석이 라면 스프를 다소 첨가하는 것을 보았다-

양태수는 계란을 곱게 풀고 소금 후추로 간을 한 뒤 강불에서 약불로 뭉근하게 끓여내 만든 계란찜의 뚜껑을 덮은 채 뜸을 들이는 사이 썰어둔 야채 -대파, 버섯, 양파- 를 볶았다. 투명해진 양파와 노릇해진 버섯이 반들반들하게 후라이팬의 광을 냈고, 그 위로 소고기가 올라갔다. 이미 달궈진 팬에 고기가 자글거리며 들썩거렸다.

"...누가 보면 오늘 추석인 줄 알겠네."

다른 사람들이 추석에 준비하는 것에 비하면 간소한 편이었지만, 양지 태권도장의 세 사람에게는 잔칫날이나 다름없는 준비였다. 양시백은 냄비 사이로 자글자글하게 끓는 찌개 냄새와 겉만 익어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소고기 냄새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양태수가 준비를 끝낸 뒤 조금의 시간이 흘러서야 최재석도 찌개를 완성했다. 둥글게 생긴 큰 상을 펼쳐 반찬한 것들을 차곡차곡 올려놓으니 나름 장관이었다.

"어유, 두 분 다 요리 되게 잘하네요. 저 놀랐다니까요."

"엣헴, 관장님이 이 정도는 한다, 양시!"

"맛있겠네. 수고많았어. 재석이."

"아저씨도. 햐, 손이 빨라요, 손이 빨라!"

셋 모두 잠시동안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진 것을 보고 기도하듯 눈을 감다가 잘 먹겠습니다, 하고는 식사를 시작했다.

"계란찜 진짜 부드럽다. 크, 우유 넣은 거 같아. 말랑말랑!"

"찌개도 맛있다. 시백이, 많이 먹어."

"아저씨, 나는, 나는?"

"재석이 너도 많이 먹어."

"응, 아저씨도 많이 먹어!"

야채볶음을 쌈채소처럼 싸 먹기도 하고, 찌개를 푹푹 떠서 밥에 비벼먹기도 하고, 모처럼 라면에 곁들여 먹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식사를 끝냈다.

"맞다, 양시. 나랑 아저씨 중 누구 음식이 더 좋았어?"

"엇."

양시백은 아차, 했지만 정말 고를 수가 없었다.

"그냥 공동 우승으로 하면 안 될까요?"

"피, 봐 줬다."

"난 시백이가 맛있게 먹었으니 승패 같은 건 상관없는데."

"뭐, 하긴 나도 아저씨랑 북적북적 요리하니까 되게 재밌더라. 손이 많이 가긴 해도. 우리 나중에 또 잔반 처리 대결 하자!"

"좋지."

"다음엔 저도 해 볼래요."

"오, 그래?"

"자, 후식 사과는 제가 깎을 게요. 두 분은 앉아 계세요."

"좋지~"

양시백은 키들키들 웃음지으며 부른 배를 통통 두드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사과와 과도를 가지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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