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퀘글

박근태+하성철

"국장님."

"....."

"...국장님!"

"아, 아.....미안하네. 근태. 뭐라고 말했나?"

"큰 게 아니라 국장님의 안색이 몹시 좋지 않아 보여서 잠시 눈을 붙인다거나 바람을 쐬고 오는 건 어떠실까 해서.."

"철야인데 어떻게 안색이 좋겠나. 다들 고생하고 있는데 지금 존 것으로도 충분하네."

"다른 팀원들도 잠시 숨 돌리고 있는 걸 확인해보고 오는 길입니다. 멀리 가는 게 싫으시다면 저와 함께 옥상에 가 보는 건 어떻습니까."

"고집이 세졌어. 근태."

"국장님을 닮았지요."

"알았어. 가지."

박근태는 먼저 일어서 국장실을 나왔고, 하성철 역시 박근태의 뒤를 따랐다. 하늘은 회색 섞인 푸름으로 가득했다. 조만간 해가 뜰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때문에 불빛 없는 복도였으나 걸음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한창 시절에는 철야에 투입되어도 달린다거나 힘겨운 줄 몰랐으나 순경부터 시작해 수사국장에 오른 지금은 지병까지 달고 있어 여간 힘에 부쳤다. 그러나 자리를 지키는 이상 그런 것을 드러내지 않고 평소대로 행동하는 것이 최소한의 미덕이었다. 박근태가 잠시 멈춰 서더니 뒤를 돌아보았다.

"국장님."

"아, 내가 너무 더디게 걸었나..?"

"아니오. 주변이 조용하니 아무리 저라도 좀 무섭군요. 제 손 좀 잡아주시겠습니까?"

"근태. 매일 같이 오가는 직장이 무섭다니?"

"무슨 일이 언제 어떻게 벌어질지 모른다는 점에서는 어디에서라도 두려움을 느끼기 마련이잖습니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하성철은 박근태가 자신을 배려하고 있기에 그런 실없는 말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손을 잡고 열 몇 개의 계단을 걸어올라가 비로소 옥상에 도착했다. 벤치 두 개와 쓰레기통 하나가 있는 옥상은 경찰 생활 초기 이후 몇 십년 동안 올라오지 않았음에도 익숙한 것이 반갑기도 했다. 탁 트인 하늘은 이제 푸른 기색도 서서히 옅어지고 있었다. 하성철은 벤치에 앉으며 말했다.

"순경 시절 생각나는구만."

"..그 땐..어땠습니까?"

"젊었지. 아무 것도 몰랐고, 치기 어린 정의감과 공명심으로 가득 차선 사고도 많이 쳤었고, 주변 동료들의 도움으로 고쳐나갈 수 있었고 그런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서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고 말이야."

"그리고 그런 국장님은 제가 경찰로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셨고요."

"선순환이라는 거겠지. 자네도 그렇잖나? 권현석 경감과 유상일 경위가 있잖나."

자리에 없는 두 사람의 이름에 박근태는 잠시 머뭇거렸다.

"두 사람은 저를 과대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가끔은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제가 그리 대단치 않은 사람임을 알면 실망할까봐."

"우리 모두는 대단치 않아. 하지만 서로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그 마음이 중요한 게 아니겠나."

"표창장까지 받으신 분이 너무 겸손하신 것 아닙니까. 아랫사람들 생각도 해주셔야지요."

"차기 국장감이라고 물망에 오를 자네가 그렇게 말하니 내가 다 부끄럽구만."

하성철은 모처럼 간만에 시름을 잊고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가족들에게만, 가장 오래 곁에 두었던 유일한 수제자격인 박근태에게만 보일 수 있는 웃음이었다. 옆에 앉은 박근태 역시 스승에게만 보일 수 있는 웃음으로 화답했다. 선진화파 소탕을 위해 다시금 정보를 선별하고 그에 따른 작전을 수립하고 실행해야 할 때가 온다면 언제 웃기나 했냐는 듯 사라질 표정이었으나 밤이 끝나고 아침이 오기 전 단 둘뿐인 옥상에서는 아무래도 좋았다. 별것도 아닌 대화들로 길게 웃음을 터트리고 나니 목 위로 물 차오르는 듯 답답했던 심정이 조금 나아지는 기분이었다.

"자넨 날 너무 잘 아는군. 나도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국장님도 절 잘 아시니 피장파장이지요. 10년은 끄떡없으실 테니 약해지지 마십시오."

"10년? 너무하군. 그때면 이미 정년 퇴임하고도 남을 시기야. 날 얼마나 고생시키려고 그런 무서운 말을 하나?"

"그럼 5년은 어떻습니까. 올해 안에 선진화파를 소탕하면 남은 시간들은 한숨돌리실 수 있을 겁니다."

"올해 안에 마무리 된다면 생각해보지."

하성철은 벤치에서 일어났다. 저멀리 끄트머리에서부터 빛이 고이는 것이 보였다. 조만간 해가 떠오를 게 분명했다. 곧 마주할 해가 새해의 해돋이인 것처럼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소리없이 일어서 해가 떠오를 동쪽 하늘에 기도하는 하성철의 모습을 바라보던 박근태는 무엇을 바라고 기도하건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노랗게 고인 빛은 붉은 빛으로 색을 바꾸기 시작하며 떠오를 해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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