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퀘글

검방회도 크오/류태현+배준혁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이 말의 형태로 바로잡히자 눈이 떠졌다.

주위를 둘러싼 조명의 불빛은 강하지 않았고, 어두운 것에 가까웠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습니다...당신은?"

사실 아직까지 두통이 따라왔으나 걱정하는 듯한 물음에 눈을 찡그리며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눈을 바로 뜨자 순경복을 입은 남자가 눈앞에 있었다. 모두는 아니었지만 성중서의 경찰들은 어느 정도 얼굴을 익혀둔 터라, 눈앞의 순경이 새빨간 타인에 속한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했다.

"류태현 순경입니다."

"배준혁입니다. 여긴...경찰서는 아닌 것 같군요."

주위를 둘러봤지만 삭막하기 그지없는 폐허 같은 방이었다. 방 왼쪽에 달려있는 문은 한눈에도 잠겨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정신을 잃기 직전까지의 기억이 두루뭉술했으나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이런 곳에 갇힐 만한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은 분명 아니었다.

류태현 씨는 약간 어두워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 저희는 밀실에 갇힌 겁니다."

"..밀실? 나갈 수가 없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방 곳곳에 쓸만한 도구들이 있을 거고, 저희는 그것들을 이용해 방을 탈출할 수 있을 겁니다."

"순경님 또한 저와 비슷한 처지이신줄 알았는데, 의외로 잘 알고 계시는군요."

"..이야기하자면 길지만, 간략하게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런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고, 이런 밀실의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 누군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짓이라고 하기엔 나를 속여넘겨 당장 그가 이득을 볼 수 있는 것은 없다.

진실이라고 하기엔 이 사람의 침착함이 놀랍고, 기이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의심이 가도 당장은 함께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서로 소지품을 체크해 봤는데 연락수단은 물론이고, 코트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락픽 또한 사라져 있었다. 남자, 류태현 씨는 제 권총과 함께 실탄이 있음을 말해주었다.

"문부터 조사해 보죠."

"좋습니다."

류태현 씨는 문고리를 잡고 돌려봤지만 당연하게도 철컥철컥하는 소리를 내며 잠겨있음을 증명했다.

"잠시."

"아, 예."

문고리를 잡아당겨 보니 철컥거리기도 했지만 문고리 자체가 덜컥거리며 흔들리는 것이 그렇게 단단하게 잠겨있지는 않은 것처럼 보였다.

"튼튼하게 잠겨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순경님께서 말씀하신 대로라면 이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나 그에 준하는 것, 혹은 문고리를 부술 수 있는 도구가 있겠죠."

"예. 준혁 씨는 정말로..침착하게 대응하시는 것 같네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다른 사람들.

이라는 말에 스스로의 결핍된 부분을 둘째 치고, 원래 닫힌 공간을 좋아한다는 것을 이야기 할까 싶었으나 쓸데없는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했다.

"위기 상황일수록 침착하지 않으면 정작 탈출할 수 있는 때가 와도 탈출 불가능한 상황이 될지 모르니까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믿음이 가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태현 씨는 고개를 숙여보였고, 나는 속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이런 상황을 몇 번 겪었다면 사람을, 적어도 밀실 내에서 만나는 사람을 불신하게 될 법도 한데, 천성적으로 사람을 잘 믿는 것인지 얼마 시간을 함께하지도 않은 내게 믿음이란 단어를 이야기 하는 것에 어쩐지 시백 씨가 생각이 났다. 태현 씨는 자신이 강력계가 아닌 교통지도과라고 말해두었고, 몸집도 무술이라거나 몸을 쓰는 일에는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쩐지 느낌 같은 것이 조금 닮아있었다. 아마도 두 사람이 만나게 된다면 그런 느낌을 서로 받지 않을까 생각할 만큼.

어느 쪽으로든 문을 열 만한 도구를 찾아보기로 했다.

***

"그, 허강민 씨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PDA에서 일방적인 통신을 주고 받은 허강민이라는 남자. 단순히 목소리로 전해지는 것임에도 선명한 적의가 전파를 타고 흘렀다. 태현 씨를 도발하듯 이야기를 나누던 그 남자는 여기 갇힌 자들이 죄를 지었다고 말했다. 복수형으로 가리키는 것에 나나 태현 씨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여기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정말로 내 '죄' 에 대해 알고 있는 걸까.

"...아주 예전의 일입니다. 제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그의 소중한 사람을 구하지 못 했고, 그가 이런 밀실을 만들고 죄를 지었다는 사람들을 가두게 된 건 저 때문입니다."

"소중한..사람..."

"...사람과 사람을 저울질 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제 연인을 먼저 구한 순간 그의 입장으로선 저울질을 당했다고 여길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의 말이 맞습니다. 저는 죄를 지었습니다."

소중한 사람. 연인.

순간적으로 지연 씨가 생각이 났다. 태현 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정을 해 봤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와 지연 씨가 동시에 위험에 처해있다. 저 둘을 구할 수 있는 건 오직 나 뿐이라면? 가정을 하기 전부터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지연 씨를 구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제일 먼저 위험에서 구하고 싶은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그가 죄인으로 몰아붙여지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현 씨의 이야기에서 시작된 가정에 어느새 내 사정을 이입시키고 있었다. 고개를 저어 가정을 흩어버렸으나 태현 씨는 조곤조곤하게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는 한 번 실패했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변한 건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제 죽음만이 그에게 안식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

"하지만, 저는...살고 싶습니다. 그가 마련한 이 밀실에서 끝까지 이를 악 물고 살아남는 것이 그를 도발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해도 저는, 살고 싶습니다."

옳지 않다 해도 내가 원하는 일을 하리라. 그것은 묘한 통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태현 씨 또한 자신이 정해둔 어떤 것을 지키고 또 어기며 고통스러워 하는 것이 아닐까.

"기운 내십시오. 마음을 굳게 먹으셔야 합니다. 저도..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야기가 너무 길었네요. 이제 그만 움직이죠."

동질감일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결론에 이르자 아주 드물게도 이 사람을 돕고 싶다고 생각했다.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그 외
추가태그
#크로스오버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