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12

양시백 생축글

"좋아할까요?"

"좋아하겠지."

"오빠 생일이 12월이었구나..."

"재호 씨는 어떻게 알았어요?"

"언론계의 황야에서 살아남은 기자에게 못 알아낼 것이란 없지."

권혜연 뿐만 아니라 홍설희 역시 빤히 바라보는 바람에 서재호는 허세 부리던 것을 그만두고 사실대로 말했다.

"자연스럽게 내 생일 알려주면서 양시백이 생일도 물어봤어."

"전 2월 14일이에요. 설희는?"

"10월 1일요."

"에그, 설희는 이미 지났구나. 내년을 기약하자."

"재호 씨는 언제인데요?"

"3월 29일. 잘 기억해 두라고."

셋은 그 뒤로도 북적북적 준비를 했고, 권혜연이 확인차 양시백에게 잠시 전화를 걸었다.

-저요? 알바비 나와서 오늘 먹을 것 좀 간단히 사 가려고요. 도장에 혼자 있어요?

"네. 재호 씨랑 설희도 이쪽으로 온다고 했어요. 도착까지 얼마나 걸릴 거 같아요?"

-한 30분쯤 걸릴 거 같아요, 추우면 담요 두르고 난로 쬐고 계세요.

권혜연이 통화 음량을 키워둔 덕분에 양시백의 음성은 입가에 검지를 대고 다물고 있던 홍설희와 서재호에게도 똑똑히 들렸다.

"...라고 하네요."

"30분이면 넉넉하지."

"재호 아저씨, 아까 시키셨던 거 다 됐어요."

"우리 설희가 야무지게도 잘 해놨구나. 혜연이, 마무리 짓자고."

"알았어요."

북적북적 도장 안에 이것저것 들여놓고 장식하던 세 사람은 20여 분이 지났을 쯤에야 행동을 멈추고 도장의 조명을 모두 껐다.

남은 것은 조용히 난로를 쬐며 기다리는 일 뿐이었다.

***

양시백이 라면 5개 들입 한 봉지와 생수, 음료수가 든 비닐봉투를 왼손에 끼고 잠겨있던 도장 문을 열었다.

"왔다가 그냥 가셨나?"

양시백은 여러모로 자신이 없을 때를 대비해 권혜연과 서재호에게 도장 예비 열쇠를 미리 준 상태였고, 양시백 부재 시 잠겨있는 도장 문을 열고 들어와 안에서 기다리거나 그러다 일이 생겨 돌아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불도 꺼져 있고, 안에는 적막만이 가득해서 이번에도 그런가 보다 생각하는 찰나였다.

펑, 펑!

퍼벙!

불도 켜지기 전에 요란한 소리가 양쪽에서 들려와 양시백은 반사적으로 든 것을 쥔 채로 움츠러들었다. 소리가 멎자 곧 불이 확 켜졌다.

"생일 축하해요!"

"생일 축하해, 양시백이!"

"축하해요, 시백 오빠!"

요란한 소리가 나는 종이폭죽을 든 채인 홍설희와 권혜연, 막 불을 켠 듯한 서재호가 씩 웃었다.

"양시백이, 놀랐어?"

"간 떨어지는 줄 알았거든요!"

"옛다, 간!"

"진짜 시간 딱 맞춰오셨네요."

"다들 춥지 않았어요? 난로 불빛도 안 보이던데.."

"관장실에서 쬐고 있었어서 괜찮아요. 여튼, 다시 한 번 생일 축하해요, 시백 씨."

"셋 다..준비하느라 고생 많았어요. 밝았을 때 들어왔으면 우리 도장 아닌 줄 알았겠네."

도장 바닥에는 부드러운 녹색 카펫 비슷한 것이 깔려있었고, 전에 한 번 대청소 겸해서 반짝반짝하게 닦아둔 거울에는 크리스마스 풍 스티커가 모서리쪽에 붙어있었다. 창가에는 또 붉은색 노란색 초록색 반짝반짝거리는 작은 꼬마 전구가 장식되어 있었고, 모두 둘러앉을 수 있을 만큼 넓게 깔린 카펫 가운데에는 작은 트리 장식과 케이크를 담은 파란 상자가 놓여있었다.

"추우니까 출입문 꼭 닫고 어서 이쪽으로 앉자고."

"시백 씨, 케이크는 좋아해요?"

"아, 무, 물론이죠. 다른 분들도 케이크 좋아하실런지..."

"설희도 좋아하지? 케이크."

"네! 저랑 언니랑 아저씨랑 다같이 고른 거에요!"

"들었죠?"

"너무 부담 가지지 말고 어깨 허리 딱 피고 먹자고. 도장은 세미 크리스마스! 같은 느낌으로 꾸며봤는데, 좀 괜찮아?"

"네. 덜 적적하고 좋아요. 다들..정말 고마워요."

서재호는 케이크를 상자속에서 빼고 큰 초 두 개와 작은 초 일곱 개를 콕콕콕 배치한 뒤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세 사람은 박수를 치면서 어서 초를 훅 불라고 신호를 주었고 양시백은 여전히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훅 불었다.

"그나저나 다들 저녁 안 드신 거 같은데, 케이크만으로 괜찮겠어요?"

"걱정 마세요, 시백 씨."

"우리가 그런 것도 생각 안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천만의 말씀!"

"만만의 말씀!"

서재호의 홍설희가 웃으면서 추임새를 넣자 양시백은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 건 그 다음이었다.

서재호가 재빠르게 일어나 도장 문가로 다가갔다. 양시백은 그 쏜살같은 모습이 무협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경공처럼 보였다.

"배달 왔습니다."

"아, 여기로."

넓적한 피자 한 판에 큼직한 종이 상자 둘, 콜라 페트병이 둘. 양시백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재빠르게 계산을 끝마치고 배달원을 보내버린 서재호는 양손에 솜씨좋게 짐을 끼고 가져와 바닥에 내려놓았다. 서재호가 음식들을 가져오는 동안 권혜연은 케이크를 도로 상자에 집어넣었다.

"다 미리 시켜놨지."

"케이크는 식후에요."

막 도착해 따끈따끈한 피자와 치킨, 으깬 감자와 고구마 샐러드에 포크로 찍어먹을 수도 있는 야채 샐러드, 탄산 가득한 콜라에 도장 안도 데워진 공기로 따끈했다. 최재석을 잃은 양시백이 다시 느끼지 못 할 것만 같았던 생일날 풍경이었다. 아니. 아니었다. 단 둘뿐이던 생일 축하는 단촐했었으니까.

제 생일처럼 여기던 사람도, 이제까지처럼 축하를 받을 양시백도 없었다. 생일 축하에 감동 받았다는 핑계로 눈에 핑 도는 눈물을 참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양시백은 잠깐 그런 생각을 했지만 곧 좋은 날 좋게 축하해 주려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짐을 더 늘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가볍게, 이렇게 그냥 가볍게 보내고 싶었다. 양시백이 이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슬픔의 한도는 딱 거기까지였다.

"잘 먹겠습니다."

다 함께 저녁 식사를 시작하면서 조용하던 도장에 간만에 사람 말소리가 도란도란 울렸다.

***

둘이었던 공간에서 혼자 잠드는 건 쓸쓸한 일이었지만 다 같이 자자고 할 만큼 도장 내 침구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홍설희는 권혜연과 함께 가기로 했고, 서재호는 좁긴 하지만 제 집에서 자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권유했으나 양시백은 오늘만큼은 그럴 수 없어 거절했다. 내일쯤 놀러가겠다고 둘러대 모두 돌려보낸 뒤, 도장 문을 닫고 뒷정리를 시작했다. 남은 음식은 잘 간추려 냉장고에 넣어두고, 카펫은 먼지와 가루를 잘 털어내고 그 자리를 깨끗이 닦은 뒤 관장실에 깔아놓았다.

그리고 몇 조각 안 남은 케이크는 다시금 상자에서 꺼내 온전한 면을 한 조각 잘라 접시에 덜고 책상 위 액자 앞에 두었다.

"..늘 제 생일을 꼬박꼬박 챙겨주셨죠. 관장님."

이렇게 헤어질 줄 알았더라면, 그토록 아무렇지도 않게 이별할 줄 알았더라면 평소에 더 잘 하는 거였는데, 서로의 관계에 의문이 남지 않도록 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 해서, 약속하고 또 부탁받았던 것 역시 제대로 이루지 못 한 것에 마음이 아파왔다. 양시백은 참았던 눈물을 흘렸으나 곧 두 눈가를 문질렀다. 이 이상 눈물에 잠겨 허우적거리면 안 됐다. 모든 일이 끝나고 나서야 마음 놓고 울 자격이 주어질 것이다.

"관장님, 보고 계시면 오늘 제 생일 축하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케이크 정말 맛있는데, 이거 드시고 거기서도 잘 지내요. 언젠가 다시 만날 때까지요..알겠죠?"

양시백은 생크림 케이크 옆에 포크를 비스듬히 올려두고는 곧 잠들었다.

***

다음날.

평소처럼 잠에서 깬 양시백은 누군가가 남긴 포크 자국 선명한 케이크의 잔해를 보고 쓰게 웃었다.

"..마지막 선물, 잘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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