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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도전력 60분
"..기사, 봤어요."
양시백은 서재호의 방으로 들어서는 것과 동시에 굳어진 얼굴로 그리 말했다. 서재호는 평소와는 달리 인상을 찡그린 채였다.
"..백석 쪽에서 손 쓴 거지. 예상은 했었지만 저렇게 뜨자마자 즉각 대응할 줄은..."
"이제부터 어쩔 작정이에요? 그 제보자는?"
"달라지는 건 없어. 편집장님과 다른 분들에게는 미안하게 됐지만...서로 이렇게 되리라고 예상하지 못 한 것도 아니었으니. 하지만 기자 일을 당분간 하긴 힘들 거야."
"...제보자를 찾아야겠군요."
"그래. 물적 증거를 이쪽으로 보낸 사람을 찾으면 뾰족한 수가 생길수도 있지."
"...저, 아저씨, 계속 생각해봤는데요."
양시백은 입술을 깨물며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떼었다.
"그 익명의 제보자. 혹시, 하태성이었을까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녀석도 박근태의 뒤에 있는 백석 그룹이 구리다는 것쯤이야 잘 알 거예요. 박근태는 죽었지만 경찰에는 여전히 선이 닿아있을 가능성도 높고..혐의도 벗었겠다 모습을 완전히 감추기 전에 자료를 찾아볼 짬이 조금 있었을지도 몰라요. 그 녀석, 재호 아저씨가 기자인 것도 알고 있잖아요."
서재호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익명의 제보자. 잠적한 하태성을 떠올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허나 권혜연과 엮였던 모용철 경무관 -특출난 성과없이 갑작스러운 승진계를 거친 것도 수싱한 노릇이었다- 처럼 경찰 내부에 백석의 끄나풀들이 숱하게 있을 텐데 그 사이로 혐의를 벗은 하태성이 물이라도 찬듯이 중요 정보들을 접하고 빼돌려 건넨다? 상상하기 힘들었다.
"아니. 하태성이라기엔 그 정보량이 꽤 됐어. 제아무리 독한 맘만 먹는다고 해서 모을 수는 없는 거지. 그 익명의 제보자는 별개의 인물일 걸세."
"...그런가요."
"하지만 너무 조급해하지는 말아. 눈이 달렸다면, 아니, 최소 제보한 뒤 동태만 슬쩍슬쩍 주시하고 있다면 이번 기사로 인터넷이며 뉴스가 들썩들썩거리는 걸 알고는 있겠지. 우리와 같은 의도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이번 시도가 좌절된 걸 알면 어느 쪽으로든 접촉해 올 가능성이 높아. 그게 또 다른 정보건, 아니면 제보자 본인이 직접 움직이건."
"조심하시라고요. 무슨 죄목을 붙여 체포하려고 들지 모르니까요."
"보쌈할 수도 있지. 이미 겪어본 거 아닌가. 그걸 겁내면 더 못 캐."
이미 겪었다.
서재호도, 양시백도 입을 다물었다.
서재호가 먼저 침묵을 깼다.
"..주정재 형사는?"
"아직요."
"혜연이에겐 일부러 말하지 않았지만..그 형사 양반은 아주 공교로운 시점에 모습을 감췄지. 어떤 생각을 했느냐면..사건 하나 크게 터트려서 순간적으로 일을 덮으려고 손을 써 뒀다는 거야."
"......"
양시백은 제 은인이었고, 가족이었던 최재석이 잠적했던 것이 겹쳐 떠올라서, 그 때의 저처럼 울망거리던 권혜연의 얼굴을 떠올라 고개를 저었다. 서재호는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혜연이 부탁으로 알아보고는 있지만, 증발한 것마냥 이 때까지 조용하면 답은 하나지. 아마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높아."
"....그런."
"흔들리지 마. 목표를 생각해야지. 나는 이제부터 그 제보자를 찾는데 주력할 거야. 얼굴도 모르는 인간 찾으려니 벌써부터 팍팍하지만..어쩔 수 없겠지. 자넨 어쩔 텐가?"
"..그 제보자가 하태성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고 봐요. 아니라고 해도 지금으로선 아저씨를 도와서 사람을 찾는 게 제일 나을 거 같습니다."
서재호는 훅, 하고 고개를 돌려 담배 연기를 뱉었다. 그리고는 반도 태우지 않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끈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
"당신의 이야기군요."
허현오는 신문을 하태성에게 내밀었다.
경관 실종에 대한 기사. 하태성은 조금 난처한 빛을 보였다. 언제코 탄로날 것이라고 생각은 했다만 뜨끔해 놀란 것이 영 진정이 되지 않아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으나 순간적으로 숨을 몰아쉰 것은 감추기 힘들었다. 허현오는 재촉하는 눈빛을 두어번 던지기는 했으나 무표정한 얼굴에 큰 변화는 없었다. 하태성은 그런 허현오를 대하는 것이 조금, 아니, 몹시 힘들었다.
"전에 이야기 했던 대롭니다. 건오 씨와..다른 동료인 주황 씨처럼 죽는 사람이 나오는 것을, 나처럼 뒤틀린 사람이 또 다시 생겨나길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경찰 일에 매달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렇다면 사직계를 나오는 게 최소한 눈에 덜 띌 텐데요."
"..경찰이라는 신분은 유용하니까요."
"..건실한 일을 하는 것처럼 생각되지 않는 건오와 한 팀이라고 소개할 때부터 알았지만 경찰에 대한 일반적인 믿음을 깎는데 한 몫하고 계신 것, 압니까?"
"면목없군요."
11월 이전까지만 해도 광역수사대로 임명되면서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 했던 하태성이었다.
경찰로서 그렇게 불순하게 행동해도 되냐는 물음에 새삼 헛웃음이 나올 뻔 했다.
"계획은 있습니까?"
"제가 따로 건네드린 기사, 보셨습니까?"
"봤습니다. 그 신문사는 기사를 싣자마자 흑색선전으로 물의를 빚고 있다지요. 혹시 그 의문의 제보자가 하태성 씨입니까?"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필요로 할 때 얻었던 리스트 역시 익명으로 전해진 것이었어요. 저와 같은 목적, 혹은 저와 같은 자를 적대하는 누군가에게서 제공된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찾아내 접촉하려고 합니다."
허현오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을 찾아내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고, 하태성처럼 주목되기 쉬운 외모로 -실제로도 실종 경관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신문에도 큼지막하게 얼굴을 알린 상태였다. 안경을 벗고 모자를 푹 눌러쓴 듯 임시 방편에 지나지 않았다- 사람을 찾아 돌아다녔다가는 저가 도리어 목격당할 것이 뻔했다. 제가 도와야 할 일. 허현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들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일이 하나 있었다.
"지금, 하태성 씨는 어디에서 지내고 있습니까?"
***
파트너였던 형사, 주정재를 죽이고 감쪽같이 제 흔적들을 지운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은인이 그러했듯이, 주정재의 죽음 역시 가려져 잊혀지는 것이 맞았다.
박근태 의원, 주정재 경사.
백석에 깊이 연루되어 있지만 그 둘의 죽음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남자가 정확히 측정할 수 없었다. 반발의 씨앗이었던 둘의 죽음은 어쩌면 타격이 아닌 어부지리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주정재가 사라져 발생한 빈 자리에 자신이 밀고 들어갈 수 있는 것으로 충분했다.
뚜르르르-
휴대폰의 액정에 네 글자가 가지런히 떴다.
비서실장.
백석과의 미팅은 주정재가 도맡아 한 지라 남자가 비서실장과 일 대 일로 마주한 적은 거의 없었다. 10여년 전 이후로 처음이었다. 비서실장은 자신이 알던 앳되어 보이던 여자와는 이제 다른 사람이라고 새삼스레 되뇌던 남자는 통화 버튼을 누르고 입을 열었다.
"...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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